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85
신입생 환영회
클리어리 형들과는 단톡으로 연락하면서 서서히 가까워질 수 있었다.
본심이 어떤지는 몰라도 텍스트상에선 멀리 배낭여행을 떠난 친구를 둔 유쾌한 형들처럼 느껴졌다.
잠깐 눈을 떼면 단톡방에 300+ 표시가 붙어있기 일쑤였고, 각종 근본 없는 드립이 난무했다.
적극적으로 끼어들지 않으면 톡이 금방 묻혀버리곤 했는데 나는 예외였다. 한마디 짧은 톡만 올려도 격한 반응에 각종 이모티콘이 화면을 도배했다.
밥을 먹었다거나 작업실에 들렀다는 얘기로도 칭찬받았다. 이러다가 숨 쉬는 걸로도 칭찬받는 건 아니겠지?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처럼.
“이원아, 뭘 보고 그렇게 웃어?”
“내가 웃고 있었어?”
입가를 더듬어보니 정말로 입술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클리어리 형들이 보낸 톡이 웃겨서 그랬나.”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서혼 형은 내 머리카락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섬세한 손길이 간지러웠다.
“다행이다. 그 형들이 다들 좋은 분들이라서. 언제 우리한테도 소개해줄래?”
“좋아.”
형들도 좋아할 거다. 공통점이 있으니 대화도 잘 통할 테고, 다 같이 친해지면 좋겠다 싶은 사람들이라서.
톡방이 조금 잠잠해진 틈을 타 뉴튜브에 들어가 영상을 찾았다.
“또 코넬 선배님들 영상이냐.”
루틴대로 연습실에 들러서 몸을 풀고 숙소에 들어와서 스케줄 갈 준비를 마친 차였다. 뒤늦게 씻고 나오던 홍오란이 내 휴대폰 화면을 슬쩍 쳐다봤다.
“아무래도 무대 영상을 봐두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너 예전에 코넬 선배님들한테 곡 의뢰 받았었던가?”
“응. 그거 작업 들어가 보려고 자료 수집 겸.”
“정규 앨범 작업은 끝났다고 보면 되겠네. 니 성격에 우리 앨범에 들어갈 곡 제쳐두고 다른 작업 시작하지 않을 테니까.”
귀신 같기는.
여러 의견을 반영해 편곡하거나 추가로 곡을 쓸 수는 있겠지만, 일차적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끝냈다.
“코넬 선배님들이 서두르진 않아도 된다고 하셨지만, 계속 미루긴 죄송하니까.”
“코넬 누나들?!”
박하가 방문을 벌컥 열고 뛰쳐나왔다. ‘코넬’이라는 이름에 반응했구나?
“코넬 선배님이 의뢰한 팬 송 써보려고. 박하 네가 도와줘.”
가까이에 코넬 선배님의 팬이 있다는 건 장점이다. 박하를 감동시킬 수 있는 곡이라면 코넬 선배님들도 만족하시지 않을까.
곡을 부르는 가수의 음색이나 특징을 반영해서 작곡하면 더 좋겠지만, 팬 송은 팬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잘 드러나는지가 더 중요했다.
팬과 스타가 함께 쌓아온 그간의 서사가 묻어나면 더 좋을 것 같다.
당연히 코넬 선배님들과 상의하면서 완성할 생각이지만 나도 공부가 필요했다.
테오라의 첫 팬 송인 ‘여름이었다’는 즉흥적으로 만들고 갑자기 팬 송이 되는 바람에 참고가 되지 않는다.
“나만 믿어!”
“함이원 너 실수한 거야.”
“…실수?”
“박하준 수다 지옥으로 제 발로 들어가는 멍청이가 있을 줄이야. 난 책임 없으니까 알아서 하든지 말든지.”
“내가 뭘! 모함하지 마…!”
박하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어딘가 당혹감이 묻어있는 목소리였다.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코넬 선배님 팬으로서 수다를 떨지 않으리란 확신이 없는 것처럼.
겁은 조금 나지만, 박하의 재잘거림이라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닌가?
“코넬 선배님들이랑 만나러 갈 때 같이 갈까?”
“좋아! 너무! 좋아아아! 이원 형 사랑해!”
박하는 금방 텐션을 회복하는 것으로 모자라 격렬하게 내게 들러붙었다.
이게 아닌데….
“자기 무덤 알아서 잘 파네.”
“…….”
* * *
테오라와 팬들에게 3월의 가장 큰 이벤트는 입학식이었다. 내가 한국대에 입학한다는 소식이 다 알려진 터라 입학식에는 참석하지 않는다고 팬카페와 SNS에 공지를 올려야 했다.
대학교 입학식에 가지 않는다고 공지한다는 게 멋쩍지만, 괜한 소란을 일으키고 팬들이나 기자분들을 허탕 치게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
“한국대 입학식 가보나 했는데!”
“지루하다고 하던데? 우리가 전에 갔던 입학식 행사처럼 가수 공연 있는 경우는 드문가 봐.”
초록 형이 소개해준 한국대 선배님에게 들었다. 입학식은 딴짓하다가 조는 시간이라고.
“그래도오!”
다음에 놀러 오면 구경시켜주겠다는 말로 멤버들을 달래야 했다. 한국대라고 해서 특별하진 않을 텐데 막연한 환상을 가진 것 같다.
“OT도 못 가고 입학식도 불참하면 동기랑 어떻게 친해지려고?”
“수업만 들어가면서 친구 사귀기 힘들겠지?”
“적극적이지 않으면 maybe.”
주변에 대학생 지인들이 많은 지온이 들은 얘기라곤 술 마시다 친해졌다는 소리밖에 없단다.
덜컥 위기감이 들었다.
내 시간표는 온라인 수업을 최대한으로 넣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월요일부터 수요일에 수업이 쏠려 있는 괴상한 형태.
스케줄이 언제 잡힐지 모르는 상황이라 강의를 몰아서 잡았는데, 친구 사귀기엔 더없이 불리한 시간표 같다.
수강 신청이 순발력 테스트라고 해서 서혼 형 도움까지 받았는데 이런 함정이 있을 줄이야.
“신입생 환영회엔 꼭 보내야겠네. 안 그랬다간 학교 다니는 내내 친구 하나 못 사귀겠는데?”
스케줄 상, 학생회나 동아리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MT를 가기도 어려울 터였다.
“신입생 환영회는 언제야?”
“금요일.”
“이런. 이원이 주량이랑 술버릇 체크 해뒀어야 했는데.”
“상황 봐서 조금만 마시던지 탄산음료만 마실게.”
혹시나 이상한 주사가 튀어나오면 그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다. 자칫 잘못해서 사진이라도 찍혔다가 영구 박제되어버릴까 걱정된다.
“조심하려면 그게 좋겠다. 요즘 술을 억지로 먹이는 분위기는 아니라지만, 아닌 곳도 꽤 남아 있긴 해. 우리 과처럼.”
서혼 형네 학과도 기강이 강한 편이라 술을 거부하기 어려운 분위기란다. 서혼 형은 한두 번 참석했다가 이제는 연락이 와도 꿋꿋하게 과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자유를 얻으려면 소속감은 포기해야 하는 것 같았다.
“인사는 하고 지내는데 과 모임에 안 나가면 친해지긴 힘들더라고. 동기들이나 선배들 눈에 내가 별종처럼 보이긴 할 거야.”
아역배우 출신인 서혼 형이 연기 전공이 아니라 연출 전공으로 들어간 것부터 고개를 갸웃하게 할 일이었다.
거기에 과 활동을 일절 하지 않는 이유가 아이돌 연습생이라 바빠서라는 걸 알았다면?
일반적인 루트를 벗어난 행보를 보이는 서혼 형이 별종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을 거다.
“이원이도 유명 인사가 되겠는걸. 벌써 됐으려나?”
이미 지금도 과 내에서 소문이 무성할 것 같다. 아이돌이 합격했다는 소식은 들리는데 모습은 도통 비치질 않고 있으니까.
“첫인상이 중요해. 기선제압 알지?”
“초록 형은 대학교 안 다녀봤으면서?”
“박하준, 굳이 정곡을 찔러야겠어? 난 일반적인 얘길 하는 거라고.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니까.”
회의론자 같은 소리를 하던 초록 형은 나를 맞은 편에 두고 미주알고주알 훈계를 시작했다.
“웃음기 없이 건조하게. 선만 딱 지켜서 인사만 공손히. 알겠지? 그것만 지켜도 너 쉽게 보이진 않을걸. 워낙 인상이 차가워 보여서.”
“내가?”
“지금까지 몰랐어? 너 무표정이랑 웃는 거랑 갭이 어마어마한데.”
거의 웃지 않고 지냈던 중고등학교 시절에 내게 다가오는 사람이 적었던 게 그런 이유였나?
내가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접근하기 힘들게 벽을 치고 있었던 셈이다. 친구가 생기지 않을 만도 했다.
“난 친한 동기 만들고 싶은데….”
“웬일로 친구 욕심은 있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테지만 포기부터 하고 가고 싶진 않았다. 평범한 대학생처럼 지낼 순 없더라도 최대한 그럴듯하게 흉내는 내보고 싶었다.
“좋아. 그럼 관찰부터 해. 다른 애들도 친해지는 도중이라 본성을 드러내진 않겠지만, 그래도 눈치껏 네가 친해지고 싶은 녀석을 골라내봐. 그다음에 들이대.”
“들이대라고?”
“친해지려면 들이대는 게 최고야. 인사도 먼저 하고, 먼저 질문도 던지고, 연락처도 물어보고. 아, 이원이 네 연락처는 함부로 알려주면 안 되는 거 알지?”
“알아.”
“네가 누구랑 친하게 지내면 분명 다른 애들도 너한테 친한 척 들러붙을 거란 말이지. 그럴 땐 적당히 쳐내. 안 그랬다간 더럽게 피곤해져.”
구체적으로 예시를 들어주려는 초록 형을 말렸다. 괜히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알고 싶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길지 짐작이 됐다.
“한국대 법대에 들어간 엘리트들은 다르지 않을까?”
“박하 너도 순진하네. 똑똑한 놈들도 다 똑같아. 내가 겪어보니까 교묘하게 이간질하는 솜씨는 오히려 한 수 위긴 하더라.”
“초록 형 때문에 인류애를 잃어버리겠어! 이원 형도 듣지 마. 지지야!”
나를 챙겨주는 건 좋지만, 동생에게 애기 취급당하는 심정도 같이 이해해줬으면….
얌전히 순응하는 재미없는 방식이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는 방법이다.
귀를 막은 박하의 손이 떨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새내기 함이원이라….”
어색한 어감의 단어에 적응하게 될 대망의 날이 밝았다.
* * *
한국대 법학대학 법학과.
법대에는 법학과 하나의 과만 속해 있었다. 신입생은 세부 전공이 나눠지기 전이라 통합으로 신입생 환영회 겸 개강 파티를 열어야 했는데, 로스쿨이 생기면서 법학과 입학 인원을 대폭 줄이는 바람에 신입생은 고등학교 두 반 정도의 숫자밖에 되지 않았다.
고리타분한 법학과답게 작년도, 재작년도 신입생 환영회라는 명목하에 뻔한 술판을 벌였었는데, 이번에는 준비 단계부터 긴장감이 돌았다.
“진짜 온대?”
“아 몇 번 말해. 내 입술 닳아 없어지는 꼴 봐야겠냐?”
배수호는 부 과대인 동기에게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녀의 호들갑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함이원의 외모는 남녀를 떠나 눈이 달렸으면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까.
“안 믿기니까 그렇지! OT도 안 오고 입학식도 안 왔는데 신입생 환영회는 왜 오는 거래?”
“무슨 변덕인지 그 속을 내가 알면 돗자리를 깔았지.”
이번 주 내내 현역 아이돌을 학교에서 목격했다는 소식으로 에타가 시끌시끌했다.
수강 취소나 정정할 강의가 없는지, 아니면 개강 첫 주라서 OT만 했는지 다들 할 일도 없다 싶었다.
“걘 도대체 왜 법대를 온 거야. 하필 나는 왜 과대가 됐냐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 투덜거리던 과대 배수호는 정시로 한국대 법대에 합격했다는 아이돌 함이원을 떠올렸다.
아이돌 연습생이나 인기 아이돌의 바쁜 일상은 익히 알려져 있었다. 그 가혹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한국에서 최고로 뽑는 명문대에 입학하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
과대가 되기 전에는 무슨 괴물이 입학한 건가, 감탄이나 하며 강 건너 불구경이나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과대가 되어 있었다. 과 대표로 추천받긴 했어도 학업에 집중하겠다면서 사양했는데,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대충 당선 소감을 얘기하고 난 후에 뒤늦게야 떠올랐다.
같은 과에 태풍의 핵이 하나 들어왔다는 사실을! 설렁설렁 과대 업무를 하려는 계획은 애초에 글렀다는 것도!
배수호는 동기가 된 아이돌이 얌전하게 수업만 적당히 듣다 사라지는 아싸로 머물러 주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래도 명색이 신입생 환영회라 소식을 전했더니 덜컥 참석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제발 조용히 지나가라,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