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03
한국대 봄 축제 (2)
“테오라! 테오라! 테오라!”
우리가 한마디 던질 때마다 빼곡한 객석에서 천둥이 치는 것만 같았다. 마이크가 없었더라면 성량이 아무리 좋아도 목소리가 묻혔을 상황이었다.
“저희 보러 와주실 거라고 기대는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와주셔서 놀랐어요!”
무대 앞의 스탠딩 석은 만원 지하철을 연상케 했고, 계단 형태의 좌석 구역에 앉은 사람들은 바짝 붙어 있었다.
사실, 좌석이 어디고 아닌 곳이 어딘지 구별이 되지 않을 만큼 눈앞이 전부 사람뿐이었다.
내가 저 속에 있었다면 숨이 턱턱 막혔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수용인원보다 많은 분이 모였어요. 원칙대로라면 멀리까지 찾아와주신 분들을 돌려보내야겠지만….”
“안 돼에엑?!”
“싫어어억!”
격한 반응 사이에서 간간이 좋다는 대답도 같이 돌아왔다. 아마도 초대권을 가진 분들이 아닐까.
초대권을 가지지 않은 사람을 교내에 들여보낸 건 축제 운영상의 미숙 때문이었지만, 어쨌거나 이미 여기까지 들어온 분들을 내쫓는 것도 어려웠다.
“여러분이 질서를 지켜주지 않으시면 사고가 날 수도 있어요. 우리 재밌게 즐겨보려고 모인 거잖아요. 사고 나면 안 되겠죠?”
“네에?!”
우렁찬 대답이 돌아왔다.
“약속하는 거예요. 앞으로 밀지 마시고 이동하실 때는 스탭분들의 안내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해주세요.”
스탭, 경찰관, 뒤늦게 도착한 경호원분들까지 긴장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노래를 시작한 후 이 대인원이 어떻게 움직일지 종잡을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여기, 우리 학교에서 우리가 무대를 선보이다가 사고가 난다면 나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오늘이 나쁜 기억으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노래가 시작되기 전에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테오라 함이원입니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여기 한국대 다니는 학생이기도 해요.”
“멋지다! 한국대!”
“우리 법학과 신입생이다악!”
격한 반김에 웃음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네. 저는 한국대 법학과 신입생이고 그래서 한국대 축제에 꼭 오겠다고 졸랐어요.”
“우어어어?!”
솔직히 말하자면 졸라보기도 전에 이미 스케줄이 정해져 버렸지만, 만약 한국대를 빼려고 했다면 졸라봤을 터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MSG를 살짝 첨가했을 뿐!
“제게는 뜻깊은 무대이기도 한데요. 이 무대가 나쁜 기억으로 남지 않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네!”
“도와줄게!”
“테오라가 함께하는 무대에서 날뛰지 않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알아요.”
“으하하하!”
“어렵지!”
“어려워 죽겠다!”
우스갯소리를 한번 해봤는데 흥겹게 받아주셔서 다행이다. 아무런 반응이 없거나 야유가 터져서 나 혼자 뻘쭘해질 각오도 했는데.
“그래도 그 흥을 되도록 작은 동작으로 표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관객들을 배려하는 매너, 약속해주실래요?”
“약속해!”
“약소옥?!”
“이원아! 나만 믿어!”
한 분은 야외 공연장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대단한 성량으로 약속해주셨다. 저런 성량의 소유자가 성악과가 아니라면 조금 안타까울 것 같다.
“약속 지켜주실 거라고 믿을게요.”
한쪽 눈을 찡끗거리고 돌아보자 멤버들이 호선을 그리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럼 바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곡은 테오라의 데뷔 타이틀, 각인입니다.”
상황을 살펴 가면서 타이틀을 중심으로 최대 5곡까지 부르는 것으로 정했다. 첫 번째 곡은 만장일치로 각인(Imprinting).
제일 유명한 곡은 아니지만, 적당히 몸을 달굴 수 있는 곡이었고 가사도 ‘시작’에 어울리기 때문이었다.
동선에 맞춰 자리 잡고 나서 수많은 관객과 눈을 마주쳤을 때, 반주가 흘러나왔다.
* * *
축제는 절정을 향해 갔다. 다행히 네 번째 무대가 진행될 때까지 특별한 사고는 없었다.
조금 답답해 보이긴 해도 관객분들은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생생한 표정은 거짓으로 꾸며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를 보러 와주신 만큼 테오라의 타이틀은 아는 분들이 많아서 야외무대를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로 만들어진 노래로 수놓았다.
아마 공간만 충분했다면 포인트 안무 정도는 따라 하셨을 터다. 지금도 박자에 맞춰서 어깨를 흔들었는데, 그 꿈틀거림이 휴대폰 불빛과 합쳐서 마치 하나의 우주처럼 아름다웠다.
“이제 마지막 곡인데요.”
“안 돼! 더! 더!”
“무슨 곡이 나올지 다들 눈치채셨나요?”
“탈출해!”
가지각색의 음색이 만드는 화음이 나를 기운 나게 만들어줬다. 우리의 노래와 춤을 바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다.
벅차오르는 가슴을 다독이면서 옆에 있는 초록 형이 든 마이크에 얼굴을 들이댔다.
“지금까지 안전하게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까지 멋진 무대 만들어주실 거죠?”
“네에?!”
무대 위에 서는 우리만 잘한다고 해서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무대가 만들 순 없었다.
무대 뒤 스태프분들의 헌신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무대 아래 있는 관객들이 마음을 열고 혼연일체가 되어 줘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사고 나기 쉬운 상황인데도 누구 하나 집중력을 흩트리지 않았으므로.
감사한 분들에게 우리가 보답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 최선을 다해서 즐거운 무대를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멤버들과 눈맞춤을 하는 타이밍에 맞춰 MR이 흘러나왔다.
두 번째 앨범이자 첫 번째 미니 앨범의 타이틀, 탈출해(Escape)는 에너지 소비가 상당한 곡.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미 네 곡을 소화한 후였다. 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 곡만 부르고 나면 무대에서 내려가 집에 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너무 즐거워서, 완벽한 지금을 일 초라도 더 길게 느끼고 싶다는 소망 때문인 것 같았다.
다들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고 내 멋대로 믿어버리기로 했다.
잠시 느슨하게 풀렸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노래에 맞춰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몸이 기억할 때까지 연습해야 한다고 농담처럼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농담이 정말 현실이 되어버렸다.
점프의 연속이라 노래 중반쯤 가면 다리가 무거워지는데 오늘은 반대로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중력이 내게만 가볍게 작용하는 기분이랄까. 들뜨는 기분을 느끼며 높이, 더 높이 뛰어올랐다.
“다 같이 불러주세요!”
여기서 탈출해 지금 당장
여기서 탈출해 지금 당장
여기서 탈출해 right now
한쪽에서 시작된 가사 바꾸기는 객석 전체로 퍼져나갔다. 원래 가사 ‘탈출해’ 대신에 ‘사랑해’를 넣고 있었다.
대학 축제고, 즐거운 시간이니만큼 탈출보다는 사랑이 적절할지도?
우리도 응답하듯 가사를 바꿨다.
“오, 오, 오?!”
기교 넘치는 바이브레이션 대신 3단 고음으로 관객들에게 화답했다.
원래 깔끔하게 3단 고음이 들어가는 부분인데 평소보다 길게, 고음의 조합으로 바리에이션을 넣었다.
반응은 바로 쏟아져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아무래도 썩 괜찮았나 보다. 괜히 자신감이 차올라서 입술을 늘여 씩 웃어 보였다.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무대의 묘미. 나는 그 묘미를 이제야 조금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원래 신나는 곡이긴 하지만, 원곡보다 빠른 템포로 눈치채기 힘들 만큼 미세하게 조절했는데 적절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미묘한 차이지만 듣는 사람들의 반응이 더 격렬했다.
앞에서 미리 예열을 해뒀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나도 오늘따라 심장이 뛰는 걸 보면 뭔가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템포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깊은 고민은 나중으로 미뤄두고 무대에 푹 빠져들었다.
노래가 끝을 향해 갈수록 아쉬움이 커졌다. 이 시간이 더 영원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서 사랑해 right now
and for ever
마지막에 가벼운 바이브레이션 대신 즉석에서 가사를 추가해봤다. 시간이 앞으로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전해졌을까?
“저희와 함께해서 즐거운 시간 되셨나요?”
“네!”
“아쉽지만 저희는 이만 물러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남은 축제 알차게 즐기시고 집까지 안전하게 돌아가시기 바랄게요.”
“우우우?”
야유도 터지고 앵콜 요청도 길게 들어왔지만, 주변은 완연한 밤이 되어 있었고 시간도 늦은 상태였다.
나도 더 오래 함께하고 싶지만, 이 많은 인파가 대학교 내에서 빠져나가 집에 돌아가는 것까지 고려해야 했다.
자차가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오신 분들도 많을 테니 막차 시간까지 아슬아슬하게 잡아둘 수도 없었다. 아쉽지만 여기서 마쳐야 했다.
“천천히! 앞에 있는 분들은 아직 움직이지 마시고요! 뒤에서부터 천천히 빠져나가 주세요!”
뒤엉켜버린 사람들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관객이 반 정도 빠져서 문제가 생기지 않겠다 싶을 상태가 된 후에 무대에서 내려왔다.
밴에 타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푸하! 끝까지 마음 졸였다니까! 우리 때문에 사고 날까 봐 조마조마했어! 진짜!”
“그래도 재밌었지?”
“응응! 진짜!”
“역시 현장감은 무시할 수가 없네.”
말로 딱 꼬집어 얘기할 수는 없어도 영상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무언가의 역할은 간과할 수 없었다.
“하, 피곤한데 잠이 안 올 것 같아.”
머리만 대면 잠드는 지온까지도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눈을 말똥말똥하게 뜬 채였다.
“이원이는 어떡할래? 주점 가볼래?”
이것저것 챙기는 동안 관객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렸다. 일부 관객들이 남기는 했지만, 밤이 늦기도 했으니 더 한산해질 거다.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할 학생들도 그렇게 많지는 않을 테고, 얼굴을 적당히 가리면 소란이 크게 생길 일은 없을 듯했다.
“다녀올까…. 준현 형, 저 다녀와도 되죠?”
“음, 그래. 무슨 일 있으면 나 불러라. 괜히 혼자 해결하려고 들지 말고.”
“네. 그럴게요. 돌아갈 땐 콜택시 불러서 갈게요. 다들 먼저 쉬고 있어.”
“혼자 두고 가기 불안하지만, 알았어. 수호한테 데려다 달라고 하던지.”
“술 안 마시고 인사만 하고 나올 거야. 잠깐 들를 건데 별일 있겠어?”
화려한 무대 의상을 지우고 무대 의상을 후드티와 청바지로 갈아입으면서 대꾸했다.
모자를 쓰고 마스크까지 착용하니 이 정도면 쉽게 알아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녀올게!”
* * *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분명히 멤버들에게 말한 대로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전부 거절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수호에게 들었던 장소를 두리번거리며 찾아왔을 때, 법학과 주점은 웬일인지 만석이었다. 오랜만에 법학과 주점이 열렸다는 소식에 고대 화석이나 다름없는 선배들이 대거 출몰했기 때문이었다.
과 주점이 아니라 거의 동문회 수준의 행사였다.
하늘, 아니 우주 같은 기수의 선배님들은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수다 속으로 나를 빠뜨렸다. 내가 대답하는지 안 하는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원아, 화장실 다녀온다고 하고서 얼른 튀어.”
“과대! 너 뭐라고 했어! 나 눈치 딱 깠다? 쟤 도망가라고 했지?”
내게 속삭이는 수호의 목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나를 빠져나가게 해주려는 티가 났던 모양이다.
“잠깐 인사만 드리려고 왔습니다. 인사드렸으니까 이만 가보겠습니다. 내일 스케줄도 있어서요.”
“이대로 가면 아쉽지이~. 더 놀다가 가, 삼십 분만! 아니 십 분만! 지금 가면 너 우리 대! 법학과를 무시하는 거야!”
내 일정은 술주정뱅이의 관심 밖이었다. 논리는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으로만 적용했다.
“함이원이! 너 이대로 가버리면 나 운다? 울 거야, 엉엉!”
소리 없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