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66
1위는
싱글 2집을 발매하고 미친 듯이 스케줄을 소화했다.
콜라보를 위한 모임, 화보 촬영, 예능 출연. 거기에 음방을 도느라 정신이 쏙 빠질 정도였다.
여느 때처럼 음방 무대를 끝냈는데 분위기가 미묘했다.
뭐지?
“연예계에 무슨 일 터졌나? 공기가 묘하네? 불안한 것 같기도 하고.”
나 혼자만 느낀 이상은 아니었다. 서혼 형의 말에 박하와 오란이 동의했다.
지온은 어깨만 으쓱하고 말았다. 이상을 감지했더라도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조금 기다려보면 알걸.”
초록 형은 트레이드마크인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뭔데?!”
“두고 보면 알아.”
순순히 대답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초록 형이 원하는 대로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음악방송 막바지에 무대 위에 전 출연자가 모일 때에도 기대감 없이 적당히 인사를 주고 받았을 뿐이었다.
컴백 후에 1위 후보는 몇 차례고 해왔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싱어송라이터 초나 선배님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음반, 음원 쪽에서 점수가 모자라곤 했다. 음원 플랫폼에선 1위, 2위에서 오가고 있으니 아마 음반 판매량이 부족한 게 아닐까?
아쉽긴 한데 초나 선배님 곡이 강력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앨범을 낸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인기가 식지 않아서 4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늘도 다르지 않겠지, 하고 축하할 준비를 했다.
“이번 주 뮤직 on U, 1위는!”
박수칠 반만의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는데 들려온 이름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테오라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우리?”
정신을 차리게 해준 건 우리 팬들의 환호성이었다. 테오라를 연호하는 함성이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박수와 축하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테오라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우리가 1위를 한 거다. 정말로.
“테오라는 음악방송 첫 1위라고 하는데요. 소감 말씀해주세요. 테오라 여러분.”
일부러 리더인 초록 형에게 먼저 마이크를 넘긴 것 같은데 그 마이크는 서혼 형에게 넘어갔다.
“어, 감, 감사합니다! 저희가 받을 줄 몰라서 소감을 준비해오지 못했는데요…. 테오라를 사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얼결에 마이크를 쥐게 된 서혼 형은 떨림이 묻은 목소리로 짧은 소감을 말했다.
다음은 홍오란. 냉철한 이성은 이럴 때도 작용하는지 능숙하게 팬들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코티지!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거 알죠?”
‘우리가 더 사랑해!’ 하는 외침이 객석에서 들려왔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가슴이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렁그렁하게 눈물을 매단 박하는 도무지 말을 못 잇겠는지 마이크만 잡았다가 지온에게 넘겼다.
“오늘이 첫 1위인데 여기게 만족하지 않고 노력하겠습니다. 저희는 아직 배고프니까.”
당찬 포부를 밝힌 지온에게 환호가 터졌다.
자칫 잘못하면 건방져 보일 수도 있는 내용과 말투였는데 다행히 신인의 패기로 받아들여진 듯했다.
“좋은 음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이번 앨범 스윗 콜드와 스윗 테오라 앞으로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나는 평범하게 묻어가기로 했다.
“저희를 위해 애써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노력하는 테오라 되겠습니다.”
초록 형이 침착하게 소감을 마무리하고, 다음엔 1위 공약을 정해보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보통 음방 전에 공약을 정하고 이행하는데, 1위를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탓에 우리 곡이 다시 흘러나오는 동안 자유롭게 노래 부르고 춤을 췄다.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동안, 이상하게도 기운이 점점 차올랐다. 정확히는 지금까지의 고생이 완전히 씻겨나가는 느낌이랄까.
짧은 무대 후에도 쏟아지는 축하에 일일이 답하고 내려왔다.
내려와서도 매니저 형들에게 축하의 꽃다발을 추가로 받으면서 대기실에 돌아왔다.
“…진짜 1위를 했다고? 우리가?”
벌써 축하까지 다 받고도 믿기지 않는지, 박하가 자기 볼을 꼬집었다.
“아! 진짜잖아! 나 소감 말 못 했는데에! 다시 못 해…?”
할 말이 잔뜩이었는데 말할 기회를 놓쳤다면서 아쉬워한 박하는 다음엔 꼭 능숙하게 소감을 말하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1위 하는 거 미리 알았어, 초록아?”
아, 그러고 보니 초록 형은 전부 알고 있었다는 듯이 하나도 당황하지 않았었다. 진짜 알고 있었나?
“몰랐는데? 단지 예감이 좋아서 탈 수도 있겠다 싶긴 했지.”
“그럼 미리 알려주지! 그럼 미리 소감도 준비하고 마음의 준비도 했을 텐데. 형 미워!”
“팬들은 꾸밈없는 생생한 소감을 듣고 싶지 않겠어?”
그럴듯한 명분이긴 했다. 본심은 당황하는 우리를 더 보고 싶었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겠지만.
“근데 함이원, 너 실수 한 거 아냐?”
“…내가?”
무난하게 넘어갔던 거 같은데? 발음이 새기라도 했나?
홍오란의 지적이 당혹스러웠다.
매니저 형이 모니터링을 위해 찍었다는 영상을 보고 나서야 내 실수를 알아차렸다.
앨범명을 말하다가 테오라 앞에도 ‘스윗’을 붙였다. 워낙 정신이 없어서 눈치채지도 못하고 지나가 버렸다.
“스윗 테오라….”
앞으로 팬들 사이에 벌어질 일이 그려졌다. 모든 단어 앞에 ‘스윗’을 붙이는 만행을 저지를 코티지들의 모습이.
“팬들이 이원 형 귀엽다고 할걸? 귀여운 말실수잖아!”
“…그렇지? 그런 거지?”
“큐티나 섹시가 아니라 다행인 줄 알아.”
오란 말대로 흉한 단어라도 들어갔더라면 정말….
소파에 잠시 엎어져서 반성하는 동안에도 머리 위로 멤버들의 대화가 계속됐다.
“다음 음방부터 1위 공약 정해보자. 반대하는 사람?”
공약 정하기와 공약 이행은 우리와 팬들이 즐길 수 있는 컨텐츠다.
반대하는 사람이 나올 리가 없다. 상상만 해도 재밌을 것 같은데.
“적어도 한 번은 공약을 이행해볼 수 있겠지. 무슨 공약 걸까?”
“선배님들 보면 신기한 거 많이 하시던데? 음….”
바로 떠오르지 않는지 고민하던 멤버들과 나는 밴에 타서도 한참 고민했다.
“우리 곡에 ‘Sweet’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뭔가 하는 건 어때? 이원 형이 말실수한 기념으로!”
그걸 왜 기념해! 안 그래도 오래도록 기록으로 남을 텐데, 불난 집에 부채질까지 할 필요는…!
“그거 괜찮네.”
오란 너까지!
“축가 부를 때 사랑이란 단어 나오면 뽀뽀하는 거랑 비슷하게 하자는 소리 맞지?”
“응응!”
박하가 꺼낸 아이디어는 착착 현실로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 내 항의는 먹히지 않았다.
다들 내 반응은 무시한다 이거지?
“각자 스윗이라는 가사가 나올 때마다 어울리는 행동을 하는 걸로 가자. 무슨 행동을 할지는 자기가 알아서 정하고.”
차라리 하나로 정해주는 게 더 쉽다. 어쩔 수 했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으니까.
각자 정하게 되면 자기 선택이 들어가는 거라 더 부끄러울 게 확실하다.
“쉬운데? 귀여운 척하면 되는 거 아냐?”
홍오란 너한테만 쉬운 거 아닐까?
“난 사탕 먹을래. 아니면 작은 사탕을 객석으로 던져도 좋을 거 같구!”
뭐가 달콤한 행동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오란이나 박하의 아이디어를 따라하기는 싫고.
평소에도 이런 부분에 창의성을 발휘하는 편은 아니라서 획기적인 무언가가 떠오르질 않았다.
고민 끝에 간신히 1위 공약을 정해서 라방으로 알렸다.
다음 음악방송에서 바로 1위를 차지하는 바람에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이 공약을 이행해야 했다.
조금 더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꽃가루가 반짝거리며 쏟아지는 무대 위에 우리 곡 ‘Sweet Cold’가 흘러나오는 동안 멤버들은 주섬주섬 공약을 이행할 준비를 마쳤다.
지온은 손 키스와 윙크를 보냈고, 초록 형은 무대 앞쪽에 걸터앉아서 ‘스윗’이 나올 때마다 달콤한 미소를 보였다가 거두기를 반복했다.
서혼 형은 우리를 번갈아 가며 번쩍번쩍 들었다.
이거 공주님 안기를 빙자한 근력운동 아닌가…?
그리고 나는 ‘스윗’이 나오는 타이밍에 맞춰 코티지를 불렀다. 코티지들이 제일 스윗하다는 의미를 담아서.
과하지 않고 오글거리지도 않은 공약으로 잘 정한 것 같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공약 이행이었다.
그 후로도 우리는 공중파, 케이블 가리지 않고 음방 1위를 휩쓸고 다녔다. 회사도 팬들도 당연히 축제 분위기였다.
팬들이 모이는 팬카페나 SNS 모두 흥분에 찬 팬들로 들썩들썩했다.
회사에서도 내년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겠다고 전해왔다.
계획이라고 돌려서 말은 했어도, 그게 테오라에게 투자되는 ‘예산’에 관한 부분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예산을 다시 배당할 만큼 테오라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성적을 내고 있었다.
음원 성적이 고점을 찍었고 뉴튜브나 방송에서도 우리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팬 투표 참여율도 치솟았다. 약점으로 꼽히는 음반 판매량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목표했던 신인상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허무맹랑한 기대가 아니라 근거 있는 기대라면 해봐도 되지 않을까?
“한꺼번에 몰아치지 말고 나눠서 오면 좋을 텐데. 취미생활 좀 하게.”
초록 형의 취미생활이 정확히 뭘 말하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음습한 무언가가 빼꼼 고개를 들이밀 것 같았다.
“롤러코스터보다 더 정신없네.”
오란이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진짜로 정신이 없는 거다. 바쁜 스케줄에 피곤함은 쌓이고 있는데 거기에 발밑이 붕 뜨는 흥분감까지 더해졌다.
어떻게든 일정을 소화하고 있긴 한데 백퍼센트 제정신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러다가 체력보다 정신력의 고갈이 먼저 찾아올 것 같았다.
그러던 차에 매니저 형이 가뭄에 단비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스케줄 조정해뒀으니까 앞으로 4시간 맘껏 쉬어라.”
“정말요?! 준현 형 최고!”
박하는 일단 기뻐하고 봤다.
매니저 형이 숙소로 데려다주길래 잠깐 시간이 나나 싶었는데 4시간이라니. 깜짝 선물처럼 느껴졌다.
반나절도 비우기 힘든 빡빡한 스케줄 탓에 4시간도 간신히 조정하셨을 텐데.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는 판단에서 준현 형이 특별히 시간을 뺐단다.
우리 옆에서 대부분을 보내기도 하지만, 준현 형이 세심해서 바로 눈치채고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 같다.
감동에 찬 눈빛이 쏟아지자 부담스러웠는지 준현 형이 바로 자리를 피했다.
“4시간 후에 돌아올 테니까 나가더라도 멀리 가지 말고.”
“네!”
입을 모아서 대답한 뒤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전부 바닥에 늘어졌다.
그나마 지온은 재빠르게 소파를 차지했지만, 나머지는 바닥에 그대로 엎어졌다.
꽤 오래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을 깬 존재는 현이였다.
냥! 냐아?
찬 바닥에 누워있는 우리가 맘에 들지 않는지 일어나라는 듯이 귀 옆에서 자꾸 야옹댔다.
“…현아, 내일 놀아줘도 될까?”
냐?, 냐아아.
불만 어린 울음소리를 내던 현이가 포기한 듯 엎드려 있는 내 등 위에서 또아리를 틀었다.
“히잉. 어디 나갈 의욕도 없어….”
외출하자고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모두 지금은 휴식이 먼저였다. 자고 일어나서 개운함을 느껴본 게 언제던가.
“…한숨 자고 일어나서 맛있는 거 먹으면 되겠다. 근데 일어날 수가 없네. 바닥에 붙었나….”
“초록이까지 그러면 내가 나서야지.”
벌떡 일어난 에너자이저 서혼 형이 우리를 하나씩 번쩍 들어서 침대에 눕혀주고 이불까지 꼭꼭 덮어주는 친절을 발휘해줬다.
내 배 위에 올라온 현이의 고롱거리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꿀맛 같은 휴식으로 기운을 조금은 되찾을 수 있게 도왔다.
이제는 각종 시상식만 코앞에 앞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