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10
초대
초록 형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병원에서 너무 자서 잠이 안 온다고 하더니 일찍 일어나버린 것 같았다.
“이게 뭐야…. 내가 자리 비운 사이에 난리가 났어, 난리가.”
팬카페, SNS, 커뮤니티를 살피던 초록 형이 한탄했다. 자기가 없는 하루 사이에 온갖 헛소문이 다 등장했단다.
“이 쓰레기들이 나 없다고 살판났네? 이때다 싶었나.”
불씨가 커지기 전에 근거 없는 가짜 뉴스를 조목조목 반박하던 소방관이 없을 틈을 노린 시도들이 보인다고 했다.
온갖 음지를 순찰하면서 증거 자료를 수집해두고 심하다 싶으면 고소해버리는 행동력까지 갖춘 초록 형이다. 허위 사실 유포자들이나 악플러들의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이게 말이 되나? 내가 자리를 일주일을 비웠어, 한 달을 비웠어. 고작 하룻밤 없었다고…. 이러니 내가 손을 놓을 수가 있나.”
“…쉬엄쉬엄해. 오늘 퇴원했잖아. 안정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
“이원아. 나는 이게 쉬는 거야. 그리고 몸은 편하게 누워 있잖아? 지온이가 보양식을 끝도 없이 대령하고 있기도 하고.”
초록 형은 왠지 기뻐 보였다. 자신을 둘러싼 머리 아픈 상황에서 스트레스 풀 거리를 찾은 듯했다.
초록 형의 레이더에 걸릴 나쁜 사람들을 위해 묵념했다.
“주말까지 숙소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쉬어야 하는데 다들 계획 있어?”
서혼 형의 질문에 바로 떠오르는 약속이 하나 있긴 했지만, 바로 말하지 않고 멤버들이 얘기를 먼저 기다렸다.
“얼마나 오래 잘 수 있는지 한계를 체험해볼래!”
“음, 박하야…. 과도한 수면은 몸에 좋지 않아.”
“그럼 적당히 자고 빈둥거리면서 뉴튜브 보기! 이건 괜찮지?”
평범한 사람들의 쉬는 날이 그런 식이라는 얘기는 들었다.
나는 쉴 때 보통 음악을 듣거나 악기 연주하거나 미술관에 갔었다. 음악회나 발레, 뮤지컬도 자주 봤고.
데뷔한 후로는 스케줄이 비면 보통 멤버들이랑 같이 연습실에 출근했었다.
“쉴 때 하겠다고 생각해둔 게 있는데 쉴 수 있다니까 별로 안 땡겨. 영화나 볼까.”
오란은 쿠션을 껴안고 리모컨으로 영화 목록을 뒤적거렸다. 앞머리를 위로 묶어 사과머리를 만들었는데 아무 위화감이 없었다.
“우리가 안 나가면 사람을 불러도 되는 거지?”
“이원아, 누구 부를 사람이, 아! 대학교 친구 말하는 거구나?”
“응. 저번에 나 데려다줬던 수호.”
“우리가 숙소로 초대한 거고 마침 숙소에 박혀 있어야 하니까 잘됐네. 시간 언제 괜찮은지 물어봐.”
다들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아직 멤버들은 친구를 초대한 적은 없는데, 수호를 시작으로 초대할 손님이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끼리끼리’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멤버들과 친하다면 좋은 사람들일 테니 나도 친해지고 싶었다.
“바로 연락해볼게.”
* * *
수호는 바로 다음 날이 강의가 없는 날이라면서 우리 숙소에 방문했다. 타이밍이 좋았다.
초록 형에 대한 기사로 한창 시끌벅적한 터라 우리도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배수호입니다.”
“어서 와. 수호야. 우리 멤버들끼리도 형이라고만 부르고 전부 말 놓거든? 그러니까 너도 편하게 해도 돼.”
서혼 형 특유의 친절한 말투로 수호에게 말을 걸었지만, 여전히 불편해 보였다.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수호는 혼자서 여섯 명의 뜨거운 관심을 견뎌내야 하는 거니까.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수호의 친화력이라면 금방 형 동생 사이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 소개는 안 해도 되지?”
“네, 음. 알아요.”
“말 편하게 하라니까 그러네.”
“응, 그럴게요.”
“너 안 잡아먹어. 이원이 손님이고 테오라 숙소에 온 첫 방문객인데.”
초록 형, 그런 꿍꿍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하면…. 나를 놀리던 버릇이 수호에게까지 퍼진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나서야 할 때다.
“수호가 선물 들고 왔대.”
수호가 대형 장바구니를 펼쳐 선물을 주섬주섬 꺼냈다. 부피가 상당했다.
“와와와와! 이게 뭐지!”
“친구 집에 오는데 무슨 이런 선물까지. 무리한 거 아닌가 모르겠네.”
“누나한테 물어봤는데 잔뜩 싸줘서 어쩔 수 없이. 이거는 미용기긴데 누나가 테스트만 해보고 안 쓴다고 해서….”
어지간히 반말이 불편한 것 같았다. 수호는 마지막에 붙는 서술어를 빼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괄사 마사지기랑 눈 마사지기랑 이거는….”
“…수호야? 방문판매 왔니?”
“비슷해 보일만 한데 아니야. 누나가 다 가져가야 한다고 우기도 했고 어차피 사용할 수 있는 사람한테 가는 게 좋으니까.”
선물이 과하긴 한데 일리 있는 말이었다. 우리는 대중의 시선에 자주 노출되는 연예인인 만큼 자기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니까.
“누나가 어릴 때부터 관리하는 것만이 오래 살아남는 지름길이라고….”
“오, 누님이 뭘 좀 아시네? 혹시 이쪽 분야에서 일하셔?”
“반쯤 은퇴한 배우죠. 활동할 때도 엄청 유명한 배우는 아니었고요.”
“이 세계를 아는 사람다운 뼈가 있는 조언이네. 다들 들었지? 똑똑히 새겨둬. 길게 활동하고 싶으면 미모를 관리하라는 연예계 선배님의 말씀이시다.”
“뼈에 새길게! 30대가 돼도 40대가 돼도 얼굴이 그대로여서 뱀파이어 소리 들어봐야지!”
40대의 박하가 저 얼굴 그대로라면 뭔가 무섭겠지만, 수호네 누나가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는 알 수 있었다.
가장 진지하고 심각하게 수호의 선물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오란이었다. 지금도 동안이지만, 계속 외모를 유지해서 귀여움을 오래오래 써먹겠다는 속셈이 아닐까.
“…이거야말로 투자일지도.”
“무슨 말이야?”
“외모 관리에 돈과 시간과 정성을 쏟으면 그만큼 길게 활동할 수 있겠지? 그러면 돈을 더 벌 수 있는 거고. 일종의 성공이 보장된 투자 아닌가 싶어서.”
외모도 경쟁력이라고 하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으려나? 나와는 사고 체계가 다르다는 점 하나는 확실했다.
수호가 내 옆에 붙더니 귀에 속삭였다. 너희 멤버들 진짜 개성 넘친다고.
너무나도 명료한 진실이라서 고개만 끄덕거리고 말았다.
“이건 내가 준비해본 선물인데.”
“또 있어?”
“별 건 아니고 보드게임. 여러 명이 놀만한 거 생각하다가 사 왔는데 혹시 숙소에 있으면 환불하고.”
수호가 가져온 보드게임은 나도 아는 종류였다. 그러니까 아주 유명하고 흔한 거였다는 뜻. 그렇지만 우리 숙소에는 그 흔한 보드게임조차 없었다.
숙소에서 보드게임을 할 시간조차 없었으니 사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뭘 사 왔든 중복되진 않을 거야. 우리 숙소엔 보드게임 아무것도 없어서.”
“…여섯 명이나 모여서 지내는데 부루마블을 한 번도 안 해봤다고? 쉴 때 뭐 해 그럼?”
우리를 대표해서 대답한 사람은 초록 형이었다.
“우리? 보통은 연습. 노래 연습이나 춤 연습이나. 작곡도 하고 작사도 하고 안무도 짜고. 기타 등등?”
“…그게 진짜야?”
수호는 좀처럼 믿지 못했다. 숙소에서 같이 살게 된 이후로는 초록 형 말대로 연습에 매진했다.
“그런데도 불만이 없어?”
“응.”
“워커홀릭들만 모인 그룹인가 봐. 그래서 일찍 빛을 보긴 했겠지만….”
가끔 통화하던 대로 걱정 섞인 잔소리를 다다다 쏟아내려고 하던 수호가 말을 삼켰다.
전에 얼굴은 잠깐 봤지만, 이번이 정식으로 처음 만나는 자리. 괜히 잔소리를 쏟아내 분위기를 망칠 필요는 없다는 생각 아닐까.
“수호? 무슨 요리 좋아해?”
지온이 대뜸 물었다. 벌써 자리에서 일어난 걸 보면 바로 요리에 들어가겠다는 의미 같았다.
“가리는 음식 없이 다 잘 먹어. 고기를 제일 좋아하긴 하는데 향신채나 향신료 잔뜩 들어가는 거 좋아해.”
“입맛 비슷해, 나랑. 그럼 오늘은 육류를 메인으로.”
향이 강한 요리를 선호하지 않는 멤버에게는 향신료나 향신채를 적게 쓰거나 쓰지 않을 테고, 수호와 지온 몫의 요리엔 반대로 잔뜩 들어갈 것이다.
지온은 자기와 비슷한 식성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는 게 기쁜지 목으로 바운스를 타면서 부엌으로 향했다.
“잠깐 숙소라도 구경하고 있어. 이원이한테 편한 옷도 달라고 하고.”
“응.”
수호를 데리고 거실을 한 바퀴 돌아서 내 방에 들어왔다.
냐앙! 냐냐냐!
웬일로 현이가 시끄럽게 우리를 맞아줬다. 아마도 이건 수호를 반기는 소리겠지.
“고양이 키운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엄청 귀엽다….”
“그치? 함현, 남자애고 두 살 아직 안 됐어.”
“만져봐도 돼?”
“응.”
수호가 바닥에 털썩 앉았다. 현이는 귀족처럼 기품있게 수호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수호는 현이와 눈을 마주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 키스라고 불리는 고양이 식의 눈인사였다.
냐?
현이는 그 인사를 다 받고 알았다는 듯이 짧게 울었다. 그다음 꼬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빙글빙글 돌면서 내 다리에 몸을 비볐다.
“너한테는 개냥이구나? 많이 부럽긴 한데 내가 집사한텐 이길 수 없지.”
“고양이 좋아해?”
“응. 고양이, 강아지, 동물이란 동물은 다 좋아하는데 누나가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안타까웠다. 지금은 결혼해서 나가서 산다고 해도 본가와 왕래를 끊진 않을 테니, 독립하지 않는 한 반려동물을 키울 순 없는 상황이었다.
“웬만하면 집에 들를 때만 약 먹으라고 해보겠는데, 입원할 정도로 심하거든. 근데 얘 진짜 귀엽다. 내가 고양이, 강아지 관련 뉴튜브 영상 많이 보는데 거기 나오는 애들보다 더 귀여워….”
만지고 싶다는 생각에 팔을 뻗어봤지만, 액체 같은 고양이는 수호의 손아귀를 손쉽게 빠져나왔다.
“현아. 이쪽은 배수호야. 형 친구니까 한번 만지게 해줄래? 그럼 이따 츄르 줄게. 어때?”
현이는 방바닥에 앉은 수호의 주위를 맴돌다가 무릎 위로 올라갔다.
“와…. 이게 진짜로 되는구나? 나 TV에서 보고도 안 믿었는데.”
고양이에 대해 웬만한 집사보다 더 공부를 많이 한 만큼 현이의 행동에 의구심이 계속 남았다고 했다.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 건 그렇다 쳐도, 변덕스러운 고양이가 부탁을 들어주는 게 습성에 안 맞다고 생각했다면서.
“현아? 이렇게 영리하고 착한 고양이를 만날 수 있어서 영광이야.”
그 말에 무릎에 앉아서 쓰다듬을 받던 현이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봤다. 그러더니 수호의 허벅지에 꾹꾹이를 하기 시작했다.
“헛, 나 꾹꾹이 처음 받아 봐….”
“네가 현이 마음에 들었나 봐. 평소엔 멤버들한테도 자기 못 만지게 하거든. 꾹꾹이는 당연히 안 해주고.”
“이런 고양이가 간택해주면 나 그날로 독립한다. 현이 같은 고양이가 또 있을지 모르겠지만.”
수호는 고양이 함현에 대한 찬양을 퍼부으면서 긴장을 완전히 풀어버렸다. 현이는 귀찮다는 듯이 꼬리로 수호의 손을 적당히 쳐냈다.
광신도가 자꾸만 생기는 걸 보면 아무래도 현이가 나보다 아이돌 체질일지도 모르겠다.
보드게임 결과, 우리 멤버들만 골고루 승리했는데 수호의 잔뜩 풀어진 분위기를 보니 접대 보드게임을 한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아닌가? 현이한테 홀려서 아직 혼이 돌아오지 않았나…?
어쨌거나 수호는 배가 터지도록 먹고 돌아갔다. 그 와중에 우리 멤버들이 끝도 없이 먹는 걸 보고 경악하는 일이 있었지만,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