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47
로드 매니저
서혼 형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홍오란이 혀를 차며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결론 나왔네요. 준현 형.”
“그래. 잘 생각했다.”
무사히 지나갈 수도 있지만, 만에 하나 사고라도 터지면 치명적이라서 회사에서도 걱정하고 있기도 했단다.
씨드, 코넬 선배님들을 참고하면 하눌 엔터의 성향이 보인다.
아이돌 운동회 제작진들도 자연스럽게 테오라가 출연을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을까.
예상 범위 안이라면 덜 괘씸해 보일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근데 나중엔 나가보고 싶어요! 잔뜩 연습해서 종목 우승을 휩쓸어 와야죠!”
“이기는 게 그렇게 중요하냐?”
“오란 형은…. 아니다.”
“왜, 박하준. 하던 말은 마저 하지?”
“가슴 뜨거워지는 스포츠의 매력을 모른다구!”
“난 또.”
홍오란은 자기가 운동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점을 아주 손쉽게 인정했다.
서혼 형이 주도해서 운동을 하다 보면 알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중에 가장 운동신경이 부족하고 근육이 붙지 않는 멤버가 오란이라는 사실을.
체력은 운동을 꾸준히 하다 보면 늘게 되는데, 타고난 운동신경은 개선이 거의 불가능했다. 자기가 노력해도 잘할 수 없는 분야에 흥미가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코티지들도 홍오란에게 운동 천재나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지길 기대하진 않을 거다. 이미지와도 안 어울리고.
“참가할 거면 전부 이길 각오로 해야지.”
승부욕 때문에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열심히 했었다는 지온이라 이상하지 않았다.
이왕 참가한다면 전 종목 제패를 목표로 한다니. 30분 단위로 일정이 잡혀있는 요즘엔 불가능한 목표였다.
앞으로 남은 한 달가량을 체육관에 맹훈련해도 이룰 수 있을까 말까인데.
“물론 우리에겐 최종 병기가 있지만!”
“그렇지. 그래도 혼자 전 종목 출전하게 하는 건 속 보이니까.”
굳이 지목하지 않아도 누굴 얘기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서혼 형이 평소처럼만 하더라도 가볍게 신기록을 경신하지 않을까.
아이돌 중에서도 운동에 소질 있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지만, 서혼 형은 그 수준을 넘어섰다.
잠재력만 따지면 국가 대표가 되어도 모자라지 않아 보인다.
우리 멤버들의 개인적인 생각이긴 해도 조만간 검증할 수 있다.
“혼이 형이 참가할 날이 기대 돼.”
서혼 형이 출격한다고만 하면 아이돌 운동회를 제패할 수 있겠지.
“그치! 나 혼자만의 생각 아니라니까. 서혼 형은 은둔 고수 같은 거지! 히힛!”
박하가 서혼 형 대신 자부심에 차서 우쭐우쭐했다. 서혼 형은 허허 웃으면서도 부인하지 않았다.
이럴 때 보면 서혼 형은 은근히 강하다. 기본적으로 겸손한 태도지만, 굳건한 자기 확신이 밑바탕으로 깔려 있다.
외유내강의 전형이랄까. 그래서 내가 서혼 형에게서 편안함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겉으로는 감수성도 풍부하고 여려도 그 안에 흔들리지 않는 고목이 버티고 있는 거다.
“다른 아이돌 그룹 못 만나는 건 아쉽네.”
“아….”
안 그래도 테오라는 그룹 자체의 인맥이 거의 없는데.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됐지만, 우리 선택을 돌이킬 생각은 없었다.
“스케줄 조금 한가해지면 아이돌 잔뜩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나가보자.”
지금은 현실적으로 인맥 쌓기를 우선순위로 두기 어려웠다.
대신 다른 스케줄을 소화할 때 다른 연예인 분들을 만나면 적극적으로 나가봐야겠다.
“아, 물론 여자는 안되고.”
“오해받을 짓을 사서 하는 멍청이는 우리 그룹에 없겠지. 비즈니스적인 태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초록 형과 오란의 우려에 이견은 없었다.
상대방에게도 신인 아이돌인 테오라에게도 스캔들은 치명적. 서로 조심해주는 게 진정한 배려가 아닐까?
뚜렷한 목표를 품고 연예계에 들어온 동업자라면 이해하고 남을 일이다. 나라면 고마울 것 같기도 하다.
“이 문제는 이렇게 마무리. 출연할 프로그램 자료 정독한 다음에 연습 짧게….”
“잠깐! 배고픈데 밥 먹으면서 하면 안 돼? 나만 배고파?”
“밥부터 먹고 할까?”
“나만 배고픈 줄 알고 입에 시리얼 바 쑤셔 넣을 뻔했네.”
“연습실이라 아쉽네…. 시켜 먹어야겠다.”
다들 각자의 표현으로 배고프다고 난리였다. 어쩐지 속이 허하더라니 배가 고파서 그랬나 보다.
“이원이 너도?”
“응. 배고프네. 점심 벌써 소화 다 된 것 같아.”
꼬르륵!
초록 형의 배에서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역시! 우리 그룹은 일심동체야!”
“…그러게. 다른 건 몰라도 먹을 때만큼은 진짜로 마음이 통하네.”
먹는 문제로 싸울 일은 앞으로도 영원히 없겠다. 절묘한 타이밍에 울려 퍼진 꼬르륵 소리를 다시 생각하니 뭔가 웃겼다.
웃음을 참느라 입술이 물결을 그렸는데, 귀신 같은 초록 형이 그걸 놓치지 않았다.
“비웃어? 이원이 너는 꼬르륵 소리도 안 낸다 이거야?”
내 목에 헤드록을 걸어와서 한참 바둥거린 끝에 풀려날 수 있었다.
“함이원이면 생리 현상 생략한다고 해도 안 이상하지.”
…내가 인형도 아니고.
다들, 홍오란 헛소리에 공감하지 말라고!
* * *
테오라는 몰아치는 일정을 지각이나 펑크 없이 감당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도 모두 잊고 지냈다.
스케줄 대로 따라가다 보면 캄캄한 밤이 되어있기 일쑤였다. 팬들이나 대중의 반응을 수시로 확인하던 초록 형이나 박하도 틈만 나면 부족한 수면 시간을 채우느라 바빴다.
그래서 알지 못했다. 인터넷 세상에서 일어나는 난리를.
아침 스케줄이 있어서 세 시간쯤 자고 일어나 씻고 나왔는데 다들 해롱대고 있었다. 그나마 멀쩡한 사람은 서혼 형밖에 없었다.
운동할 여유가 없어서 몸이 뻐근한지 연신 하품하면서 스트레칭을 했다.
“준현 형 오겠네. 다들 입에 뭐라도 집어넣어.”
멤버들은 토스터로 구운 식빵과 달걀 프라이를 입에 한가득 욱여넣었다. 박하는 위에 들어가서 섞이면 토스트가 된다면서 입에 케첩과 마요네즈를 짜 넣었다.
우유 한 잔을 마시고 있는데 매니저 형이 새로운 매니저님과 함께 들어왔다.
“이쪽은 임두열 로드 매니저님이다. 오늘부터 동행하게 됐으니 차차 얼굴 익히면 될 거다.”
20대 중반이나 됐을까. 까슬까슬한 머리나 살짝 그을린 피부를 보니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임두열입니다! 운전은 특별히 자신 있습니다. 안전 운전 맡겨주세요.”
시간이 빠듯해서 인사를 나누면서 숙소 바깥으로 나갔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매니저 형 둘의 뒤를 쫄래쫄래 따랐다.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 새 차 냄새가 나는 밴에 차례대로 탔다.
그동안 잠이 조금 깼는지 멤버들이 새로운 매니저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이가, 아니 연세가…, 연배…?”
박하 때문에 멤버들은 물론 앞 좌석에 앉았던 두 매니저님도 웃음이 터져버렸다.
“아니! 나이 궁금해서 말 꺼냈는데, 문득 실례 같아서….”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합니다. 우리 박하가 아직 어려서.”
리더 초록 형이 박하의 머리를 꾹 눌러서 사과시켰다.
“괜찮습니다! 스물세 살이니까 편한 형처럼 대해주셨으면 합니다. 연세나 연배가 더 상처이기도 하고요….”
익숙지 않은 높임말을 듣는 데서 괴리감이 느껴졌던 듯싶다. 나도 두어 살 어린 동생이 격식을 차리면 이상할 거 같긴 하다.
“말 적당히 편하게 하셔도 돼요.”
“아닙니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만큼, 혹여나 연예인과 담당 매니저 사이의 선을 지키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첫 직장이라 기합이 단단히 들어가 있는 듯했다.
운전대를 잡은 준현 형의 입술은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두 눈은 강한 아침 햇살 탓에 선글라스에 가려 있었지만 그래도 웃음기가 보였다.
두열 매니저님의 자세가 흡족한 듯했다. 군대 물이 빠지지 않은 꼿꼿함이 마음에 찼을까.
멤버들과 임두열 매니저님의 소소한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스케줄 하나를 쳐냈다.
이번 스케줄은 추석 맞이 인사말을 촬영하는 것. 여기저기서 사용하게 될 거라고 했다.
준비된 대본에 적당히 추임새를 넣어서 촬영하면 돼서 어렵진 않았다.
밴으로 다시 돌아가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고 하는데 준현 형이 밴 바깥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통화하고 있었다. 두일 매니저님은 그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고.
“…그럼 그쪽에서 알아서 해주시는 겁니까. 우리 애들이 신경 쓸 일 없게 해주십….”
멤버들의 기척을 느꼈는지 말소리를 줄이고 고개를 돌렸다. 통화를 종료하지 않은 휴대폰에서 들리는 웅얼거림만 들리는 정적이 우리 사이에 흘렀다.
“무슨 일 생겼나요?”
깊은 한숨을 내쉰 준현 형은 악플러가 기승이라 고소 준비 중이라고 상황을 알렸다.
“요즘같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 이런 문제로 스트레스 받게 하기 싫었는데.”
“선처 없을 거라고 공식 입장을 내놨어도 일시적이었나 보네요.”
초록 형의 말투에 냉기가 돌았다. 다른 멤버들의 표정도 굳어 있었다.
전에 박하가 악플러를 바퀴벌레에 비유했었는데, 그 비유가 얼마나 적절했는지 보여주는 증거였다.
“효과가 없었던 걸까요?”
악플러들이 몸을 사릴 거라 생각했던 내가 순진했을까?
“최근 급격하게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악플러도 새로 유입됐다고 회사에선 추측하고 있다. 일부는 하눌에서 말만 강하게 했다고 생각하고 있고.”
총기에 든 공포탄처럼 적어도 한번은 경고로 끝날 거라고 믿은 걸까?
경험적 추론이었는지도 모른다. 연예인들이 바로 고소 절차로 들어가지 않고 두 번 세 번 경고부터 해왔으므로.
“다음 스케줄이 있으니까 자세한 얘기는 차에 타서.”
우리는 얼른 밴에 올라탔다. 짧은 거리를 이동하게 될 예정이라 운전은 두열 로드 매니저님이 맡았다.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려면 운전에 집중하기 힘들 거라는 판단인 듯했다.
차가 출발하고 나서 말이 이어졌다.
“하눌의 공식 입장을 알지 못하는 악플러들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입장을 바꾸진 않을 거다. 너희가 신경 쓰지 않는 방향으로 처리한다고 했다. 아티스트 우선인 회사니까.”
“바빠서 서치를 소홀히 했더니 일이 터지네요. 애석하네요. 하나하나 직접 손봐줄 수 없어서.”
초록 형이 악플러를 손봐줄 수 없는 공인이 되어서 다행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이번만큼은.
댓글 창이 얼마나 난장판이 되어있을지 예상도 되지 않는다.
“모른 척 해둬라. 일부러 찾아볼 생각하지 말고.”
“네!”
“유명인 되려면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인 거죠.”
홍오란 같은 강철 멘탈은 인기가 많아지는 과정이라고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겠지.
“다들 악플러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하지도 마. 어차피 소용도 없겠지만.”
일반적인 사람은 악의로 똘똘 뭉친 사람의 비틀린 사고체계를 이해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을 감싸 안는 성자가 되려고 들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죄질이 다를 뿐이지 뉴스에서 나오는 범죄자들과 크게 다를까. 심연을 들여다보려고 하면 심연도 우리를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하는데.
악플러를 이해하기도 불가능하겠지만, 기력 낭비이기도 하다.
“모두 한동안 눈 감고 귀 막고 지내자. 뭐, 딴생각할 틈도 없겠지만.”
초록 형은 단언은 곧 예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