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55
코앞까지
뜨거운 화제가 된 레코코의 영상은 얼핏 보면 여러 장면이 편집된 평범한 영상으로 보였다.
제목이 ‘레코코 멤버, 명(본명 : 구대명)의 소시오패스 모먼트’라고 붙여지지 않았다면 조용히 묻혔을 영상이었다.
동영상 아래에는 구대명이 저지른 행동이 구구절절 적힌 댓글이 달려 있었다.
자기가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에 구대명의 행동 하나하나를 분석한 내용이었다.
댓글을 읽으면서 동영상에 담긴 행동들의 의미를 알아차릴수록 팔에 닭살이 오소소 돋았다.
무심코 지나칠 법한 일상에서 현실이 된 괴담과 마주한 기분이랄까.
구대명의 영상 배경은 특정하기 어려운 평범한 건물 안이었지만, 우리는 알 수 있었다. 배경이 대부분 하눌 엔터의 사옥 안이라는 사실을.
휴대폰으로 녹화한 것으로 보이는 영상도 중간중간 끼어 있었다.
여러 장면이 편집되어 있었는데, 구대명은 기이한 행동을 꾸준히 보였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고도 비웃으며 지나치기도 하고, 심지어는 같은 연습생인 듯 보이는 누군가를 일부러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사과하기도 했다.
보통의 CCTV 화질이 이렇게 좋지 않을 텐데, 계단 뒤에서 사람을 밀까 말까 고민하는 장면까지 있었다.
CCTV 방향을 힐끔 보더니 그만뒀지만, 만약 거기에 CCTV가 없었더라면?
구대명은 질이 안 좋았고 철저하지도 못했다. CCTV가 공개되는 일은 거의 없어서 안심했을까. 잠시 잊고 충동대로 행동했을 수도 있다.
그래봤자 휴대폰 동영상도 입수한 수완으로 봐선 초록 형이 어떻게든 밝혀냈을 일이라 소용없었겠지만.
“초록이 형! 불법적인 일 한 건 아니지? 보안팀 사무실에서 CCTV 자료 빼돌렸다거나?”
박하도 나와 같은 의문을 품었는지 대신 질문해줬다.
미심쩍은 지점을 직접적으로 물어보기는 어려웠는데 박하가 간지러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줬다.
“그럴 리가. 이 남초록이? 테오라의 리더 남초록이? 설마. 정당한 거래를 통해 얻은 귀중한 자료야.”
“…….”
“그래. 그런 걸로 하자.”
“혼이 형은 믿어줘야지. 모두가 못 믿겠다고 할 때, 형이라도 내가 그럴 리 없다고…, 흠. 말하면서도 이건 좀 아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편법을 사용하기를 서슴지 않는 초록 형에게도 티끌 같은 양심이 남아있었던 듯하다.
“정상적으로 잘 살고 계실 분들에게 미안하긴 한데, 그래도 이렇게 피해를 주는 녀석이 잘못한 거니까.”
괜히 사회의 규범을 지키며 일상을 살고 계시는 분들이 더 움츠러들게 되지 않으실까.
모든 소시오패스가 나쁘다는 일반화는 옳지 않다. 범죄율은 오히려 평범한 사람이 훨씬 높다고도 하고.
“이 동영상 봤을 분들은 예방주사 맞는다 치면 되겠다. 현실은 언제 어디서 얕보여서 호구가 되어 있을지 모르는 세상이니까.”
초록 형이 세상에 내놓은 영상으로 충격받았을 사람들과 멋대로 합의를 마쳤다.
그분들이 알았다면 혈압이 올랐을 이야기였다. 모르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곁에 있는 사람이 소시오패스라고 실감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다들 조금 이상하다 하면서 넘어갔을 텐데.”
얼굴에 적어두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겉으로 보이는 행동으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으니 웬만큼 뛰어난 관찰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알아차리기 어렵지 않을까.
“남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줬으니 구대명은 끝났지, 뭐. 이런 증거가 있으니 사람들이 느낄 괴리감은 없애기 힘들걸.”
소시오패스 성향과 별개로 구대명의 행동은 그 자체로 명백한 잘못이었고,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초록. 이제 신경 꺼도 돼?”
레코코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에 무념무상으로 보였던 지온도 괜히 신경이 쓰이긴 했던 모양이다.
“그래. 레코코는 앞으로는 무너질 일만 남았으니까.”
“우리한테 방해되지 않으면 됐어. 제대로 된 경쟁상대가 되면 모를까, 아니라면 별로 관심 없어서.”
지온은 실력으로 정정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상대를 원했구나.
작년까지만 해도 남자 아이돌들의 경쟁이 치열했는데, 이번 해는 여자 아이돌이 득세하는 중이었다.
지온에게는 분명히 안 좋은 소식이었다. 경쟁할만한 상대가 없으니까.
아! 그래서 요즘 여돌들의 영상을 열심히 찾아보는 거였나! 새로운 라이벌을 찾아서?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만약 아이돌끼리 승패를 다투는 경기가 있다면 지온은 분명 모든 아이돌과 겨뤄서 승리자가 되어야 만족할 터다.
같은 그룹 멤버가 나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건 내게 행운이었다.
같은 방향으로 노를 저어야 목표를 향해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 * *
테오라가 앨범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동안, 레코코는 완전히 무너져갔다.
구대명 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과 관련된 논란까지 연일 기삿거리가 되었다.
멤버 모두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후에도 버텨낼 재간이 있는 팬은 없었다.
일반인들에게도 레코코는 문제아 그룹으로 인식되어버렸다.
도대체 얘들이 뭐길래 안 좋은 소식으로만 골라서 맨날 뉴스에 나오는 거냐고 피로감까지 호소했다.
레코코는 회생 불가였다.
사태가 그 지경이 되자 POT 엔터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의사도 보이지 않았다. 잠자코 있으면 이 소란이 잠잠해질 거라 믿는 듯했다.
하지만 거기에 기름을 끼얹는 기사가 등장했다. POT 엔터에서 데뷔 과정에 부정 청탁이 있었다는 제보였다.
돈 있고 빽 있는 사람의 자녀 우선으로 데뷔시켰다는 투서가 들어왔다고 했다.
대중도 암암리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제보자는 그걸 ‘취업 청탁’에 비유함으로써 일반인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부정 입학이나 부정 취업은 역린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아이돌을 평가하는 기준에는 스타성이나 잠재력 같은 무형의 요소가 들어가 있다. 그 때문에 외적인 요소가 개입되었음을 증명하기 어렵다.
그냥 스타성이 보여서 뽑았다고 변명하면 그만이니까.
그렇지만 대표 한 사람의 의사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시대는 저물었다. 적어도 관계자들의 합의를 얻어야 했는데, 그런 과정이 생략되고 데뷔 멤버가 바뀌었다고 했다.
제보자는 이상함을 느끼고 자료를 모았고, 명백한 ‘청탁’ 증거를 내밀었다.
POT 엔터 이사와 레코코 멤버의 혈연관계를 알리며, 평가 결과가 조작된 증거를 제시했다.
구대명의 아버지로 알려진 2선 국회의원과 은밀한 만남을 가지는 대표의 사진도 있었다.
“구대명은 실력으로 데뷔 조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굳이 왜…?”
서혼 형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지 중얼거렸다.
“아버지라면 제 아들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았겠지. 구대명이 요구했을 수도 있고. 걔 성격을 보면 이쪽이 확률이 높겠네.”
만약 초록 형의 추측대로라면.
부정 청탁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아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리는 없었다. 자신의 배경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들이 멍청하다고 생각하면 모를까.
원칙을 지켜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자기 행동으로 피해를 볼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겠지.
“요즘은 POT 엔터와 레코코를 싸잡아서 썩은 양파냐고 하더라. 까도 까도 계속 나온다고.”
레코코는 이미 나락까지 떨어졌지만 아이돌 그룹 하나에 무너질 POT 엔터가 아니었다.
이미지에 타격은 받았어도 이러다가 다시 평소대로 돌아갈 거라고 여기는 듯했다.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그러나 청탁 증거와 함께 나온 제보는 POT 엔터의 아성을 흔들었다.
게다가 POT 엔터는 상장된 회사라서 그 악재가 주가에 반영됐다.
소속된 유명 연예인들이 있으니 언젠가 주가는 회복될 것이다. 하지만 한동안은 이전의 주가를 회복하지 못할 거라 다들 예측했다.
“제보하신 분 진짜 대단하시다. 어려운 선택이셨을 텐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공익제보자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아, 그분은 퇴사하시고 다른 좋은 곳에 취직하셨을걸.”
“…그건 어떻게 아는 거야?”
아무리 연예계 정보통이라지만, 그런 정보까지?
초록 형의 개입을 의심하게 되는 내가 이상하진 않을 거다.
“그렇지 않을까 하고.”
초록 형은 능청스럽게 빠져나가려고 했다. 물론 의심을 거두지는 않았지만, 나와 멤버들은 굳이 캐내지 않고 그러려니 넘겼다.
그 아래에 숨겨져 있을 진실을 파헤쳐보려고 해도 불가능할 테니까.
게다가 거의 모든 시간을 붙어 있는 멤버들이라고 해도 사생활은 존중해줘야 하는 법.
우리는 원활한 단체 생활을 위해서 암묵적인 규칙을 준수하는 것뿐이다.
초록 형이 불리해진 것을 느꼈는지 말을 돌렸다.
“수능 지나고 며칠 후에 바로 앨범 발매니까 정말 얼마 안 남았네. 이원이 수능 보는 날은 코앞이고.”
며칠 안 남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실감 난다. 아이돌이 되지 않았더라면 수능이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험이었겠지?
“부담 가지지 말고 수능 무사히 잘 치르고 와. 아, 이것도 부담스러운가?”
“괜찮아. 나 그렇게 멘탈 안 약해.”
“허세는.”
“절대 허세 아니거든?”
희망 대학이 있고, 희망 학과가 있으니 잘 보고 싶단 생각은 든다.
잘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으니 가벼운 긴장 정도는 할 테지만 다른 수험생과 달리 내게는 차선책이 있다.
아이돌 활동에 집중해서 하루라도 빨리 갓 아이돌이 된다면 그것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다.
“아니긴. 자신 없으면 올 9등급 나오게 답안지 제출하고 오던지. 우리 팬들한테 깔아주기라도 해.”
“와! 진짜 그런 짓 하면 이원 형 인생 최대의 반항이겠다!”
잠시 상상해봤다. 내가 절대 정답이 아닐 선택지만 골라서 답안지에 마킹하면 그다음에 어떤 결과가 생길지.
내게 유리한 입학 전형을 알아봐 주시느라 고생하신 담임선생님께 실례를 저지르는 거였다.
엄마는 통쾌하게 웃으실 테고, 아빠는 예상 밖의 행동에 놀라실 것 같다.
코티지들도 놀라겠지? 멤버들은 진짜 저지를지 몰랐다면서 나를 다시 보게 될까?
어른이 되기 전에 내가 저지를 수 있는 최대의 일탈 아닐까?
호기심과 함께 충동이 생기긴 한다. 배움에 뜻이 있다면 시기는 중요하지 않으니 다시 수능을 봐서 1년 늦게 입학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이고?
인생에서 1년은 생각보다 짧다. 그 시간을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다면 낭비는 아니다.
대학에 늦게 가면 동기들보다 한 살 어려지겠지만, 재수를 하는 사람들도 꽤 있을 거다. 게다가 어차피 대학에 가도 인싸는 아닐 테니 별 차이는 없을 것 같다.
“…그럴까?”
“어허! 애들 앞에선 찬물도 못 마신다더니. 이원이 앞에서는 농담도 못 하겠어.”
“안 돼! 이원 형이 삐뚤어지다니! 그런 모습 보고 싶지 않아.”
박하는 자기가 먼저 얘기를 꺼내놓고선 격하게 반대했다.
서혼 형은 조곤조곤 내가 엉뚱한 행동을 하지 않게 설득했다.
다른 멤버들은 내가 말만 한번 꺼내 봤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반쯤 진심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