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61
부숴버리자!
오락실로 꾸며진 집을 구경시켜 주는 도중에 나우혁 형님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근데 너희 차림새가 왜 이래…. 무슨 촬영이었길래?”
“아! 정체 숨기고 돌아다니려고 한번 꾸며봤죠. 어때요, 형?”
초록 형의 말에 그제야 우혁 형님은 우리의 계획을 알아채고 시원하게 웃었다. 어린애들이라 귀엽게 논다나?
“그래도 메이크업은 지워. 어릴 때부터 피부 관리는 철저히 해야지.”
그러고 보니 남자 배우 중에서도 우혁 형님은 피부가 좋은 편이셨다. 그게 타고난 피부가 아니라 전부 철저한 관리 덕분이라나?
편하게 입으라고 옷까지 제공해주셔서 메이크업을 지우고 편한 차림새로 돌아왔다.
본격적으로 게임 시작하기 전에 거실등 대신 켜지는 푸른 조명. 오락실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 일부러 설치한 것 같았다.
홈 바, 홈 짐에 이은 홈 오락실. 편하게 외출하기 어려운 연예인의 특성상 이런 방식이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커다란 게임기 본체에서 나오는 알록달록한 LED 불빛에, 쿵쾅거리는 BGM은 별세계에 온 착각이 들게 했다.
“멋있네요….”
“그렇지? 돈 들인 보람이 있다니까.”
빠른 비트에 맞춰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듣기만 해도 심장 박동이 반응하는 곡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7명이라는 애매한 숫자라 개인전을 해야 하나 싶었는데, 늦은 시간에 손님이 한 명 더 추가됐다.
우혁 형님의 연인이신 고예리 배우님. 안정적인 연기력과 성실한 작품활동으로 TV에서 자주 봤던 청순한 배우님이셨다.
“여기는 알지? 예리.”
어차피 우혁 형님과 연인 관계라는 사실이 관계자 사이에는 다 퍼져 있다고 했다. 공식적으로 기사만 나오지 않았을 뿐이란다.
두 분 다 삼십 대의 나이인데다 조용히 사귀는 배우 커플이라서 팬들도 인정하고 조용히 응원해주는 사이였다.
홈 오락실에 모인 인원이 8명이 되어서 네 명씩 팀을 짰다. 나 빼고는 서로의 실력을 대충 아는 상태라 팀은 임의로 정해졌다.
우혁 형님 팀에는 서혼 형, 오란, 박하가 들어갔고, 예리 배우님 팀에는 나와 초록 형, 지온이 들어갔다.
조금 지겹다 싶으면 게임기를 옮겨가며 승부를 펼쳤다. 레이싱 게임, 펌프, 뽑기에 보글보글….
접전 끝에 승리는 우리 팀 차지!
결판이 난 시간은 새벽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별로 오래 하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을 줄이야.
“이원이 처음 해본다더니 잘하네? 다음엔 내 팀에 데려와야겠다!”
“안 줄 건데? 우리 애기는 절대 못 넘기지.”
어째서 고예리 배우님 입에서 저런 나쁜 호칭이….
게임 할 때 한정으로 내 소유권이 이 커플에게 넘어간 듯했다.
꾸벅꾸벅, 어느새 다들 피곤에 잠겨 졸고 있었다. 나도 눈이 감겨왔다.
뒤늦게 매니저 형에게 연락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시간을 주긴 했는데 이 시간까지 놀 줄은 몰랐을 거다.
게다가 오후에는 스케줄까지 있었다. 자고 있을 시간이라 톡을 남겨둘까 했는데, 초록 형이 이미 연락을 끝냈단다.
“아예 여기로 내일 아침에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드렸지.”
이전에도 우혁 형님 집에서 놀고 가면 1박이 기본이었다고 했다. 일찍 끝나지 않을 걸 예상한 거겠지. 오늘도 여기서 눈 붙이고 스케줄 가면 된단다.
역시 리더는 리더였다. 일정이 꼬이지 않게 사전에 조율해두다니. 초록 형은 나보다 어린 나이였다고 해도 믿음직스러웠을 거다.
“다들 한숨 자고 가. 게스트 룸 여러 개니까 골라서 자면 될 거야.”
우혁 형님에게 맞춰 하나하나 설계된 집. 레트로 게임을 좋아하고 사람 초대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공간다웠다.
막상 침대에 누우니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옆에서 박하의 쌔근거림이 들리는데도 정신이 맑았다.
물주가 되어주겠다고 했는데, 얼마 쓰지도 않았다. 한턱내려던 내 계획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기분.
“으음….”
뭔가 부족하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멤버들에게 느끼는 고마움의 1/100도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무형의 고마움을 돈으로 환산하려는 마음가짐이 문제였을까. 뭘 해주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아까 했던 게임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격투 게임에서 캐릭터가 등장할 때에는 꼭 그 캐릭터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대사를 치곤 했다.
격투기 대회에서도 선수가 등장할 때엔 등장 음악을 틀어주는데, 팬들은 그 곡만 들으면 선수를 연상시킬 수 있었다.
이미지와 직접 연결되는 멤버별 주제곡을 써보면 어떨까? 그 멜로디만 들으면 바로 떠오를 수 있게.(가사까지 있다면 더 인상적이겠지? 예를 들자면 ‘A to Z ? on Air. Zetton-’처럼 예명을 적당히 넣어서.
공중파나 정식 방송에서 사용할 순 없어도 테오라 뉴튜브나 소속사 채널에선 사용할 수 있겠지. 우리 팬들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거다.
머릿속으로 멤버들의 이미지와 맞는 멜로디를 그려보다가 어느새 잠들었다.
점심쯤 느지막이 일어나 아점을 먹었다. 널찍한 주방과 다양한 재료에 기뻐한 지온이 요리 실력을 한껏 발휘했다.
덕분에 우혁 형님과 예리 누님은 지온을 서로 요리사로 고용하겠다고 쟁탈전을 벌였다.
“우리 집에 들어와서 요리를 책임져볼 생각 없어?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봐.”
“지온아, 출장 요리사는 어때? 아르바이트도 괜찮은데!”
두 분 모두 얼마든지 월급을 줄 재력이 되는 분들이라 위기감이 살짝 들 정도였다.
지온이 단호하게 거절해서 다행이다.
우리를 데리러 온 두열 매니저님을 따라 숙소로 돌아와서 나갈 준비를 마치고 나니 새벽의 일이 하룻밤 꿈처럼 아득했다.
스케줄 가는 길에는 준현 형이 동행했다.
“마지막 휴식 잘 즐겼지? 이제 곧 컴백이니까 그전까지 컨디션 관리 잘해두고.”
신인상을 향해 달릴 준비는 이미 끝났다. 아이돌 1년 차 마무리를 알차게 해내고 싶다.
* * *
두 번째 싱글 앨범, 발매일.
두 번의 경험이 있어도 여전히 긴장되는 일이었다.
회사 관계자분들도 바짝 긴장해서 음악 플랫폼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전과 다르게 앨범 홍보할 때부터 효과가 눈에 보이더라고요.”
앨범 관계자가 모인 회의실은 훈훈한 분위기였다. 이미 성공은 결정되었고, 중박이냐, 대박이냐의 차이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는 보수적인 견해를 고수하는 분은 극소수였다. 그만큼 테오라의 입지가 올라와 있었다.
“탈출해 챌린지 붐이 불면서 테오라가 나이를 가리지 않고 널리 알려졌어요.”
“홍보 팀장님 말씀대로 멤버들까진 구별하지 못하더라도 ‘테오라’라는 이름은 확실히 각인됐다고 봅니다.”
“이번 타이틀로 쐐기를 박아보죠.”
타이틀 곡 이름은 앨범명과 같은 Sweet Cold.
카페에 틀어놓기에도 적당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파티에도 어울릴 것 같다.
“‘Sweet Cold’와 함께라면 혼자 보내는 크리스마스도 허전하지 않을 것 같아요.”
속이 훤히 보이는 아부에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이 실소를 터뜨렸다.
“아는 친구 있는데 소개해줘요?”
옆에 앉은 다른 분이 팔꿈치로 툭툭 쳐서 눈치를 주는 모습이 보였다.
무언가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게 아닐까. 헛기침으로 민망함을 감추고 잡담이 이어지는 사이 우리는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최초 공개 무대가 테오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뉴튜브 챌린지로 얻은 인지도를 이어가기 위해서 최초 공개 무대는 뉴튜브 채널에서 선보이게 됐다.
‘탈출해 챌린지’를 본 시청자라면 알고리즘을 타고 테오라의 첫 무대를 볼 확률이 크다고 보고 있었다. 작은 호기심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거라고.
많은 사람의 눈에 노출되면 될수록 좋았다. 긍정적인 반응이든, 부정적인 반응이든 우선 눈에 띄어야 얻을 수 있으니까.
“무대 세팅 끝났다고 하니까 리허설 끝낸 다음에 라이브 방송 들어가면 된다.”
뉴튜브 라이브 방송 시간엔 여유가 있어서 내킬 때까지 리허설을 진행해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
하눌 엔터에서 준비한 무대라서 방송 시간이 되면 관계자분들도 와서 지켜볼 예정이었다.
“음정이 미세하게 흔들리던데. 화음 넣을 때 과감하게 가.”
“라저!”
리허설은 순조로웠다.
이번 타이틀은 템포도 느리고 감미로운 곡이라 어울리는 안무도 전보단 격하지 않았다.
디테일한 부분에서 숙련도를 요구하는 대신 체력적으로는 덜 힘들었다.
바쁜 일정 때문에 졸면서도 춤을 출 수 있을 수준까지 도달하진 못했지만, 안무도 금방 땄고, 실수가 거의 없는 상태라서 걱정이 되진 않았다.
아카펠라처럼 절묘하게 화음이 겹치는 구간에 빠른 집중이 필요했는데, 그걸 고려한 효율적인 안무였다.
초록 형과 박하가 안무를 짜는 과정에 참여해서 의견을 낸 결과였다.
이번 안무는 레코코 데뷔곡 안무를 맡았던 안무가님과의 공동 작업물이었는데, 세 사람 모두 만족스러워했단다.
자신의 특기를 알아봐 주고, 적극적으로 섭외 요청을 넣어준 사람이 있다면, 창작자로서 자부심이 생길만한 일이었다.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상태에서 안무 제작 과정도 원활하게 흘러갔다고 한다.
춤추는 당사자와 전문적인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나누면서 더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나?
“안무가님한테 진짜 많이 배웠어!”
박하는 새로운 경험에 들떠있었다.
“개인적으로 친해져도 괜찮을 만한 인맥이지. 전에 만났던 안무가님들은 약간….”
“약간?”
“은연중에 무시하는 태도가 보였지. 안 그러려고 노력은 하는 거 같긴 했는데 티가 났었지.”
초록 형이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알겠다.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괜히 같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겠지.
“…초록이가 웬만했으면 말도 안 꺼낼 텐데 얼마나….”
서혼 형이 속상한지 한숨을 쉬며 인상을 썼다. 차가운 표정이 된 서혼 형은 무서웠다.
“우리가 뜨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문제니까.”
철저히 인기 중심으로 평가받는 연예계에서 두 얼굴을 보는 일은 드물지 않다.
테오라도 종종 경험한다. 전에는 인사도 받아주지 않고 쌩 지나갔던 분이 친절한 얼굴로 아는 척하는 일을.
그래도 무뎌지지 않을 것 같다. 초록 형이 무시당한 것도, 그걸 뒤늦게 알게 된 것도 속상했다.
“다들 시무룩해지지 마. 그게 뭐 별거라고.”
“별거지! 우리 리더가! 무시당했다는데!”
본인보다 더 흥분한 박하가 목소리를 높였다.
“갚아주면 되지. 우리 안무가가 되고 싶어서 안달하게 되는 무대로.”
역시 그 수밖에 없겠지. 곧 서게 될 무대를 반드시 멋지게 성공해내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어도 멤버들 모두 각오가 서린 단호한 표정이었다.
“올라가서 전부 부숴버리자! 테오라!”
주먹을 쥔 박하가 전쟁을 나가는 장수처럼 결연하게 외쳤다.
초록 형은 아무렇지 않게 웃음을 지었다. 긴 호선을 그리는 눈매가 평소처럼 여우 같아서 노린 건가 하는 의심이 잠시 스쳤다.
아무리 우리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초록 형이라도 거기까지 갈 리는 없었다.
정확히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우리를 조종할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어쨌거나 무대를 오르는 발걸음에 힘이 실렸으면 된 거 아닐까?
초록 형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사고방식이 닮아가는 것 같다.
…조심해야지.
“음, 이원아?”
기막힌 타이밍에 이름을 불렸다.
초록 형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