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29
홈마 ‘어재’ (3)
다음은 홍오란 파트.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오란은 꿈과 희망이 가득한 동화 속 주인공 같았다.
팔을 쭉 펼치고 한 발로 빙그르르 가볍게 도는 독무에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새로운 것들을 만나러 갈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신기하고도 경이로운 너를
Oh Oh Oh Cottage Sweety
‘어떻게 저게 고3 얼굴이냐고. 사과머리? 친구들한테 두들겨 맞지나 않음 다행이지.’
수험 공부에 잔뜩 찌들어서 다크서클로 바닥을 쓸고 다녀도 모자랄 판에. 아무리 학교를 안 다닌대도 저런 얼굴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얼굴만 보면 뚝딱거려도 괜찮을 텐데 춤도 곧잘 췄다.
동선을 바꿔서 서혼이 앞으로 나왔다. 마이를 쥐고 입술 가까이 붙인 서혼은 멜로딕한 랩을 선보였다.
의욕 Zero 귀차니즘 Max
그럼 너는 떠날 때가 된 거야
마음의 Energy를 채우러
Energy from zero to maximum
Energy from zero to maximum
랩치고는 그리 빠른 속도가 아니라 따라 하기 쉽게 들렸다.
가사도 단순해서 다른 가수 팬들도 웅얼웅얼 따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중독성은 확실했다.
여기서 탈출해 (따분한 오후) 지금 당장
여기서 탈출해 (귀 아픈 잔소리) 지금 당장
여기서 탈출해 (지금 당장) right now
Oh Oh Oh
처음 후렴을 들었을 때 딱 알아차렸다. 다른 사람이 단어를 바꿔 부를 수 있도록 가사를 빡빡하게 넣지 않았음을.
상업성을 제대로 노렸는데도 그 의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어느새 세뇌당하는 기분. 그 기분은 여기 함께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듯했다.
흥을 참지 못하고 몸을 음악에 맞춰 살짝 바운스하거나 옹알이하듯 따라 흥얼거렸다.
타팬들은 물론 음악방송 관계자들까지도.
‘이번 타이틀은 뭐랄까. 영리하네.’
무더운 여름에 맞춰 청량한 멜로디로 듣기 편하게 작곡했고, 입에 배기 쉬운 가사를 붙였다. 따라 하기 쉬운 포인트 안무까지.
어찌 보면 뻔하다고 볼 수 있는 흥행 요소를 몽땅 모았는데도 실제로는 뻔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 곡의 프로듀싱을 맡은 함이원의 천재성이 드러났다.
마침 함이원이 센터로 나오면서 팔을 엇갈려 내렸다. 마치 상의를 벗는 것을 표현한 동작 같았다. 그대로 팔을 굽히며 가슴까지 올렸다.
지루한 껍데기를 집어던져
작은 틀 안에서 벗어날 때
너는 자라날 준비가 됐어?
Oh Oh Oh Butterfly Baby
깨끗하게 트인 보컬이 가슴까지 시원하게 씻어냈다.
집어던지고 벗어난다는 의미를 함축하는 안무 같았다.
양손을 팔꿈치에 대고 위로 올리자 팔에 가려졌던 얼굴이 극적으로 드러났다. 그와 동시에 곳곳에서 한숨 같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언제 봐도 충격적인 외모였다.
함이원은 얼굴도 열일 중이었지만, 실제로 무대에서도 바빴다.
다른 멤버들이 자기 파트를 소화하는 내내 더블링을 하고, 화음과 애드립을 넣었다.
빠른 스텝의 춤만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텐데, 춤추는 내내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대단한 폐활량이었고, 노련한 노래 실력이었다.
눈 폭풍 속에서도 잘 들리긴 했지만 준비된 무대에서 듣는 라이브의 선명함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동선이 빠르게 바뀌면서 날아오듯이 제톤이 멤버들 사이에서 확 튀어나왔다.
stress 폭발 직전 Get out of here
business 폭파 직전 Run away from here 너에게 쉼 나에게 꿈 and Escape
모두 다 원한다면 모두 다 바란다면
허스키한 톤으로 목을 긁듯이 하는 랩이 강제로 고막에 박혔다. 발음이 어떻게 하면 저렇게 쫀득하지.
래퍼 능력치도 높은데 잠재력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적응한 상태가 아니었는데도 어떻게 쇼미더골드3에 나와서 상위권에 들 수 있었는지 랩을 조금만 들어봐도 저절로 알게 된다.
특히 영어를 할 때 나오는 그루브는 배운다고 똑같이 할 수 있는 종류도 아니었다.
‘테오라는 진짜 사기캐들만 모았다니까.’
방청 오기 전에 테오라가 올린 응원법 영상을 보고 오긴 했어도 입 밖으로 소리를 내기가 뻘쭘할 줄 알았건만, 생각보다 분위기가 자유로웠다.
다른 코티지의 목소리에 소심하게 응원을 얹었다.
여기서 탈출해 지금 당장
여기서 탈출해 right now
여기서 탈출해 right now
여기서 탈출해 right now
Oh Oh Oh Oh Oh Oh
마지막에 후렴을 다시 반복하면서 다시 노래를 귀에 쑤셔 넣었다. 확인 사살이라도 하는 것처럼.
엔딩 요정은 함이원이었는데, 윙크하듯 한쪽 눈을 사르르 감으며 볼에 손바닥을 대 예쁜 척했다.
화장을 뚫고 나오는 붉은 볼을 볼 때, 함이원이 스스로 했을 리는 없을 것 같다. 아마 멤버들이 추천하지 않았을까?
무대 바로 앞에 있던 팬들이 휘청였다.
카메라 감독이 속눈썹이 한 올 한 올 보일 만큼 카메라 렌즈를 바짝 가져대는 게 보였다.
처음으로 오게 된 공방. 테오라를 가까이서 직접 본 것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배운 점이 많았다.
‘음방은 이렇게 찍는구나.’
카메라 감독님이 찍는 스킬이 새로웠다. 군무 부분에선 딱 멤버들을 전부 잡으면서 안무가 잘 보이게 잡고, 단독 파트엔 그 멤버의 매력적인 부분에 집중했다.
‘이번 뮤비가 왜 느낌이 다른가 했더니, 구도가 신선해서 그랬나?’
다양한 경험을 할수록 좋다는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깨달았다. 의외의 장소에서 영감을 얻었으니까.
‘나도 다른 시도를 해볼까….’
테오라가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무대에서 내려갔다. 실수 하나 없는 완벽한 무대였다. 무시무시한 연습량이 간접적으로 느껴졌다.
다음 차례인 그룹이 올라오는 걸 보고는 다른 팬에게 자리를 양보하면서 뒤쪽으로 이동했다.
오늘이 첫 무대라 그렇지, 아마 몇 번만 지나도 타돌 팬들도 전부 무의식적으로 응원법을 따라 하게 될 것 같다. 그때가 기다려진다.
처음 듣고도 수능 금지곡이 되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반복 재생한 지금은.
‘일상 금지곡으로 지정해야 하지 않을까?’
잠에서 깨어났을 때부터 잠들 때까지 문득문득 귀에 맴돌았다. 아니, 꿈에서도 들은 느낌이었다.
끊기 힘든 중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노래방이나 차 안에서 따라부르면 스트레스가 뻥 뚫릴 것 같은 노래기도 했다.
휴가 떠날 때나, 탈출하고 싶을 때 입에서 툭 나올만한 노래였다.
‘그러면 매일이잖아?’
학교, 회사, 집…. 탈출하고 싶은 장소는 무궁무진하니까.
프케이(Pro.K)의 이번 신곡도 잘 빠졌지만, 초반부터 잡음이 있어서 팬덤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들었다.
콘서트 투어를 끝으로 프케이가 해체한다는 사실 때문에 심란한 상태인데 거기에 불을 붙여버린 셈.
이 틈을 노려서 테오라가 치고 올라갈 수 있을 듯했다.
현재 테오라의 기세를 보면 10위 안쪽으로도 파고들 수 있을 듯했다.
데뷔 타이틀곡인 ‘각인’이 아직 TOP100 아래쪽에 붙어있는 데다 수록곡인 팬송 ‘여름이었다’의 추세도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함이원이 작곡한 드라마 OST 두 곡도 꾸준히 TOP100에 들어갔다. 100곡 중에 함이원이 작곡한 곡이 5곡이나 포함되는 셈.
함이원은 대중 앞에 본인의 천재성을 증명해냈다. 작곡가로서 데뷔 1년 차의 신인이 이런 성과를 내는 일은 전무후무했다.
‘아마 함이원한테 작곡 의뢰 쏟아지고 있겠지. 나라도 찔러보고 싶겠다.’
게다가 OST 작곡은 아는 사람만 알고 있어서 아직 저평가된 상태였다. 이때를 잡아서 연을 만들어두어도 나쁠 건 없었다.
‘뭐, 함이원은 테오라 곡 작업하는 것만으로도 바쁘겠지만.’
아이돌로 활동하는 중에 작곡까지 하려면 건강을 갈아 넣어야 할 터였다. 테오라처럼 공격적으로 활동하는 그룹이라면 더더욱.
이번 활동에 코티지들이 멤버들의 건강을 걱정했던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머리로는 테오라를 걱정하며 다른 가수들의 무대를 구경했다. 화려한 조명 때문에 눈이 부셨지만, 그만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촬영이 모두 끝나고 다른 팬들이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어차피 다음 일정도 없고, 사람에 치이는 것보단 늦게 나가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한산해지기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곁으로 다가왔다.
“어재 님?”
“…네?”
어재영이 아니라 어재로 불렀지만, 익숙한 이름이라 엉겁결에 대답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매니저 최준현입니다. 테오라 멤버들이 어재 님에게 이거라도 드리고 싶다고 해서 대신 왔습니다. 직접 만나서 감사 인사 전하고 싶다고 했는데, 규정상 안 되는 일이라 제 선에서 잘랐습니다. 형평성 문제도 있어서요.”
“아….”
테오라의 매니저는 위압감이 대단했다. 셔츠가 힘겨워 보일 정도로 탄탄한 근육으로 온몸을 두르고 있었다. 이런 사람을 보고 몸이 흉기라고 하는 게 아닐까.
테오라 매니저는 경호원도 겸한다더니. 그 얘기는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리라.
매니저라는 분은 커다란 종이가방 두 개를 내밀었다. 건네받은 종이가방은 생각보다 묵직했다.
“테오라 매니저로서 저도 어재 님께 감사드립니다. 테오라의 이름을 알리는 데에 앞장서주셔서.”
낯이 뜨거워졌다. 이런 감사까지 받을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우연히 인상적인 장면을 봤고, 찍었고, 편집했을 뿐이다.
아까 테오라 멤버들이 자신을 알아본 것 같은 느낌은 절대 착각이 아니었다. 채널 이름을 정확히 부른 걸 보면.
종이가방 살짝 안을 살펴봤는데 앨범과 커다란 하얀 상자가 들어 있었다.
‘이게 뭐지?’
앨범 외에 받을만한 물건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 굿즈도 출시 안 했으니까.
“혹시 이 안에 뭐가 들었을까요?”
“애들이 사인한 앨범과 이번에 출시될 굿즈와 응원봉입니다.”
“…응원, 흡!”
큰 소리가 나오려고 해서 입을 막았다. 아직 방청객들이 전부 나가지는 않았으니까.
응원봉이라면 코티지들 사이에서 ‘변신 합체 응원봉’ 내지는 ‘지킴이’라는 애칭으로 종종 부르던 그것?!
금방 나오긴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는데!
벌써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당장 상자를 열어보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누르고 꾸벅 인사를 했다.
테오라 멤버들과 만나지 못해서 아쉽긴 한데, 내가 테오라가 일하러 온 장소를 침범할 만큼 예의 없는 놈은 아니다.
“다음에 정식으로 뵐 자리가 있을 겁니다.”
공식 행사나 콘서트 같은 이벤트 티켓 말하나 싶었다.
“아. 넵!”
매니저님은 깍듯한 인사와 함께 성큼성큼 사라졌다.
“와… 와, 와!”
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답답하다. 신기하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이 기분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손에 든 종이가방을 길바닥에서 펼치지 않는 것만으로 인내심을 다 써버렸다.
* * *
집에 돌아와 경건하게 선물을 열었다. 종이가방 하나에는 테오라 전원의 사인이 담긴 데뷔 앨범과 이번 미니앨범,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간단한 굿즈가 들어있었다.
“아까워서 못 쓰는 팬들의 마음을 모르는구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하이라이트인 응원봉 박스를 꺼냈다. 응원봉 크기를 대충 아는데 왜 이렇게 큰지 알 수가 없다.
“…과대포장?”
과자처럼 질소라도 채워 넣었나 싶기도 했지만, 상자가 묵직했다.
불투명한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응원봉 외에 다른 물건도 들어있었다.
“…도대체 뭘 만든 거야, 테오라?”
저절로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용도 불명의 자주색의 원통형 막대를 든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