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37
박하의 명강의
오늘의 스케줄은 음방과 라디오 게스트 출연, 케이블 예능 촬영.
다른 날보다 스케줄을 일찍 끝내고 나서 숙소로 돌아오니 현이가 우리를 반겼다.
최근에 숙소에 들어오는 시간이 들쑥날쑥하긴 했어도 꼬박꼬박 들어오긴 했지만, 현이랑 놀아주진 못했다. 그래선지 냐옹하는 인사에 기운이 없어 보였다.
박하의 강의를 듣는 동안 열심히 용서를 빌어야겠다.
짙은 메이크업을 지우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멤버들이 거실에 모였다. 테이블을 중심으로 혼자 서 있는 박하를 올려다보는 자세로 앉았다.
영상 촬영은 서혼 형이 맡아줬다. 삼각대를 세워서 고정한 카메라 외에도 개인 카메라 하나는 서혼 형이 들고 있었다.
“흠흠! 팬잘알 일타강사 박하의 제1회 팬 미팅 대비 꿀팁 족집게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삼인칭은 그렇다 친다고 해도, 수식어가 너무 거창한 거 아닐까…?
아니다. 박하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둬야지.
자칭 ‘팬잘알’인 박하가 잘못하진 않을 테니까.
“먼저, 개요부터 말씀드릴게요! 제1장, 팬 미팅이란 무엇인가! 제2장 팬 미팅에….”
개요까지 짜오다니. 의외로 체계적이었다. 호언장담한 대로 박하가 준비를 단단히 했구나.
‘개요’라는 단어를 말할 때, 흠칫거리는 멤버들이 보였지만, 모른 척 지나가 주기로 했다. 어차피 카메라에 전부 담겼겠지만.
나도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가 없어서 모범생처럼 수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팬 미팅의 정의와 사회적 의미를 설명하는 박하는 본격적이었다.
“다들 잘 듣고 있죠? 딴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 거라고 믿어요! 이런 알찬 수업, 다시 오는 게 아니라구요!”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이리저리 방향을 옮겨서 멤버들을 감시했다.
“거기! 분홍 머리, 제가 방금 뭐라고 했죠?”
원래 깐깐한 선생님 스타일이라더니, 진짜구나.
“네에네에. 잘 듣고 있습니다~. 꼰대 박하 쌤!”
“뭐라고 했어요?! 꼰…!”
과장해서 뒷목을 잡는 시늉을 하는 박하 때문에 멤버들 전부 웃음을 흘렸다.
“박하야. 나는 잘 듣고 있어. 봐. 필기도 하고 있어.”
노트를 보여주는 서혼 형의 다정함에 박하의 열이 식은 것 같았다. 동생들이 있어서 그런지, 달래는 스킬이 수준급이다.
“…이어서 수업할게요! 제3장, 팬 미팅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알아보죠! 2장에서 설명한 절차에 따라 티켓팅에 성공한 팬들이 얼마나 기대하겠어요?”
“많이요!”
초록 형이 대표로 대답을 해줬다. 추임새를 넣어주자 박하가 신이 나서 더 열정적으로 침을 튀겼다.
앞쪽에 앉아있던 지온이 소매로 얼굴을 슥 훑어서 닦아냈다. 대수롭지 않단 태도였다. 지온의 저 쿨함은 역시 타고난 걸까.
“극악의 확률을 뚫고 기적적으로 티켓팅에 성공하더라도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해요. 제일 먼저 돈! 팬 미팅 비용을 내야 하고, 먼 거리를 오려면 교통비도 들죠! 선물을 준비하기도 하고, 특별한 날이니 예쁜 옷도 사야겠죠?”
“…그냥 오면 안 돼?”
“이원 형, 아니 함이원 학생! 너무너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데 대충 꾸미고 가고 싶겠어요? 조금이라도 잘 보이고 싶은 게 보통 사람 마음이죠!”
옆에서 초록 형이 나지막하게 웃었다. 왜 갑자기 웃지?
“박하 쌤, 우리 이원이는 그런 거 모른다고요.”
“아! 아, 깜빡했어요!”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은 알지만, 그걸 겉모습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내가 특이한가?
당연히 예쁘고 잘 생기면 좋겠지만, 코티지들이라면 전부 예쁘고 멋지게만 보일 텐데.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시각에 덜 좌우 당해서 그런가? 아니면 우리 테오라를 응원해주는 코티지라서 좋게만 보이는 필터가 한 겹 쓰인 걸까?
어쨌거나 박하의 말을 잘 이해하는 다른 멤버들을 보면 내가 예외인 것 같긴 하다.
“흠흠! 일반적으론 그렇습니다! 두 번째는 시간! 팬 미팅 시간을 제외한다고 쳐도 오가는 시간에 준비시간까지. 주말 하루를 통째로 비워둬야 합니다.”
중요한 일정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걸 뒤로 하고 테오라의 팬 미팅에 참석하는 거다.
어쩐지 점점 거창해지는 기분이긴 한데, 틀린 말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것!”
아무리 생각해도 더 나올만한 게 없는데? 박하보다 이 세계의 구조를 잘 몰라서 그런가?
다른 멤버들도 아리송한 표정인 걸 보니 박하가 예외였다.
“바로 에너지예요! 정신력이라고 해도 되고요!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다들 부정하진 못하겠죠?”
정신적 에너지, 심력, 혹은 애정.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아서 측정할 수 없는 무형의 무언가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희생, 이라고 말하긴 어렵긴 해요.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에너지를 얻기도 하니까요. 그래도 새겨둬야 해요! 우리는 매 순간 코티지들에게서 그 에너지를 받고 있다는걸!”
박하의 ‘팬학개론’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아닐까. 팬들이 만들어내는 영향력을 보면 미지의 요소가 있는 건 확실하다.
“박하준. 웬일이냐?”
박하의 깊은 고심이 느껴지는 이야기.
박하가 마냥 가볍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멤버들이지만, 평소 박하의 행실로 인해 잊고 지낸 탓에 굉장히 의외로 다가왔다.
“에헴! 이 박하 쌤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어요? 여기저기서 불러대는 걸 사양하고 특별히 테오라를 위해서 온 거라구요!”
“예상보다 알찬 강의인데? 근데, 짧게 요약해주면 안 될까, 박하야?”
초록 형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다. 이미 겪어본 터였다. 전에 들었던 박하의 강의도 몇 시간 동안 이어졌으니까.
이번엔 팬 미팅, 팬 사인회 등 팬서비스를 위한 중요한 강의인 만큼 밤새 계속될 수도 있다.
선생님이 된 박하는 상당한 수다쟁이기도 해서.
“노력해볼게! 자신은 없지만….”
그래, 솔직하긴 하구나…. 이번엔 동영상의 러닝타임이 얼마나 되려나.
“우리, 활동 중이라는 거 잊지 마. 성대에 무리 가지 않게 조심해.”
성대 컨디션에 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를 아는 멤버들이다.
잘 때도 목을 꼭 감싸고 자고, 물을 습관처럼 마시는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으면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목에 좋은 차도 의무처럼 들이키고, 평소와 컨디션이 다르다 싶으면 말도 자제하니까.
타고난 목소리가 아니라 현오 형에게서 받은 목소리. 애지중지해야 할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박하가 내 말에 바짝 기합이 들어갔다.
“…알았어! 무리 안 할게!”
진지한 내 태도를 봤는지 박하가 찔끔거렸다.
“그럼 제3장! 실제 사례를 통한….”
박하가 하는 강의를 모아서 정리하면 책 하나는 나올 것 같다. 의외로 짜임새도 있어서 다른 연예인들의 필독서가 되지 않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튼튼한 박하의 성대는 긴 시간의 강의에도 끄떡없었다. 우리가 거실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 때가 되어서야 박하는 수업을 마쳤다.
소파에서 대놓고 잠들어버린 지온이나 피곤해서 없던 쌍꺼풀이 생긴 서혼 형을 보고도 끝내지 않긴 어려웠을 거다.
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무릎 안에서 똬리를 말고 잠든 현이의 고롱거림이 자장가처럼 느껴져서 졸음을 참기 힘들었다.
“…다음 수업 시간에 보충할게요!”
…박하의 열정은 하루에 끝날만큼 얄팍하지 않았다.
* * *
팬 미팅 혹은 팬 콘.
팬 미팅으로 공지가 나가긴 했는데, 테오라 멤버들이 내는 아이디어는 거의 팬 콘에 어울리는 것들이었다.
코티지들 앞에서 하는 무대에 얼마나 목말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것저것 다 집어넣고 싶은데 제한된 시간이 아쉬웠다.
하루 동안 2회차의 팬 미팅이 진행되기도 하고, 마음대로 무작정 앵콜에 앵콜, 앵콜을 할 순 없었다.
우리 팬들의 스케줄도 문제였고, 관계자들도 달갑지 않아 할 듯해서.
그래도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오래 코티지와 만날 수 있게 일정을 조정했다.
하루빨리 단독으로 콘서트를 열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코티지들을 조금이라도 오래 보고 싶으니까.
앨범에 있는 곡을 전부 불러도 무대만으로 팬 미팅 시간조차 꽉 채우기 어렵지만, 꿈꾸는 건 자유다.
얼른 다음 앨범을 내고 콘서트를 하겠다는 야심을 품어봤다.
테오라 멤버들은 중간에 스케줄이 붕 떠서 연습실에 돌아왔다. 타이틀곡은 곡만 나오면 저절로 몸이 움직일 정도로 연습했지만, 팬 송인 ‘여름이었다’는 연습이 부족했다.
녹음과 하라메 이후에 컴백 무대에서 잠깐 하이라이트 부분만 잠깐 부른 게 전부.
팬 미팅 전에 다시 점검해보고 틈틈이 연습해둘 필요가 있었다.
익숙하게 연습실에 들어와 스트레칭을 하는데 계단을 내려오는 빠른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만 듣고도 알 수 있었다. 저건 박하였다. 저러다 넘어지면 어쩌려고…!
벌컥 연습실 문이 열리고 박하가 뛰어 들어왔다. 연습실 안에 있던 멤버들은 예상했다는 듯이 반응했다.
“내가 놀라운 소식을 가지고 왔지! 음하하하!”
안 그래도 오똑한 콧대가 더 올라가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길래 평소보다 더 들떠있지?
“또 뭔데. 별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 떠는 거면 한 대 처맞을 각오해.”
“이번엔 진짜야! 다들 놀랄 거라고 장담해!”
“흐음? 내가?”
초록 형을 놀라게 하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를 거라고 확신했던 일도 알고 보면 전부 알고 있다든지 하는 일이 잦았다.
모른 척 의뭉스럽게 침묵하고 있을 뿐이지 어떤 경로로든 미리 정보를 얻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 초록 형은 빼고!”
박하도 그 사실을 알아서 바로 발을 뺐다. 어디 한번 얘기해보라는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봤을 때, 모를 리가 없어 보였다.
“양보해줄게. 우리 막내가 말해주고 싶다니까.”
“…초록 혀엉!”
감격해서 팔을 벌리고 달려들려고 하던 박하가 흠칫했다.
“일단 소식부터 전할 테니까 형은 대기하고 있어!”
들러붙기 예고…? 즉흥적인 박하가 순서를 뒤로 미뤄둘 만큼 중요한 소식이라니.
점점 궁금해진다. 벽에 기대앉아 졸던 지온이 슬금슬금 일어나서 다가올 정도면 다들 호기심이 동한 게 분명하다.
“전에 대기실에 찍은 짧은 영상! 우리 뉴튜브 계정에 올라갔는데, 재밌다고 반응 뜨거웠던 건 알지?”
모를 리가. 박하가 그렇게 어깨에 힘을 주고 다녔는데.
편집된 영상을 봤는데, 직관적이면서도 재밌었다. 가사와 딱 맞게 뿅 하고 사라지는 장면이 특히.
“한동안 바빠서 잊고 있었는데, 나 회사 갔다가 직원분이 확인해보라고 하셔서! 찾아봤더니!”
“봤더니?”
언제 박하가 애타게 하는 스킬을 연마했지?
“챌린지가 유행하고 있더라구! 탈출해 챌린지!”
그 ‘챌린지’?
스타의 의도 섞인 참여로 챌린지를 해서 화제성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한 파워를 가진 아이돌이 아니다.
게다가 극소수의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챌린지를 강제적으로 하게 한다고 해서 유행이 될 수는 없다.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내야만 유행이 될 수 있으니까. 유행을 계획할 수 없는 대신, 한번 흐름을 탔을 땐 무서운 기세로 불어나곤 했다.
우리가 찍은 영상으로 챌린지가 만들어졌다니? 믿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테오라 타이틀이 챌린지 영상에 사용된다구! 우리 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