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14
테오라 갑니다!
징? 징?
진동 모드로 바꿔 놓은 초록 형의 휴대폰이 마구 진동했다. 화면에 뜨는 이름을 보니 ‘아버지’였다.
초록 형은 그걸 확인하고서도 폰을 뒤집어 옷더미에 위에 던져놓기만 하고 받지 않았다.
“…왜 안 받아? 또 무슨 일 생겼어?”
한창 연습하다가 쉬는 시간이라 통화를 미룰 상황은 아니었다. 입원에서 부자 관계 탄로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 때문이라면 중요한 대화는 이미 나눈 걸로 알고 있었다.
“시끄럽게 잔소리나 쏟아낼걸. 안 받는 게 차라리 나아.”
“그래도 받는 게 낫지 않을까? 아들이 걱정돼서 전화하셨을 수도 있잖아.”
초록 형은 어딘지 촉촉해 보이는 서혼 형의 눈망울을 보더니 항복의 의미로 두 손을 들었다.
“오랜만에 고막 성능 점검할 수 있겠네.”
초록 형은 깊은 한숨과 함께 중얼거리면서 멤버들이 쌓아놓은 옷더미 위에서 폰을 찾아서 손에 쥐었다.
헛기침을 두어 번 해서 목을 가다듬더니 통화 버튼을 터치하니 남경욱 배우님께서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대기하고 있기라도 하셨나?
“…저예요. 초록이. 네. 몸은 멀쩡해졌죠. 그게 언젠데요. 입원할 정도도 아니었어요.”
아니긴. 부모님 앞에 허세 섞인 거짓말을 하는 건 자식의 공통 소양인가 보다.
“으, 네…. 알았어요…. 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남경욱 배우님의 음성이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반면 초록 형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어갔다.
“어후. 귀 따가워.”
한숨을 푹 내쉰 초록 형은 폰을 저 멀리 떨어뜨렸다. 웅얼거리는 목소리는 이제 잘 들리지도 않았다.
“우리 꼰대, 아예 안 들으면 안 듣는다고 또 한 소리 할 텐데.”
초록 형은 결국 스피커폰 모드로 바꿔서 소리를 줄인 후 바닥에 멀찌감치 내려뒀다.
그 덕에 남경욱 배우님의 끝없는 잔소리가 멤버들의 귀에도 꽂혔다.
[…가만히 있으면 지나가는 문제라고 하지 않았냐. 이쪽 생리가 그래. 반응을 해주지 않으면 재미가 없어서 금방 시들지.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잠잠해지긴 했지만…. 듣고 있냐?]“네~. 듣고 있고 말고요.”
[허튼짓은 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괜히 수습하려다가 낭패 보는 수가 있으니까.]이미 허튼짓은 다 해버린 후다. 감쪽같이 성공해버리기까지 했고.
“누가 들으면 제가 사고뭉치인 줄 알겠어요.”
[그럼 아니냐?]역시 아시는구나. 부모님인 만큼 초록 형의 본색을 잘 아시는 것 같았다.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가족이니까.
[기사 뜨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뭔지 아냐? 초록이가 행동부터 하지 말아야 할 텐데, 였다. 이놈의 자식아, 네 행동력이 얼마나 대~단했으면…!]초록 형 같은 아들을 키우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초고난도 육아일 테니까.
겉으론 말 잘 듣는 척하면서 뒤에서 교묘하게 대형 사고를 뻥뻥 치는 아들 아니었을까.
“제가 뭘 또 그렇게 대단했다고 그러세요.”
[몰라서 묻냐? 그간 보아온 내 아들은 그랬다만. 혹시 모르지 지금 터진 조 배우 스캔들도.]“…그거요?”
[뭐냐, 그 수상한 침묵은…. 설마! 남초록이?!]아, 들켰나? 부모의 감이란 엄청났다. 자식의 행동 방식을 읽고, 작은 어긋남으로 확신을 해버리는구나.
우리 부모님은 저러지 않으시니까 초록 형의 케이스가 특수한 것 같다.
[네가 그 폭탄 심지에 불붙인 미친놈은 아니라고 말해라, 얼른!]“그 미친놈 전데요.”
[어억!]듣기 편하게 스피커폰 모드로 전환해둔 터라 멤버들은 흥미진진하게 통화를 엿들었다. 아마 남경욱 배우님은 즐겁기는커녕 혈압이 오르시겠지만, 부자의 대화는 만담처럼 재밌었다.
박하는 두 손으로 입을 겹쳐 막았다. 웃음소리를 들키지 않으려는 애처로운 노력이었다.
오란은 삐뚜름하게 한쪽 입술 끝을 올렸고, 지온은 바닥에 대자로 누워 눈을 감은 채 어깨를 떨었다.
[이놈의 시키가! 사람들 눈 무서운 줄 모르고! 다 네 뜻대로 흘러갈 거라고 믿는다면 오산이다!]“다 제 뜻대로 흘러가게 철저하게 계획하고 여차하면 빠져나갈 구석도 만들어뒀으니까 염려 놓으세요. 아.버.지.”
[아이고, 이런 놈을 아들이라고 둔 내 죄지!]“그래도 우리 얘기는 쏙 들어갔잖아요? 아버지도, 아버지 소속사도 제 덕 보셨으면서.”
[누가 해달라고 부탁이라도 했냐!]“아버지. 병원에서 혈압 조심하라고 했다면서요.”
부모는 자식에게 이길 수 없다지만, 초록 형은 자식이 아니었어도 절대 지진 않았을 것 같다. 아슬아슬하게 선 위를 오가며 약 올리는 폼이 한두 번 해본 것 같지 않았다.
[그걸 아는 놈이?! 전화로 될 게 아니구만. 내가 당장 찾아갈 테니까 그때까지 얌전히, 알았냐? 얌전히!]“네네~. 알겠습니다~. 저 다시 연습 들어가야 하니까 2절은 나중에 하세요.”
[남초ㄹ?!]뚝.
우렁우렁 울리던 목소리가 일순간 끊겼다. 스피커폰으로 했는데도 귀가 얼얼한지 초록 형이 귓구멍이 다 아프다고 엄살을 피웠다.
“…이게 한국의 일반적인 아버지, 아들 사이?”
“아니아니! 절대 아니야! 예외 중의 예외라구! 지온 형이 잘못된 편견을 가지면 다 초록이 형 탓이야!”
“그게 왜 내 탓이야. 그리고 우리 부자 관계가 살짝 특수하지만, 그렇게 예외까진 아니거든? 예로부터 부자지간은 서로를 경쟁 상대로 인지하고….”
초록 형은 장황하게 헛소리를 늘어놨다. 어딘가에서 들은 얘기를 짜깁기해서 그럴듯하게 포장해버린 거였다.
“그래?”
“지온 형이 믿으려고 하잖아! 책임져!”
평소처럼 정신없는 난장판이라 마음이 편안했다. 테오라 멤버들의 텐션에 완벽하게 적응해버려서 멤버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 반사적으로 긴장이 풀리는 단계까지 왔다.
이렇게 변한 내가 재밌어서 저절로 웃음이 났다. 그러다가 멤버들에게 잡혀서 연습실 바닥을 한바탕 굴러야 했다.
* * *
테오라 멤버들은 체력을 백 퍼센트 회복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체력 게이지를 가득 채웠다기보다는 기합으로 게이지 용량을 키웠다고 해야 할까.
앨범 발매 준비에 본격적으로 들어가면서 멤버들의 넘치는 파이팅이 없던 힘도 더 솟아나게 하는 듯했다.
“활동에 무리는 없겠다. 그래도 중간중간 휴식 시간 배정한다고는 하시더라.”
“우리 때문에 코넬 선배님들 스케줄도 약간 여유로워졌다는데?”
한번 크게 데이고 나니까 미리 과로 방지책을 만들 필요성이 느껴졌나 보다.
코넬 선배님들이라도 그 혜택을 받아 별 탈 없이 오래 활동할 수 있게 되면 좋은 일이었다. 다시 해외 투어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들었으니 바로 체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 나무 선배님한테 연락받았어?”
“받았는데 고민 중이라.”
코넬의 팬 송 때문에 회사에서 짧게 짧게 만났었고 데모곡도 보냈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영상 통화로 극찬 세례가 쏟아졌다.
나는 수정을 염두에 두고 보낸 ‘1차’ 데모였는데. 완성도만 올리는 쪽으로 협의가 되어서 완성곡을 보내둔 상태였다.
해외 투어 전에 그 곡이라도 프로듀싱을 맡아줄 수 없겠냐는 부탁이 들어왔다. 우리 그룹의 상황을 알고 있기에 혹시나 하고 물어보는 듯했다.
“혹시 코넬 선배님 중에 프로듀싱 배우시는 분 있으셔?”
“나 알아! 딜리 선배님! 작곡이랑 프로듀싱도 오래 배우셨고 저작권 가진 곡도 여러 개 있어! 코넬 선배님들 앨범 중에 최애곡도 딜리 선배님이 작곡한 거야!”
장황한 설명이 튀어나왔다. 박하는 팬으로서 코넬이라는 그룹에 진심이었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진심으로 멋있다고 느낄 수 있는 아티스트이니 이상하진 않았다.
콘서트에 가본 이후로는 나도 팬이 됐다. 박하처럼 세세한 사항까지 궁금해서 파고들지는 않지만.
“굳이 내가 프로듀싱 하지 않아도 되겠다.”
“잘 생각했어. 이원이도 컨디션 조절할 줄 알게 됐구나?”
그보단 팬 송의 당사자 손에 맡기는 게 옳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다른 곡이라면 직접 프로듀싱까지 해야 맡은 일을 끝냈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뢰받은 곡은 다른 곡도 아닌 팬 송. 팬들을 위한 마음을 담은 만큼 코넬 선배님의 손길이 잔뜩 묻을수록 진심이 더욱 생생하게 전달될 거다.
추상적인 관념일지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믿고 음악을 만들어왔다.
“대대적으로 우리 컴백한다고 홍보도 마쳤고, 티저도 떴으니까 진짜 정규 앨범만 선보이면 되는구나. 네 번째 앨범인데 왜 매번 처음 같지.”
서혼 형이 내 속을 꿰뚫어 본 듯이 이야기를 꺼냈다.
기분 좋은 설렘이 온몸을 감쌌다.
새로운 음악, 새로운 춤, 새로운 컨셉으로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10년 후의 우리, 20년 후의 우리도 설레게 하겠지?
이 감정이야말로 우리의 원동력이다.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의욕이 마구 솟았다.
지금의 이 기분을 잊는 때가 온다면 그건 음악이 지긋지긋해질 때일 것이다.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아직 어수선해서…. 괜찮으려나?”
‘국민 쓰레기’ 사건은 여전히 활활 불타고 있었다. 고구마 넝쿨처럼 캐도 캐도 다른 증거가 나오기도 했고 규모 자체도 커서 엄중하게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특별 지시까지 내려졌다.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그쪽에만 집중돼서 우리 첫 정규 앨범이 찬밥 취급을 받으면 어쩌나 싶은 우려도 있었다.
“인정해. 이건 내 착오야. 쓰레기인 줄은 알았지만, 내 예상보다 훨씬 엄청난 쓰레기였더라고.”
뒤가 구린 사람이라는 걸 알아보더라도 그 속이 얼마나 썩었는지는 겉으로 봐선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문제였다.
“우리 컴백에 방해될 정도는 아닐 거야. 회사 판단도 그렇고.”
이제는 연일 올라오는 보도에 ‘또야?’ 하고 피로감을 호소하면서 지나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나만 해도 관련 기사만 봐도 떨떠름해졌다. 좋은 기사가 아니기도 하니까.
연관된 피해자가 많았고 연관된 죄목도 여러 가지여서 형량이 어떻게 떨어질지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는 이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한두 달에 끝날 사건이 아니었다. 길게 봐야 한다는 점은 다들 알 거다.
“상황에 상관없이 이번 앨범 대박 날 텐데! 난 걱정 안 해!”
“박하 말 잘했어. 바로 그거지.”
심혈을 기울인 앨범이고 내부 평가도 호평 일색이었다. 난 여전히 긴가민가한데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이 좋다고 하니 믿어보기로 했다.
인제 와서 무를 수도 없었다. 야심 차게 준비한 정규 앨범 발매일이 바로 내일이었으니까.
* * *
앨범 발매일인 오늘, 첫 컴백 무대는 뉴튜브에서 진행하게 됐다. 그리고 공중파 첫 컴백 무대는 내일 SBC 음악방송에서 갖게 되었다.
화요일에 방송되는 생방송 가요 프로그램이라 많은 가수의 컴백 무대를 책임지곤 했다.
오늘 진행하는 뉴튜브 라이브는 우리를 위해 촬영 일정까지 조정했다고 전해 들었다. 첫째 주로 컴백 날짜가 잡혔을 때 출연이 확정됐다가 미뤄진 스케줄이기도 했다.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우리를 섭외하고 싶을 만큼 테오라의 위상이 올라갔구나.
새삼스레 뿌듯한 기분으로 스트레칭을 하며 꼼꼼하게 전신 근육과 관절을 풀었다. 타이틀곡은 손의 사용이 많은 안무라 멤버들도 틈틈이 손목 운동을 했다.
힘이 들어간 헤어와 메이크업, 의상으로 전투 태세도 마쳤다.
“테오라, 들어오세요!”
“네! 갑니다!”
테오라를 보여주러 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