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94
I’m fine
사생의 무단침입 소식을 듣고 우리를 걱정하는 하눌 직원분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다. 춥지도 않은데 담요를 두르고 따듯한 우유를 손에 쥐여주셨다.
테오라 전용 회의실이 된 익숙한 공간에 들어서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우유를 홀짝거리면서 직원분들의 걱정에 일일이 괜찮다고 대답하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이원아! 지온아! 괜찮니?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어디 좀 봐.”
서혼 형은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있는 곳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듯했다. 박하와 초록 형도 뒤따라 들어와서 우리를 살폈다.
멤버들은 스케줄을 소화하는 동안 다급히 사라지는 준현 형을 보고 불길함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려고 애썼단다. 두열 형이 촬영장에서 멤버들을 회사로 데리고 왔다고 했다.
“괜찮아. 다치지도 않았고, 우리끼리 있을 때 사생이랑 마주치지도 않았어.”
“I’m fine.”
“둘 다 괜찮다고 앵무새처럼 대답하던데. 겉으로 보기에 다친 덴 없어도 놀랐겠지.”
혼자 숙소로 돌아가는 일 없도록 따로 연락받은 오란은 우리가 회사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뒤따라왔다. 그때부터 잔소리를 잔뜩 쏟아내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말해봐.”
초록 형은 당사자인 우리가 직접 설명하기를 요구했다. 전해 들은 설명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듯했다.
“나 데리러 온 지온이랑 숙소에 도착했는데 현이가 날카롭게 우는 소리가 들렸어. 평소답지 않게.”
“현이가 이유 없이 혼자 울 리가 없지.”
“현관 앞에서 바로 못 들어가고 멈춰 있었는데 안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와서….”
“들어가진 않았지?!”
“내가 막았어. 함현 걱정된다고 들어가려고 해서.”
“잘했어. 지온아. 너 없었으면 어쩔 뻔했는지.”
“휴! 난 현이보다 이원 형이 걱정이야! 현이는 최강묘잖아! 시간이 더 있었으면 사생 퇴치했을지도!”
박하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현이처럼 지능 높은 고양이라면 힘이 약해도 한 사람쯤은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을 거다.
문득, 테오라 멤버들이 나를 최약체로 보고 있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강함과 약함의 기준이 왜곡된 게 분명하다.
신체적 강함뿐만 아니라 정신적 강함까지 따지면 최강자는 아니더라도 최약체는 절대 아닌데.
“그 후엔 준현 형한테 연락해서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제압해서 경찰서에 데려갔고.”
“큰일 없었다니까 천만다행인데, 우황청심원이라도 먹여야지 안 되겠어. 내가 얼른 나가서….”
“혼이 형, 내가 로드 형한테 부탁해뒀어.”
“What’s 우황청심원?”
“애들 놀라면 먹이는 약 있어, 지온아.”
서혼 형은 얼마나 진심으로 우리를 애기로 보는 거지…?
“난 애기 아닌데. 혼.”
“불안하거나 긴장될 때 먹는 전통 의학 약품이야. 보통 시험이나 면접 보기 전에 먹어. 그거 먹으면 입에서 지독한 한약재 냄새가 나지.”
“Ah. 설명 고마워, 초록. 그 냄새 맡아봤어. 쇼미더골드 경연 시작하기 전에. 그런데 난 먹을 필요 없어. 별로 안 놀라서.”
대담한 지온은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나는 크게 놀라진 않았어도 현이 때문에 마음 졸이느라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게다가 우리 멤버들과 함께 사는 곳에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침입한 사람이 있다는 것부터 불쾌하고 불안했다. 숙소에 아무 짓도 하지 못했다고 해도 예전처럼 편안한 느낌은 받지 못할 듯했다.
걱정 어린 눈빛을 이기지 못하고 액체형 우황청심원을 마시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책을 마련해야 할 상황이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스케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단체로 라디오 게스트로 나가는 스케줄이었는데, 보이는 라디오라서 표정을 단속해야 했다. 우리 테오라에게 무슨 사건이 벌어졌는지 팬들은 모르기를 바라면서.
경찰에 신고했으니 결국은 알려지게 되겠지만, 벌써부터 팬들에게 걱을 끼치기는 싫었다.
“즐거운 밤 보내시고요, 저희는 여기서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무한한 가능성, 테오라였습니다!”
라디오 부스 바깥에 준현 형의 모습이 보여서 녹음을 끝내고 얼른 밖으로 나왔다.
라디오 녹음 관계자분들과 DJ님에게는 내색하지 않고 화기애애하게 헤어져 주차장까지 내려왔다.
탁.
밴의 문이 닫히자마자 질문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됐어요?”
“경찰서에 가는 길에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경찰 앞에 가더니 자기 입으로 술술 불더군. 물론 현행범으로 체포당했으니 발뺌할 방법은 없겠지만.”
신고는 접수됐고, 회사에서 변호사 선임해 형사고소로 진행하게 될 거라는 설명을 덧붙여주셨다.
“너희가 할 일은 이 일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거다. 저런 사람 때문에 너희가 신경 쓰는 것 자체가 낭비니까.”
“그럼 진행 상황만 간단히 전달해주세요. 당사자인 저희가 모른다면 말이 안 되니까요.”
초록 형은 뭐든 알아둬서 나쁠 일 없다는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자투리 정보로 퍼즐을 맞춰서 숨겨진 사실을 알아내는 타고난 계략가이기도 하고.
약하더라도 제대로 법적 처벌을 받아서 반성했으면 좋겠다. 벌을 받아 자기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지만, 그래도 다를 거라고 믿고 싶다.
“그럼 그 건은 그렇게 하고. 일단, 오늘 너희들이 지내야 할 장소를 정해야 한다. 회사에선 집 구할 동안 호텔을 잡아줄 생각이던데. 너희 생각은 어떤지 들어보자.”
“하루 이틀은 호텔도 괜찮은데, 숙소가 바로 구해질까요? 여섯 명이 호텔에서 지내면서 왔다 갔다 하면 아무래도 기자들 눈에 띌 텐데요.”
우리 잘못이 아니라도 좋지 않은 일을 굳이 나서서 알릴 필요는 없다.
“회사에서도 그런 위험을 모르는 바는 아닐 테지만, 지금보다 보안이 철저하고 숙소로 적합한 곳을 당장 찾기는 어려우니 임시방편으로 정한 모양이다.”
“그럼 저희 본가….”
초록 형이 입을 떼려고 했다.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알 것 같았다. 초록 형의 본가에서 잠시 지내자는 제안을 하려는 거겠지.
“잠깐만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사시던 건물이 비어있다는 게 생각났다.
두 분은 외할머니 고향이자 두 분이 처음 만났던 프랑스에서 노후를 즐기시겠다며 떠나신 지 오래지만, 한국에 있는 집을 처분하지는 않으셨다.
“비어있는 집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잠깐 통화할 시간만 주시면요.”
엄마는 퇴근하셨을 시간이라 바로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막막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차피 부모님께는 숨길 수 없는 일이었다.
사정을 설명하기도 전에 통화는 짧고 굵게 끝났다. 뭔가 바쁘신지 ‘응, 비어있지, 이원이 쓰고 싶으면 마음대로 쓰렴~.’하고 쿨하게 허락하셨다.
“…이렇게 됐는데, 어떠세요? 꽤 넓은 집이고 주소는 여기서 멀지 않아요. 5년 정도 비어있던 곳이라 대청소는 해야겠지만요.”
“넓은 집을 몇 년이고 비워둘 수 있는 재력이라니. 덕분에 우리는 좋은 장소를 얻게 됐지만.”
“가서 직접 확인한 후에 결정하면 되겠지.”
위치는 숙소와 다른 동에 있었지만, 회사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고급 빌라 단지 안에 있는 4층짜리 빌라의 4층이었다. 빌라 단지 앞에 들어갈 때부터 출입자 확인을 했고, 중앙현관에서도 지문을 찍고 들어가야 하는 방식이었다.
“보안 철저한걸. 안심해도 되겠다. 근데 여기 어딘지 눈에 익는데? 뭐지?”
차 안에서 주위를 둘러보던 초록 형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아, 연예인들 많이 산다던 그 빌라 단지 같은데?”
“오오오! 연예인 체험해보는 건가!”
“박하준 너 연예인이거든.”
“아앗! 그렇지 참!”
엄마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누르고 왠지 두근대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들어가도 돼?”
“응. 먼지 많을 테니까 그냥 신발 신고 들어가.”
가구들이 흰 천으로 덮여 있었는데 살짝 들춰봤더니 상태가 좋아서 바로 사용할 수 있을 듯했다. 물도 잘 나오고 가전제품도 코드를 연결했더니 정상 작동했다.
“진짜로 청소만 하면 되는 집이네. 화장실도 세 개고. 이거 도대체 몇 평이야?”
“정확히 모르는데. 한 40평…?”
“더 넓을걸? 50평은 되어 보이는데? 이 빌라 단지에서는 제일 작은 평수로 나온 건물일 것 같긴 하네.”
“한동안 여기서 지낼 거라고? 눈만 높아지는 거 아니냐?”
원래 한번 높아진 안목은 낮아질 수 없다지만, 좋은 기회를 걷어찰 필요는 없다.
어쩌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다른 숙소를 구하는 게 아니라 여기서 쭉 살라고 하실 수도 있다. 한국에 1년에 한 번 들어오시는 게 전부니까.
두 분에게 아픈 손가락이었던 내가 뭔가 부탁드리면 그 부탁의 내용과 상관없이 들어주려고 하실 터다. 그런 태도는 드러내지 않으려고 해도 저절로 전해지곤 해서 모를 수 없었다.
확정된 사항이 아니라 멤버들과 매니저 형에겐 알라지 않았다.
“그럼, 청소 시작! 다들 마스크 쓰고! 창문 열어서 환기부터!”
박하의 외침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먼지를 털고 회사에서 빌려온 전문가용 스팀 청소기로 바닥에 내려앉은 먼지를 제거했다. 각자 걸레를 들고 구석구석 닦아냈다.
먼지만 가득 쌓였을 뿐, 더러운 곳은 아니라서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오늘은 침대랑 이불도 모자라고 점검할 부분도 있으니까 하루만 호텔에서 자도록 하자. 내일까지 들어올 수 있게 준비해둘 테니까.”
“네!”
“조금 더 청소하다가 가요. 얼마나 지내게 될지 몰라도 왠지 그리 짧지는 않을 느낌이거든요.”
초록 형이 내게 의미심장한 눈짓을 보냈다. …뭔가 알고 있는 건가? 한 번도 부모님 외 가족 얘기는 한 적이 없는데?
그러고 보니 초록 형이 우리 멤버들 가족과 따로 연락하긴 했었지…?
리더라 대표로 휴대폰을 가지고 있을 때 시작한 일을 아직도 이어오고 있다고는 얼핏 들었으니 거기서 이야기가 오갔다면 개연성이 있다.
그런데 초록 형은 도대체 몸이 여러 개라도 되나? 테오라 멤버로, 리더로, 암행어사와 소방관, 메신저까지….
남/초/록 셋으로 몸이 나뉘어도 가능할까 말까일 텐데, 혼자서 저 업무를 전부 떠맡고 있다니 말도 안 된다. 우리 중에서 제일 무리하는 멤버는 단연 초록 형인 것 같다.
앞으로 예의 주시해야지.
“우리 돈 열심히 벌자. 여기로 숙소 옮길 수 있게.”
“좋아, 혼이 형! 뭔가 목표 의식이 마구 생겨!”
그 목표는 거의 이루어지기 직전이었다. 박하에게는 깜짝 선물이 될 것 같았다.
* * *
“어? 이상한데? 이게 첫 스케줄인데 왜 반대 방향에서 오지?”
원래 오던 방향에 샵이나 가게가 많아서 굳이 반대쪽에서 올 이유가 없었다. 반대쪽에서 오려면 30분 이상 돌아와야 하는데 시간도 모자라는 아침에 그런 낭비를 자청할 리 없다.
‘공식 스케줄 말고 사적인 일이 있었나?’
밴에서 내리는 테오라 멤버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데, 마지막에 내리던 함이원이 밴 안에서 한참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 궁금하던 차에 밴에서 나오는 함이원 뒤로 고양이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현이?”
혼자서도 잘 지내는 독립적인 성격의 고양이를 출근길까지 데려온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어린 매니저만 테오라에게 붙여둔 채 밴은 방송국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다시 어디론가 빠져나갔다.
평소답지 않은 일이 연거푸 겹친다면 그건 우연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겼나 본데?”
촉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