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40
마이 리틀 스타
사실 한재오 MC님과 촬영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조금 떨렸다.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가지게 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범접할 수 없는 스타라서다. 스타들의 스타랄까.
외딴섬에 TV 없이 살지 않는 이상 대한민국 사람이면 모르기가 힘든 인지도만으로도 대단한 분이었다. 한 손이 아니라, 손가락 하나로도 꼽을 수 있는 MC.
그런 분이 우리에게 먼저 아는 척을 해준 것이다. 홍오란 식으로 표현하자면, 비즈니스를 제안해온 것이고.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성품도 그 인지도만큼이나 유명한 분이 먼저 손을 내밀어준 셈이었다.
“안, 안녕하요! 엑, 아니 안녕하세요!”
다급하게 인사를 하려다가 혀를 씹은 박하를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시는 한재오 MC님. 우리를 보는 시선이 마치 아들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 부모님 또래의 나이대이긴 하셔도 자녀분은 아직 어리다고 알고 있는데.
“긴장하지 말아요. 그래봤자 알고 보면 다 같은 사람이니까.”
스타들의 스타로 오랜 기간 살아왔으니 우리가 긴장하는 이유도 쉽게 짐작할 만했다. 이제까지 덜덜 떨면서 신기하게 봤던 사람이 한둘이었을까.
“한재오 님!”
실수를 따듯하게 감싸주는 행동에 감동 받은 박하가 두 손을 모아 잡고 눈을 반짝였다.
“엄마가 한재오 님 팬이신데 사인 하나 부탁드려도…? 실례일까요…?”
평소의 박하답지 않게 목소리에 떨림이 담겨 있었다. 촬영 시간은 한참 남은 상태라 도전을 해본 듯했다.
“그럼 서로 사인해서 교환하면 어때요? 나도 테오라 사인 귀해지기 전에 미리 받아둬야겠어요.”
“영광입니다…!”
팬들에게 사인해준 적은 있어도 아직 테오라의 사인은 희귀한 편. 그런데 국민 MC 한재오 님이 우리 사인을 받는다면? 성공을 보장받은 아이돌로 비칠 수도 있겠다.
한재오 MC님은 스타가 될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도 갖췄다.
싹수가 보이는 후배를 이끌어줄 수 있는 독자적인 ‘라인’을 가졌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마음에 드는 것만으로도 스케줄 몇 개가 생길 수 있을 만큼. 넌지시 이야기를 흘리는 걸로도 섭외를 고려해볼 수 있을 만큼.
여기서 관건은 우리가 어떻게 MC님의 마음에 드느냐 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우리는 어쩌다 촬영을 같이하게 된 출연진일 뿐이다. 수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아이돌 그룹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선명한 인상을 남기려면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미리 준비한 앨범 위에 멤버들이 사인을 전부 남기고 건넸다.
한재오 MC님은 따로 준비한 사인지에 사인을 남겨 6장을 만들어 주셨다.
아빠도 엄마도 나중에 드리면 좋아할 것 같다.
“어…? 저희 이름 전부 아시는 거예요?”
박하가 받은 사인지에는 ‘to. 박하 어머님’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걸 보고 손에 들린 사인지를 다시 확인했더니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여섯 명의 얼굴과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리 공부해뒀어야 가능한 일이다.
“찾아서 얼굴 익혀놨죠. 게스트로 나오는 출연진이니까. 작가님들이 물음이나 대본 준비해주신 해도 스스로 조사한 정보가 더해지면 양질의 프로그램이 되지 않겠어요? 인터뷰식 예능이니까 특히 더 그렇죠.”
역시 국민 MC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면 그만큼 철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증거였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립니다!”
“잘 따라가겠습니다!”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코미디언 술술이 어슬렁대며 다가왔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세요, 형님?”
“이 친구들 알지? 요즘 탈출해 챌린지로 핫한 테오라.”
“아~ 그 친구들? 잘 보고 있어요.”
고개를 주억거리는 코미디언 술술은 대충 아는 척 뭉개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아직 누구나 알만한 셀럽은 아니니 이해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고.”
손을 흔드는 모양이 가보라는 뜻으로 읽혔다.
어차피 중간에 소개하는 타이밍이 따로 있어서 그때 등장하면 되는 포맷이기에 우리는 그대로 대기실로 돌아왔다.
“소문 퍼지는 속도가 엄청나네? 챌린지가 수면 위로 올라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초록 형의 분석이 틀릴 리가 없다. 그렇다면 탈출해 챌린지가 퍼져나가는 속도가 예상을 한참 벗어났다는 뜻이 된다.
“어쩌면 우리 예상보다 훨씬 거대한 파도가 닥쳐올지도. 휩쓸려가지 않게 단단히 각오들 해둬.”
“알았어.”
“응! 리더!”
초록 형은 한 명씩 내놓은 대답을 유심히 들었다.
이번 예능 촬영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거다. 그간 우리 얼굴은 지나가다 봤어도, 우리 앨범에 어떤 곡이 들어있는지는 몰랐을 시청자들에게.
“무대 밖 테오라의 매력을 보여줄 기회야.”
마리스는 늦은 시간에 편성된 방송치고 시청률이나 파급력이 강한 인터뷰 형 예능이다.
‘마이 리틀 스타’가 방송된 다음 날이면 ‘어젯밤에 마리스 봤어?’가 흔한 인사가 될 정도다.
몇 년간 금요일 밤을 책임진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다니!
부모님께 소식을 전했더니, 두 분 모두 놀라 하셨다. 그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프로그램이고, 화제성이 갖춰줘야만 출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무대에서, 혹은 출근, 퇴근길에 만나게 되는 팬들을 보면서 아주 조금씩 실감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 스케줄은 우리가 아이돌로서 뿌리를 제대로 내리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마이 리틀 스타는 모든 연예인들의 워너비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언급될 정도다. 예능에 출연하지 않기로 유명한 분들도 웬만하면 출연 제의를 고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재오 MC님의 안정적인 진행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색다른 모습이 드러나기도 하니까.
“파이팅 한번 하고 가자.”
“좋아! 다들 얼른 손 모아.”
여섯 개의 손바닥이 겹쳤다.
“둘, 셋! 테오라 파이팅!”
위로, 아래로, 옆으로 손이 멋대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엉망이 됐다. 하지만 그것 나름대로 유쾌해서 긴장이 풀렸다.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오자. 평소의 멤버들이 어떤지 알고 있기에, 그 자체로도 매력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마리스 스튜디오는 아늑하게 꾸며진 가정집 같은 분위기였다. 게스트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장치일까?
“마이 리틀 스타, 오늘의 게스트! 여기서 탈출해~♪ 탈출해 챌린지의 주인공, 신인 아이돌 테오라와 함께합니다!”
메인 MC인 한재오 님이 포문을 열었다.
일부러 과장되게 불렀지만, 알아듣기 쉽게 음정, 박자를 정확히 지켰다. 역시 보통 내공이 아니시다.
“이 노래 한번 들었는데 고막에서 안 떨어진다고요? 그런데 누가 불렀는지 모르겠다고요? 답을 알려드리죠! 채널 고정!”
옆에 앉아있는 유명한 작곡가이자 싱어송라이터인 계림 님이 덧붙였다. 아까는 길이 엇갈려서 인사를 하지 못한 모양이다.
“테오라 멤버들을 소개합니다!”
소개는 코미디언 술술 님이 맡아주셨다.
“든든한 리더 초록! 연기면 연기, 랩이면 랩, 서 혼! 랩 경연 프로그램에서 대반란을 일으켰던 래퍼 제톤!”
소개하는 순서대로 스튜디오로 자신만만하게 들어갔다. 뒤에 서 있던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다가 실소가 터졌다.
비장한 각오를 한 모습이 우스웠다. 얼어붙어 있어선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피식 비웃는 오란 때문에라도.
바로 우리를 부르는 외침이 얇은 세트장 벽 너머에서 들려왔다.
“작곡계의 떠오르는 신성, 함이원! 토끼 같은 외모지만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오란! 신예 아이돌 박사라고 불러다오, 박하!”
우리가 입장하기 전에 자료 화면이나 효과가 들어갈 테지만, 실제 입장은 단조로웠다.
씩씩하게 스튜디오로 걸어 들어가서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진행자보다 우리 숫자가 두 배는 많은데도 실제로 마주하니 존재감이 대단했다.
진짜 스타는 존재감부터 다르구나.
테오라도 언젠간 연예인다운 존재감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작가님들이 테오라를 꼭 섭외해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팬인가 했는데, 선견지명이 있었나 봅니다.”
“그러게요, 재오 형님. 저도 사심 들어간 캐스팅인 줄 알았지 뭡니까.”
“이번 타이틀곡 ‘탈출해’의 노래와 안무로 챌린지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은 전해 들으셨죠?”
“네. 저희도 어제 제대로 알게 돼서 밤새 영상 찾아봤어요.”
초록 형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초록 씨가 테오라 리더죠? 더 연상인 서혼 씨도 있는데, 어쩌다 리더가 됐어요?”
“아, 그게….”
겸연쩍게 웃는 초록 형의 표정은 딱 그거였다. 내 입으로 어떻게 내 칭찬을 하겠냐는 표정.
“초록 형은 만장일치로 리더가 됐어요! 회사에서도 추천해주셨고요!”
“오호? 딱 리더감이다, 이거군요?”
“네, 맞습니다!”
“박하야.”
말리는 척하면서 부추기는 초록 형의 마음을 읽어낸 박하가 뿌듯하게 가슴을 폈다.
“초록 씨는 예명이 본명이죠? 성까지 붙여서, 인디고 그린이 어땠을까요? 아니면 네이비 그린?”
“…Indigo green?”
지온의 얼굴이 떨떠름해졌다.
“술술, 그게 무슨 망발입니까. 예쁜 우리말을 두고 영어 예명을 권하다니요.”
한재오 MC님이 중재하고, 술술이 변명을 늘어놓는 구도가 됐다.
“아니, 팬들이 검색하다 보면….”
어떤 의미인지는 이해는 간다. 그렇지만 초록 형이 성을 떼어낸 예명을 선택한 건 아버지인 남경욱 배우님과의 접점을 줄이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거다. 그래서 멤버 중 누구도 관여할 수 없었다.
남 씨는 특이한 성이고, 연예계에 있는 남 씨를 찾아봐도 한 손에 들 정도니까.
“공식 예명을 남초록으로 바꿔야겠네요! 팬분들이 불편하시다면 예명 바꾸는 게 당연하죠!”
이렇게 갑작스럽게 결정한다고?
그보단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는 게 더 신빙성 있다.
중간에 예명을 교체하는 작업은 번거로운 과정일 거라 때를 보고 있었던 거겠지. 용의주도한 초록 형답다.
예명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연예인도 있는데, 성 하나 추가하는 건 그보다는 쉬울 것이다.
특히 아이돌은 팬들이 예명 대신 친근하게 본명을 부르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가족관계가 밝혀지더라도 팬들의 편의를 우선으로 하겠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이득이 되는 방향일 테고.
“서혼 씨는 아역 배우에서 아이돌로 변신을 제대로 하셨네요. 이목구비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소년에서 어른이 됐다고 할까요?”
“어릴 적엔 여리여리한 이미지였죠. 피부도 하R고…. 제가 병약한 소년 역을 맡은 적도 있어서 약하다는 이미지가 박혀있었나 봐요.”
몇 년간 공백기를 가지고 나타난 서혼 형에겐 순한 눈매와 진한 눈썹이 남아있긴 해도, 인상이 완전히 달랐다.
“성인 배우로 넘어갈 때, 아역 배우의 이미지가 남아서 고생을 하는 분도 계시는데, 전 행운아죠.”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비결이 뭔지, 저한테 슬쩍 알려주세요. 절대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술술은 입이 가볍다는 컨셉의 코미디언이다. 조금만 겁을 주면 ‘술술’실토한다고 술술이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발설하지 않겠다는 말은 유머의 일종이다.
“그럼 몰래 알려드릴게요.”
서혼 형이 술술에게 다가가 귀에 대고 말했다.
비밀이라는 느낌이 나게 손바닥으로 입 주위를 가리긴 했는데, 다 들리는 크기였다.
다들 알고 속아 넘어가 주는 상황극이었다.
“제 비법은 바로 운동입니다.”
아. 운동광 서혼 형이 공중파 예능에 공식적으로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