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69
수능 성적표
답을 밀려 적었다거나 엉뚱하게 과목에 마킹했다거나 하는 실수만 하지 않았다면 가채점 점수와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경쟁률에 따라서 성적이 갈릴 테니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 겁먹을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심장이 요동치긴 했지만, 그건 멤버들의 호들갑 탓이었다.
“내가 다 떨리는데! 이원 형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안 주고!”
내 수능 성적을 확인하는데 왜 박하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지?
박하의 공감 능력이 특별해서 그렇다고 대충 이해하고 넘겼다.
바로 성적을 보려고 했는데 노트북 모니터를 가린 커다란 손이 있었다.
“어차피 맞아야 할 매라면 빨리 맞는 게 낫지 않아?”
‘매’가 딱 들어맞는 비유는 아니어도, 일부러 긴장되는 시간을 늘릴 이유는 없다.
“적당한 스릴은 삶의 윤활유야. 그 재미를 모르네.”
힘이 빠진 초록 형의 손목을 잡아끌자 화면이 완전히 드러났다.
[20XX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통지표]바로 아래 수험번호, 이름이 나오고 아래에 영역별 성적이 나왔다.
표준 점수나 백분위, 등급이 예상치와 거의 비슷했다. 백분위가 살짝 더 올라간 정도?
“함이원 수능 성적 살벌하네.”
“올 1등급에 백분위가 백…. 일단 뇌섹돌은 확정인가.”
“운이 좋았어.”
“이게 운이 좋아서 나온 점수라고? 거짓말!”
실수도 하지 않았고, 수능 날 컨디션도 좋았다. 찍은 문제도 맞았으니 운이 좋은 게 맞다.
“최상위권 학생의 수능 성적은 이런 거구나…. 아무렇지도 않게 한국대 지원한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2학년 때까진 공부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다고 해도, 3학년 들어와선 교과서나 문제집을 펼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내게도 기대를 뛰어넘는 성적이었다.
“지망 대학 갈 수 있겠네! 한국대 법대생인 아이돌이라니! 우와! 자랑해야지!”
“아직 아니야. 면접도 봐야 하니까.”
“그럼 합격 발표 날까지 조금만 참아볼게! 그때는 나 말리지 마!”
나 대신 동네방네 자랑해줄 사람이 생겨버렸다. 말리지는 않겠지만, 적당히 자제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모님과 전화 통화를 한 뒤에 담임 선생님과 한참 진학 상담을 했다.
선생님께서는 합격이 확정되기라도 한 것처럼 나보다 더 기뻐해 주셨다.
원서 문제도 있으니 미리 학교에 꼭 들르라는 당부와 함께 통화가 끊어졌다.
“폰 밖으로 들리는 목소리만으로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알겠던데? 이원이 너네 담임쌤도 알고 보면 코티지이신 거 아니야?”
“…아닐걸?”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데에 성별과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보단 학생을 아끼는 마음에 가깝지 않을까?
“어쨌거나 우리 목표는 전부 달성할 수 있겠는데?”
연말에 방송사별로 진행되는 가요대상에 빠짐없이 신인상 후보로 올라가 있었고, 유력 후보로 손꼽혔다.
테오라가 M2A 시상식에서 신인상과 베스트 인플루언스 상을 받고 난 후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다행히도 ‘받을만한 사람이 받았다.’라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그 이야기는 앞으로도 무난하게 상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모든 방송국에서 신인상을 타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대중들에게 ‘올해의 신인 아이돌’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상식 날짜가 다닥다닥 붙어버린 탓에 테오라 스탭분들이 고생을 많이 하셨다.
무대의상에 시상식 기본 의상, 메이크업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었으므로.
테오라는 오늘도 시상식에 참석해 예정된 무대를 끝낸 상태였다.
“다른 가수 선배님들 무대를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좋긴 한데….”
서혼 형이 생략한 말이 무엇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테오라 무대와 콜라보 무대를 제외하면 얌전히 앉아있어야 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리액션으로 집중하고 있다는 티도 내야 했다.
“So sleepy….”
지온은 졸음을 호소했다. 하지만 수많은 카메라 중에 어떤 게 방심한 우리를 포착할지 알 수 없었다.
테오라는 그나마 다른 가수들의 무대를 적게 경험한 편이어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무대를 구경할 수 있었던 건데,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잘 시간도 부족한 스케줄 때문에 피곤한 사람이 가득일 텐데. 구경만 하라고 하면 좀이 쑤실 만하지.”
초록 형의 분석은 그럴듯했다.
채널마다 시상식을 진행하다 보니 최근 들어 더욱 더 가혹한 일정을 소화했을 분들이었다.
입가에 경련이 일도록 미소 짓던 선배님들의 눈이 가물가물 감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황급히 생수를 마시거나 애써 하품을 참아내는 선배님들도 드물지 않았다.
“잠 쫓을 방법 없어?”
평소에 먼저 뭘 요구하는 법이 거의 없는 지온이다. 그런 지온이 잠을 달아나게 할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다니.
이대로면 여기서 푹 잠들어버릴 거라고 확신하는 게 틀림없었다. 누구보다 자기 상태를 정확히 알 테니까.
여기서 지온이 잠들어버린다면 자극적인 제목으로 도배한 연예 기사가 올라오는 건 아닐까?
‘테오라 제톤 K-POP 대상에서 숙면해…. 무대 지루했어요~’
논란이 일어날 만한 제목으로 광역 어그로를 끄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기사 본문엔 자세한 사정이 적혀 있을 수도 있지만, 기사 제목만 훑고 지나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어디까지 확대 재생산될지 아무도 모른다.
‘신인 남돌 테오라 시상식에서 쿨쿨, 연예계 기강 무너졌나?’ 같은 기사로 이어질지도.
요즘은 뉴스 기사가 아니라 뉴튜브 동영상 형식으로 가짜 기사를 퍼 나르기도 한다.
그러니 ‘테오라 제톤 어디서나 잠든다는 증언 나와.. 기면증인가? 기면증 증상은?’ 같은 게시물이 뉴튜브에 올라와도 놀라진 않을 거다.
여기까지는 과대망상이라고 해도 만약의 사태가 일어나면 기사가 뜨는 건 정해져 있다.
기자들에겐 작은 떡밥 하나도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일 테니까.
“허벅지라도 꼬집어.”
나름 소곤소곤 대화했지만, 가까이 앉은 테오라 멤버들에게는 들렸는지 오란이 참견해왔다.
“그때만 깨고 바로 다시 졸릴걸? 내가 그랬던 적 있어서 알아.”
잠을 못 자게 하는 것도 고문 방법의 하나라는데 가벼운 졸음이면 몰라도 심한 졸음이면 쉽지 않을 거다.
지금이 시상식 도중만 아니라면 한숨 자라고 할 텐데.
찬물에 세수하고 오라고 할 수도, 가벼운 운동이라도 하라고 권유할 수도 없었다.
마음 같아선 멤버들과 함께 벽을 쌓고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사각지대를 만들어서 재워주고 싶다.
우리가 후보로 올라간 상은 모두 시상이 끝나서 떠올린 엉뚱한 생각이었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려고 노력하는데 초록 형이 툭 말을 던졌다.
“눈 뜨고 자. 웃는 표정으로 고정해두고.”
농담…?
초록 형의 얼굴엔 농담하는 사람의 장난기가 없었다.
이게 진심이라고?
눈 뜨고 자는 기술을, 그것도 웃는 표정으로 눈 뜨고 자는 고난도 기술을 사용하라니?
무책임한 아이디어에 한마디를 던지려는데 지온에게서 먼저 반응이 나왔다.
“그러면 되겠네? Danke, 초록. 왜 생각 못 했지.”
그걸 진짜로 현실에서 할 수 있다고?
황당한 대답에 사고가 엉켜버렸다.
나만 어이없는 건 아니었던지 혼이 형이 얼떨떨하게 되물었다.
박하와 오란도 황당한 얼굴이었다.
“지온아, 웃는 채로 눈 뜨고 자겠다고? 정말로?”
“눈 뜨고 자는 건 몇 번 해봤어.”
“허….”
언제 어디서든 머리만 닿으면 잠드는 능력만 가진 줄 알았더니 특이한 재주도 이미 가지고 있었던 듯했다.
지금까지는 딱히 사용할 일이 없어서 우리가 모르고 있었나?
그럼 초록 형은 그것도 알고 있었다고?
함께한 시간이 꽤 되긴 해도 그건 나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
관찰력인지, 아니면 신통력인지 모를 무언가가 무시무시하다는 것만 알겠다. 초록 형이 작정하면 탈탈 털리는 건 순식간일 터다.
아이돌이 아니라 탐정이 되어야 했던 게 아닐까?
명탐정 남그린, 그럴듯한 것 같다. 어딘지 익숙한 어감이기도 하고.
무대와 무대 사이, 어수선해지는 틈을 타 지온이 진짜로 초록 형이 제시한 특수 스킬을 시전하려고 했다.
“지온아, 그러지 말고 준현 형한테 얘기해서 삼십 분만 쉬다 와.”
다른 중요한 일정이 있거나 사정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참석자도 있으니 한 명 빠진다고 해서 큰 문제는 아니겠지.
이럴 땐 우리가 여섯 명이 팀인 아이돌이라 조금 도움이 된다.
눈 뜨고 자는 스킬이 약간, 아주 약간 궁금하긴 한데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을 거다.
지온의 기이한 수면 스킬은 오늘이 아니라도 언제고 볼 수 있을 테고.
새로운 무대가 시작되고 시상이 이어지는 동안 테오라는 충실히 지온의 빈자리를 메웠다.
팬들은 눈치챘을 테지만, 적당히 둘러대는 걸로 이야기를 마쳤다.
“우리 상복 터졌다! 흐흐!”
12월 말까지 각종 시상식이 이어졌다.
연기대상과 연예 대상을 비롯한 시상식에 축하공연을 선보이기도 했고, 공중파 시상식에서 우리가 원하던 신인상을 휩쓸기도 했다.
음악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시상식에선 모두 작은 상이라도 받았다.
뉴튜브 쪽에서도 수상을 해서 숙소에 트로피 진열장을 따로 마련해야 할 정도였다.
“내일 KBC 가요 페스티벌로 끝이네.”
우리는 내일 있을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연습실에 와 있었다.
이온 음료가 마른 목을 적셨다.
KBC 가요 페스티벌은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과 새해 첫날을 함께 기념한다.
자정을 넘기는 순간 보신각 타종행사도 동시에 진행될 예정이었다.
“야외무대, 많이 춥겠지? 나 추위에 약한데!”
한겨울에, 그것도 야밤에 야외에서 겨울바람을 맞으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야 할 터다. 안 추울 리는 없다.
“그래도 잠깐만 참으면 끝나잖아.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운동이라도….”
무대의상이 아무리 두꺼워도 한기를 조금 덜어줄 뿐이지 따뜻할 리는 없다.
핫팩을 붙이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미리 몸에 열을 내고 올라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많은 팬들을 직접 만날 수 있으니 잠깐의 추위 정도는 참을 수 있다.
타이틀 곡 제목처럼 달콤한 추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얼마든지.
“내일이 마지막 날? 안 믿겨.”
아이돌이 되려고 마음먹고 하눌 엔터 연습생이 되고 데뷔조에 들어가서 데뷔를 준비하기까지도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렇지만 데뷔한 이후의 체감 속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니, 새삼스럽기까지 했다.
“내일모레면 한 살씩 더 먹는데 소감 어때?”
“성인이 될 때까지 얼마 안 남았다?”
박하는 아직 나이를 먹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빨리 어른 되고 싶어 하는 게 딱 어린애네.”
“그러는 홍오란 넌! 성인 아니라 불편한 거 없다고?”
“딱히? 어리다는 메리트가 있거든. 사람들은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어린애에겐 관대해지거든. 즐길 수 있을 때 즐겨. 넌 복 받은 거지. 막내니까.”
“아우! 젊, 아니지, 홍오란 넌 어린 꼰대야!”
“맘대로 부르든지.”
뭐라고 부르든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태도에 박하가 울분을 토했다.
“아, 내 명의로 뭘 할 수 없다는 건 불편하긴 하더라.”
자기 명의로 재테크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휴식기 들어가면 다들 시간 내. 투자전문가한테 맡기는 게 최고겠지만 그 전에 공부해둬야 뭐라도 알아먹을 거 아냐.”
…이게 맞나? 테오라는 또래로 구성된 그룹일 텐데?
익숙하게 훈계하는 오란에게선 박하 말대로 ‘어린 꼰대’의 향기가 났다.
어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