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74
발견하다
가게 안에 있던 손님들과 밖에서 줄을 서 있던 손님들까지 전부 사인을 받으려고 몰려들었다.
이번 앨범 내고 나서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우리끼리만 나온 적도 없고, 이렇게 대부분이 우리를 알아본 적도 없어서 놀랍기만 했다.
테오라가 이렇게 인기가 많았던가?
챌린지 효과인가? 아니면 신인상 효과?
가게 밖으로 나와 사인을 계속해야 했다. 매니저 형이 없는 자리라 정리가 쉽지 않았다.
사람이 몰려있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에 다가왔던 분들까지 사인 줄을 서는 바람에 가게 앞이 인산인해였다.
“저희 다음 일정이 있어서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지온이 아니었다면 어디서 끊어야 할지 당황하다가 몇 시간이고 사인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거절을 어려워하는 편은 아닌데, 우리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에게는 마음이 한없이 약해져 버린다.
“테오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못 받으신 분들은 다음에 만나면 꼭 사인해드릴게요!”
죄송함에 고개를 숙이고 재빠르게 빠져나왔다.
지온과 나를 멀리서 지켜보면서 기다리고 있던 부모님이 바로 우리를 차에 태웠다.
“여보, 이제 조금 실감 나지 않아요? 우리 아들들이 진짜 연예인이라는 게.”
눈을 반짝이는 아빠의 눈길이 부담스러웠다.
우리가 연예인이라고 해도 가족에게까지 연예인 취급을 받는 건 쑥스러웠다.
“막연히 스타라고 생각은 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좀 대단해 보인다, 얘들아.”
“칭찬 감사해요. 그렇지만 고작 이걸로 놀라시면 곤란한데요? 앞으로 더 대단해질 테니까요.”
저 자신감은 역시 타고나야 하는 건가? 배워서 가질 수 있는 종류가 아닌 것 같다.
“인기 스타가 되려면 휴식도 중요하다는 점 잊으면 안 된다?”
긴장이 풀려서 몸살이 난 나는 물론이고 그동안 지온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는 모양이다.
다른 멤버들의 사정도 그리 다르진 않겠지.
아무리 우리가 젊고 회복력이 좋다고 해도 밀려드는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과로 상태가 오래 이어지니 버틸 재간이 있을 리가.
“이번에 제대로 쉬고 갈게요.”
“저 빈둥대다가 가도 되는 거죠?”
“최선을 다해 쉬는지 엄마가 볼 거야.”
남은 시간은 손끝도 까딱하지 말고 지내야 할 모양이다.
* * *
나는 그간 못 들었던 음악을 몰아서 들으면서 현이가 귀찮아할 정도로 꼭 붙어서 시간을 보냈다.
지온은 적당히 쉬면서 가끔은 색다른 요리를 만들어냈다.
리모델링한 지하 공간은 지온의 침실 겸 작업실이 됐는데, 지온은 거기에서 랩 가사도 끄적였다.
“저 혼자 와도 될까요?”
“그럼! 오고 싶을 때 오렴.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본격적으로 스케줄 잡히기 전에는 되도록 자주 들를게요.”
“아들 자주 보면 좋지만, 숙소에서 잘 지내면 그걸로 엄마는 좋으니까 무리하게 오지 않아도 괜찮아.”
“알겠어요.”
내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그게 부모님께 먹힐 리가 없었다. 행동으로 믿음을 드리는 수밖에.
숙소 앞에서 지온과 갈라졌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래퍼로 활동하는 지인들과 만난다고 했다.
평소와 달리 조용한 숙소가 이상하기만 했다. 현이도 있으니 정확히 말하면 혼자는 아닌데도 숙소 내부의 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데뷔한 후로 곡 작업할 때를 제외하곤 줄곧 떠들썩하게 모여있던 탓에 지금의 고요함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현아. 나랑 같이 작업실 갈까?”
냥!
다행히 긍정의 대답이 돌아와서 얼른 현이와 함께 작업실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들른 게 3주 전이라 청소가 필요했다.
작업실을 쓸고 닦는 동안 현이는 책꽂이 위에 올라가 있었다. 대충 청소를 마치고 현이에게 내려오라고 팔을 뻗었다.
“내려와. 높은 곳이 좋은 건 알겠는데 거기는 안락하진 않잖아.”
야아옹?
알았다는 듯이 울음소리를 낸 현이가 폴짝 뛰어내렸다.
툭.
가슴 안으로 현이가 뛰어내리면서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 두 권이 아래로 떨어졌다.
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떨어진 책을 집어 들었다.
“현오 형 연습실에서 가져왔던 책이구나.”
어쩐지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더라니.
한 권은 발성 관련 책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 권은.
“…일기?”
두께가 있어서 일기장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연습실에 있던 짐을 급히 싸게 돼서 일기가 껴 있었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현이가 아니었다면 계속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다른 사람 일기를 몰래 훔쳐보는 건 나쁜 짓이지만, 현오 형이 이 세상에 남긴 흔적을 읽어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앞장부터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아아….”
두꺼운 노트는 투병일지를 겸한 일기였다. 현오 형이 병을 알게 된 후부터 기록이 시작되었으니까.
펜으로 쓴 단정한 글씨는 의연하게 자신의 상황과 생각을 적어 내려갔다.
현오 형은 내게 아프다는 사실을 숨겼고, 뒤늦게 알게 된 후로는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서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그래서 일기에 적힌 모든 이야기가 생소했다.
탁.
분명 담담한 문체인데도 마치 내 일처럼 가슴이 시려서 얼마 읽지 못하고 일기장을 내려뒀다.
한 번에 소화하기에는 감정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여러 번에 걸쳐 조금씩 읽기로 하고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었더니 현이가 무릎 위로 올라왔다.
야옹, 냐?
현이는 쫑알거리면서 온몸으로 계속 치대며 관심을 받으려고 들었다.
내가 불안정해 보이기라도 하는 걸까.
잘 관리된 털을 쓰다듬으면서 심란한 마음을 잠재웠다.
역시 힐링엔 애니멀 테라피만한 게 없다. 똑똑한 고양이 함현은 마치 말이 통하는 친구처럼 나를 위로해줬다.
“아직 무덤덤해지려면 멀었나 봐.”
서서히 현오 형을 잊어가게 되겠지만, 2년도 되지 않는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곡 작업에 집중이 될만한 상태는 아니라 잔잔한 음악만 틀어두고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올 것 같았다.
* * *
워커홀릭 기질이 있는 멤버들이 오래 빈둥댈 수 있을 리 없었다.
일주일 만에 멤버들이 전부 숙소에 모였다. 최대한 길게 쉰 게 일주일이었던 모양이다.
“다들 잘 쉬었나 봐? 피부에 광채가 도는데?”
“그치? 엄마가 배부르다는데도 계속 먹여서 얼른 도망 왔잖아!”
박하는 먹고 자기만 했다면서 자기가 얼마나 알찬 휴식을 보냈는지 자랑했다.
“쉬엄쉬엄 다시 운동 시작하면 되겠어.”
체력을 길러둬야 다시 달릴 수 있겠지만, 운동과 쉬엄쉬엄이 같은 문장 안에 들어가다니. 무척 모순적이었다.
서혼 형이 트레이너 역할을 맡으면 분명히 ‘쉬엄쉬엄’과는 거리가 백만 년은 떨어지게 될 텐데.
멤버들도 그걸 알아서 서혼 형의 눈을 슬슬 피했다.
“아까 준현 형이랑 통화했는데 사고만 치지 않으면 뭐든 해도 된다던데?”
공식적인 일정이 잡히지 않은 기간 동안 매니저 형들도 잠정적인 휴가를 받았다.
급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1월 말까지 쭉 쉬게 될 예정이다.
테오라가 가혹한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매니저 형들도 과로하셨다. 언제 또 강행군이 시작될지 모르니 쉴 수 있을 때 쉬어두셔야 한다.
매니저 형들이 휴가라는 건, 멤버들끼리 아무런 간섭 없이 놀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오늘은 특별히 배달시켜 먹는 게 어때?”
초록 형이 이 기회에 칼로리 높은 배달 음식을 시켜보겠단 야망을 품었다.
활동기가 이어져서 몸 관리를 계속해버리게 된 바람에 배달 음식과는 인연이 없긴 했다.
그간 지온이 해준 다양한 요리를 먹어서 절대 못 먹고 지냈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고칼로리에 자극적인 음식이 당기는 날이 있다. 그게 바로 오늘!
“치킨! 피자! 햄버거! 닭발에….”
박하가 그간 배달 음식 먹고 싶었는데 참았구나.
몸 관리에 진심인 서혼 형도, 오란도 반기는 기색이었다.
심지어는 지온까지도!
요즘 취미생활이 만족스러워서 너그러워진 것 같다.
“내가 쏠 테니까 종류별로 전부 시켜. 1인 2 메뉴여도 싹 먹어 치울 수 있을 테니까 나만 믿어.”
초록 형은 아주 날을 잡았나 보다.
결국 거실 테이블의 공간이 모자라서 새로운 상을 이어 붙여서 배달 음식을 차렸다.
“이건 찍어 올려야 해!”
박하가 요리조리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은 후에야 맛을 볼 수 있었다.
세 가지 브랜드의 대표 치킨과 피자, 감자탕에 매운 갈비찜과 햄버거, 탕수육에 분식….
화려한 라인업에 감탄하기보단 입에 집어넣는 게 빨랐다.
다행히 비슷비슷한 시간에 도착해서 별로 기다리지 않고 따뜻할 때 먹을 수 있었다.
“으으으!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가 혀가 더! 막! 짜릿해!”
박하는 집에 가서도 건강 집밥만 잔뜩 먹었단다.
어머니 걱정을 알아서 거부하진 못하고 얌전히 먹었겠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자극적인 맛을 잊기가 쉬웠을 리가. 아는 맛이라서 더 어려웠을 거다.
“크으~, 이 맛이지.”
“집에 가서 먹지 그랬어. 초록 형도 시켜 먹을 상황이 아니었어?”
“우리 꼰대가 건강을 심하게 챙기거든. 어릴 때부터 철저히 식단 관리했었어. 내가 콜라를 처음 먹은 게 초등학교 입학한 후라면 믿겠어?”
요즘 같은 시대에 8살이 되어서야 콜라를 처음 접했다니. 건강이나 미각을 예민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선 좋겠지만….
“충격적인 맛이었지.”
초록 형은 그 후로도 집에선 조미료도 안 들어간 유기농 건강식만 먹고 있단다.
그 정성이 대단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막상 내가 그런 식단을 받는다면 슬플 것 같다.
“내가 집 밖의 음식에 식탐을 가지게 된 건 전부 그 반동이야.”
맞는 말 같기도 하고, 무논리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오늘의 일탈은 즐거웠다.
지겨워질 때까지 자고, 먹고 싶은 음식 잔뜩 먹고 게을러지는 것, 이게 바로 진정한 휴식이지!
* * *
매일 조금씩 현오 형이 남긴 일기를 읽어나갔다.
어떤 날은 한 장만 읽고 내려뒀고, 어떤 날은 십여 장을 읽었다.
그렇게 현오 형과 내가 만난 시점까지 따라잡았다.
현오 형의 시선으로 보는 나는 엉뚱하고 재밌게 보였다. 낯 뜨거워질 만큼 칭찬이 잔뜩 쓰여 있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보였구나….”
일기 속에 내가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현오 형에게도 내가 의미 있는 사람이었다는 증거였다.
“왜 내 이야기만 이렇게 잔뜩…. 형 이야기를 써주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내 존재가 조금이나마 즐거움을 준 거라면 당연히 기쁠 거다. 그래도 난 현오 형의 솔직한 속내를 듣고 싶었다.
직접적인 표현이 없었어도 현오 형의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진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자꾸만 자신의 장례를 준비하는 메모들이 나왔으니까.
“형….”
현오 형의 지인들은 아직 현오 형이 해외로 유학을 갔다고만 알고 있었다. 다시금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진실을 알리지 않아도 되는 걸까? 만약 현오 형을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고민이 깊어질 무렵, 나는 일기에서 충격적인 내용을 발견했다.
바로 끝까지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인 형이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는 형의 모습을.
그리고 자기 죽음을 알릴지 말지에 대한 두서없는 고민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