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50
끼리끼리
멤버들의 기대를 무너뜨리게 돼서 미안하지만, 곡은 아직 아이디어 단계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머리로 여러 곡을 쓰긴 했지만….
작곡에 도움이 되기 위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어릴 때부터 수많은 음악을 접해왔다.
그 결과, 머릿속으로도 곡 하나는 뚝딱 작곡할 수 있었다. 곡을 실제 음악으로 내놨을 때 머리로 떠올린 곡과 그리 큰 차이도 나지 않았다.
내게 작곡은 상상 속에서 그리는 그림. 작업실에서는 머리에 있는 음악을 세상에 내놓는 작업을 할 뿐이었다.
프로듀싱은 머리에 남은 음악과 실제 결과물의 간격을 좁혀서 최대한 비슷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미세한 조정이 훨씬 어려운 건 당연하기도 했다.
“아직이야.”
“한편으론 이해되네. 이원이 기준도 높아졌을 거라.”
직접 겪으면서 성장하지 않았을까? 같은 음악이라 해도 관점이 달라지면서 배우는 점이 있었을 테니까.
“그럼 함이원이 자신 있게 내미는 곡은 믿고 가도 되겠네.”
“당연히.”
다들 힐끗 보는 게 내 반응이 궁금한가 보다. 전이라면 드높은 기대가 부담스러웠을 거다.
아예 부담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전처럼 기대가 버겁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겠다면 물론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내가 해낼 때까지 응원하며 기다려주지 않을까.
내가 요행만 바란다면 모를까, 노력했는데도 결과가 따라주지 않는다면 실망하긴커녕 적극적으로 나서서 나를 격려해줄 멤버들이다.
진작에 알았어야 했는데,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다.
이젠 내게 거는 기대감을 즐길 줄 알게 된 것 같다. ‘기분 좋은 긴장감’과 마찬가지로.
“이원. 괜찮겠어? 작곡은 숨쉬기처럼 한대도 학교는? 수능도 본다며?”
“…….”
지온이 아픈 곳을 찔렀다.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학교와 관련된 것들을 잊고 지냈다.
아마 내 생활기록부에는 지각, 조퇴가 수두룩하겠지….
예고이고 아이돌로 데뷔한 상태라 학교의 허가를 받아서 출석으로 인정받고 있다고는 했다.
그래도 등교의 의지는 보여야 해서 틈틈이 가서 출석이라도 하는 중이긴 하다.
문제는 수능이었다. 수능을 치겠다고 담임 선생님께 얘기해둔 데다 법대 지망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깜깜무소식에 최근 얼굴 뵙기도 힘들어서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사정상 어렵겠다고 내심 생각하고 계시려나?
“공부할 시간은 나겠어? 평소 실력으로 봐야겠는데? 이원이라면 뭐~.”
“참, 이원이 공부 잘한다고 했었지.”
초록 형과 서혼 형은 나를 너무 믿는 것 같다. 시간 날 때마다 공부하려고는 했는데 그리 잘 되진 않았다.
공부 안 하면 성적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도 주로 음악 쪽으로 발휘되는 데다가 아이돌로 데뷔하면서 새로 집어넣은 정보량도 상당하니까.
“활동하면서 두 가지 챙기려면 음….”
아무리 따져봐도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런데 지금도 4시간 이상 자는 날이 없는데.
4시간이라고 했어도 보통 3시간, 4시간이면 많이 자는 날이었다. 밴 안에서 쪽잠을 잘 수 있어도 그건 체력이 회복되는 잠이 아니라 최소한의 피로감을 없애주기만 했다.
여기서 자는 시간을 줄였다간 몸에 무리가 갈 게 분명하다. 나이가 젊다고 해도 단기간에 과로했다가는 백 퍼센트 초록 형에게 찍힌다.
“생으로 수능 보는 수밖에 없어 보이는데? 어차피 공부로 성공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잖아.”
“지망 대학을 낮추는 건?”
어차피 성적에 따라 지망 대학은 달라질 수밖에 없겠지만, 지금 우리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이 한국대였다.
조금이라도 대학교 수업을 들어보려면 가까운 위치가 좋은데, 성적이 예상보다 안 좋으면 어쩔 수 없겠지.
“괜히 다른 사람들한테 박탈감 들게 하지 말고 적당히 해, 적당히.”
“네가 웬일이야? 적당히 하라니까 홍오란 아닌 거 같아.”
“다른 사람한테는 전력을 강요하지 않아. 운 나쁜 내가 남들과 비슷하게라도 가려면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을 뿐이지.”
사람들에게 각자의 페이스가 있다고 인정했다. 적당히 만족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점도.
홍오란은 타인에게는 관대하면서 자기 자신한테는 가혹했다. 반복된 자기 세뇌로 만들어진 습관은 여전히 깨지지 않았다.
홍오란은 진짜 내가 행운의 마스코트라고 믿긴 하는 걸까? 진심으로 믿는다면 조금 자신을 풀어줘도 될 텐데. 그러지 않는 걸 보면 전부 빈말이었던 건가.
“너도 적당히 해. 이젠 적당히 해도 되잖아?”
“감동인데. 우리 이원 형 다 컸어.”
이게 말이 되는 문장인가? 형이라면서 왜 동생처럼 내려다보는 시선? 내가 몇 개월은 더 살았는데!
여기가 차 안이라는 점이 애석하다. 우리만 있는 연습실이었다면 등이라도 한 대…. 아닌가. 그건 너무한가?
속으로 고민하는데 서혼 형이 내가 하는 고민의 종류를 오해하곤 어깨를 토닥여왔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때지. 예상보다 안 나와도 어쩔 수 없지. 팬들은 네 성적이 나빠도 좋아할 거야. 인간적인 면을 발견했다고.”
충격적인 발언이다. 그럼 그간 인간적이지 않았다는?
내가 사회성이 아주 약간 부족하긴 해도 이 정도면 평범한 축에 들 텐데…?
“서혼 형, 이원이 충격받았잖아.”
“응? 내가 충격받을 말을 했나?”
바로 내가 뭔가 착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 그렇지. 서혼 형이 은근히 매섭다고 해도 우리한텐 무른데 나쁜 말을 할 리가.
“인간적이지 않다고, 흡.”
손으로 입을 막는 초록 형이 더 얄미웠다. 잘못된 건 고쳐줘야지 같이 재밌어하면 안 되지!
“인간다운 허술함 말이야.”
서혼 형의 부가 설명이 이해되지 않았다. 사회성을 제외하고도 허술한 점이 한가득이다. 멤버들에게 물어봐도 끝도 없이 나올 거다.
“외형이나 음악 쪽이나 천재 같은 이미지니까. 알음알음 공부도 잘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을 테고.”
코티지들은 나를 엄청 대단한 사람으로 봐주는 것 같다. 환상이 덧입혀진 ‘테오라의 함이원’에게 환호하다가 실제의 나를 알게 됐을 때 실망할까 무섭다.
이미지가 중요한 연예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들 이런 고민을 하는 거겠지?
“조금이라도 공부하긴 해야겠어. 잘 될지는 몰라도 시도는 해보려고.”
“알아서 잘하겠지. 누가 뭐래도 쉽게 포기할 style 아니라서.”
“맞아! 우리는 그냥 옆에서 무리 안 하나 감시만 하자!”
박하야. 대놓고 감시하자는 말을…. 나한테 연상의 위엄은 전혀 없구나…. 그런 것도 갖추지 못한 내 잘못이다.
“함이원용 보양식을 준비해볼까.”
각자의 방식으로 응원해주는데 내가 먼저 겁먹는 꼴사나운 모습은 보이지 않을 거다.
활동을 이어가면서 다음 앨범 곡을 고민해보고, 틈나는 대로 수능 공부를 하는 빡빡한 스케줄.
수능이 끝나면 조금 나을 테니까 앞으로 두 달 정도만 고생하면 된다.
나보다 훨씬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새벽부터 운동하고 집안일하고 아이도 챙기고 회사에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고도 다른 일을 하고….
그런 일상을 매일매일 이어가는 분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니 나는 시간 관리만 잘하면 어떻게든 전부 해낼 수 있다.
멤버들의 응원인지 아닌지 모를 이야기를 들으면서 각오를 다졌다.
파이팅이다.
* * *
하루에 되도록 많은 스케줄을 잡긴 했지만 그래도 여유를 아예 두지 않을 순 없었다. 혹여나 앞 스케줄이 지연되면 다음 일정이 밀리게 되니까.
무턱대고 스케줄을 받았다가 민폐를 끼쳐서 관계자분들에게 미운털이 박히면 손해였다.
우리는 이제 막 발을 뗀 병아리라 처음 만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칫 실수해서 나쁜 첫인상을 심게 되면 그 몇 배의 노력을 쏟는다 하더라도 만회하기가 쉽지 않을 터였다.
첫인상은 웬만하면 바꾸기 어려우니까. 소문이 날 가능성도 있고.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스케줄 중간에 약간의 짬을 낼 수 있었다.
내가 대기 시간에 공부하려고 자세를 잡았더니 멤버들도 조용히 할 일을 찾기 시작했다.
박하는 내년으로 밀린 검정고시 대신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보겠다고 인터넷 강의를 보는 중이었다. 저런 열정이라면 금방 1급에 합격할 거다.
박하가 개인 뉴튜브 영상에서 우쭐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붕 뜨는 시간이면 주로 잠에 빠져들었던 지온은 요리 공부를 한단다.
기본 실력도 범상치 않은데 거기에 공부까지? 도대체 무슨 음식을 만들지 궁금해진다.
휴학생 서혼 형은 가사를 끄적이곤 했고, 초록 형은 여러 댄스팀의 영상을 미리 살펴두는 중이었다. 곡이 나오면 바로 안무 작업에 들어간다면서.
오란은 평소에도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편이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 노력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테오라가 되지 못한 세계의 홍오란은 아무리 운이 나빠도 몇 번 고비를 맞아도 결국엔 어떻게든 잘살게 되지 않았을까?
독기가 엄청나니까….
“왜 그렇게 보냐? 내가 새삼 귀여워 보이기라도 하나?”
“우웩.”
내 입에서 이런 소리를 뽑아내다니. 다른 의미로도 엄청나다.
“쉬는 시간이냐? 잘 안돼?”
“조금. 어려운 건 아닌데 집중이 안 되네.”
“재밌는 얘기 해줄까?”
홍오란이 재밌는 얘기? 웬일이지. 새삼스러운 건 나만이 아니었는지 다른 멤버들도 다들 하던 일을 내려두고 고개를 들었다.
“다른 건 아니고 연예계 소식.”
“아, 그거 확정됐나 보네?”
그거? 초록 형답게 바로 알아챘는데 반응이 이상했다.
“뭔데 그래?”
“POT 엔터에서 신인 남돌 나온다더라고. 멤버 확정됐고 슬슬 홍보 들어가고 있나 봐.”
대형 엔터인 POT 엔터에서 야심 차게 기획한 그룹이라면 데뷔 때부터 치고 올라올 거다. 곧바로 신인상을 거머쥘 확률도 낮지 않다.
테오라의 강력한 라이벌이 생기는 걸까?
“POT 엔터에서 신인 나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역시 대형은 대형!”
한 그룹을 세상에 내놓기가 쉽지 않다는데 그런 면에서 대형 연예기획사는 다른 듯했다.
“멤버들 얼굴을 봤는데 말이지. 직접 확인해봐.”
왜 내 쪽으로 내밀지? POT 엔터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알아볼 리도 없는데.
얼결에 휴대폰을 받아서 그 안에 있는 사진을 확인했다.
“…뭐지?”
총 네 명의 사진. 그런데 예상과 달리 넷의 얼굴에서 익숙함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연습생은 없으니 어딘가에서 마주쳤다는 뜻이다.
헤어와 메이크업이 달라진 데다 사진이라 평소 이미지와 갭이 있어서 바로 못 알아보는 것 같은데, 분명히 본 적이 있는 얼굴들이다.
유심히 그들의 이목구비를 떼어내서 본 후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들 중 하나는 하눌 엔터에서 내게 의미 모를 거친 말을 하며 어깨를 치고 지나갔던 연습생이다.
이름이 구대,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나머지 셋은 POT 엔터에서 오디션을 보고 나오는 길에 들렀던 편의점에서 만났던 연습생들.
이걸 끼리끼리 잘 모였다고 해야 할까?
손을 내미는 박하에게 폰을 넘겼다.
“이원아, 왜 그런 오묘한 표정이야?”
뭐라 말하기 애매한 내 생각이 겉으로 드러났는지 서혼 형이 바로 물어왔다.
“전부 아는 얼굴들이라….”
“한 명은 나도 개인적으로 아는 하눌 출신 연습생인데, 이원이 너한테 시비 걸었던 적 있지? 나머지는?”
역시. 초록 형은 모르는 게 없다.
“나머지는 POT에 오디션 보러 갔다가 내가 일방적으로 봤는데, 다들 말이 거칠어서 기억해. 그 연습생들 보고 POT에 가지 않겠다고 결정하게 된 것도 있어.”
“감이 딱 오네. 인성 덜 자란 애들 같았단 거지?”
“…….”
“박옥태 대표님도 참 대단해? 이런 애들을 전부 모아두고?”
초록 형 특유의 여우웃음은 온데간데없었다. 그 자리엔 무시무시한 계략을 실시간으로 세우는 흑막이 입술을 삐뚜름하게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