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22
첫 단추
하눌 엔터가 내놓은 입장문은 테오라 팬인 코티지뿐만 아니라 회사 소속의 다른 연예인들에게도 여파를 미쳤다.
그뿐만 아니라 연예계 전반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눌 엔터답지 않은 입장문을 냈는데 그 내용조차 예상 밖이었던 탓에, 예상보다 훨씬 큰 소동으로 번진 듯했다
악플러 입장문의 시작이 테오라였다는 것까지는 모르는 사람이 많았지만, 적어도 ‘악플러 대응’에 대해 팬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시행했다는 간략한 정보는 널리 알려졌다.
팬들이 악플러를 싫어한다는 사실이야 알고 있다. 모를 수가 없다. 하지만 한 번도 팬들에게 연예인이 악플러들을 어떻게 대응하길 원하는지 물어볼 생각을 떠올리진 못했다.
팬들의 참여로 만들어진 투표 결과는 연예인들에게 충격이라면 충격이었다. 눈에 보이는 결과로 보여줌으로써 지금까지의 생각을 깨뜨려버렸다.
연예인이면 ‘착한’ 이미지를 위해서 선처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철저히 파괴했다.
단 한 번의 투표로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이유로 각자의 팬덤을 대상으로 투표를 열었고, 결과는 뻔했다.
비율만 다를 뿐, ‘선처 없는 강경 대응’이 압도적인 응답을 보였다.
연예인들, 특히 그 가운데서도 아이돌은 팬들이 있어야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존재. 당연히 다수의 팬이 원하는 바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1군 남돌인 바닐라진이 첫발을 떼자 다른 아이돌도 우르르 따라서 투표를 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법적 대응을 할 근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 내장까지 시원!
– 근데 이제까지 팬들 맘도 모른 거?
– 바닐라진이 하니까 다 따라하는 거 봐ㅋㅋ시Uㅋ
– ㅉㅉ 바닐라진도 따라한 거 앎? 하눌 엔터 테오라가 맨 처음 시작했음
– 테오라? 그 웃긴 그룹 아님?
– 웃긴 그룹이Lㅋㅋ왜 그렇게 기억하냐以빱?
– 나 코티지, 반박할 수 없다…웃프군
– 코티지가 테오라 팬덤 이름임?
└맞음 팬덤명 코티지(초가삼간)
└괄호 안에 초가…삼간? 팬덤명 왜 그래?
└이거 보면 앎. 테오라 팬덤명이 초가삼간이 된 이유는? 입덕 영상 추천 newtube.com/watch?v=6C-M_nDWzhk – 내돌도 투표하더라 앞으로 악플러들 싹 고소할 수 잇겟다^^ 테오라 ㄱㅅ
– 얘네 이거때메 악플러한테 까이는중 열심히 방어하는데 얘네 팬 아직 한줌단이라ㄷㄷ
└지들 악플 못달게 됐다고?
└노어이
└대형 팬덤에서 공동 대응해야 하는거 아님? 테오라가 총대 매준거잖아
└그래야할듯
테오라는 의외의 경로로 아이돌 팬 사이에서 인지도를 얻었다. 그게 호의 섞인 시선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고무적이었다.
타 팬들에게 호감을 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
게다가 그 호감이 언젠가 싹을 틔워서 팬이 되는 첫 단추가 되어줄 수도 있다.
여러모로 이번 투표는 테오라에게 큰 이득을 가져다주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오란의 개인 뉴튜브 영상을 처음 업로드하기로 한 날.
원래 계획보다 한참을 미뤄진 상태지만, 악플 걱정 없이 업로드할 수 있다는 점은 좋았다.
오늘은 거의 테오라 전용이 되다시피 한 회의실에 집합했다. 오란의 개인 영상 감상 겸 프케이의 컴백 티저를 커다란 화면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기대 좀 하지 마. 별거 없는 영상인데.”
오란이 올리기로 한 영상은 그림 그리는 조용한 브이로그 같은 느낌이라 특이하진 않다. 다만 TV나 다른 곳에서 드러지 않은 차분한 오란이 등장한다는 점이 다르달까.
테오라 자컨에서 오란의 원래 성격에 대해 힌트를 줬다면, 이번 개인 영상에서는 오란의 다른 면을 강조했다. 혼자 있을 땐 과묵해지는 오란의 원래 스타일대로 촬영했다고 들었다.
혼자 있을 땐 시니컬함이 덜 드러나는 대신 텐션 올리기가 힘들다나?
까칠함이 약해진다는 건 희소식이지만, 자주 보던 ‘귀여운 홍오란’은 없을 터다.
편집 전 영상은 확인해봤는데, 팬들을 의식해서 그림을 그릴 때도 간간이 말을 걸긴 걸었다. 그래봤자 얼마 하지도 않았지만.
편집으로 적당히 꾸며냈겠지만, 조금 걱정이 되는 건 사실.
코티지들이 어떻게 느낄지는 가늠이 되지 않으니까. 자컨에서 컨셉인 척 드러낸 오란의 성격 때문에 작은 동요가 일었다가 가라앉기도 해서.
오란의 성격을 지적하는 악성 채팅 내용 탓에 다시 그 기억이 뇌리를 스치지 않았을까. 눈치 빠른 팬들은 아마도 눈치챘을 것이다.
오란의 냉소적인 성격을 단번에 드러낼 계획은 아니었다. 충분한 여유를 두고 준비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 알고는 있다.
그런데도 마냥 예뻐해 주길 바라는 이 욕심쟁이 같은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너무 얽매이지 마. 개인 영상은 덤으로 쳐.”
오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본인은 괜찮다는데 내가 이 이상 걱정하는 것도 오지랖이겠지. 그런 생각으로 겨우 다른 쪽으로 주의를 돌렸다.
때마침 박하가 저 멀리서부터 우다다 달려갔다.
“이원 형! 나 개인기 만들었어! 볼래?”
개인기? 그 바쁜 와중에 개인기까지 만들다니. 은근히 박하도 이것저것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 많다.
검은 민소매 티를 입은 박하는 더운 날씨 탓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코티지들이 봤다면 이런 모습까지도 좋게 봐주려나?
“다들 봐봐! 내가 재밌는 거 보여줄게!”
개인기 하나 보여준다고 호들갑을 잔뜩 떨었다. 어떤 개인기길래 제 입으로 재밌다고 자신할까?
멤버들이 각자 휴대폰으로 SNS와 팬카페의 반응을 확인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여기서 박하가 바라는 대로 해주지 않았다가는 계속 칭얼거릴 게 뻔하다.
“박하, 너 가수잖아. 음정 떨어졌어. 다시. 한 번에 제대로 할래? 일주일 내내 녹음할래?”
“……?”
뭐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듯한 이상한 개인기였다. 박하가 누굴 따라 하는 거지?
의아해서 누구냐고 물으려고 할 때, 옆에서 서라운드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만 빼고 한참 낄낄대던 멤버들은 간신히 웃음을 멈췄다. 헥헥대는 걸로 봐서 숨이 모자랄 정도로 웃겼나 보다.
“으큭크극크, 안 웃고 싶은데. 너무 절묘하다. 크흡.”
“웬일이냐, 박하준? 싱크로율 미쳤는데?”
“으음….”
다들 박하가 누굴 흉내 냈는지 곧바로 이해했는데, 나만 못해서 소외당한 기분이었다. 녹음 관련한 대사로 봐선 프로듀서님 같기도 하지만, 저렇게 딱딱한 말투를 구사하진 않으신다.
근데, 어쩐지 서혼 형이 눈치를 보는 것 같은데? 의구심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설마…!
“박하, 조금 더 목소리를 깔아. 말투는 더 둥글게. 그러면 perfect.”
지금 박하가 낸 목소리보다 낮고, 부드러운 말투? 그러면 거의 내 목소리랑 비슷…!
“박. 하. 준. 설마 나를 따라 하진 않았을 거라고 믿어?”
“이원이가 저렇게 스타카토로 말하는 거 드문데. 거기다 말꼬리도 올렸어. 너 이제 큰일 났다. 박하 어떡해?”
상황을 하나하나 중계해주는 초록 형도 얄미웠다.
박하가 내 성대모사를 했다는 걸 알고 웃음을 참지 못한 멤버들 모두 나쁘다! 전부 한통속이 분명하다!
“히히! 코티지들은 좋아할걸! 응? 코티지들이 좋아할 거라니까?”
코티지 핑계를 대면 다 되는 줄 아는 저 영악함이 무섭다. 왜 내 약점을 이렇게 잘 알지?
한마디 해주고 싶은데, 뭐라고 할 수 없는 이 상황에 우물거리자 나를 유심히 살피던 초록 형이 팔을 뻗었다. 그리고 내 머리를 엉망진창으로 헤집었다.
“으으?!”
“아, 진짜! 내가 웬만하면 이런 얘기 안 하는데, 이원이 반응 너무 귀엽지 않아? 이건 아무나 못 가지는 재능이야. 역시 울 애기답다!”
내가 질색하는 단어까지 입에 담아서 칭찬이 칭찬인지 모르겠다. 멤버들의 입가에 걸린 미소 때문에 더 약 오른다.
일방적으로 귀여움 ‘당하는’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 대책을 세워야겠다.
코티지들도 그렇고, 멤버들도 그렇고 왜 다들? 내가 원인인가…? 아닐 거다. 아니어야 한다.
“함이원이 또 쓸데없는 고민하지? 너는 있는 그대로가 매력적이라니까?”
오란답지 않은 상냥한 멘트가 너무 수상하다. 나를 속이기 위한 수작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가느스름한 눈으로 쳐다봤더니 어깨만 으쓱였다.
타격감이 어쩌구 하는 중얼거림이 귀를 간지럽혔다. 고개를 확 돌렸더니 바로 멈췄지만.
“캐릭터가 확실하면 그만큼 대중의 눈에 각인되기 쉬워. 그런 면에서 이원이 넌 축복받은 게 아닐까?”
서혼 형…. 뒤늦게 예쁘게 포장해도 소용없어.
아까 제일 오래 웃은 사람이 바로 서혼 형이었다. 그래도 다른 멤버들과 달리 미안해하니까 정상 참작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오란과 박하, 초록 형은 요주의 인물. 장난기가 매일 어디서 솟아나는지 맨날 누구 놀릴 거리만 생기길 바라는 하이에나들이다.
지온은 주도적으로 하는 편은 아니긴 한데, 대신 뻔뻔하게 끼어들어서 팩폭으로 말문을 막는다.
그러니까 나는 코티지들과 멤버들이 만든 정글을 헤쳐 나가야만 한다. 누가 비법이라도 알려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왜 내 좁은 인간관계는 모두 정글 속에?
부모님께 고민 상담이라도 할까 잠시 고민했다가 그만뒀다. 전에 가볍게 말을 꺼내 본 적 있는데, 멤버들이랑 친하게 지낸다고 흐뭇해하셨으니까….
방법이 없을까? 깊어지려는 고민을 초록 형의 목소리가 막아 세웠다.
“오란이 영상 올라왔다. 바로 재생할게.”
노트북과 연결된 대형 스크린에 오란의 모습이 담겼다. 천재 화가처럼 분위기 있게 찍힌 영상은 10분 남짓의 길이. 그 때문에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조금 놀라운데. 홍오란.”
예상 밖으로 오란의 영상은 담백하고 진솔했다. 통통 튀는 애교가 빠진 대신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힐링 영상이랄까.
그림 실력이 수준급이라 막힘 없이 풍경화를 그리는 손길이 시원시원했다. 다음엔 멤버 한 명의 초상화를 그리겠다는 말로 기대감까지 심어줬다.
잔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오란의 목소리는 객관적으로도 듣기 편했다. 소리만 틀어놓으면 ASMR로 써도 될 정도로.
홍오란에게 귀여움을 기대했던 팬이라면 실망했을 수도 있겠지만, 인간 홍오란이 궁금했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호감을 느낄 수 있는 영상이었다.
“나쁘진 않지?”
“오란, 기대 이상.”
지온이 짧게 평했다. 초록 형은 분석과 개선 사항을 집어냈고, 서혼 형은 간지러운 찬사를 쏟아냈다.
이쯤 되면 서혼 형은 칭찬봇이 아닐까?
“편집의 힘 아니야? 오란 형을 너무 미화시켰잖아! 편집해주신 분한테 절해야 해!”
누구보다도 오란의 민낯을 잘 아는 박하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했다. 놀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이런 따듯한 편집을 할 수 있다니. 역시 프로는 다르다. 앞으로 테오라 멤버들의 다른 영상에도 신들린 편집 솜씨를 보여주시겠지? 믿음직스럽다.
댓글은 나중에 확인하겠지만, 혹평이 나올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게 우리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제 프케이 티저를 확인해야겠지?”
이번 활동기의 최대 적수는 프케이. 눈에 힘을 주고 스크린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