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38
탈출해 챌린지 (1)
챌린지에 우리 타이틀 ‘탈출해(Escape)’가 BGM으로 깔리면. 재밌게 본 챌린지 영상에서 들었던 곡이 귀에 맴돈다면.
작곡을 시작하기 전부터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릴 수 있는 곡을 기획했다.
따라부르기 쉬운 가사를 썼고, 따라 추기 쉬운 포인트 안무를 구성했다.
그 결과, 관계자들로부터 중독성 넘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 귀에만 중독적인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들린다면.
컴백하자마자 혜성같이 차트 상위권에 안착할 순 없어도, 차츰차츰 순위를 올릴 잠재력을 갖출 수 있다.
그런 곡이다. 이번 타이틀곡은.
스쳐 지나가듯 우리 곡을 듣더라도 다른 곡보다 훨씬 귀에 맴돌게 될 것이다.
그걸 한 번이라도 찾아 들어준다면, 곡 전체를 들어준다면 내 의도는 성공이다.
“최근에 우리 타이틀곡 순위 확인해본 사람!”
“나.”
초록 형이 틈틈이 음원 플랫폼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목격했다. 서혼 형은 가끔, 지온은 내킬 때 보는 듯했다. 오란은 안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바쁘기도 하고, 팬 미팅에 정신이 팔려 음원 순위를 확인하지 못했다. 아니, 일부러 확인하지 않은 면도 있다.
순위를 확인하다 보면, 대중의 반응을 접하게 되니까.
멘탈은 단단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은 세상에 많은 사람만큼 다양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있구나, 하고 넘길 수 있다.
하지만 테오라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곡에 대한 날카로운 댓글이나 평가는 잊히지 않고 머리에 맴돈다. 꼭 악플이 아니더라도.
더 좋은 곡, 좋은 모습, 좋은 무대를 보여주겠다는 긍정적인 마음도 물론 생긴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심장에 바늘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도 같다. 언제든 날카로운 끝으로 심장을 찌를 기세로.
그것을 데뷔 앨범에서 깨달았다.
아이돌을 포함한 연예인들은 타인의 평가에 익숙해져야 하는 직업이다.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먹고 살기에 더더욱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이번엔 활동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에 단단히 각오하고 분석하려고 했다.
이게 내가 우리 타이틀곡의 순위를 찾아보지 않은 이유였다. 어차피 순위는 직원분들이나 매니저 형, 멤버들의 입으로 전해 들을 수 있기도 하고.
“타이틀 순위가 계속 올라가더라구! 그래서 뭔가 했는데, 챌린지 효과였나 봐!”
테오라의 일정은 일반적인 아이돌 그룹이 하는 활동 스케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다른 가수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이 원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챌린지 영상 늘어나는 속도가 심상치 않아! 보여줄까?”
한번 기세가 오르면 그다음부터는 가속도가 붙는다. 한계에 이르기 전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내 개인적인 희망 사항이기도 하다.
“잠깐 기다려봐. 큰 화면으로 보자.”
노트북을 들고 온 초록 형이 익숙한 손놀림에 ‘탈출해 챌린지’가 연관 검색어로 등장했다.
소소하게 유행을 타고 있을 줄 알았는데, 뉴튜브에 올라온 영상 숫자를 셀 수 없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세상의 소식에 귀를 닫고 있었나? 평소에도 뉴튜브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긴 하지만, 변명이 되지 않는 수준인데…?
눈꺼풀이 크게 뜨였다.
영상을 미리 보지 못했던 박하와 초록 형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도 흥미로운 기색이었다.
“조회수 제일 많은 걸로 재생해볼게.”
챌린지의 시작이 된, 우리의 짧은 뉴튜브 영상은 후렴 가사를 사용한다.
여기서 탈출해 (따분한 오후) 지금 당장
여기서 탈출해 (귀 아픈 잔소리) 지금 당장
여기서 탈출해 (지금 당장) right now
Oh Oh Oh
우리는 여섯 명이라 후렴을 두 번 반복했는데, 두 번째는 코러스로 들어가는 부분을 살짝 바꿔봤었다.
‘따분한 밤, 꽉 막힌 도로, 너와 함께’를 대신 넣어서.
아마 챌린지에 참여한 사람들도 각자의 상황이나 컨셉에 맞춰 개사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참여 음악 아닐까?
챌린지의 시작이 된 테오라 영상의 포인트는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유지하는 ‘평정심’이다. 내가 상황을 인지하기 전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웃는 표정으로 고정됐는데, 그게 아이러니하면서 웃기게 느껴지나 보다.
코티지가 진실을 알면 혼날 테지만…. 지금의 뜨겁게 달아오른 기세에 물을 뿌리는 멤버는 없겠지!
시간이 흐른 뒤에 뜬금없이 후일담으로 등장할 수 있는 주제지만, 나중 일은 나중에 고민하자.
제일 조회수가 많은 영상은 섬네일부터 화려했다. 알록달록 자극적인 문구로 꾸며진 섬네일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건 무채색의 배경이었다.
아무리 봐도 꽤 큰 기업 사무실 한복판 같은 디테일인데…?
뉴튜버를 겸해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들었다. 그래도 본업을 하는 직장, 그것도 다른 직원도 일하는 장소에서?
겸업 금지 조항에 걸리지 않는대도 불편해할 사람이 하나도 없을 리가 없다. 월급 받으면서 회사 일에 집중하지 않고 딴짓한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다.
회사 홍보 목적이라면 모를까, 단순히 재미를 목적으로 한 개인적인 촬영은 쉽지 않을 텐데.
아무리 사전 허락을 받았다고 해도 대담하게 느껴졌다.
회사원이 되어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아마 될 일이 없는 나에게 직장은 일종의 성역 같게 느껴지는데.
하눌 엔터를 떠올리면, 내가 멋대로 편견을 만든 것 같기도 하다. 회사마다 분위기도 천차만별이니까.
영상에 얼굴이 제대로 나오는 등장인물은 한 명이었다. 아마도 뉴튜브 채널의 주인일 한 사람.
나머지 직원들은 귀여운 동물 캐릭터 얼굴로 생김새를 가린 채였다.
그 동물 캐릭터들마저도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편집자의 센스가 돋보였다.
주인공인 회사원은 진지하게 서류를 넘기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꾸며진 상황 같기도 하지만, 실제 상황 같은 자연스러움이 엿보였다.
주인공을 뺀 다른 조연들도 실제로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듯한 생동감이 있었다.
[여기서 탈출해! (지겨운 출근) 지금 당장!]…지겨운 출근?
일반적인 직장인들이 할 법한 생각인데, 그걸 저 사무실 한복판에서 언급해도 될까?
자리 배치로 볼 때, 뉴튜브 계정의 주인은 높은 직위가 아니다.
회사에 대해 잘 모르는 나도 그 정도는 그간 본 드라마를 통해 눈치챌 수 있었다.
후 녹음이 된 게 아니라, 영상을 찍으면서 ‘지겨운 출근’을 외쳤다는 점이 ‘진짜’ 광기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업무를 보던 그 사무적인 표정으로 의자를 박차고 점프해서 사라지는 연출이 예사롭지 않았다.
카메라 움직임에 어색함이 없는 걸 보니, 찍어주는 사람에게서 전문가의 향기가 났다.
바로 이어지는 가사에서는 흡연실로 장소가 바뀌었다.
뿌연 담배 연기가 없는 텅 빈 흡연실의 한쪽 벽은 통유리로 되어있어서 빌딩 아래가 고스란히 내려다보였다.
[여기서 탈출해! (댕 민폐 댕 진상) 지금 당장!]이번에는 위로 폴짝 뛰어 카메라 앵글에서 사라졌다. 카메라는 통유리 너머의 지면을 확대했고 거기엔 채널 주인이 두 팔을 흔들고 있었다.
여전히 무표정하고 지겨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정말로 우리의 노래 가사 그대로 회사에서 탈출한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댕’으로 노래는 불렀지만, 자막으로 뜨는 가사에는 강아지 이모티콘이 들어가 있었다. 나름의 자체 검열이었나?
[여기서 탈출해! (월급 루팡) right now칼퇴~ 조퇴 반차 연차 유급 휴가~]
아니, 이래도 괜찮은 걸까? Oh, 하고 바이브레이션이 이어지는 구간 대신에 들어간 가사에 진심이 듬뿍 들어가 있었다.
분명 이 영상을 회사 임원들도 보게 될 텐데. 업로드 날짜를 고려하면 벌써 봤을 시기였다.
사내 분위기가 상당히 자유로운 걸까?
엄마도 회사가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주장하셨지만, 눈치로 봐서는 아닐 것 같았는데…?
“좋아요 숫자가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어!”
“가사가 심금을 울린다는 댓글이 있더라고. 직장인들의 애환이 담겼다나?”
초록 형의 해설을 들으면서 인기순으로 정렬된 댓글을 정독했다. 어디에나 있는 분탕 댓글은 자연스럽게 지나쳤다.
댓글 수를 봤을 때부터 짐작했지만, 반응이 뜨겁다 못해 불타올랐다.
– 뜰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한참 빨랐네
└이 뉴튜버 회사 안에서 영상 잘 찍더라고 싱기
└눈치는 있지만 눈치 따위 안 보는ㅋㅋㅋ
– 회사 바이럴이냐? 디스냐?
└둘 다
– 가사 절묘하네 누가 나 사찰했나?
└222 나도ㅋㅋㅋ
└3
└소름 끼치네 이 정도면 신기 있나본데?
└ㅋㅋㅋㅋㅋ현웃
– 스케일보소 ㄷㄷ
– 장소 협찬 : 본인이 다니는 회사ㅋㅋㅋㅋ
– 출근한 이후로 내내 귓가에 맴돈다.. 제목도 모르는데. 중독성 무슨일?
└야 너두 할 수 있어 탈출ㅋ
– 시끄러워 죽겠다 누가 비지엠 무한 재생시켰냐? 고소한다
└수능 금지곡이 아니라 업무 금지곡ㅋㅋㅋ
– 그래서 여기서 나오는 곡 제목이 뭔데?
└테오라 탈출해(Escape)
└테오라? 아이돌인갑네?
…….
다른 댓글도 전반적으로 웃기다는, 정확히는 웃프다며 공감하는 반응이 많았다.
일반적인 직장인이 아닌 우리는 대신 학교를 대입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릴 땐 나도 학교 가기가 싫었으니까.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차마 꾀병도 부릴 순 없었지만.
놀라서 튀어나온 그르렁대는 내 목소리가 무섭다는 아이들보다 내가 더 울고 싶었다.
어린 맘에 충격적이긴 했는지 한동안은 학교에 가기 싫어서 아프기를 바랐을 정도였다.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여기 댓글을 단 분들은 현재진행형으로 고통받고 있는 걸까.
잠깐 시름을 잊을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짧은 영상도 가치가 있다. 거기에 우리의 노래도 한 몫 도왔다면 기쁘겠다.
“이 채널 주인분 간 크시네.”
오란의 반응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부서 내의 사교성을 담당하는 직원이라도 이런 간 큰 짓을 하기는 힘들 텐데.
아무리 봐도 신기했다. 그 행동에 동참해주는 다른 직원분들도. 빠진 자리가 하나도 없다는 점도.
얼굴을 가리겠다는 약속과 함께 영상으로 얻는 수익을 나눠주겠다는 약속이 있지 않고선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다.
혹시 낙하산인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실례되는 생각이라 얼른 접었다.
뉴튜브 채널의 주인이 인싸 중의 인싸, 실행력 갑에 처세와 수완까지 뛰어난 만능 인간일 수도 있으니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는 끈질긴 사람일 수도 있고.
믿기 힘든 경험을 직접 해본 나는 모든 일들이 전부 개연성 있게만 느껴진다.
이 목소리를 얻은 과정과 비교하면 모두 어딘가에서 일어날 만한 일이니까. 이 넓은 세상에서 자주 접하기 힘들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가끔 뉴스 기사를 보면, 오히려 소설보다 황당무계한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기도 하니까.
“이 영상을 올린 분이 챌린지를 처음 시작한 분은 아니어도, 챌린지를 흥하게 해준 일등 공신이셔.”
소소하게 올린 영상은 화제가 되지 못하고 묻혔다가 이 ‘탈출해 챌린지’ 영상이 입소문이 나면서 다시 발굴되고 있다고 했다.
흥미 혹은 구독자를 노리고 영상을 업로드했다거나 하는 의도는 상관없다.
제대로 ‘탈출해 챌린지’에 발동이 걸린 이상, 그 파급효과는 분명히 긍정적일 것이다.
우리의 예측을 아득히 벗어난 수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