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62
쌉싸름 달달한
이전 최초 공개 무대와 달리 이번엔 관객을 따로 초대하지 않았기에 관계자 일부만 앉아서 허전함을 채웠다.
객석이 빈약한 대신 무대 세트는 웅장했다. 무대 효과도 고급스럽게 들어간다고 했다.
뉴튜브 라이브로 중계되는 무대라 코티지 혹은 시청자분들과 가까운 거리는 아니어도 소통 면에서는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음방에선 우리가 차분하게 곡 소개를 할 기회는 없으니까.
뉴튜브를 통해 최초 공개를 진행하는 방식은 이미 일반화되어 있기도 했다.
데뷔 초반엔 우연히라도 우리 무대를 봐줄 사람이 필요해서 공중파에서 첫 무대를 선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젠 그때와 달리 우리가 직접 팬들을 끌어올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고 판단하신 거겠지.
따로 진행을 맡을 사람을 구하지 않고 우리 힘으로 첫 무대를 채워 보기로 했다.
“둘셋, 안녕하세요! 테오라입니다!”
인이어를 착용하긴 했지만, 진행용 마이크는 별개. 각자 손에 쥔 마이크를 들고 카메라 너머에 있을 관객을 상상하며 인사했다.
이번 앨범은 실크가 섞인 세미 정장을 기본으로 멤버마다 변형이 들어가 있다. 어두운색 대신에 파스텔톤 계열을 사용해 차별점을 줬다.
잘못하면 촌스러워질 스타일인데 착용해보니 핏이 괜찮아서 코디님이 욕먹진 않을 듯했다.
개인적으로도 춤출 때 불편하지 않아서 만족스러웠다.
먼저 디지털 싱글 2집 앨범을 간단히 소개했다. 테오라 멤버들의 노력이 많이 들어간 타이틀곡 ‘Sweet Cold’부터 선보이는 순서였다.
조명이 꺼져서 어두워진 무대 위에 대형대로 서서 노래가 시작되길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 수많은 상념이 머리를 스쳤다.
멤버들을 차례대로 돌아본 후에야 차분해졌다. 그러곤 끝내주는 무대로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만 남았다.
바이올린으로 시작되는 전주는 직접 연주하며 녹음했다.
전문 연주자님의 실력을 따라갈 순 없겠지만, 내가 직접 연주하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요청을 받아들였다.
손이 굳었을 것 같아 걱정이었지만, 그리 어려운 멜로디는 아니라서 녹음은 간단하게 끝났다.
짧은 전주 후에 초록 형의 파트로 포문을 열었다.
초록 형은 노래와 함께 감질나는 춤을 선보였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차가운 공기는
다가오는 겨울을 알려주고
하얀 눈송이가 내리기 전에
나무가 움츠리기 전에
인트로를 맡은 멤버는 주의를 끄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호기심을 자극해서 이 곡을 듣고 싶지 않아도 끝까지 들을 수밖에 없게 강렬한 흡입력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 역할을 초록 형이 잘 소화하리란 건 연습실의 한쪽 벽을 차지하는 거울로, 리허설로 몇 번이고 확인했다.
걱정하지 않는다. 다른 누구도 아닌 테오라의 리더 초록 형이니까.
다음은 점점 고조되면서 고음으로 끝나는 내 파트. 짧은 대신에 귀를 사로잡는 포인트가 있는 부분이다.
쌉싸름한 추위가 아니라
달콤한 추위로 느껴지게
이어서 오란이 앞으로 나오면서 살랑살랑 안무를 소화했다.
따끈한 침대와 상큼한 귤과 너
시린 겨울날을 견디기 위한 준비물
리허설 녹화본을 봤을 때 한껏 귀여운 척했던 부분이다.
자기 말로는 상큼하게 해봤단다.
그게…? 이 라이브 영상을 보는 분들은 그래도 상큼하게 받아들여 주시겠지?
타이틀곡의 절정이자 하이라이트는 바로 다음 파트. 모든 멤버가 다 같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화음이었다.
음역이 높지도 않고 멜로디가 어렵지는 않았다. 대신 한 치의 어긋남 없이 화음을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메인 멜로디는 래퍼 둘이서 맡았다. 영어 가사 부분은 지온이, 한글 가사는 서혼 형이.
그 위로 화음을 한 겹씩 쌓아서 캐럴 분위기를 냈다. 노골적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 종이나 탬버린 소리 대신에 성가의 화음을 넣어봤다.
크리스마스 가까워질 즈음에 듣는 노래라 캐럴을 염두에 두긴 했지만, 겨울 동안 편하게 듣기 좋았으면 해서.
sweet and bitter
쌉싸름 달달한
sweet and not bitter
쓰지 않고 달기만 한
sweet enough to feel bitter
쓰게 느껴질 만큼 달콤한
박자가 빨라짐과 동시에 박하가 앞으로 나섰다.
겨우내 신나게 놀 비밀 공간을 꾸며
혼자여도 외로울 시간은 없어
센터에 설 때의 박하는 강렬 그 자체였다. 성량도 좋아서 목소리가 시원시원하게 뻗었다.
멤버들 사이에 온전히 녹아들면서도 센터에 서면 존재감이 엄청났다. 웬만한 사람의 존재감을 전부 뒤덮어버릴 만큼.
테오라 멤버들이 다들 범상치 않아서 다행히 밸런스가 맞았다.
포근한 이불 속에서 둥지를 틀고
다시 날아갈 봄을 위해 힘을 기르는 거야
초록 형의 미성이 어느 때보다도 부드럽게 이 노래를 듣고 있을 모두를 응원했다.
가사를 형상화한 안무는 웨이브가 들어가서 세련된 느낌을 더했다.
현대 무용 전공인 초록 형이 춰서 그런지 더욱 멋이 살았다.
손이 시리고 하얀 입김이 나와도
겨울은 겨울대로 좋아
따듯해지는 날만 기다리지 마
추운 지금을 마음껏 즐겨봐
각자의 방식 각자의 취향대로
홍오란의 보컬은 자칫 과하게 들릴 수 있는 가사도 담백하게 소화했다.
과도한 기교 없는 솔직하고 청량한 보컬은 듣는 사람을 무장 해제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다음은 다시 박하의 파트였다. 표정 연기를 미친 듯이 연습하더니 1초마다 바뀌는 드라마틱한 표정 변화를 만들어냈다.
관계자분들의 증언에 따르면 멍하니 얼굴만 쳐다봐도 재밌다나?
붕어빵 군고구마 따끈한 어묵 국물
추워야 더 맛있는 음식이 있잖아
겨울 바다 눈사람 만들기 썰매 타기
추워야 더 즐거운 일들도 있잖아
연습하면서 수없이 반복해서 본 멤버들조차 박하가 맡은 이 부분에선 눈을 떼지 못했다.
얼굴만 보는데도 가사가 쏙쏙 이해되다니. 서혼 형조차 감탄한 연기력이었다.
연기력과 순발력이 무대에서 극한으로 발휘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게 됐다고 할까.
다음 앨범에서는 분명히 다른 멤버들도 열심히 배워서 적용할 거다. 물론 나도.
쌉싸름한 추위가 아니라
달콤한 추위로 느껴지게
미니 앨범 타이틀과 달리 이번엔 내가 차지한 비중이 살짝 높았다.
파트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멤버들이 내가 부르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었다.
멤버들이 모두 불러보고 난 후에 내 음색이 제일 잘 어울린다고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린 거다.
왜 그런 결론이 나왔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현오 형의 목소리는 어떤 마음으로 부르든 진솔하게 표현되니까.
현오 형의 목소리를 잇게 된 건 내게 있어서 최고의 행운이고 기적이다.
추워도 더워도 하루가 계속되듯이
써도 달아도 하루는 흘러갈 거야
인생은 덥고 춥고의 반복
인생은 쓰고 달고의 반복
이 부분의 가사는 오란이 아이디어를 냈다. 어른스럽다고 생각은 했는데 이런 가사가 나오는 게 신기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 같았다. 해석의 깊이를 고려해 오란과 내 파트를 바꿀까 했었는데, 모르는 채로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가사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진짜 담담하게 부를 수 있지 않겠냐고.
논리는 그럴듯해서 받아들이긴 했다. 듣는 분들이 내 어설픔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곡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갔다. 동선을 바꾸며 서혼 형이 앞으로 나왔다.
두 번 반복되는 가사는 감미롭게 귀를 적셨다.
랩보다 노래에 가까운 싱잉 랩.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아련했다.
쌉싸름 달달한
쓰지 않고 달기만 한
쓰게 느껴질 만큼 달콤한
그런 추위 그런 겨울
마지막 파트는 지온의 몫이었다. 같은 단어가 계속 반복되는데도 신기하게 완전히 다른 단어로 들렸다.
말하듯이 읊조리는 랩은 속도가 빠르지 않고 비슷한 발음이 이어져서 저절로 중얼거리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sweet and bitter
sweet and not bitter
sweet enough to feel bitter
sweet sweet sweety cold
(sweet cold)
엔딩 요정이 된 지온의 옆으로 멤버들이 모였다. 센터를 차지한 지온 곁에 가까이 붙어섰다.
서혼 형은 어깨에 팔을 둘렀고, 박하는 카메라를 보며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곡이 끝난 후의 정적을 우리의 숨소리가 채웠다. 가볍게 숨을 고르면서 다시 마이크를 건네받아서 잡았다.
“타이틀곡 ‘Sweet Cold’였습니다. 겨울에 어울리는 곡으로 준비했는데, 만족스러우셨으면 좋겠습니다.”
라이브로 진행되는 무대라서 팬분들의 실시간 채팅을 확인해볼 수 있었는데,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괜찮았다.
“겨울마다 생각나는 곡이 되기를 바라면서 써 봤는데, 어떠셨어요?”
내 질문에 칭찬 채팅이 마구 빗발쳤다.
가끔 뾰족한 가시가 돋은 채팅이 지나가기도 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악플러들은 고소하기 애매한 댓글들로 방향을 바꾼 듯했다.
우리를 질투, 시기하고 무너지길 바라는 사람들은 일부에 불과하다. 테오라를 좋아하는 사람들 마음에만 들면 되는 거다.
모두에게 잘 보인다는 건 불가능하고, 그런 노력은 기력 낭비였다. 우리는 우리를 미워하는 분들까지 감싸 안을 수 있는 성자가 아니라 아이돌이기도 하고.
“새로운 곡으로 여러분 만날 생각에 두근두근해요!”
첫 음악방송은 일정상의 문제로 케이블로 잡혀 있었다. 바로 내일이라서 곧 팬들을 직접 만나게 될 거다.
박하가 건치를 드러내며 쾌활하게 웃었다. 슈트 안에 입은 셔츠가 얇아서 바람이 잘 통할 텐데 추워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추위를 조금이나마 달콤하게 바꿔주고 싶어요. sweet cold라는 제목처럼.”
마이크를 잡은 지온이 진심을 눌러 담은 한마디를 했다.
“열심히 활동할 테니까 지켜봐 주세요. 언제 쉬냐고요? 음…. 내년엔 쉬지 않을까요?”
홍오란이 확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소속사분들의 태도를 봐선 이번 활동을 끝내고 강제로 휴식기가 찾아오지 않을까?
테오라가 번 아웃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으니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았다.
신인의 패기라고 해도 데뷔 연도에 앨범 3개는 힘든 스케줄이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서 멤버들도 휴식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연초만 지나면 휴식기를 가질 수 있다. 데뷔하고 나서 줄곧 달려온 탓에 첫 휴식기가 될 예정이었다.
앞으로 약 한 달하고도 보름 정도.
조금만 더 힘내면 목표를 이루고 뿌듯한 마음으로 쉴 수 있으리라.
“저희에게도 여러분에게도 겨울이 재충전의 시간이 되길 바라면서, 다음 곡 불러드리겠습니다.”
서혼 형의 멘트로 다음 곡을 준비했다. 가만히 앉아서 부르는 곡이라서 의자가 준비됐다.
듣기엔 평범한 발라드였는데 우리의 가창력을 극한까지 시험하는 곡이었다.
언뜻 들으면 쉽게 따라부를 수 있을 거라 착각하게 되는 곡이기도 했다.
입술을 열어 노래를 시작했다.
If I become a blooming snow falling in the sky….
테오라 곡 중에 가장 영어가 많이 들어간 곡.
박하 말로는 해석되면 되는대로, 해석되지 않으면 않는 대로 예쁜 곡이라나?
외국인들 귀엔 내가 작곡한 곡들이 어떻게 들릴지 궁금해진다. 내가 써 내려간 노래도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들어왔던 수많은 명곡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