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08
입원 소식
아침형 인간인 서혼 형이 일찍 일어나는 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 그렇지만 지금 시간이면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씻었을 시간인데 머리카락이 젖어있지 않았다.
“운동 안 나갔어? 어디 아픈 건….”
“아니야. 밤새 사건 터졌길래 일부러 안 나갔어.”
운동하기 편하도록 빌라 단지 내에 피트니스센터는 물론 공원도 조성되어 있었다.
서혼 형의 운동량을 채우려면 공원을 몇 바퀴는 돌아야 하지만, 큰 장점도 있었다.
이 주변 이웃들은 연예인을 봐도 무덤덤하게 반응한다는 점. 연예인에게 열광하기엔 사회적 위신이 신경 쓰이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그런 듯했다.
게다가 사생활 보호도 완벽해서 얼굴을 드러내고 조깅해도 되는 곳이라고 서혼 형이 좋아하던 날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기자가 접근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몸 사리려고.”
“우리야 별로 영향 없겠지만, 초록 형이 퇴원할 때가 문제겠다. 병원 앞에 기자들 몰리겠지?”
바로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서혼 형은 쓰게 웃었다.
우리가 두런두런 얘기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지온이 나오고 바로 홍오란도 뒤따라 나왔다.
“Good morning.”
실크 잠옷을 입은 지온은 잘 잤는지 머리에 새집이 잔뜩 생겨 있었다.
“새벽부터 난리던데?”
반면 오란은 어젯밤부터 폰을 얼마나 들여다봤는지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안 잤어?”
“자긴 했어. 정확히는 자다 깨다 했지.”
소파에 눕듯이 앉은 오란은 하품하면서 눈을 감았다. 피곤하고 잠이 안 올 때 눈이라도 감고 있으면 그나마 낫긴 했다.
“우리는 꼼짝없이 숙소에 있어야겠네.”
다른 멤버들까지 병원에 등장했다가는 기자들의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 될 터였다.
“박하가 조금 아쉬워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우리보다 팬들이 동요하는 게 문젠데….”
좋아하는 사람이 손가락만 베여도 가슴이 덜컹거리기 마련. 찌라시는 계속 가짜 뉴스를 확대 재생산해내면서 초록 형이 활동 중단까지 고려할 정도의 심각한 질병을 앓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시한부 선고가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랜만에 들어간 커뮤니티에선 우리 팬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댓글이 잔뜩 달려 있었는데, 하나같이 패닉 상태였다.
– 남그린 쓰러졌다는 거 트루?
└ㅇㅇ병원 목격담 떴음 아픈 건 확실함
– 이럴 줄 알았어 한 떨기 유리 꽃처럼 여린 애기들 데리고 스케줄 지옥이 말이 되냐!!!!
– 그래서 어디가 아픈 건데
└2222
└3
└4.. 누가 속 시원하게 말해줘 제발..
– 누구 관계자 없음???? 와 돌겠네
– 다른 멤버들은 멀쩡해? 사고 당해서 쓰러진 건 아니지?
– 쓰려졌으면 바로 특종 각인데 어제 일이 안 알려졌으면 이유 있는거 아님? 심각하다는 찌라시도 돌던데 사실인가
– 과로 아니고?ㅜㅜ
– 내 지인 언니가 하눌 다니는데 거기 비상 걸렸대!
└지인 좋아하시네
└내 지인의 지인의 지인도 하눌 다니는데 미주신경성 실신이라드라
└그쯤 되면 쌩판 남 아니rㅋㅋㅋ
– 하눌은 테오라 멤버들 전부 종합건강검진 시켜라!
└그렇게 굴릴 거면 이게 맞지
– 그래서 남초록 어디 아픈 건데!
└눈 뒀다 국 끓여 먹냐? 모른다잖아 ㅅㄲ야
– 남1초1록 정밀검진 받는다고 함. 걔 일하는 병원에서 일하는 친구가 알려줌.
└정밀검진..? 그거 아무 때나 받는 거 아니지 않아..?
└보통 병명 알아내지 못하거나 이상 소견 보였을 때 하긴 해
└진짜임? 네 XX 걸고?
└ㅅㅂ 이런 데 내 XX까지 걸어야 되냐? 아이돌에 미쳤으면 얌전히 방구석에서 니 오빠나 빨아 내 XX 노리지 말고
– 초록이 어떡해..ㅜㅜ
– 심장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져서 흩날리누나
– 공식 입장 언제 나오는데
└지금 새벽이니까 오후에는 나오겠지?
└손 대표! 오늘 내에 공식 입장 내놓지 못할까!
차라리 오늘 기자들한테 직접 사진을 찍혀서 근거 없는 낭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게 나을 것 같아 보였다.
초록 형이 멀쩡히 걸어 나오는 사진 하나로 전부 해결될 문제니까.
큰일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나까지 덩달아 불안해질 정도라니…. 이대로 놔둬선 안 될 것 같았다.
징?
“초록이 이제 일어났나 보네. 괜찮은 것 같지?”
귀신같이 자기 얘기 하는 걸 눈치채고 톡을 보내왔다. 단체 톡방에 올라온 톡은 초록 형답지 않게 조심스러웠다.
[나 일어났어.]. [미안….] [석고대죄라도 할까..?]손을 모아 싹싹 비는 여우 이모티콘까지 붙어 있었다.
“찔리긴 하나 봐?”
“미안해해야지. 몇 명을 걱정시킨 건데.”
우리 멤버들을 포함해서 초록 형의 가족들, 회사 관계자분들과 어제 스케줄에서 만났던 뉴튜버 스태프들, 그리고 초록 형의 소식을 들은 팬들까지. 수많은 사람이 초록 형을 걱정했다.
원하진 않았지만, 건강에 소홀했을 때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직접 체감해버렸다. 앞으로 더 조심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상태는 어때?] [열 다 떨어졌어] [집에서 더 쉬면 될 것 같대] [바로 퇴원하려고]“초록이 퇴원하면 오늘 어떻게든 일단락되긴 하겠구나. 그나마 다행이다.”
초록 형이 하룻밤에 기운을 차려서 혼란에 빠진 팬들에겐 천만다행이었다. 아직 초록 형의 입원 소식을 듣지 못한 분들은 지나가는 트러블로 넘길 수 있게 됐다.
“난 자러 간다. 점심 먹으러 안 나와도 깨우지 마.”
오란은 부족한 잠을 보충하겠다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지온은 신선한 채소와 수제 치즈를 넣은 샐러드와 빵, 생과일주스로 식탁을 채웠다.
평소보다 확연하게 적은 양에 가슴이 허했다.
* * *
인기 아이돌 테오라의 리더이자 메인 댄서인 남초록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은 기자들에게도 빠르게 퍼져나갔다.
병원 내에 잠입하려는 파파라치들도 있었지만, 그때는 이미 VIP 병실로 옮겨진 후여서 그들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들은 병원 관계자가 영업방해로 고소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나서야 물러났다.
금방 퇴원할 거라는 정보만 어떻게 주워들은 그들은 병원 정문 앞에서 진을 치고 시위하듯이 기다리기 시작했다.
정문과 후문을 점령하고 카메라를 들이민 그들은 하이에나나 다름없었다.
그 탓에 병원에 방문하려던 환자들이 뒷걸음질 치기도 했다.
“…병원에 무슨 일 있대요? 병원 오다가 돌아갈 뻔했잖아요.”
진료 접수를 마치고 병동으로 이동해 하염없이 대기하던 남자는 수군거리던 사람 중 아주머니 한 분을 골라 슬쩍 물었다.
“연예인이 입원했다네요.”
빙고. 인상 좋은 아주머니는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는지 술술 설명했다. 어쩐지 무리의 중심이 되어서 대화를 이끌어가더라니.
“아하.”
심각한 의료사고라도 일어났나 해서 돌아갈 생각까지 했던 방문객은 김이 빠졌다. 연예인 하나 아프다고 저만큼 유난을 떨다니 역시 기레기라고 혀를 찼다.
“어…?”
“왜 그러세요?”
“저 사람들 연예인 일행 같지 않아요?”
옆의 아줌마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세 명의 일행이 있었다. 아줌마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절도 있는 자세에 냉기를 풀풀 뿜고 있는 체격 좋은 사내 하나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꽁꽁 숨긴 호리호리한 남자 한 명, 그리고 부티를 두르고 태어났을 것 같은 30대 후반의 여성 한 명.
경호원과 스타, 소속사 직원의 구성이라면 딱 어울릴 법했다.
“흡! 초록…!”
“그러네요. 그런데 왜 여기로…?”
“이 대기실이 후문 주차장 가는 길이랑 연결되어 있다던가 그렇다더라고요. 이 병원 다니는 지인이 있거든요.”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정보까지 알아야 했지만, 궁금증은 풀렸다. 기자들까지 동원할 정도의 인지도라면 자신도 아는 연예인이어야 했다.
굳이 검색하지 않아도 뉴스 메인 기사에 떡하니 올라와 있었다.
“테오라 멤버였구나. 남초록….”
“아! 알았다!”
옆에 있던 다른 아주머니가 손바닥에 주먹을 쳤다. 적당히 웅성대는 가운데 그 소리가 툭 튀어서 시선이 집중됐다.
“뭐가요?”
“방금 연예인 일행 중에 여자 있잖아요. 어디서 봤다 싶더라고요.”
“그 여자분이요? 소속사 대표나 관계자 아닐까요?”
“소속사 대표는 아니에요. 저 아이돌 소속사 대표는 아저씨거든요.”
옆에 앉아있던 학생이 끼어들었다.
길고 지루한 대기시간을 때울 만한 흥미진진한 주제에 처음 보는 사람까지 자유롭게 대화에 끼어드는 분위기라 저도 모르게 나선 듯했다.
“제가 테오라 팬이라서….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아가씨.”
“그 여자분은 가족이었나 보죠. 젊어 보이긴 했지만, 요즘 워낙 관리 잘한 사람이 많아야지.”
“음? 어? 그럼! 어머어머!”
연신 감탄사만 쏟아내는 아주머니 덕에 여자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됐다.
“말해봐요. 뭔데 그래! 애간장 타들어 가는 거 안 보여요? 얼른!”
“제가 남경욱 배우 오래된 팬인데 말이죠. 가족들은 거의 공개 안 했지만, 그래도 몇 번 방송을 타긴 했잖아요. 아시는 분들 계시려나?”
“알죠. 결혼할 때 신부 얼굴 다 보도됐기도 하고 그 이후에 같이 TV 출연한 적도 있던가 그랬죠?”
“남 배우 결혼할 당시엔 초상권이나 그런 게 보호나 됐나요. 찍어서 올리면 장땡이었지.”
당시는 사생활 보호라는 개념조차 희미한 시기였고, 배우 남경욱은 그 당시에도 사람들의 관심을 전부 쓸어 모으고 다니는 탑급 배우였다.
그 이후에 남경욱의 사생활 파문으로 시끄러워지고 나서는 가족은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 혹시…!”
“맞아요. 방금 그 여자분, 남경욱 배우 부인이신 것 같아요.”
“남경욱 배우 부인이 연예계 일 한다는 소리는 없었죠?”
“아닐걸요. 의류 사업한다는 얘기는 들었던 거 같은데….”
“…남경욱, 남초록?”
“허, 그러네! 남 씨가 흔한 성도 아니고! 오늘 입원했다는 애가 남경욱 배우 아들인 거네요!”
전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배우 남경욱은 1남 1녀를 뒀다고 알려져 있었다.
“연예인의 피가 흘렀던 거구만.”
대기실에 모인 이들은 이미 남초록을 남경욱의 아들로 단정 지은 후였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까지 얘기 안 하고 참았대요?”
누구의 아들, 누구의 손녀. 혈연마저도 연예계에선 하나의 선전 도구가 된다. 이제는 인맥을 이용하지 않으면 바보 취급받는 시대이기도 했다.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아도 막상 그런 상황에 부닥쳤을 때 오롯이 자기 힘으로만 헤쳐 나가겠다고 선택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걸 알기 때문에 대중이 암묵적으로 묵인해주는 사항이기도 했다.
“초록이가 남경욱 배우님 아들…. 헐헐헐….”
“남경욱 배우 후광이면 단숨에 유명해질 수 있지 않아요? 이름 하나 못 알리고 사라지는 아이돌이 얼마나 많은데…. 보통 심지가 아니네요.”
“아빠 힘 안 빌리고 자기 힘으로 유명 아이돌이 된 거래요? 기특하네. 우리 아들이 반만 닮았으면 좋겠네!”
시시콜콜한 연예계의 소문들이 대화의 주제로 하나둘 흘러나오는 동안 환자들의 이름이 하나둘 불렸다.
남자는 다른 사람이 선수 치기 전에 이 특종을 팔아먹을 생각으로 가득 차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자기의 행동이 자기가 욕하던 기레기의 행동과 다르지 않음을 끝까지 깨닫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