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34
완벽한 무대란
가사는 딱히 없다. 저음의 ‘yeah~’로 시동을 걸고 고음으로 고조되게 부르는 정도.
이후엔 멤버들이 부르는 ‘Oh Oh Oh’에 화음을 넣었다. 머리끝까지 산뜻해지도록.
세트장에 울리는 내 목소리가 곧게 뻗어나갔다.
그루브를 타는지 살랑살랑 몸을 흔들던 방청객들이 귀 기울여주는 게 느껴졌다.
오란이 옆에서 살며시 나오면서 자기 파트를 소화했다. 특히 끝부분은 홍오란의 잔망스러움이 폭발하는 구간.
뒤통수만 보이고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이돌의 본분에 충실한 행동이지만, 굳이 내 두 눈으로 보고 싶진 않다. 코티지들만 보고 좋아해 주는 걸로 충분하다.
Oh Oh Oh Cottage Sweety
유독한 달콤하게 들리는 목소리는 머리 색처럼 분홍색 솜사탕 맛이 날 것 같다.
코티지의 감상도 그리 다르지 않은지 옆 사람을 호들갑스럽게 때리는 장면이 눈에 담겼다.
설마 일행도 아닌데 때리는 건 아니겠지?
마이크를 짧게 잡은 지온이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까딱였다. 숨소리가 섞인 래퍼 제톤의 쫀득한 딕션이 마이크를 통해 퍼져나갔다.
Energy from zero to maximum
몸짓과 손짓에 ‘나 래퍼요’하는 아우라가 묻어있었다. 특별히 연습하는 모습을 보진 못했는데.
주위의 래퍼들이나 영상 매체를 통해 배웠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제톤’에게 래퍼의 영혼이 깃든 것만 같다.
랩은 물론 춤도 수준급으로 출 수 있어야 하는 아이돌 그룹의 래퍼는 절대 쉽지 않다. 다재다능하고 끼가 넘쳐야만 하는 포지션.
홀로 빛을 내는 건 물론이고, 함께일 때 더 반짝일 수 있어야 한다.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키는 지온은 천생 래퍼다.
딕션뿐만이 아니라 스웨그가 담긴 움직임에서도 흥겨움이 전해졌다. 삐뚜름하게 끌어올린 지온의 입술이 도발했다.
이래도 몸을 흔들지 않을 수 있겠냐고.
긴장이라곤 하나도 모르는 그 태도에 전염이라도 됐을까. 나까지 신나는 기분이다.
생방송 중이라는 사실에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이 순간이 즐거웠다. 관객을 앞에 두고 하는 무대가 처음이 아닌데도.
무대에 적응했다는 증거일까?
여전히 긴장은 된다. 매 무대 관객들이 완벽한 무대를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만큼 힘은 들어간다.
그런데 요즘 ‘완벽한 무대’의 진정한 정의를 다시 정립해 가고 있었다.
실수하더라도 중간에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대가 진짜배기가 아닐까?
화제가 됐던 뉴튜브 영상이나 야외 행사에서 우리가 빈틈없는 무대를 보여주진 못했다. 그런데도 코티지들은 좋아해 줬다.
‘완벽한 무대’의 기준을 코티지들이 얼마나 만족하고 감동하는지에 둬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구심이 자꾸 들었다.
오래 고심해야 할 것 같았던 고민은 의외로 간단하게 끝났다. 생생한 무대로 증명함으로써.
음악으로 소통하고 싶었던 처음의 마음을 잊었던 걸까. 실수는 물론 없으면 좋을 거다.
그렇지만 관객의 감각을 사로잡아서 우리의 세계를 보여주는 게 우선.
오늘 이 무대에서 우리의 의무는 코티지를 비롯한 이곳의 모두를 즐겁게 만드는 거다.
완전무결함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더니 무대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이 즐거움이 무대 아래의 관객들에게 전해지기를.
연차가 쌓이고 선배보다 후배 아이돌이 많아지는 때가 오더라도 무대를 오를 때마다 긴장은 되겠지. 그래도 앞으로는 설렘과 기대가 더 커질 것 같다.
마음의 Energy를 채우러
서혼 형이 노래하는 랩 가사가 묵직하게 심장에 꽂혔다.
무대를 통해 마음의 에너지를 채우는 나처럼, 우리 무대를 보고 듣고 느끼는 이들도 마음의 Energy를 채울 수 있기를.
쌍꺼풀 없이 순한 눈매를 가진 서혼 형에게 잘 어울리는 희망찬 가사였다.
그런데 왜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 거지…? 의아함에 힘이 들어가려는 미간을 간신히 막아냈다.
왠지 서혼 형이 안무에 맞춰 팔을 올리는 타이밍에 비명이 들리는 것 같다. 착각이라기엔 너무 절묘한 타이밍으로.
설마? 움직일 때마다 짧은 상의 옷자락이 슬쩍 올라가서 드러나는 복근을 보고…?
서혼 형이 웃통을 벗었던 장면이 나온 셀프 캠 영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왠지 정답 같다. 코티지들은 참 솔직하다.
내가 상상한 순수한 팬들의 인상과는 달라 처음엔 조금 충격받기도 했지만, 이젠 이런 점이 도리어 귀엽게 느껴진다.
오히려 뭘 원하는지 훤히 보여서 코티지를 기쁘게 해줄 방법도 명확하다. 아직 내가 미성년자라서 아쉽다.
지금 이 시기에만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살리는 수밖에. 어른만 돼봐라.
성인만 되면 코티지들이 환호하지 않고는 못 배길 모습을 보여줄 테다. 미래의 한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이 차올랐다.
즐거움 위로 낯선 짓궂음이 덧씌워졌다.
이래서 다들 나를 놀리지 못해서 안달인 걸까? 그렇다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해줘야 옳지 않을까.
깜짝 놀랄 미래의 코티지들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기분이 들떴다.
여기서 탈출해 (지금 당장) right now
응원법을 직접 만들어서 뉴튜브 영상을 올리긴 했다. 응원법을 만든 초록 형은 영상을 안 보더라도 어떤 응원법이 어울릴지 감이 바로 올 거라고 장담했었다.
초록 형의 판단은 정확했다. 코티지들은 우리가 예상한 지점에서 적절하게 치고 들어와 줬다.
‘따분한 오후’, ‘귀 아픈 잔소리’, ‘지금 당장’ 부분에 더해지는 코티지들의 목소리로 이 곡이 비로소 완성되어갔다.
멤버들도 나와 같은 기분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평소보다 텐션이 높았고, 이 순간을 즐기는 티가 났다.
이 세트장에 흐르는 공기가 들뜬 기분을 전파하는 듯, 우리 멤버들과 코티지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물결이 일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음악의 즐기는 사람들. 흥의 민족이기도 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자동적으로 반응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 타이틀곡이 울려 퍼지는 동안만이라도 근심과 걱정이 넘치는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기를. 그런 바람을 담아 관객들을 향해 힘껏 노래했다.
내 파트에는 얼굴을 살짝 가렸다 드러내는 극적인 안무가 있는데, 오늘은 조금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부끄러움 따위는 버려두는 홍오란도 있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눈 부위를 뺀 코와 입을 가렸던 팔을 들어 얼굴을 전부 드러내면서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이제껏 하지 않았던 과감한 시도였다.
이걸로 코티지들이 기뻐한다면 수백, 수천 번 할 수 있다.
다른 관객들, 특히 프케이 선배님들의 팬에게 호감을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Oh Oh Oh Butterfly Baby
예정에 없던 애드리브를 했다. 그런데도 당황은커녕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여졌다.
테오라가 일방적으로 꾸미는 무대가 아니라 관객들과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니까.
흔들리는 슬로건과 폰 화면에 적힌 짧은 문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마치 작은 나비들이 날갯짓하는 듯이 보였다.
이런 의미로 작사하진 않았는데, 절묘하게 들어맞았다. 앞으로 이 곡을 부를 때마다 이 단어에 지금의 광경을 연상하게 되리라.
미묘하게 다른 멜로디 위에 같은 가사로 반복되는 후렴을 부르며 멤버들이 무대를 넓게 누볐다. 얼마 남지 않은 노래가 아쉽지 않게 듯이 온 힘을 쏟아부었다.
날 듯이 뛰어오르며 빠르게 위치를 교체하느라 숨이 가빠졌다. 다들 가슴이 빠르게 들썩이는데도 즐거워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멤버들도 제한된 시간을 즐기고 있다는 증거였다.
조명 불빛이 스쳐 지나간 관객석도 상황은 비슷했다. 우리가 꽤 괜찮은 무대를 선보인 것 같아서 벅차올랐다.
이런 경험을 해본 이상,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거다. 이 기분을 계속 느끼고 싶겠지.
앞으로 망돌로 전전해야 한다고 해도 포기가 안 될 만큼 중독적인 감각이다.
현오 형도 이런 기분을 느껴왔을까? 그래서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사랑하게 된 걸까? 지금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이 순간 내가 맛본 감정은 ‘환희’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무대에 올라야만 얻을 수 있는 이 감각을 놓지 못하리라.
앞으로 무슨 일이 있다 하더라도.
현오 형을 만나 목소리를 선물 받고, 아이돌이 되어 무대에서 신세계를 맛본 일련의 과정이 마치 ‘숙명’ 같았다.
문득, 카메라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프로인 카메라 감독님이 어련히 잘 잡아주셨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이번 무대에 후회는 없다.
화면 너머의 관객들에게 이 공기를 제대로 전할 수 없다면 안타깝긴 하겠지만, 오늘의 무대에서 얻은 깨달음은 앞으로 설 무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테니까.
그러니 카메라 안에 조금 부족하게 담겼더라도 만족할 수 있다. 노련한 카메라 감독님이 멋지게 찍어주셨다면 물론 더 좋겠지만.
오늘의 엔딩 요정은 서혼 형. 노래가 끝나자 가볍게 숨을 쉬며 이마에 흐른 땀을 손목 보호대로 닦았다.
팔이 번쩍 위로 들리면서 상의가 올라갔고, 당연히 노출도 생겼다. 거의 동시에 꺄악하는 비명이 터졌다.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반응이었다.
의외인 사람은 서혼 형이다. 그렇게 안 봤는데, 서혼 형도 은근히 약았다. 자연스럽게 노출도를 올리는 포즈를 연구했던 게 틀림없다.
멋쩍게 웃고는 팔을 내렸지만, 노리지 않고선 나올 수 없는 포즈였다.
다른 멤버들 생각도 나와 같은지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서혼 형은 괜히 시선을 피했다. 발그스름하게 귀가 달아올라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코티지들과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무대에서 내려왔다. 무대가 더 길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다음 무대가 기다리고 있으니 곧 부족함이 채워지겠지.
계단을 내려서는 서혼 형의 옆으로 다가갔다. 이미 초록 형과 박하는 서혼 형의 어깨에 팔을 걸고 있었다.
“혼이 형 음흉해!”
“아이돌 아니고 배우이긴 했어도 역시 경력은 속일 수 없나 봐. 팬들에게 교묘하게 먹이를 던지는 기술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지.”
“박하야, 초록아…. 내가 미쳤었나? 신나서 충동적으로….”
서혼 형이 얼굴을 커다란 손으로 덮고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왜 부끄러워해? 잘했는데. 과해도 좋은 게 있다면 바로 팬서비스지.”
오란의 철학에는 흔들림이 없다. 오늘만큼은 나도 그 철학에 동의한다.
“다들 그거 아나? 우리 이원이 형도 끼 부린 거?”
아니, 어떻게 알고…? 내가 윙크할 때 오란은 분명히 내 뒤에 있었는데?
“이원이까지 분위기 탈 정도면 인정이지. 나 혼자 이상했던 게 아니구나.”
왜 기준을 나한테 두고 안심하는지 모를 일이다. 서혼 형!
“많이 컸다, 이원. 멘트만 더 연습하면 래퍼 스피릿 수업 하산해도 되겠어.”
…혼란스럽다.
지온에게 배우는 래퍼 스피릿이 팬서비스랑 무슨 연관이 있지? 진심을 솔직히 보여주는 게 ‘래퍼 스피릿’이 아니었던가?
내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온을 추궁해봤지만, 명쾌한 해답은 얻을 수 없었다.
스스로 알아내는 수밖에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