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35
새 나라의 어른이
무대를 끝마치고 내려와 프케이 선배님들의 특별 무대를 구경했다.
그 누구도 마지막이라고 언급하지도 않았다. 모두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을 지키고 있었다.
프케이 선배님들이 인사를 할 때부터 불안불안하던 팬들은 무대 중간에 울음을 터뜨렸다. 이 조합은 앞으로 다신 보기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듯.
처음부터 예고했던 헤어짐이라도 슬프지 않을 리가 없다. 이별은 언제든 힘드니까.
프케이 선배님들의 무대 자체는 완성도가 높았다. 세트장은 더없이 어울렸고, 특수효과도 적절히 들어가 볼거리가 많았다.
그런데도 시선은 자꾸만 훌쩍거리는 팬들에게로 옮겨졌다. 팬들도 프케이 선배님들을 보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울음바다가 된 객석을 보니 마음이 불편해서 다시 대기실로 돌아왔다.
밝은 대기실 조명 아래서 본 박하와 서혼 형의 표정도 침울해져 있었다.
“우리는 절대 팬들 슬프게 하지 말자….”
박하는 우는 팬들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눈이 그렁그렁했다. 박하가 여러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면서 다사다난한 사건을 겪었다고 했다, 어느 정도 멘탈이 단련될 만도 하건만, 해체는 굳은살이 박일만한 사건이 아닌 것 같다. 팬들에게 다른 식으로 충격을 주는 걸 보면.
서혼 형이 박하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동안 초록 형은 분주하게 휴대폰을 잡고 있었다.
“초록 형? 무슨 바쁜 일 있어?”
평소라면 멤버들에게 무슨 이상이 없나 매서운 눈으로 훑어보곤 한다. 숙제를 해왔나 안 해왔나 검사하는 선생님처럼.
그런데 오늘은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잠깐만.”
바쁘게 움직이는 손 너머 화면엔 SNS가 열려 있었다. 팬들이 단문 위주로 소통하는 SNS 창이.
이번 무대는 마음가짐이 달랐던 만큼 팬들의 반응을 급하게 확인하는 걸까?
호기심에 초록 형의 옆으로 접근했다. 나만이 아니라 지온과 오란도 소파에 앉은 초록 형의 어깨 너머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뭐야. 프케이 팬 반응? 우리는 잘했으니까 라이벌 약점 잡아서 해치우면 된다는 건가? 역시 초록 형이네.”
오란은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곤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말 초록 형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 슬프다. 비정한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냉혹해지는 수밖에 없을까.
“이원이 소원이 이뤄질 거 같은데?”
“내 소원?”
최근에 소원을 빈 적이 없는데. 초록 형은 내가 모르는 내 소원을 알고 있나?
“프케이 선배님들한테 선전포고했던 사람이 누구더라?”
“아!”
선전포고 아니었다고 해도 들어주지 않을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과장된 면이 있지만, 붕 뜨게 될 팬들을 코티지로 영입하고 싶은 마음엔 변함없다.
“주제는 프케이 선배님들 이야기긴 한데, 거기에 우리에 대한 글이 붙어 있어. 지나가는 말로 흘리듯이.”
프케이 팬이 프케이에 대해 적어 올리는 거야 당연하다. 거기에 우리가 들어간 게 오히려 예외적인 상황이 아닐까?
“테오라라고 꼬집어서 언급하지는 않는데, 당사자는 딱 보면 알잖아. 누구 얘기하는 건지.”
초반 라인업에 이제 시작하는 여름 청량 컨셉 신인돌이 있었다거나, 에너지 넘치는 애기들 무대 꽤 괜찮더라 정도로.
애기라는 단어에 팬들만 아는 뜻이 따로 있나…?
어쨌거나 이것만으로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우리 테오라의 무대가 괜찮게 느껴졌다는 의미이므로.
확실한 호감 단계까지 가지 못하더라도 조금씩 스며들 기회는 얻은 셈이다.
“작전 성공이야! 이원 형이랑 서혼 형이 팬 서비스한 보람이 있어!”
칭찬을 빙자한 놀림인가. 이를 드러내며 기뻐하는 박하를 보니 되물을 마음이 쏙 들어갔다.
다시 아까 무대에 오르기 전으로 올라간다고 해도 똑같을 것이다. 아니, 아까보다 작정하고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
“무대 재밌었지?”
자신에게 집중하는 스타일인 지온은 무대를 만드는 우리가 재밌어했는지를 궁금해했다.
테오라 멤버들이 재밌었다면, 그 기분이 당연히 관객들에게도 전해진다고 여기듯이.
“즐거웠어. 진짜로.”
“이원, 코티지도 구분할 수 있어. 무대용 웃음인지, real 웃음인지.”
“나도나도! 오늘 재밌었어!”
“흐음.”
박하는 격하게 동의했고, 오란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뚱한 얼굴로 눈썹만 들썩거리고 말았다.
분위기에 취할 만도 한데. 냉철한 마인드를 가진 대신 감흥도 적은 걸까. 정말 그런 거라면 안타깝다.
아이돌이 된 지 얼마 안 된 나도 인정한다. 아이돌이라는 특별한 직업이 직업정신만으로 버티기엔 힘들다는 사실을.
일하는 회사, 열정 넘치는 멤버들, 나를 지지해주는 부모님….
축복받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지만, 깨어있는 거의 모든 시간을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짧은 기간은 괜찮더라도, 이 시간이 계속되면 영혼이 지쳐버리지 않을까? 이런 상태가 바로 번아웃 증후군.
번아웃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흔한 현상이다. 그래도 꿈을 가지면 번아웃이 오는 시기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을 텐데.
오늘 같은 무대에서 환희를 경험했다면, 그 기억이 나중까지 버틸 힘이 되어줄 텐데.
“그 눈은 뭐야. 왜 안쓰럽게 보냐?”
“아니야.”
“아니긴? 나를 집 잃어버린 개, 강아지처럼 봤으면서?”
불쌍하게 보진 않았는데. 오란은 내 눈빛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한 듯했다. 보통은 치를 떨거나, 못 말리겠다고 생각을…?
홍오란 취급이 너무한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그랬더라도 모두 인과응보겠지만.
어쨌거나 예민한 오란에게 거슬릴만한 변화를 보여준 셈이긴 하다.
“너는 오늘 내가 무대에서 느낀 감정을 못 느낀 것 같아서.”
“누가 그래? 못 느꼈다고.”
“그럼 너도 오늘 무대가 남달랐어?”
“달랐지. 오늘 같다면 나중에 돈 벌 만큼 벌어서 노후 걱정 없어도 계속 무대에 서고 싶을 만큼.”
“와…! 오란 형 입에서 나온 말 맞아? 이 정도면 극찬 아니야?”
돈에 연연하지 않을 시기가 되더라도 계속 무대에 서고 싶다니.
별거 아니란 투로 말했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가볍지 않았다.
“물론 감수성 넘치는 우리 멤버들을 따라갈 순 없겠고.”
사족을 붙이긴 했어도 알 수 있었다. 오란이 표현이 서툴러서 그렇지, 자기 나름대로 즐거워했다는걸.
“다들 그 표정 치워. 소름 돋으니까.”
‘다들’이라고 한 걸 보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아빠 미소를 지으며 오란을 보고 있었나.
질색하는 홍오란은 본 기억이 없어서 놀라웠다. 약점이라고 하긴 애매하다. 하지만 일단 싫어하는, 정확히는 낯설어하는 행동 한가지는 알게 됐다.
기특한 애 취급당하는 거.
좋은 걸 알게 됐다. 범무 형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종종 이용해 먹어야겠다.
“그렇게 보지 말라니까?”
툴툴대는 오란은 초록 형과 서혼 형, 박하에게 귀여움을 빙자한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나도 그 사이에 슬쩍 끼어들려다가 표적이 내게로 옮겨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그만뒀다.
“나 말고 함이원한테 하라니까!”
“오란아, 이원이는 이미 예약되어 있어.”
…뭐? 초록 형의 믿기지 않는 발언에 얼른 대기실에서 도망쳐 나왔다.
뒤에서 웃음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만 나는 못 들은 거다!
* * *
이왕 대기실에서 나온 김에 캔 음료를 사서 돌아가기로 했다. 다들 편식 없이 잘 먹는 편이라 아무거나 골라 통일해서 사도 되긴 한다.
그래도 이왕이면 자주 먹는 음료수로 사 가기로 했다.
여섯 개의 캔은 팔로 안으면 어떻게든 들고 갈 수 있을 거다.
대기실에 오는 길에 봐뒀던 자판기에서 스프라이트 한 개와 이온 음료 세 개, 캔 커피 한 개를 골랐다. 특별히 눈의솔이 있어서 혼이 형 몫으로 챙겼다.
한 팔로 캔 밑바닥을 받치고 다른 한 팔로 감싸서 들었다. 혹여라도 떨어뜨릴까 조심조심 걷는데 맞은편에서 프케이 멤버 전원이 걸어왔다.
귀찮으니까 인사 생략하자는 말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래도 딱 마주친 상황에 목인사까지 생략하자는 뜻은 아니었을 거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한 후 서둘러 지나치려고 하는데, 우리 그룹 이름을 정확히 불렀다.
“테오라?”
“…네?”
아는 척하지 말자던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품에 안은 캔 음료를 내려놓지도 못한 어정쩡한 자세로 멈추어 섰다.
“이름이?”
전에 제대로 소개할 기회도 없었으니 내 이름을 모르는 게 당연했다.
“함이원입니다.”
“너희 무대 잠깐 봤는데 잘하더라?”
“감사합니다.”
억양과 눈빛 같은 비언어적 표현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이 말이 절대로 칭찬이 아니라고.
우선은 예의를 차려서 적당히 넘겼다. 일단 충돌은 피하고 봐야 한다.
류도후 선배님은 프케이의 리더이면서 의 우승자. 외모는 물론이고, 춤 실력이 대단하고 노래도 빠지지 않는 만능돌이다. 거기에 심금을 울리는 사연까지.
프케이를 배출한 프로그램 내에서 류도후 선배님은 독보적인 인기를 얻었다.
나머지 멤버를 들러리라고 비하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래선지 그룹의 실세라는 느낌이 강했다.
다른 멤버들이 알아서 숙여주는 분위기 같달까. 정글 같은 서바이벌을 헤쳐왔다면 다른 멤버도 보통 강단이 아닐 텐데도.
노골적으로 비유하자면, 인기도를 기준으로 나뉜 계급에서 피라미드 꼭대기를 차지한 권력자.
“함이원이라…. 요즘 애들은 다 그렇게 열심히 하나?”
아까부터 대뜸 반말하고 있었지만, 거기까지는 이해한다. 실제로 내가 어리기도 하고.
그런데 시비 거는 듯한 분위기는 불편하다. 도후 선배님 옆으로 다른 멤버들이 서서 나를 몰아붙이는 구도였다.
실제로 위협하고 있진 않다. 하지만 일대다수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신인이니까요.”
“근데 왜 난 우리 무대 전에 깽판 친 거 같지?”
“아니에요!”
그럴 리가. 방황하게 될 팬들에게 잘 보이고 싶단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프케이의 무대를 훼방 놓을 의도는 절대 없었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걸 깽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신인인 테오라가 1군 아이돌 그룹을 방해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다. 무엇보다 다른 그룹의 무대를 망치려고 들 정도로 못되지 않았다.
“그래? 난 또 우리 견제하는 줄 알았지. 건방지게.”
“…….”
“오해해서 미안?”
“…….”
욕을 하지도 않았다. 거친 행동도 없다. 그렇지만 이 타이밍이 우연 같진 않았다.
CCTV도 없고, 품에 안은 음료수 때문에 휴대폰을 켜서 증거를 남기기도 어려운 상황이니까.
“아, 짐 들고 있는데 오래 붙잡아뒀네. 그럼 다음에 보자. 그땐 제대로 선배 대접해주고?”
낮게 깔리는 웃음소리를 남겨두고 멀어질 때까지도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두엇이 자꾸만 뒤돌아봤지만, 그게 전부였다. 내키지 않는 기색이 엿보였지만 그대로 무리에 섞여서 사라졌다.
부글부글 차갑게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추고 표정 관리를 하느라 정신줄이 닳았다.
이제야 깨달았다. 전에 홍오란에게 냈던 화는 투정에 불과했다. 이게, 지금 이 감정이 진짜 화고, 분노다.
류도후 선배님에게, 저 사람에게 우리가 잘못한 게 있나? 아무리 쥐어짜내 봐도 짐작가는 게 없다.
끝내주는 무대를 보여줘서 저 사람의 심기를 거슬렀다면 모를까.
“…위협이 됐다, 이 뜻이지?”
그렇게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이 순간의 분노는 기억해두겠다. 그리고 이번엔, 멤버들에게 제대로 숨겨서 나 혼자 힘으로 해결해봐야겠다.
절대로 막 나갈 멤버들이 걱정되어서가 아니다.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해야 새 나라의 어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