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41
매력을 뽐내자 (1)
설마, 서혼 형이 운동 만능설을 꺼내려는 걸까?
“혼이 씨가 뭐라고 했어요? 궁금한데요.”
“비밀로 하기로 했으니까 물어보지 마시죠. 아무리 재오 형님이라도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손으로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하는 술술.
그러나 이 스튜디오에 앉아있는 모두는 알고 있었다. 조금만 구슬리면 못이기는 척 비밀을 털어놓으리란 사실을.
센스 넘치는 대화가 오간 결과, 결국 술술이 두 손을 들며 항복했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대화의 흐름은 서혼 형에게 넘어가버렸다.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정확하다면서.
좌절하는 척하는 코미디언 술술을 뒤로 하고 대화가 이어졌다.
“운동은 좋은 점밖에 없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쉬면서 머리를 비울 수 있는 일이 필요해서 운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아버지가 운동 습관을 만들어두면 도움이 된다고 추천해주셨다나.
“기본적으로 체력이 준비되어야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것 같아요. 게다가 규칙적인 운동은 정신 건강에도 좋으니까요.”
“서혼 씨는 어린 나인데 벌써 그걸 깨달았어요?”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한재오 MC님이 공감하는 건 당연했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고, 신문과 책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분이셨으니까.
“운동, 으으으…,”
술술은 운동 얘기가 나오자마자 질색했다. 배에 인덕을 잔뜩 쌓은 그는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나태하게 지내면서 짧게 살다 가겠다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막상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지잖아요? 그럼 다 운동에 관심이 가게 되어 있어요. 살려고.”
옆에 앉은 작곡가 계림 님이 고개를 깊이 끄덕거렸다.
“나도 그래서 운동 시작하게 됐잖아요. 운동 귀찮은데, 여기저기 쑤시니까 운동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 짧더라도 건강하게 살다 가야지.”
“…그래서 아역 배우에서 아이돌로 완벽하게 변신하게 된 비결이 운동이라고요?”
술술 님은 운동 권유로 이야기가 길어지려고 하자 얼른 원래 주제를 꺼내왔다.
“네. 아무래도 예전 제 모습을 기억할 분들에겐 그 이미지를 깰 무언가를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확 달라진 겉모습이겠죠.”
시각적인 부분이 얼마나 사람들의 인식을 좌우하는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놀랍다.
나는 ‘잘생겼다’ 혹은 ‘예쁘다’ 정도의 일차원적인 감상밖에 안 드는데. 그마저도 익숙해지면 아무 생각도 안 들고.
그런 면에서 부모님의 외모를 장점만 쏙쏙 물려받은 나는 행운아였다.
작곡가라는 직업을 가지게 됐다면 모를까, 대중 앞에 서는 아이돌이 됐으니 더.
“어릴 때 왜소한 체구였어서 효과가 더 극적이었죠.”
공백기가 있었던 터라 예전의 이미지가 흐려져서 더 효과가 컸으려나.
특별한 방법은 아니긴 했다. 다른 아역 배우들도 몸을 키우거나 성숙한 분위기로 꾸며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기도 하니까.
“아역 배우 서혼의 팬들이 아이돌 서혼이 같은 사람인 거 알고 놀란다면서요?”
“장르를 바꾼 게 가장 크겠죠. 제가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고 래퍼로 돌아올 줄을 예상하지 못하셨을 테니까….”
멋쩍게 미소 지은 서혼 형은, 아이돌 서혼도 예쁘게 봐줬으면 좋겠다면서 말을 마쳤다.
“서혼 씨, 그렇게 웃으니까 어릴 때 얼굴이 보이네요. 잘 컸네요, 잘 컸어. 서혼 씨 팬들은 기립박수 쳐도 모자라요.”
가벼운 사담이 지나가고 다음은, 지온 차례였다.
“랩 경연 프로그램 얘기보다 사전 인터뷰에서 나온 이야기를 꺼내 보려고 하는데요. 제톤 씨, 테오라의 요리 담당이시라고?”
“예. 요리가 취미라서요. 멤버들이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요.”
방송이라 신경 써서 그런지 평소보다 발음을 하나하나 또렷하게 했다.
“지온 형이 만든 음식들이 다 맛있어서 맛있게 먹는 거예요! 한식, 일식, 양식 전부 하는 데다 과일청도 담그는 사람이에요! 여유만 있으면 고추장도 담글걸요?”
“박하 씨한테서 증언이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톤 씨?”
“고추장? 만들어 본 적은 없는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추장 만드는 아이돌? 이건 귀하네요. 만들어본 한식 중에 뭐가 제일 어려웠어요?”
다른 나라 요리는 얼마나 어려운지 감을 잡기 어려워서 한식으로 한정시킨 듯했다.
“레시피만 알면 만들 수 있어요. 어려운 음식은 딱히 없었고, 만들기 귀찮은 음식은 있었어요. 두부.”
“두부? 설마 전통 방식 그대로 만든 건 아니겠죠?”
지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자기가 한 게 전통 방식인지 아닌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콩 불리고 갈아서 콩물 끓이는 식으로 했냐고 물어보시는 거야.”
두부 만들기 체험에 갔던 기억을 살려서 설명해줬다.
“응. 다른 방법이 있어? 계속 저어주느라 귀찮았는데.”
멤버들도 몰랐던 일인지 가운데 있는 테이블을 짚어서 상체를 내밀어 지온을 쳐다봤다.
“진짜?”
“제톤 씨는 요식업계에서 탐낼 인재네요. 전통 방식으로 두부를 만드는데도 귀찮은 정도라니. 일반인은 시도할 엄두도 못 낸다고요.”
지온이 중앙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봤다.
“섭외 기다리겠습니다. 종갓집 촬영도 괜찮습니다.”
진지한 선언에 진행자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은근히 웃기네요. 제톤 씨.”
방송에 안 나갈 잡담이 이어졌다. 카메라와 스태프 앞이긴 해도 긴장감 넘치는 공기가 아니여서 시간이 흐를수록 멤버들의 얼굴도 편안하게 풀어졌다.
짧은 휴식 시간을 가진 후 다시 촬영을 계속했다.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세트장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신인인 우리를 스탭분들과 고정 출연진분들이 많이 배려해주시는 게 느껴졌다.
“마이 리틀 스타, 오늘은 신인 아이돌 그룹 테오라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소개했던 순서대로 대화의 중심이 된다면, 다음은 내 차례였다.
“함이원 씨는 테오라 데뷔 앨범부터 작곡한 걸로 알려져 있죠. 그 뒤로도 내놓는 곡마다 히트시키고 있다고요?”
이건 질문이겠지…? 대답을 어떻게 해도 재수 없게 들릴 것 같은데.
“아니, 술술. 그런 식으로 말하면 작곡 천재 이원 씨가 난처하잖아요.”
“재오 형님도 틀리셨어요. 작곡 천재가 아니라 음악 천재라고요. 웬만한 악기는 전부 다룰 줄 알고, 이번엔 단독 프로듀싱도 맡았다잖아요!”
“인정합니다. 음악 천재 이원 씨로 정정하죠.”
갈수록 태산이다….
“우리 이원이 울상 된 거 안 보이세요? 아무리 놀리는 재미가 있더라도 자제해주시죠. 이원이를 놀릴 수 있는 사람은 멤버들과 코티지밖에 없습니다!”
초록 형…. 말릴 게 아니면 적어도 부추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오? 그럼 저도 일일 코티지로 임명해주세요. 그러면 이원 씨 놀려도 되는 거겠죠?”
“좋습니다. 딜.”
본인인 나를 빼두고 한재오 MC님과 초록 형이 악수했다.
합의를 끝낸 둘이 본격적으로 나를 향해 눈매를 휘었다.
“…저도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겠습니다!”
혹시 이런 일이 있을까 하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뒀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이런 이야기 흐름이 될 줄 알았으니까!
“이원 씨가 각오를 마쳤다는데, 어떻게 보시죠, 초록 씨는?”
“글쎄요. 지금까지 이원이가 승리한 적이 없어서요.”
나를 얕본 거다. 이번 기회에 팬들에게도 내가 놀리기 쉽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말겠다!
“먼저 대답부터 해주시죠. 음악 천재 함이원 씨.”
“…네! 저 음악 천재 맞습니다!”
“오오오오!”
사방에서 들려오는 인위적인 환호에 볼이 뜨거워졌지만 꿋꿋하게 고개를 들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안 된다!
시작했으면 제대로 끝을 봐야 한다. 어정쩡하게 끝냈다가는 그 뒤가 두려워진다. 팬들이나 멤버들이 지금보다 짓궂어진다면…!
한 번만 견뎌내면 앞으로가 편해질 것이다. 아마도…?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설 미래가 언뜻 스쳐 지나간 듯했지만 얼른 털어냈다.
“예전에 줄리어드 조기 입학을 준비한 적이 있다는 증언을 들었는데요. 사실인지?”
이건 부모님밖에 모르는 이야기일 텐데, 어떻게 제작진이 입수했지? 한때는 줄리어드 입학시험을 볼지 고민한 적이 있다.
영어 성적과 실기는 통과하더라도 일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터라 포기했다.
아빠가 같이 가주신다고 해도 말을 하지 않고 외국의 교육과정에 적응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거라고 판단했으니까.
“고민만 해봤어요. 그 나이엔 꿈이 크잖아요?”
“오호? 그렇게 넘어가신다? 악기 종류는 전부 웬만큼 다룬다는 증언이 있었는데 그건 사실인가요?”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악기는 정해져 있어요.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플루트, 거문고입니다.”
“이원 씨, 솔직해지시죠. 그거 말고 또 있잖아요.”
“…드럼이랑 기타도 수준급입니다!”
이왕 막 나가기로 한 거 멤버들을 참고하기로 했다. 자신감은 박하에게서, 뻔뻔함은 홍오란에게서.
“언급한 악기 외에도 어느 정도는 다룰 수 있다는 거죠? 연습해볼 시간이 주어지면 금방 익숙해지고요?”
“네. 그렇습니다. 저 음악 천재입니다!”
한 음씩 꾹꾹 눌러서 강조했더니 스튜디오에 웃음이 BGM으로 깔렸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 아무렇지 않다….
“이럴 줄 알고 저희 쪽에서 이원 씨가 다뤄보지 않았을 것 같은 악기를 준비했습니다! 가져와 주시죠!”
특이한 악기도 이것저것 체험해봐서 내가 다뤄보지 않았을 악기를 가져오기는 힘들 텐데.
“아.”
가져온 악기는 품 안에 쏙 들어오는 미니 하프 리라였다. 하프를 구경해본 적은 있어도 이건 처음이었다.
“미니 하프 리라입니다. 이거 다뤄봤나요?”
“아니요.”
저렴하다고 들어서 사보려고 했다가 바빠지는 바람에 잊어버리고 있었다.
탄현 방식은 어색하지 않고, 음도 명확해서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깐 연습해볼게요.”
전체 현을 하나씩 뜯어 음을 들어봤는데, 현 하나의 음이 살짝 어긋난 상태였다.
“음, 조율 시간 가져도 될까요?”
“이미 조율한 상태로 가져왔다고 들었는데…. 해보셔도 됩니다. 테스트용으로 구해온 악기니까 편하게 사용하세요.”
스튜디오 한쪽 구석에서 조율 도구로 보이는 무언가를 들고 뛰어오는 분이 계셨다. 얼른 도구만 넘겨주고 돌아가셨다.
아주 살짝 돌리면서 음을 들었다. 크게 어긋나 있진 않아서 조율은 금방 끝났다.
의자에 앉아서 한 손으로 미니 하프 리라를 잡고, 오른손으로 점검했다.
“자료 화면으로 나갈 텐데, 이원 씨가 미니 하프 리라 처음인 건 맞는 거 같거든요? 왜냐면 보통 이런 자세로 하질 않아요.”
“아….”
바깥쪽을 잡거나 두 손으로 다룬다는 얘기에 바로 고쳐잡았다. 바로 두 손 연주까진 힘들 것 같아서 한 손으로 지탱했다.
16음계 리라 악보를 같이 주셨는데, 쉬운 비행기 연습곡이었다.
악보를 받아 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처음이기도 하고 연습 과정에서 틀리는 건 당연해서 겁먹진 않았다.
띵띵띵띵 띵띵띵~
“떴다 떴다 비행기!”
머뭇거림 없이 빠르게 쭉 연주하고 나서 나머지 출연자들을 봤더니 숨죽이고 나만 응시하고 있었다.
“…푸하! 진짜 처음 맞죠? 간단한 연습곡이어도 버벅거림이 없다니! 딱 보면 감이 오죠. 이원 씨 나중에 나한테 개인적으로 연락처 줄래요? 아니면 내 작업실 놀러 올래요?”
작곡가 계림 님이 매달리다가 술술 님의 철퇴를 맞았다.
“짧아서 감질나요! 한 곡 더! 한 곡 더!”
“…한 곡 더 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