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63
환호성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는 말은 연예계뿐만 아니라 널리 통용됐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채라는 의미지만, 돈을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라는 뜻으로 쓰였다.
밀물이 밀려오는 지금이야말로 테오라가 ‘인기’를 수금할 타이밍. 그래서 코티지들은 이중적인 감정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새로운 모습의 테오라를 볼 수 있어서 기쁘긴 한데, 걱정이 지워지질 않았다. 이제는 하눌 엔터가 마구 굴리는 게 아니라 테오라 스스로 쉴 새 없이 활동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였다.
적어도 활동 스케줄은 테오라가 정한다는 스탭들의 증언들이 쏟아졌으니까. 소속사의 이미지 관리라고 하기엔 너무 구체적이었다.
하눌 엔터를 욕하려면 한도 끝도 없이 할 수 있지만, 적어도 스케줄로는 욕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하눌엔 수년의 공백기를 가지고 있는 배우가 소속되어 있기도 했다.
“얘들아, 난 너희 오래오래 보고 싶다구…. 근데 이뻐서 뭐라고 하지도 못하겠고. 에휴.”
최초 공개 의상으로 입은 세미 정장은 연핑크색이었다. 재킷과 바지를 기본으로 조금씩 바리에이션을 줘서 지루함을 줄였다.
애들의 흰 피부에 생기가 돌았다. 태닝했던 혼이의 피부도 원래 피부색으로 거의 다 돌아와 있었다.
핑크가 잘 어울리는 남자들이라니. 웬만큼 훈훈해 가지고는 소화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매끄러운 천은 실루엣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애들이 길쭉길쭉하고 늘씬해서 살랑살랑 감질나는 춤 선을 따라 옷감이 착 달라붙었다.
“과하게 번쩍거리지 않고. 코디님 진짜 배운 분이다, 정말. 가방끈이 어디까지 길어지려고 그러시지?”
안무에 맞춰서 일부러 의상 소재를 정한 듯했다.
두껍진 않아도 추운 날씨나, 아직 미성년자인 멤버들의 나이를 고려해서 노출이 없었다. 그런데도 은근한 섹시함이 있었다.
원래 금욕적인 섹시함이 더 표현하기 어려운데 말이다. 나만 억지로 사골을 우려내는 건 아니겠지?
“그나저나 이원이 작곡 실력이 갈수록 느는 거 같은데?”
객관적인 수치로 측정할 수 없지만, 매 앨범을 낼 때마다 다듬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왔다.
데뷔 앨범에는 신인다운 서툴지만 될성부른 떡잎의 자질이 폭발했다면, 여름의 미니 앨범에선 상업성을 갖췄다.
그리고 이번엔 겨울 앨범엔 세련되고 정제된 음악을 뽑아냈다.
이원이가 만드는 음악에 맞춰 다른 멤버들도 성장해나가고 있었다.
새로 배우고 깨닫는 것들을 소화해낼 여유도 없을 텐데 돌도 씹어먹을 나이답게 바로바로 자신의 양분으로 삼았다.
팬들의 눈에 띌 정도라서 테오라의 미래가 기대된다는 얘기가 팬들 사이에서 자주 나왔다.
여기서 삐끗하지만 않는다면 정말 정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감을 품었다.
혹시 부정 탈까 봐 겉으로 표현은 못 했지만, 팬들끼리 공유하는 감상이 있었다.
디지털 싱글 최초 공개 라이브 방송을 본 후에 ‘sweet cold’를 스트리밍하면서 스피커로 틀어뒀다.
어떤 코티지가 테오라 앨범을 비싼 스피커로 들으면 좋다길래 큰맘먹고 장만한 고가의 스피커였다.
이번 타이틀은 신기하게도 무대와 함께 볼 때와 아닐 때의 감상이 갈렸다.
무대와 함께 보면 아이돌 곡답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노래만 단독으로 들으면 가창력 알아주는 밴드의 윈터송 같았다.
언뜻 듣기에는 팝송 같기도 했다. 일부러 그랬는지 몰라도 발음을 뭉개는 창법을 구사해서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있었다.
특히 중간에 나오는 화음은 가스펠 음악의 향도 묻어나서 덩달아서 차분해지는 효과도 있었다.
거실에서 와인 한 잔을 들고 감상하고 있자니 하우스메이트인 친구가 퇴근하고 돌아왔다.
“왔어?”
“…뭐 해? 분위기는 잔뜩 잡고. 오늘은 테오라 뉴튜브 안 봐? 웬일이래.”
같이 사는 친구가 테오라 팬이라는 것까지는 알아도 테오라의 앨범 발매일까지는 모르는 게 당연하다.
거기까지 알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각자의 취미생활을 존중해줘야 공동 생활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법이다.
“노래 좋네? 옷 갈아입고 올 테니까, 나도 와인 한 잔 줘.”
자기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다가 입이 떡 벌어졌다.
“노래 좋다고…?”
나 때문에 각종 가요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노래 좋다는 감상을 늘어놓은 적이 없는 친구였다.
시끄럽다거나 혹은 듣기 나쁘진 않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테오라의 다른 타이틀곡도 괜찮다는 평을 들어서 얘들 음악이 아이돌 노래냐 아니냐를 떠나서 통하는구나 싶기도 했었다.
그런데 친구에게서 처음 듣는 평가가 나왔다.
“…극찬 아니야? 테오라 대박 나려나 봐!”
예감이 좋았다.
이전 앨범 활동을 하면서 운때가 맞았는지 급격하게 인지도를 얻었다.
탈출해 챌린지와 각종 방송의 영향력으로 뉴튜브 세상 라이징 스타가 된 테오라다.
이번 앨범으로 독보적인 신인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인상이 코앞에서 아른거리는 듯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떠서 손에 들린 폰 화면에 시선을 옮겼다.
“늦게라도 확인해야지.”
너무 몰입했는지 테오라의 음원 차트 성적을 보려니 조마조마했다.
음원 플랫폼 실시간 차트 먼저 들어갔다. 조금씩 내려서 보려고 손바닥을 가져다 대려다가 얼어버렸다.
손바닥을 가릴 새도 없이 눈이 먼저 봐버렸다. 가장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테오라의 이름을.
“아….”
말도 나오지 않았다.
기대하긴 했지만, 아직 신인인데다 남돌이라는 한계가 있어서 앨범이 발매하자마자 실시간 차트 1위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잘해봤자 10위 안쪽 정도?
괜히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에 큰 기대를 품을 수도 없었고.
그런데 테오라는 내 예상보다 훨씬 잘나가는 아이돌 그룹이었던 모양이다.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는 것 같았다.
“부정맥인가….”
실시간 차트보다 TOP100 차트가 중요하지만, 그래도 1위다.
신인 남자 아이돌이 이런 성적을 얻는 게 대단했다.
대형 기획사에서 기획한 그룹이 데뷔 준비기간이라면서 긴 홍보 기간을 가진 뒤에 차트 상위권으로 데뷔하는 사례도 있긴 했다.
일종의 꼼수이긴 하지만 그만큼 효과 있는 방법이었다. 결과도 장담할 수 없는데 대대적인 투자를 해야 해서 아무 소속사나 할 수 없는 방법이긴 했지만.
그와 비교하면 우여곡절이 많았던 1위였다. 그래도 수많은 아이돌과 비교하면 수월하게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었다.
“축하해. 우리 테오라.”
SNS와 팬카페는 기쁨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각종 축하 멘트와 주접이 넘쳐서 읽다가 실실 웃어버렸다.
무드 잡으려고 따라둔 예쁜 빛깔의 와인은 뒷전이었다.
“역시 이래야 너지.”
옷을 갈아입고 나온 친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기 와인 잔을 챙기더니 알아서 와인을 따랐다.
“그래서 오늘은 또 무슨 일?”
“테오라 앨범 냈거든! 근데 실시간 차트 1위!”
테오라라는 그룹명과 멤버들 얼굴과 이름 정도만 아는 친구였지만, 이것저것 수다를 떨다 보니 강제로 주입된 지식이 있었다.
“저번에 컴백했다고 하지 않았어? 원래 아이돌이 이렇게 앨범을 연달아서 내?”
“얘들이 특이한 케이스야. 돈 때문에라도 이렇게 못하지.”
데뷔 앨범 망하면 두 번째 앨범이 기약 없이 미뤄지는 게 보통이다.
아이돌 그룹 하나를 키워내는 데 들어가는 돈이 천문학적이라고 하니, 소속사의 자금 사정이 그리 좋지 못하면 앨범 제작이 밀리는 게 이해가 되기도 했다.
테오라는 정석적 성장을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예외적인 행보를 보였다.
“지나치게 열심히 해서 그런지 미친 속도로 성장하긴 해. 중요한 기회가 온 시점이라 말리지도 못하겠어, 아주!”
자랑인지 투덜거림인지 모를 푸념을 하자 친구가 못 말린다고 한숨을 쉬었다.
“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거 보면 좋더라. 노력은 보답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현실엔 노력이 보답받지 못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더욱더 동화처럼 이상적인 일들이 일어나길 바라게 되는 것 같았다.
친구는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인데도 이따금 이상주의자 같은 소리를 했다.
“테오라도 호감이겠네?”
“응. 테오라 좋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네 얼굴도 밝아져서 더 호감.”
프리랜서에 집순이인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한 번도 웃지 않고 하루를 보내기 일쑤였다.
그런데 테오라에 입덕한 후로는 감정이 날뛰었다.
가끔은 덩달아 스트레스를 받는 사건이 생기긴 했지만, 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감정이 요동쳤다.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커다란 변화였다. 같이 사는 친구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사고나 안 치고 오래 갔으면 좋겠네.”
“얘들은 절대 사고 안 칠 거야! 우리 순둥이들을 뭐로 보고!”
“글쎄. 안 그럴 것 같던 연예인들이 사고 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던가.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왔던 사람도 뜬금없이 사회면에 등장하곤 했다.
학폭, 성폭력, 음주운전….
다수의 주목을 받는 연예인들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발각될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널리 알려질 확률은 거의 백 퍼센트.
그 탓에 눈에 잘 띄어서 괜히 뻥튀기되어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보기엔 멀쩡하게 처음의 멤버를 유지하는 그룹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열심히 하는 이런 애들까지 그러면 나 좀 배신감 들지도.”
“넌 테오라 파지도 않으면서?”
“너한테 얘기 계속 듣다 보니까 내적 친밀감이 생겨서 그런가.”
이것도 일종의 영업일까? 일단 호감부터 시작하는 법이니 그린라이트라고 볼 수 있었다.
“이 노래 좋다고 했지?”
“어. 늘어지지도 않고 적당히 듣기 좋네. 누구 노래야?”
“흐흐. 내가 누구 노래를 듣고 있겠어?”
“아이돌 노래라고? 이게…? 진짜로?”
입을 꾹 다물고 다시 노래에 집중하는 친구를 보고 웃음이 튀어나올 뻔했다.
아이돌 노래는 무조건 시끄럽다는 친구의 고정관념을 깨기에 최적의 곡이었다.
이럴 때 추가 공격이 들어가야 한다. 얼른 폰을 TV와 연결해 최초 공개 무대를 재생시켰다.
라이브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바로 고화질 뉴튜브 영상으로 업로드된 차였다.
“여기 증거. 이번 앨범은 잔잔하게 갔더라고.”
아이돌이라고 전부 시끌벅적한 댄스 음악만 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비율로 따지면 높긴 하지만, 앨범 수록곡 전체를 보면 전부 요란한 곡으로만 채워져 있진 않았다.
“앨범 낼 때마다 쑥쑥 자라있어서 지켜보는 재미도 있어. 잘하면 이번엔 TOP100 차트 상위권에도 들어갈걸?”
TOP100 1위를 찍을 수 있을 거라고 하진 않고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실시간 차트 상단에 오래 박혀있으면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설레발치는 걸로 비칠 거 같아서.
“주변에 노래 들어보라고 추천해보던지?”
슬쩍 던져본 말이지만 진심이 듬뿍 들어있었다.
한 명이라도 테오라 곡을 듣는 사람을 늘리면 혹시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렵지 않지. 내가 직접 좋다고 느낀 곡이니까.”
허튼 말 하지 않는 친구였다. 뿌듯한 마음으로 다시 와인 잔을 들었다. 멋 내본다고 잘못 고른 드라이한 와인이 달콤했다.
흐뭇하게 잠든 다음 날,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믿기지 않았다.
간절히 바라던 TOP100 1위를 달성했다는 게!
아무리 눈을 비벼도 1위에 박힌 테오라의 이름은 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