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90
관계자 외 관찰 금지 (3)
어둠 속을 어슬렁거리며 등장한 작은 맹수는 달빛이 들어온 거실에서 몸을 늘였다.
액체처럼 쭉 늘어났다가 원래 형태를 되찾은 작은 짐승이 카메라가 있는 방향을 똑바로 바라봤다.
[꼭 카메라 위치 알고 보는 것 같지 않아요? 카메라 있는 곳만 쳐다보는데요?] [우리 현이라면 알고 봐도 이상하지 않아요! 녹화하고 있을 때 빨간 불이 들어온다는 규칙을 이해할 수 있는 똑똑한 고양이거든요!] [그 정도면 ‘세상에 이런 동물이’에 제보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희끼리도 그런 얘기도 했었어요!]고양이는 사뿐사뿐 다가오더니 소파 등받이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낮게 설치됐던 카메라 앞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어엇! 저렇게 하다가 카메라 떨어지기라도 하면! 방향 틀어지면 테오라분들 관찰 영상도 건지기 힘들지 나요?] [더 보시면 압니다.]희게 빛나는 발을 들더니 카메라를 툭 쳐 방향을 바꾼 후 주인공처럼 화면을 가득 차지해버렸다.
냐아?
여유롭게 발을 핥으면서 몸단장을 시작하는 모습은 고양이 혼자서 셀프 캠으로 찍었다고는 믿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와 거짓말 안 하고 너무 귀여워서 심쿵사하겠는데요? 이원 씨는 주인님 영상만으로도 백만 뉴튜버 가능하겠어요. 귀여움으로 전 세계를 정화시킵시다!]고양이는 좁은 소파 등받이 위에서 냥냥거리며 애교 메들리를 선보였다. 한참을 그러더니 하찮은 인간들 비위 맞춰주느라 피곤하다는 듯 하품을 하곤 다시 다리를 들었다.
툭 투둑.
냥. 시크하게 짧은 울음만 남기고 떠난 고양이는 매력덩어리라 스튜디오에 있는 출연진과 제작진 전부를 홀려냈다. 극단적 강아지 파도 이건 거부할 수 없다.
[와…. 아까 카메라가 설치됐던 방향대로 똑같이 되돌려놓은 것 같은데요? 방송 아는 고양이네!] [PD님 이거 비교 화면 없어요? 비교 화면!]편집을 통해 삽입된 고양이가 건드리기 전과 후의 카메라 각도는 맨눈으로 봐선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이원 씨는 ‘천재’와 인연이 깊네요. 반려묘까지 천재라니! 혹시 스튜디오에 고양이님이 친히 방문하실 계획은 없나요?]특별한 행동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스튜디오에서 증명한다면 시청률에도 도움이 되리란 속내가 숨어 있었다.
그 속내를 알면서도 눈감아준 남초록이 대답했다.
[현이가 허락하면 가능합니다.] [이원 씨 허락이 아니고 고양이 허락이요? 주인님 뜻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가능한가요?] [현이한테 말이 통해서 무심코 대화 나누다가 놀란다니까요.] [MSG를 얼마나 듬뿍 치는 거예요, 초록 씨.] [제 말에 MSG가 들어갔는지 아닌지는 저희 땡튜브 채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주 틈새 영업까지.]우스갯소리가 속도감 있게 오갔다. 고정 출연진들은 말빨로 어디 가서 지는 사람들은 아닌데, 테오라 멤버들도 밀리지 않았다.
[예능감이 물이 올랐는데요? 다음에 게스트 필요하면 테오라 불러도 되나요?] [언제든지요! 저희 테오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예능에 최적화된 인재로서…!]박하는 웅변하듯이 외쳤다. 본인은 진지한데 한없이 작위적으로 보여서 다들 웃음을 참았다.
[본업은 어쩌고요?] [물론 본업은 더 끝내줘요! 하지만 예능형 인재가 되지 못하리란 법은 없잖아요? 저희가 출연해서 화제가 됐던 예능만 해도! 방송사가 달라 언급할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당!] [박하 씨의 당찬 포부 잘 들었습니다. 저 질문 있는데, 해도 됩니까?] [네!] [아까 보니까 박하 씨는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시던데, 귀찮지 않으세요?] [귀찮아요! 그런데 우리 멤버들 민낯 보셨죠? 모태 미남들이라 위기감이 안 생길 수가 없다구요! 저도 물론 태어날 때부터 귀엽고 잘생겼지만요! 엄마 고마워요!]뜬금없이 엄마에게 영상 편지를 띄우는 박하 때문에 다시 웃음바다가 됐다. 자기가 잘난 걸 알고 대놓고 어필하는 데도 귀엽기만 했다.
요즘 세대에게 먹히는 잘생긴 스타일인데다 밝고 애교 넘치는 성격까지. 박하앓이를 하는 누나들이 넘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다시 관찰 영상은 촬영 현장으로 넘어갔다. 패션 잡지에 들어갈 A컷을 제외하고 살짝 공개됐는데 B컷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환상적인 사진에 출연진들이 감탄을 연발했다.
“이게 B컷? 그럼 잡지엔 SSS컷이 실린다는 얘기 아니에요?”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댓글이 폭발해버렸다. 테오라 특집 잡지는 언제 나오냐는 댓글 수만 봐도 잡지를 구하느라 대란이 일어날 모습이 눈에 선했다.
“설마 예판도 선착순으로 하는 건 아니겠죠…?”
전에도 테오라가 잡지 촬영을 진행한 적이 있다. 할당 페이지가 그리 많지 않았고, 지금만큼 뜨지는 못한 상태였는데도 판매 부수가 훌쩍 늘어났다.
테오라의 팬이 아닌 일반 구매자도 많이 구매했다고 하니 일반 사람들 눈에도 두고두고 감상하고픈 욕구를 자극하는 화보였음이 틀림없었다.
테오라 멤버들은 하나같이 길쭉길쭉하니 프로포션이 좋다. 거기다 각자 흉내 내기 힘든 고유의 분위기까지 지니고 있어서 모델로서 가치가 높았다.
사진 촬영 기술이나 보정 효과가 아무리 뛰어나도 원본이 받쳐줘야 시너지가 몇 배로 날 수 있는 법.
이번 잡지가 테오라 특집으로 계획된 데엔 이유가 있었다.
[벌써 시간이 훌쩍 지났네요. 저 감탄만 했는데, 이러다가 짤리진 않겠죠?] [괜찮아요, 괜찮아. 그렇게 치면 여기서 안 짤릴 사람 없으니까.]슬슬 마무리 멘트가 나오는 게 끝날 시간이 다 된 듯했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자정을 살짝 넘긴 시간이었다.
[테오라 멤버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기엔 한 시간은 너무 부족하죠? 그래서! 다음 주에도 이어서 방송할 예정이니까 많이 기대해주십쇼!] [관계자 외 관찰 금지는, 언제나 관계자 가입을 환영합니다!]“와, 존잼…. 이제 먹으면서 반응 구경해야지.”
완전히 빠져서 보느라 처음에만 조금 먹어서 테이블을 가득 채운 음식들이 거의 그대로였다.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 스펙타클하죠? 저 손에 땀 났어요.”
“나도, 나도.”
다 식은 치킨을 오물거리면서 팬카페를 살폈다. 팬들은 흥분에 겨워서 글이 쏟아내는 중이었다.
“우리 애옹이가 단독 출연해서 너무 좋았어…. 난 한 풀었어.”
“테오라 관찰 영상에 현이가 빠질 수가 있나요. 전 나올 줄 알았어요.”
“현이가 싫어했으면 털 그림자도 안 비쳤을걸?”
“아, 그건 그래요. 우리 야옹님이 허락해주셔서 TV에서 알현할 수 있었던 거죠.”
함현 찬양을 들으며 막내는 특이한 제목의 게시글을 클릭했다. 그런데 내용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 언니들 이거 봐요.”
“뭔데 그래?”
“촬영 금지 방송 중에 한 장면을 캡처했다는데요, 와 이게 찐이라고…?”
배가 고팠는지 모둠전을 입에 한 가득 밀어 넣던 동생도 막걸리를 원샷하고서 슬금슬금 다가와 머리를 들이밀었다. 입은 여전히 저작운동이 한참이었다.
“숙소를 한 바퀴 비춰주면서 소개할 때 현관이 잡혔는데, 현관문에 이런 게 붙어있었대요!”
캡처 사진엔 현관문 안쪽에 붙은 커다란 종이가 잡혀 있었다. ‘테오라 규칙’이라는 간결한 제목 아래에 적힌 글씨가 선명했다.
“연애 금지, 흡연 금지에 문제 생기면 멤버들에게 털어놓기, 청소 당번….”
“저 가슴이 너무 뛰어요. 감동 먹었나 봐요.”
“이걸 애들이 직접 적었다니…. 매일 나갈 때마다 다짐하듯이 보려고 현관문에 붙인 거고?”
“지금까지 테오라가 모범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네.”
“다른 팬덤에서 주작이라고 열폭할 미래가 보이는데요.”
“그러게….”
“후반부 규칙에 추가한 날짜 꼬박꼬박 붙인 거나 하단에 애들 서명하고 날짜 적힌 부분 봐요. 증거가 있는데!”
“근데 공증된 날짜도 아니고 ‘관찰 금지’ 촬영 온다고 급하게 적어서 붙였다고 하면 반박할 수가 없잖아.”
“언니, 테오라 리더가 누군지 잊으셨어요? 초록이라면 날짜별로 증거 사진을 남겨뒀어도 이상하지 않아요.”
“아, 내가 괜한 걱정을 했네. 초록이가 있지.”
코티지 사이에서 리더 남초록은 비브라늄 방패라고 평가받고 있었다.
커뮤에서 안 좋은 쪽으로 테오라가 언급되고 슬슬 이야기가 퍼져나간다 싶을 타이밍에 반박 증거를 SNS에 투척하곤 했다. 지나가다 주웠다는 식으로.
처음엔 기막힌 우연으로 여겼지만, 그게 몇 번이고 반복되면 의도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남초록이 음습한 커뮤까지도 전부 모니터링한다는 건 팬들에게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져 있었다.
하눌 엔터가 허위 사실 유포나 악플에 강경 대응을 하기로 입장을 밝혔고, 거기에 남초록이라는 암행어사까지 존재하다 보니 테오라에 관한 주제는 청정구역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다른 아이돌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클린하다는 의미지만.
인간이 전부 사라지지 않는 한 시기와 질투는 언제 어디서나 자라는 감정.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연예인과는 떼어낼 수 없었다.
“다음 주 방영분은 시청률 더 대박 날 것 같지 않아요?”
“2회로 편성했다는 걸로 끝났지. 누구보다 시청률과 화제성에 민감한 제작진이 두 번으로 나눠서 방송해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 재밌게 빠졌다는 소리니까.”
“그쵸, 그쵸. 다음 주에도 모일래요, 언니? 그땐 아마 광고 더 붙겠죠?”
“근데, 요즘 출연료 때문에 예능에서도 PPL 잔뜩 끼워 팔아야 한다며? 나만 애들이 쓰는 PPL 상품 못 찾았어?”
“저도요, 언니.”
“티 하나도 안 나게 집어넣었나…?”
“가구나 가전은 전부 사용감 있었고, 특별한 상품은 없었는걸요? 제켈 옴므?”
‘관찰 금지 테오라 편’에 나온 물건 중에 사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한 상품은 테오라가 입었던 초고가 프리미엄 패션 브랜드 제켈 옴므뿐이었다.
테오라가 직접 입고 잡지를 촬영 장면이 들어갔다. 카메라가 잡히는 곳에 제품을 배치하는 PPL(Product Placement) 방식과 차이가 있긴 해도 출연료를 충당할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했다.
“제켈 옴므 하나 잡아서 부자연스러운 PPL 안 봐도 됐던 건가?”
“캬! 역시 테오라!”
테오라 정도의 파급력이라면 PPL을 잔뜩 집어넣어서 광고비를 최대한 많이 받아내고 싶은 욕망도 있었을 터다.
그 욕망을 자제한 이유가 제작진의 절제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하눌 엔터의 조율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어도 결과적으로는 이득이었다.
커뮤에선 오랜만에 관찰 리얼리티다운 회차가 뽑혔다는 반응이었으므로.
“역시 될 놈은 되는 거야. 그치?”
“그럼요. 테오라는 크게 되고도 남죠.”
“일주일은 또 어떻게 기다리죠? 저 벌써 손 떨리는데.”
막내의 반응에 공감하며 한참 주접 파티를 벌이다가 큰언니인 ‘함현발닦개’가 스케줄을 확인했다.
“시간 맞으면 우리 집 올래? 조금 일찍 와서 같이 놀아도 좋고. 둘 다 괜찮아?”
“초대해주시면 영광이죠! 언니네 집 갈 때 선물 사 갈게요.”
“제 사전에 거절이란 없습니다!”
다음 주 금요일 약속을 잡은 그들은 시시덕거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관계자 외 관찰 금지 방영이 끝난 후, 테오라 공식 팬덤에 가입하고 싶다는 문의가 빗발쳤다.
본방을 봤던 사람들의 대화에선 테오라가 빠지지 않았다.
다음 편이 나오기 전 일주일간 입소문이 무섭게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