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49
이번 해가 가기 전에
페스티벌이라는 명칭에 어울리게 하루로 끝나지 않고 3일간 이어지는 행사였다.
첫째 날은 개막식을 비롯해 작은 이벤트들이 있었고, 이틀째부터 공연이 있었는데 오늘이 이틀째.
마지막 날이 아니더라도 페스티벌을 보러 온 사람 수가 엄청났다.
테오라의 순서는 후반부였다. 우리 뒤쪽에 거물급 가수가 나오는 라인업을 보면, 우리의 위상이 얼마나 올라갔는지 느껴졌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야외 공연장 한 편을 밴으로 가로질러 와서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인파에 휩쓸려 대기실에 도착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무대 올라가고 내려갈 때도 그렇지만, 노래 도중에도 조심하도록.”
매니저 형은 혹여나 우리가 노래하는 도중에 흥이 돋아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가 사고가 생길까 걱정하는 듯했다.
타이틀 두 곡을 부를 예정이었는데 이번 앨범 타이틀은 분위기 타는 경향이 강했다.
관객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은 반대로 관객의 반응에 휘둘릴 수도 있다는 단점이기도 했다.
“흥 내는 건 좋지만 위험해지지 않게 조심하고.”
“에이! 어련히 알아서 잘할 텐데요!”
손사래 치는 박하에게 공감하면서 무대에 올랐다.
우리는 관객석을 쳐다보고 나서야 큰 착각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테오라! 테오라!”
우리 그룹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들었는데도 벌써 몸이 근지러웠다.
진행을 맡은 MC님의 소개로 테오라를 외치는 게 아니었다. 멤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는 목소리는 온전히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여러 목소리가 모여 하나의 울림으로 빚어진 내 이름이 낯설었다.
일종의 주문처럼 반복되는 테오라와 멤버들의 이름은 나를 최면 상태에 빠뜨리는 듯했다. 관객들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돕는 주문이었다.
이대로라면 당장 무대 아래로 뛰쳐나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박하는 나보다 더 안달 난 상태였고, 다른 멤버들도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이크를 잡은 초록 형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둘, 셋.”
“안녕하세요! 테오라입니다!”
* * *
두 곡을 부를 수 있어서 데뷔 타이틀 ‘각인(Imprinting)’, ‘탈출해’ 순서로 부르기로 했다.
무대 의상은 반소매 교복에 마린 룩이 교묘하게 더해진 형태였고, 축제에 어울리게 평소 무대보다 알록달록했다.
안 그래도 머리 색도 화려한 탓에 멀리서 봐도 ‘연예인!’ 하고 알아볼 스타일이었다.
우리의 움직임이 관객들의 눈에 잘 띄게 도와주는 색이었다.
대형 스크린으로 실시간으로 비춰주긴 했다. 하지만 야외 공연장인데다 수용 인원도 많아서 무대, 스크린과 관객석 뒤쪽의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늦더위가 가시지 않은 시기라서 곡 하나를 끝냈더니 온몸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거기엔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도 한몫했다.
계단형 좌석이 있는 경기장 형태의 공연장이지만, 무대에 가까운 위치는 스탠딩석.
같이 뛰면서 즐길 수 있도록 중앙은 뻥 뚫려 있었다. 앞쪽에선 신나는 곡이 나오면 팔을 높이 들고 뛰어댔다.
한 무리가 유쾌하게 몸을 흔들자 그 주변에서도 하나둘씩 동참했다. 제대로 즐겨보려고 찾아온 분들이 생각보다 많은 듯했다.
비행기를 타고 K-Pop 페스티벌에 온 외국 팬들은 참았던 흥을 터뜨렸다.
K-Pop에 관심 있는 분들이 모인 자리. 몇몇이 안무를 따라 추기도 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열정적인 기운이 무대까지 곧바로 전해졌다. 우리도 관객들도 신나는 공기 속에서 서로를 보며 한껏 즐거워했다.
원래도 곡 하나를 끝내면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데, 오늘은 머리카락까지 촉촉하게 젖어 든 것 같았다.
“다음 곡은 미니 1집 타이틀 ‘탈출해’입니다.”
곡명을 소개한 초록 형이 마이크를 내 쪽으로 넘겼다. 그래도 여러 번 해봤다고 마이크가 넘어왔다고 당황하지 않았다.
“일상에서 탈출해서 색다른 경험을 하시길 바라며 만든 곡입니다. 지금의 여러분처럼요.”
작곡가로서 곡 소개를 하게 될 때 어색하진 않았다.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음악에 관한 이야기니까.
“가사를 아시는 분들은 따라 불러주세요! 그럼 탈출해볼까요!”
환호와 함께 전주가 흘러나오는 동안 무대 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눈 맞춤했다.
여기 있는 모두가 테오라의 노래를 즐겨준다고 생각하니 괜히 벅차올랐다.
본격적으로 노래가 시작되고 나서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스탠딩석에 있는 분들 대부분이 테오라의 안무를 작게 추는 듯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이 그리 넓지 않아서 몸짓은 소심했지만 팔다리의 방향이나 박자는 정확해서 착각할 수가 없었다.
포인트 안무 외에는 난도가 있어서 전부 따라 하긴 어렵다. 그래도 하이라이트 부분에선 일사불란하게 팔을 뻗었고, 알맞은 타이밍에 점프했다.
여기에도 코티지들이 있으니 일부 관중들이 춤을 따라 추는 것 정도는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안무를 따라 하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우리 팬들이라기엔 너무 많은 숫자였다.
탈출해 챌린지의 효과겠지? 케이팝 팬들에게 우리 인지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 게 피부로 와닿았다.
동시에 들썩이는 사람의 파도는 신기하면서도 감동적이었다.
저절로 힘이 났다. 더 신이 났고 역동적으로 움직여졌다.
이 기분이 관객들에게도 직접 전해졌겠지. 더 빠르고 격해진 물결에 이 세계에 우리와 관객들만 남은 기분이었다. 기분이 붕 떠서 조금 더 가까이서 마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대와 스탠딩석 사이의 경계가 그리 넓지 않았다.
중간에 스태프들이 배치되어 있긴 했는데,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간 관객들이 몰릴 것 같았다.
기쁨을 전부 물거품으로 만드는 행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 시간이 계속됐으면 했지만, 일정상 바로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뒤쪽 계단으로 내려오는데 앵콜을 외치는 관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한 아쉬움이 몰려왔다. 억지를 써서라도 한 곡을 더 들려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곡이, 정확히는 관객들이 알만한 테오라의 곡이 더는 없었다.
빨리 다음 앨범을 내고 싶어졌다. 그저 앨범을 내는 게 아니라 그 곡을 대중에게 들려주고 호응을 얻고 싶었다.
가수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일 거다. 데뷔하고 1년도 지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지만….
테오라를 위한 미니 콘서트 같던 꿈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찰나로 느껴질 만큼 짧았다.
대기실로 돌아온 멤버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하….”
오란의 깊은 한숨이 정적을 깨뜨렸다.
“너무 좋았는데, 너무 짧았어!”
“앵콜에 답해주고 싶었는데. 일정상 어차피 우리가 무대를 더 길게 할 수는 없었겠지만….”
“이번 해가 가기 전에 앨범 하나 더 내자.”
이번 해에 데뷔한 남자 아이돌은 다 고만고만하다는 평이었다. 잘난 척하는 것 같긴 하지만, 이번 앨범으로 우리는 확실하게 한발 앞서가게 됐다.
테오라의 이번 해 목표인 신인상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치열한 여돌의 상황과 달리 남돌은 좀처럼 기세를 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테오라가 더 돋보일 수 있는 기회였다.
‘테오라라면 신인상 받을만하다’라는 평가를 듣고 싶다.
여돌, 남돌을 넘어서 대중에게 온전히 인정받고 싶다.
그러려면 쐐기를 박는 앨범이 필요하다는 게 내 의견이었다.
“일단 차로 가서 얘기하자, 이원아.”
밴의 내부는 무대로 몸이 달궈졌을 우리를 위해 시원하게 에어컨이 틀어져 있었다.
밴으로 서둘러 돌아오는 동안, 우리를 알아본 페스티벌 참가자들이 몰려왔다.
자칫 곤욕을 치를 뻔했지만, 준현 형이 누군가. 든든한 체구와 위압적인 얼굴로 달려들려는 사람들을 물리쳤다.
안전하게 밴에 타서 한숨 돌린 후에 하던 얘기를 계속했다.
“다들 염두에 뒀지? 이번 해 지나기 전에 앨범 내는 거.”
다들 긍정했다. 전에도 얘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회사에서도 테오라의 의사를 대강은 알고 있는 상태일 터였다. 아무 언급도 없긴 한데, 암묵적인 허락으로 볼 수 있을까.
“지금 상태도 나쁘지는 않은데, 연말에 활동하면 임팩트가 다르긴 하지.”
기억 속에 깊이 자리 잡으려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충격이어야 하며 반복적인 노출이 필요했다.
그 한도를 넘어서면 지겹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우리가 거기까지 고려할 처지는 아니었다.
조수석에 탔던 매니저 준현 형이 우리 대화를 유심히 듣다가 첨언했다.
“급하지 않나 싶은데.”
“1년에 앨범 3개 냈다고 하면 쉴 새 없이 일했다고 하겠죠.”
데뷔 앨범을 내고 나서 쉬지 않고 활동했다. 누가 우리 스케줄을 들으면 놀랄 법했다.
“아직 챌린지 열기도 채 식지 않았는데 말이다.”
“챌린지로 얻는 이득은 이득대로 얻어야겠지만, 글쎄요. 말린다고 들을까 싶은데요. 저를 포함해서요.”
“너희 목표가 확고하다면 내가 말릴 순 없겠지.”
매니저 형이 한발 물러섰다. 우리가 조급하다는 걸 알긴 해도 그만둘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올해 마지막 앨범 반대하는 사람?”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스케줄이 전보다 훨씬 타이트해서 현실적으로 제약이 있긴 하니까 디지털 싱글이면 적당하겠지?”
실물 앨범이 아니라면 생략할 수 있는 절차가 꽤 있어서 준비시간도 덜 들어가겠지. 게다가 한 곡이나 두 곡이 들어간 싱글 앨범이면 크게 부담도 없었다.
“이원이가 힘들까 봐 걱정이네. 보나 마나 이원이 곡으로 활동하게 될 거라.”
아닐 수도 있긴 하지만, 부정부터 하진 않았다. 테오라 앨범에 내 곡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으니까.
멤버들을 알아갈수록 테오라와 더 어울리는 곡을 쓸 수 있을 터다. 그러니 쑥스럽긴 해도 확률상으론 타당한 추측이었다.
“나 혼자만 앨범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 다들 함께하는 거지.”
박하와 초록 형은 안무를 맡을 테고, 지온이랑 서혼 형은 가사에 참여할 거다. 그동안 오란은 대외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될 테고.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지. 나만 특별히 과중한 업무를 맡는 게 아니다.
“휴…. 우리 이원이. 리더인 내가 잘 챙겨야지.”
특히 내가 컨디션 관리를 잘 못 한다는 편견이 있는 거 같다.
진실은 초록 형은 물론이고 멤버들 모두 무작정 자기 체력을 맹신하고 있다는 건데!
“다들 조금이라도 몸 상태가 평소랑 다르면 재깍 보고해. 안 그랬다가 나한테 들키면 알아서들 해.”
“초록이 너도. 이원이도 걱정이지만 너도 무리할까 봐 걱정이야.”
“역시 서혼 형밖에 없네.”
둘은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다가 바로 본론으로 돌아왔다.
“생각해둔 곡 있어, 이원아?”
“없을 리가. 이런 유형의 인간들은 머릿속에 영감이 넘쳐서 탈일걸?”
“…아닌데?”
“아니긴. 쓸데없이 거짓말은. 작업실은 못 갔어도 네가 우리 얘기도 못 듣고 조용해지는 순간이 꽤 있었는데.”
보나 마나 속으로 음악 생각했을 거라는 오란의 말에 다른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못 들었어? 왜 몰랐지?”
설명은 서혼 형이 해줬다.
“네가 집중 상태면 우리 전부 조심했어. 방해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아. 그랬구나. 내 세계에 빠져서 대화가 들리지 않았던 적도 있겠지만, 어째서 눈치채지 못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테오라 전속 천재 작곡가님이 집중하신다는 데 방해해서야 되겠어? 그때 떠올린 곡이 우리 다음 타이틀일 수도 있는데?”
우리 그룹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고 나온 행동이라는 게 홍오란의 설명. 내가 칭찬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다음 타이틀 후보는 정해졌을까, 이원아?”
내 대답을 기다리면서 멤버들의 눈이 기대감으로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