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57
수능 (1)
2nd 디지털 싱글 의 티저는 시간은 수능 날 자정에 공개될 예정이었다.
약간의 여유를 두고 컴백 준비를 끝마치게 됐다.
…엄밀히 말하자면 ‘컴백’이라는 단어는 알맞지 않다. 테오라는 떠난 적이 없으니까.
오늘은 수능을 보는 나를 제외한 테오라 멤버들에게 하루의 휴식이 주어졌다. 내일부터는 다음 활동을 위해 다시 열심히 연습해야 할 거다.
앨범 준비 기간을 단축한 대신, 우리에게 주어진 기간도 짧아서 집중력 있게 연습해야 했다.
어쨌거나 오늘만큼은 다음 일정은 잊고 시험에 전념해야 할 때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지면서 가뿐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전날 일찍 자서 그런지 컨디션이 좋았다.
룸메이트 서혼 형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방 밖으로 나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부엌부터 들려왔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온이 부엌에서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다는걸.
한창 바쁜 듯해서 조용히 씻고 나와서 보니 지온이 준비한 음식 가짓수가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도대체 몇 시부터 준비한 거야?”
“아. 잘 잤어?”
“응. 푹 잤어. 그런데….”
식탁 한쪽에 놓인 3단 찬합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설마 이게 내가 들고 가게 될 도시락일까?
거창해도 너무 거창했다. 이 도시락통이 가방에 들어갈 크기는 아니라 따로 들고 가야 할 터다.
애써 모자와 마스크로 가린 보람도 없이 시선이 집중되지 않을까? 내가 아이돌이라는 것까진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든든하게 먹으라고. 모자라면 안 되잖아.”
초록 형이 아니면 모자랄 일은 없을 양이지만,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해준 정성을 생각하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배고플까 봐 그런다는데.
아무래도 양껏 먹은 다음 집에 들고 가서 저녁으로 마저 먹어야 할 것 같다. 싹싹 비운 도시락으로 돌려주는 게 예의일 테니까.
“뭐 넣었어?”
“점심에 확인해. 깜짝 선물이니까.”
이미 몇 가지는 도시락 안에 들어가 있었고, 디저트 칸으로 보이는 아랫단을 채우는 중이었다.
각종 과일을 조금씩 넣었는데 종류가 많아서 그것만으로도 한 층이 거의 찼다. 구석에 찹쌀떡도 예쁘게 담았다.
어디선가 철썩 붙으라는 의미로 찹쌀떡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모양이다.
주메뉴도 분명 화려한 라인업일 거다. 맛은 물론 소화도 잘되는 영양가 높은 음식이 틀림없다.
요즘 지온이 준비하는 메뉴엔 빈틈이 없었다. 영양학을 공부하고 있었나? 이러다가 갓 아이돌이 되기 전에 갓 쉐프가 되는 건 아니겠지?
멤버들이 하나둘 방에서 나왔다. 스케줄 보면 더 자도 될 시간인데.
나 때문에 일부러 일찍 일어났구나.
“배고파서 깼네. 아침 먹고 자야겠어. 밥만 푸면 돼?”
오란이 자연스럽게 수저를 놓으며 밥 먹을 채비를 했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
지온까지 평소 앉던 자리에 모두밥을 앞에 두고 앉았다.
부드러운 계란국과 갓 지은 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데 정적이 지나갔다.
“알아서 잘 보고 오겠지만, 그래도 잊지 마. 우리가 뒤에 있다는 거.”
“맞아! 망하면 어때! 우리가 있는데!”
“박하야, 그래도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떡해. 예민한 수험생 앞에서.”
난 안 예민한데. 서혼 형이 오히려 나를 예민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너는 그 얼굴만 잘 유지해도 먹고 살 수 있어. 걱정 집어치워.”
이게 응원인지, 험담인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문득 웃음이 터졌다.
너무나 평소대로의 테오라라서 몸에 들어갔던 힘이 빠졌다.
그래. 평소대로만 하고 와도 후회하지 않을 거다.
어제저녁에 부모님과 한참 통화를 했는데, 엄마가 그런 소리를 하셨다.
실수해도 괜찮은 지금 잔뜩 해두라고.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있으면 실수 하나에 여러 사람이 목숨이 오갈 수 있다고.
목숨까지는 비유겠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있었다.
이번 수능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을 받는대도 그건 나 하나로 끝나는 일이니까.
“응원 고마워. 얼른 밥 먹어.”
부드럽게 지어진 밥은 잘 넘어갔다. 호박전에 부드러운 소고기 장조림을 제외한 나머지 밑반찬은 익숙한 것들이었다.
도시락과 달리 아침은 힘이 크게 들어가 있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지온 기준에서.
후식으로 내어준 차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소화를 돕는 생강 꿀차. 달콤한 맛과 맵싸하게 올라오는 생강 향이 잘 어울렸다.
결국 서혼 형이 선물해준 보온병에는 생강 꿀차를 담았다.
여느 때처럼 매니저 형이 딱 맞춰서 데리러 와 줬다. 밴은 눈에 띌 수밖에 없어서 오늘은 매니저 형의 개인 차를 가져왔다는 게 다른 점이었다.
숙소 앞까지 배웅나와준 멤버들에게 짧은 인사를 한 뒤, 차에 탔다.
하루도 되지 않아 다시 만날 테니 긴 인사는 필요 없다.
수험장에 도착하니 벌써 정문을 통과하는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오늘도 역시 수능일답게 날씨가 추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코트를 여미며 목도리 안으로 목을 움츠렸다. 두터운 비니와 방한 마스크, 그 위로 뚱뚱한 목도리까지 둘러서 눈만 빼꼼히 드러난 채로 교문을 넘었다.
교실에 들어서니 이른 시간이라선지 부지런한 두세 명만 와서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
완전히 집중했는지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내 기척도 듣지 못한 듯했다. 먼저 도착한 두 명 중 한 명 바로 앞이 내 자리였다.
가방을 내려두고 나니, 도시락을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광택이 도는 검은 보자기로 싼 도시락은 시선을 저절로 빼앗아서 책상 옆에 두기는 곤란했다.
도시락을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가져다 둔 후, 자리에 앉아 준비물을 하나씩 꺼내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학생들이 하나둘 자리를 찾아 앉고 곧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작되었다.
* * *
시험의 난도는 수학이 약간 높았던 것 같지만, 나머지는 무난했던 것 같다.
지온이 챙겨준 도시락 덕분인지 점심시간에 강제로 인싸가 되는 사건이 있긴 했지만, 사고 없이 무사히 수능을 마치고 나올 수 있었다.
제2 외국어도 봐서 어둑해지고 나서야 수험장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밖으로 나와 보니 초조하게 기다리는 수험생 가족들 사이에 엄마도 계셨다.
“이원아!”
차가운 내 손을 꼭 잡은 엄마는 수고했다는 듯 어깨를 감싸 토닥였다.
“수고했어. 우리 아들.”
“많이 기다리신 거 아니죠?”
“얘는 재미없게. 나였으면 장난치면서 나왔을 건데.”
내가 작정하고 망한 척을 했어도 어차피 다 눈치채셨을 거면서. 엄마는 내가 남이었더라도 그쯤은 눈치채고도 남을 분이시다.
차 안에는 히터가 한참 틀어 있었는지 따듯한 공기가 가득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한기가 들었었는지 몸이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능숙하게 핸들을 돌려 복잡한 학교 앞 거리를 빠져나왔다.
“너희 아빠는 너 먹인다고 한창 요리 삼매경이라 같이 못 왔어.”
“날씨도 추운데 안 오셔도 괜찮아요. 사실 저 혼자서 지하철 타고….”
“그랬다가는 목격담 쏟아질 텐데?”
목도리, 마스크, 모자로 무장을 했는데도? 가끔 연예인들이 깜짝 이벤트로 지하철 타고 그러던데…?
“애정이 있으면 알아보는 거야. 엄마도 수많은 수험생 중에서 우리 아들을 바로 알아봤잖아?”
검은 옷을 입은 고만고만한 학생들로 가득한 곳에서 엄마는 콕 집어서 쳐다보면서 내 이름을 부르셨다. 가족은 멀리서 뒤통수만 봐도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은 진짜였다.
그렇다면 지하철을 탔던 연예인을 팬들이 일부러 모른 척해준 거였구나. 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의심하고 있었을 순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눈만 내놓고서 정체를 들켰던 적이 있었지. 엄마 말엔 일리가 있다.
혼자 지하철에 타는 모험은 하지 말아야겠다.
“얼른 가야겠다. 함지수 씨가 눈이 빠지게 기다리겠다.”
왜 또 아빠 호칭이 ‘함지수 씨’로 바뀌어 있는 걸까. 집에 가면 알 수 있을 일이다.
집에 식탁 다리가 부러질만한 저녁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아빠는 분명 우리 멤버들 준다고 바리바리 싸서 들려줄 터였다.
오늘 먹을 복은 제대로 터진 것 같다.
* * *
[수능 시험장에서 테오라 함이원 만난 후기!]내가 이런 후기를 쓰게 될 줄이야. 테오라 팬은 아닌데 입덕하게 된 거 같으니까 일단 후기 쓰기로 했어. 내가 아이돌한테 빠졌다고…? 아직도 어이가 없다.
이런 곳에 글 처음 올려봐서 조금 어색하더라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난 학구열 높은 지역에서 컸어. 집안 분위기가 한국대 이상 못 가면 사람 취급도 안 해주는 분위기라 공부만 했거든?
친구들이 아이돌 좋아한다고 할 때도, 아이돌한테 아까운 시간 쏟는다고 생각했고….
근데 공교롭게 같은 교실에 아이돌이 배정될 줄이야. 제일 먼저 입실해서 차분히 정리하느라 누가 있는지 몰랐는데, 다른 학생들이 어수선하더라?
도대체 뭐야, 하고 보니까 막 빛이 나더라? 고3이면 피곤함에 절어 있고 그래야 하지 않아? 왜 빛이 나?
보자마자 얘는 얼굴로 대업을 이룰 상이구나 싶었어. 연예인이 아닐 수가 없겠더라. 걔를 힐끔대는 다른 수험생들이 백번 이해돼서 뭐라고 할 수도 없었어.
걔는 아무것도 못 느끼는지 조용히 자기 할 일 하더라? 그 시험장이 제2 외국어까지 보는 곳이라 공부 에 목숨 건 애들이 모이는데 그런 외모 가진 애가 오니까 암튼 위화감이 대단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불공평하단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 저런 얼굴로 낳아줬으면 공부 안 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해서.
물론 그 애는 그 얼굴로도 공부도 잘할 거 같긴 했지만….
아무리 쳐다봐도 미동도 없어서 좀 자세히 봤는데 피부가 워낙 좋아서 그렇지 많이 피곤해 보이긴 하더라고.
각자에겐 각자의 고통이 있는 건데, 내가 멋대로 단정했구나 싶었어.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도 노력하지 않는 건 아닌데 말이야.
세상 살기 쉬워 보이는 저 애도 진짜로 쉽게 살지는 않는구나 하고 반성했어. 그 뒤로 이상하게 집중력이 올라가더라?
그 상태가 수능 보는 내내 이어졌고, 가채점해 보니까 모고보다 훨씬 점수가 높은 거 같아.
이 행운은 전부 그 연예인 외모의 수험생 때문 아닐까?
얼핏 아이돌이라는 소리 들어서 찾아보니까 이번 해에 데뷔한 아이돌이었어.
테오라라는 이름은 나도 들어봤거든? 아이돌 전혀 모르는 내가 이름 들어볼 정도면 인기 아이돌인 거잖아.
게다가 집에 와서 찾아보니까 연초에 데뷔해서 1년에 앨범 3번을 낼 거라고 하더라?
인기 아이돌 스케줄 빡빡한 건 나도 들어서 아는데 앨범 세 개? 그 와중에 수능 공부까지? 잠은 잤겠어?
그 정도 독기면 당연히 성공할 수밖에 없지. 이게 진짜 ‘갓생’ 아니야? 존경스럽더라.
진짜 아이돌로 데뷔하는 애들 대부분은 아이돌이 아니었어도 성공했을 거야. 최근에 뉴스로 시끌시끌하게 만든 아이돌도 있긴 하지만 뭐.
아, 참고로 점심시간이 대박이었어.함이원이 점심에 도시락통을 가져오는데 크기가….
난 보온 3단 도시락이 그 크기로 나오는지 몰랐어. 남학생 세 명은 먹겠더라.
고급스러운 매듭으로 묶은 보자기를 풀어서 3단 도시락통을 풀어놨는데 책상에 가득 차더라.
나 잘 몰라서 그러는데 함이원 재벌집 도련님이야? 도시락 음식에서 전문가의 솜씨가 보이던데?
함이원도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눈치였어.
그때, 같은 교실에 있던 학생 한 명이 함이원한테 용기 있게 다가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