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30
인생은 선택의 연속
프케이(Pro.K)는 1군에 필적하는 선배 아이돌 그룹. 반면 테오라는 이제 두 번째 앨범을 낸 1년 차 신인 그룹.
따라서 테오라가 인사를 하러 프케이의 대기실에 가는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무한한 가능성, 테오라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앨범 두고 가요.”
“…….”
대답해준 멤버는 나은 편이었다. 나머지 멤버들은 우리를 슥 훑어보고 고개를 돌리거나 아예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들의 안중에 우리는 아예 없었다.
우리 테오라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TV에서 봤을 땐, 진짜 가족처럼 끈끈해 보였는데.
이대로 나가야 하나 싶어 머뭇거리는데, 프케이의 리더인 류도후 선배님은 우리를 보다가 한마디 던졌다.
“앞으로 인사 생략하자, 우리? 피차 피곤하니까. 알아들었지?”
직설적이다. 신인 그룹인 우리는 무조건 받아들여야 했다.
“…네. 선배님. 앨범 여기 두고 가겠습니다.”
“쉬시는 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조용히 뒷걸음질 쳐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다른 선배님들의 대기실에 방문했을 때는 오히려 우리가 민망해질 정도로 환대해주시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가끔 피곤해서 우리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선배님도 계시긴 했지만, 잠잘 시간을 줄여가며 활동하는 바쁜 분에게 반응을 바랄 순 없었다. 그건 사치니까.
무관심의 이유가 뭔지 잠깐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프케이 선배님들이 안 바쁠 리가 있나. 제한 시간을 두고 그 안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돈을 뽑아내기 위해서 소속사가 쉴 틈 없이 굴리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개인으로는 언젠가 다시 연예계에서 만나게 되더라도, 프케이라는 그룹으로서 만날 일은 이제 없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그래도 조금 서운했다. 예상 구도 속에서 프케이와 테오라는 선의의 경쟁자 같은 구도였으니까.
진지하게 우리를 대해줄 거라 막연하게 기대했나 보다. 테오라는 프케이에 비하면 아직 하룻강아지인데.
숨을 천천히 끝까지 내쉬면서 섭섭함을 털어냈다. 혼자 제멋대로 기대해놓고 혼자 실망한 거니까 수습도 혼자서 해야 했다.
초록 형이 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지기에 최대한 뻔뻔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여기서 섭섭했다고 하면, 또 어린애 취급하는 발언이 나올 테니까.
“프케이 선배님들 오늘 이후론 만나기 어려울 거야. 앞으로 음방 사녹으로 진행한다더라고.”
프케이로선 다시 얼굴 볼 기회가 없겠구나.
한층 더 서운해졌다. 개인 활동할 때나 다른 그룹 소속으로 마주치는 수밖에.
“아, M.com 음방은 사녹 아닐 수도 있겠다. M.com 출신이시니까.”
“해체라니….”
박하는 제 일처럼 슬퍼했다.
“프케이라는 그룹이 아깝지만, 원래 각자 다른 기획사 소속이니까 어쩔 수 없는 흐름이지.”
서혼 형 말처럼 정해진 순서였다.
“서바이벌 제안 거절해서 정말 다행이야!”
프케이를 뽑았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갔다면? 거기서 순위 안에 들어서 그룹이 결성됐다면?
원치 않더라도 멤버들과 헤어져야 했을 테다. 그리고 우리 테오라에 합류하지도 못했겠지.
순간의 선택으로 완전히 다른 앞길이 펼쳐지는 것이다.
물론 쟁쟁한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가는 게 엄청난 기회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시청자들의 눈에 긴 시간 동안 노출되면 그만큼 마음이 가게 되니까.
한 번 보고, 두 번 보면서 친근해지고 마음이 저도 모르게 흘러가는 루트도 일반적이다.
‘덕통사고’라는 단어처럼 사고처럼 첫눈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그러려면 우선 계기가 될 ‘첫눈’이 필요하다.
그 ‘첫눈’으로 아이돌 서바이벌은 최적화된 프로그램이었다.
오랜 기간 데뷔하지 못했다거나, 무명에 가까운 중고 신인, 그 외에 데뷔가 막연할 수많은 아이돌 연습생들에겐 간절한 동아줄이나 마찬가지.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서바이벌 프로그램 제의가 들어왔을 때, 나라면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 같다.
요즘은 솔로 가수도 음악 성향에 따라 아이돌로 봐주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룹이어야 ‘아이돌’ 같이 느껴져서.
갓 아이돌이 되겠다는 현오 형과의 약속을 지키려면, 그룹으로 멤버들과 함께 오래 활동할 수 있어야 했다.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니까.
“프케이 선배님들이 심란할 시기이긴 하지.”
프케이 선배님들은 불안한 미래에 한참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터다. 초록 형 말대로.
예민해져 있을 시기라 우리가 대기실에 들어갔을 때, 저 정도면 양호한 걸지도.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든 상태에서 타인에게 너그러움을 베풀기는 힘들다. 마음만 힘들었던 나도 못 했던 일이다.
프케이 선배님이 우리를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신예, 혹은 잠재적 라이벌로 봐서 견제한 거라면 오히려 기쁠지도.
“우리는 초심 잃지 말자.”
초록 형이 뒤이어 하는 말에는 뼈가 있었다. 우리가 선배 입장이 되었을 때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건성으로 대하지는 말자는 의미였다.
내가 서운해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나 보다.
“우리가 초록이를 안 막았으면 큰일 났을 텐데 말이야. 누구였든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 생색낼 생각은 없지만, 조금 아쉽긴 하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도 않을 수 있었던 표절 건이긴 하다. 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발견하고 논란을 만들었다면 난리가 났을 수도 있다.
“서혼 형, 내가 무슨 세계 정복을 꿈꾸는 흑막이야?”
“몰랐어?”
친절하게 웃으며 옳은 말을 하는 바람에 초록 형이 입을 삐죽거렸다. 서혼 형이 초록 형을 이런 식으로 제압할 수도 있다니.
테오라 안의 먹이사슬은 어떻게 대체 되는 거지?
간간이 대화를 나누며 다른 가수의 대기실을 방문하는 우리의 뒤를 매니저 형이 묵묵히 지켰다.
매니저 형의 은신 스킬이 대단해서 붙어있는 시간이 대부분인데도 문득 잊고 지내곤 했다. 아니면 우리 존재감이 커서 그런가?
“대기실에 돌아가서 식사하고 정비한 다음 녹화 들어가자.”
테오라 단독으로 사용하는 대기실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래도 파티션으로 구분돼서 좁긴 해도 쾌적한 편이었다.
복작복작한 대기실에서 먹는 밥은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준현 형! 오늘 메뉴는 뭐에요? 설마 샐러드는 아니죠? 아니라고 해주세요~.”
다 커서도 거리낌 없이 애교를 부릴 수 있는 박하가 대단하다. 그게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는 점도.
나는 어릴 때도 해본 적이 없는데.
“가서 확인하도록.”
무뚝뚝한 매니저 형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자신만만해하는 것도 같았다.
테오라 멤버들은 전부 돌도 씹어먹는다는 나이인데다 다들 잘 먹는 편이다. 초록 형을 제외한다고 해도 고삐를 풀면 무섭게 먹으니까.
컴백하는 날인 오늘부터는 지겨운 샐러드도 드디어 끝이라고 멤버들이 기뻐했다.
가끔 특식을 먹는 날이 있긴 했다. 그래도 닭가슴살을 곁들인 풀밭에서 탈출하는 날만 손꼽아왔다.
물론 자꾸 살이 빠지는 나는 제외하고. 그간 맛없는 샐러드를 먹는 멤버들 옆에서 고기가 듬뿍 들어간 밥상을 받느라 미안했는데 잘 됐다.
멤버들의 발걸음이 서서히 빨라지더니 대기실 앞에서는 거의 달리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나와 매니저 형은 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기대해도 되는 메뉴에요?”
“그래. 오늘 식사는 특별히 서혼 어머님께 부탁드렸으니까.”
“…!”
그 뒤로 매니저 형이 뭐라고 덧붙였던 것 같은데 서두르느라 듣지 못했다.
꼴찌로 대기실에 들어왔을 때, 초록 형은 벌써 경건하게 먹을 준비를 마치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당장 달려들기라도 할 것 같았나?
박하는 사진을 찍느라 삼매경, 지온과 오란은 반찬을 하나하나 열어 세팅하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고 있는 서혼 형은 부모님께 전화하는 것 같았다.
“얼른 와, 이원 형! 준현 형도요!”
“제일 먹고 싶은 거 서혼 형네 음식인 거 어떻게 알았어요? 형 만렙 매니저네요, 진짜.”
초록 형에게 의식주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망설이지도 않고 ‘식’을 고르겠지.
어느 때보다 열의 넘치는 초록 형의 눈빛을 힐끔 쳐다봤다. 진지한 표정에 거짓이라곤 없었다.
“만렙 매니저가 이렇게 쉬울 줄이야.”
가볍게 웃은 매니저 형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우리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알아맞힐 수 있는 세심한 관찰력이 대단하다.
힘든 내색 하나 하지 않는 매니저 형에게 언제나 감사하다.
한 사람이 여섯 명을 빈틈없이 챙기는 게 보통 일이 아닐 텐데. 테오라 일이 많아지는 상태이기도 해서 더 힘드실 텐데.
로드 매니저가 추가로 배정돼도 준현 형은 계속 함께 일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담아서 쳐다봤더니 내 머리에 솥뚜껑 같은 손이 턱 얹혔다.
“앉아서 밥이나 먹어라. 나 어디 안 가니까.”
“…?!”
어떻게 알았지? 나 아무 말도 안했는데! 얼굴에 속마음이 적혀있기라도?
벽에 있는 거울을 힐끔 쳐다봤지만 화려한 메이크업만 그대로 보일 뿐이었다.
“밥 먹고 의상 갈아입어도 시간 충분할 테니까 간만의 만찬을 즐기도록. 이상.”
“아하하! 준현 형, 전직 군인이었다 이거예요?”
“잘 먹겠습니다!”
장난을 걸려는 박하를 뒤로 하고 우리는 목소리를 모아 대답했다. 마치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처럼.
이럴 때는 개성적인 멤버들이 한마음이 되는 걸 보면, 정말 맛있는 음식에 진심이다. 당연히 나도 포함이고.
혼자 맛있는 걸 먹기가 항상 민망했는데 다 같이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른 날과 달리 오늘은 입맛이 돌 것 같다.
수저를 기사의 검처럼 엄숙하게 잡고는 각자의 취향대로 정복해나갔다.
여수에서 서울까지 오는 동안 상해서 혹시라도 탈이 날까 싶었는지, 날생선은 보이지 않았다.
밥도 흰쌀밥이 아니라 연잎밥이었다. 연잎 향이 스며든 밥 한술을 떠서 입을 크게 벌려 집어넣었다.
지온이 나눠준 육개장도, 오징어볶음도.
메이크업이 지워지지 않게 조심하느라 신경을 써야 했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마구 퍼먹고 싶은데.
“이원이 먹는 거 보니까 어머니께 자주 부탁드려야겠다.”
“오기 생기네. 시간 나면 서혼 부모님께 요리 비법 제대로 배울래. 서혼, 내가 수제자 돼도 괜찮지?”
“하하. 얼마든지.”
그간 내 식사를 담당했던 요리사는 지온. 입맛 없는 티를 안 내려고 최대한 노력했지만, 걸리지 않을 리 없었다.
“나도 모르게 긴장해서 그랬나 봐. 지온 네 요리 실력이 부족했던 게 아니야.”
“변명 안 해도 돼. 나 전문 쉐프는 아니니까 배우는 게 당연.”
들킬 변명은 하지 말아야겠다. 특히 자존감 높은 지온에게는.
“재밌는 숙제가 생겼는걸.”
나름대로 꾸준히 요리했는데도 뭔가 풀리지 않는 표정을 짓더라니. 지온은 목표가 생겨야 동력이 생기는 타입인가 보다.
지온 같은 타입의 사람들만 모이면 무서울 것 같다. 넘치는 승부욕에 데일지도 모른다.
“다들 그대로 코티지!”
“응?”
“뭐야. 갑자기?”
“박하준. 조용히 밥이나 먹어.”
순화된 오란의 말에 담긴 속뜻을 해석하자면, ‘닥치고 밥이나 처먹어.’ 정도 되려나? 아니, 중간에 욕이 두어 개 섞였을지도 모르겠다.
“왜에~, 찍기 싫어? 다 우리 코티지를 위한 일인데?”
코티지는 어느 때나 만능 핑계다. 어디에든 ‘코티지들이 원할 텐데?’라는 말을 붙이면 거부할 수가 없으니까.
무대에서 귀엽고 예쁜 척을 하게 된 이유도 다 그것 때문이었다. 코티지가 원한다는데 뭔들…!
짧은 한숨을 내쉰 멤버들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점검했다. 그 후에 작위적인 설정 샷을 찍었다.
한 컷, 두 컷 찍을 때마다 멤버들의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지고 있었다. 박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박하준, 작작 좀…!”
“동영상 찍을게!”
동영상 찍는다고 회피해봤자 언젠가 등짝을 맞을 거 같은데.
고개가 저절로 절레절레 저어졌다. 한편으로는 안정감을 찾았다.
가요계를 다 부숴버릴 각오로 컴백했다고 해도 우리 테오라의 일상은 달라지지 않는구나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