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02
한국대 봄 축제 (1)
미세먼지도 물러나고 꽃향기가 섞인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시기. 어디로라도 놀러 가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릴 때쯤 대학 축제가 열렸다.
중간고사 스트레스를 풀고 학과 동기, 선후배와 친해질 기회였다.
대학마다 학과마다 참여도도 분위기도 제각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중에 한국대 축제는 재미없기로 유명했다. 이런 주제에 관심 없는 나도 들어봤을 정도니 얼마나 재미없으면 그럴까 싶다.
[법학과는 노잼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사람이 적어서 과에서 준비하는 주점이 제대로 열린 적도 드물대.]과대인 수호는 종종 선배님들에게서 수집한 정보를 내게 전해주곤 했다. 내가 소외되지 않게 동기들의 소식도 잊지 않았다.
수업에 들어가는 것조차 어려운 내게는 수호의 도움이 단비 같았다.
“그래도 우리가 가면 많이 오겠지?”
다른 학교에선 객석이 무너지는 건 아닐까 싶은 열광적인 반응을 받았다. 내가 재학 중인 한국대 축제 무대에 올라갔는데도 가라앉은 분위기라면 실망할 것 같았다.
[당연하지. 이번엔 낌새부터 다르대. 나만 해도 테오라 무대 언제냐는 질문을 얼마나 지겹게 받았는지 네가 알아야 하는데.]수호는 원하지 않았는데 얼렁뚱땅 과대가 되어버려서 중간고사 끝난 뒤부터 계속 바쁘다고 투덜거렸다.
[너보다 바쁠 리는 없겠지만. 축제만 끝나봐라. 시험 끝나고 못 논 것까지 다 합쳐서 놀아버릴 테니까.]“그래서 법학과는? 주점 열어?”
[그거 아냐? 너 오는 날에만 주점 연다는 거? 다들 네 얼굴이라도 한번 보겠다고 아주. 선배님들 참석률 대박임. 근데 너 주점 들릴 수 있긴 하냐? 꼭 와야 한다는 얘긴 아니고.]부담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몇 번이나 당부해왔다. 내일은 우리 학교 축제가 마지막 스케줄이라서 잠깐 들를 틈을 낼 수 있을 듯했다.
“음, 아마도?”
[안전요원 잔뜩 붙여달라고 해야 하나. 사고라도 날까 무섭다. 상황 봐서 연락할게.]“미안. 나 때문에 일이 많아지네.”
[대스타를 친구로 두는 대죄를 지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아무나 함이원 친구로 간택당할 수 있겠냐.]수호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묻어있었다. 바쁘기는 해도 기분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얼굴을 맞대고 만난 건 몇 번 되지 않았어도 수호와 나누는 대화는 편안하기만 했다.
[오늘도 바쁘지?]“행사 스케줄 있어서 지방 내려가는 중이야. 지금은 차 안.”
[그럼 너희 멤버들도 같이 있겠네? 축제 시즌 끝나면 한번 놀러 가겠다고 전해드려. 숙소도 넓은 곳으로 옮겼다며. 나 하나 추가돼도 비좁진 않을 거 아냐.]관심 없는 척해도 의외로 테오라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나와 관련된 일이라 관심 있게 지켜본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자의식 과잉인가?
“놀러 와도 괜찮다고 해. 우리 멤버들은 언제든 환영이니까.”
통화하는 소리가 다 들렸는지 초록 형이 끼어들어서 대답했다. 지온은 감았던 눈을 뜨고 알아서 하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오란은 나랑 눈이 마주치자 입술만 비죽거렸다. 평소대로의 모습이었다.
“들었어? 놀러 와도 괜찮대.”
[오, 나 너희 숙소에 놀러 간다고 자랑 한번 해볼까? 그러면 너희 팬들 난리 나겠지? 부러워서.]말뿐인 허세였다. 인증샷이라도 올렸다가는 피곤해질 게 뻔하고, 수호는 자랑을 막 하고 다닐 타입이 아니다.
목을 울리는 웃음에서 그런 생각이 묻어났을까. 수호는 금방 항복했다.
[농담이야. 스케줄 한가해지면 알려줘. 나는 수업 시간 빼면 괜찮으니까.]조금 수다를 떨다가 전화를 끊었다. 만나게 될 내일을 기약하면서.
전화가 끊어진 휴대폰 화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신기했다. 특별한 용건 없이도 통화할 상대가 생겼다는 게 감회가 새로웠다.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러우니까 하지 않을 테지만, 아이돌 함이원뿐만이 아니라 인간 함이원도 잘 성장해나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현오 형이 보고 있다면 칭찬해줄까? 커다란 선물을 주고 간 현오 형에게 부끄럽지 않게,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 * *
축제 시즌의 끄트머리에 한국대 축제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 말은 즉, 한국대 축제를 마지막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해야 했던 지방 스케줄이 뜸해질 거란 뜻이었다.
“한국대 축제가 피날레네. 이원, 오늘의 각오는?”
“딱히 없는데?”
지온은 대단한 각오를 했다는 대답을 원했으려나? 그렇지만 나는 우리 학교 축제라고 해서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수호를 비롯해서 아는 얼굴들은 있겠지만, 정을 붙이기엔 학교에 나간 날이 너무 적었다. 그것도 헐레벌떡 뛰어갔다가 뛰어 돌아오는 식이었고.
“내가 들은 첩보에 따르면 역대급 참석률이라던데? 우리 보러 오겠다고 입장권 산 학생 많다고 하더라.”
원래 한국대 학생들이 축제에 별 관심이 없어서 조금의 변화도 크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외부에서 보러 오는 관객들이 많은 게 아니고?”
오란의 발언에는 경험적인 근거가 있었다. 다른 대학 축제에선 매번 앞줄에서 우리 응원봉을 든 팬들이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줬기 때문이다.
지방에서도 그랬는데 서울에선 얼마나 많은 팬이 모일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특히 한국대는 내가 다니는 대학이라고 알려져서 관심도가 높았다.
아마 무대 앞 객석이 허전하진 않을 터다. 그래도 새로운 분들이 테오라의 무대를 두 눈, 두 귀로 직접 보고 들어주기를 원했다.
“초록이 말대로 역대급인 건 확실하군.”
인파를 뚫고 운전해야 할 수도 있어서 특별히 운전대를 잡은 준현 형이 중얼거렸다.
“와!”
“미쳤네.”
차가 밀린다 싶기는 했는데 이 정도로 사람이 몰릴 줄이야. 차 앞 유리엔 도로까지 점령한 사람들이 한 방향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었다.
날은 어두워졌지만, 가로등이 환하게 켜져 있는 데다 곳곳에 주점 부스가 환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
“다른 길 찾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여기 후문 쪽인데….”
평소에 다닐 때는 텅텅 비어 있었던 길인데 이렇게 사람이 많다니…. 정문은 얼마나 사람이 많을지 예상도 되지 않았다.
“이원이 데려다줄 때 확인해본 바로는 여기가 그나마 한산한 길이었다.”
“테오라 인기가 이 정도였어요? 우리 당장 월드컵 경기장에서 콘서트 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호들갑 좀 그만 떨어. 누가 들으면 초대 가수가 우리만 있는 줄 알겠다?”
“오란 형 한국대 일정 확인 안 했구나? 오늘 다른 초대 가수가 있긴 한데 학교 자체 공연이랑 인디 밴드 말고는 우리가 전부야!”
“…뭐?”
“진짜로!”
우리 그룹이 이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았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려웠다.
정말로 이 모든 사람이 우리를, 테오라의 무대를 기대하며 모인 거라고…? 정말로?
“하하, 이원이도 놀랐구나.”
“…어?”
“입술. 벌어져 있는데?”
손가락으로 자기 입술을 톡톡 건드리는 서혼 형의 움직임에 정신 차리고 표정을 가다듬었다.
“나도 놀랍긴 하다. 작년엔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아이돌이었잖아. 그런데 올해는 축제를 들썩이게 하는 스타가 되어버렸네?”
“상전벽해로다! 얼쑤!”
“상전벽해가 뭔데?”
박하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밴은 천천히 이동했다. 도로까지 진출한 사람들 탓에 빨리 이동할 수 없기도 했고, 밴에 달라붙는 사람들도 있었다.
밴은 연예인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오늘 초대 가수 리스트를 보면 밴을 탈 만한 연예인은 우리뿐이었다.
우리를 가까이서 보고 싶어선지 위험천만하게 차를 손으로 두드리면서 테오라를 울부짖는 사람도 있었다.
“창문 열 생각은 하지 말고.”
“당연하죠.”
다행히 여유 있게 출발한 덕에 예정 시간보다는 이르게 도착했다.
무대가 있는 대공연장 구석에 밴을 세운 후, 준현 형은 로드 형에게 몇 가지 지시를 하더니 축제 운영진을 본다며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무대의상과 메이크업을 점검하고 목을 풀었다.
“어우, 사람 수 봐! 우리가 갔던 대학 축제 중에서 제일 많은데? 한 4만 명 될까?”
“…이 대공연장 수용인원 많아 봐야 만 명으로 보이는데.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우리 때문에 인명 사고 났다는 얘기 안 듣고 싶으면.”
선팅이 짙게 된 창문 밖을 두리번거리던 오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무리 봐도 대학 내 자체적인 진행요원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인원이 아닌 것 같았다.
초대권을 미리 배부했다는데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나 축제 소식만 듣고 놀러 온 사람들에게는 전달되지 않은 듯했다.
작년까지 한국대 축제는 한산했기 때문에 초대권이 존재하리란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준현 형 올 때까지 기다려보자. 축제 운영진 측에서도 생각이 있겠지.”
무대에 올라가면 안전에 유의하라는 멘트도 꼭 넣기로 했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관객분들이 질서를 지켜주지 않으면 아수라장이 되는 건 순식간일 테니까.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함께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준현 형이 차에 다시 탔다.
“운영진 측에서도 예상 못 한 사태라 우왕좌왕하고 있더군. 스태프 추가 배치하고 경찰에 출동 요청하는 걸로 이야기 끝냈다. 회사에서 경호원도 추가로 불러줄 테니까 큰 문제는 안 생기겠지. 대신 30분쯤 대기해야 한다.”
“휴! 관객들 안전을 위해서라면 30분은 가뿐히 참을 수 있어요!”
“그 30분, 대스타가 된 기분으로 즐겨볼게요. 금방 지나갈걸요.”
초록 형 말대로 우리가 무대에 오를 시간은 금방 찾아왔다.
밴에서 나와 야외무대까지 가는 길이 그리 길지도 않았는데 상당히 힘겨웠다.
경호원보다 경호원 같은 준현 형과 경찰, 스탭분들이 없었다면, 무대에 올라가기도 전에 무대 의상이 넝마가 되고 머리가 산발이 되어버릴 뻔했다.
“아우! 무서워라….”
나중에 다시 빠져나갈 땐 괜찮을지 걱정이었다. 법학과 주점에 가겠다고 얘기했는데 이 상태라면 가는 게 민폐일 것 같았다.
“이제 우리 순선데, 다들 정신 돌아왔어?”
“내 정신은 가출 안 했어.”
“돌아왔습니다!”
“귀가 먹먹한데 괜찮아.”
“오늘 우리 보러 온 분들이 많긴 한데 이걸로 쫄리는 사람?”
쫄려도 여기선 안 쫄린다고 대답해야만 할 것 같았다. 내가 쫄린다는 얘기는 절대로 아니고!
“좋아. 이원이네 학교니까 특별히 더 끝내주는 무대 보여주고 오자. 준현 형한테 물어봤는데 이 뒤에 무대 일정 없다더라.”
초록 형이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눈치채지 못한다면 바보였다. 과하지 않게 곡을 늘려도 된다는 뜻.
멤버들의 얼굴을 봤더니 만족스럽다는 듯이 각자의 성격대로 웃음 짓고 있었다. 나도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잘할 거라고 믿어. 우린 테오라니까.”
“그럼! 우린 테오라니까!”
당당하게 사람의 파도를 가르고 몇 개 안 되는 계단에 올라설 때마다 환호성이 점점 고조됐다. 덩달아 심장도 기분 좋게 뛰었다.
무대에 설 때 살아 숨 쉬는 기분을 느낀다고 했던 뻔하디뻔한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음을 실감했다.
무대 가운데에 정렬한 우리는 이곳에 있는 모든 분께 힘차게 인사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이 모이는 한국대에서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테오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