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28
TEORRA 1st Concert in Seoul (3)
함이원에게 애교를 보여달라는 요청이 이제껏 없었던 건 아니었다. 아이돌이 예능에 출연하려면 단단히 준비를 해야 했다. 뭘 시키든 준비된 자만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릴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까.
개인기도 애교도 아이돌에겐 기본으로 장착해두면 이로운 덕목. 함이원도 당연히 애교를 선보였던 적이 있었다.
물론 팬들은 어설픈 애교에도 좋아해 줬지만, 함이원은 될 수 있으면 애교를 보여달라는 요청이 안 들어오길 은근히 바랐다.
그래도 오늘은 단독 콘서트인 만큼 애교를 보여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온 상태라 부담감이 덜했다.
부끄럽긴 해도 팬들이 원한다면 못 할 일은 아니었고, 콘서트 하는 도중에 한 번쯤은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예상했으니까.
함이원의 애교 3종 세트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입안에 공기를 빵빵하게 집어넣고 볼을 검지로 콕 찍어서 귀여운 척으로 하나, 두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든 다음 풍선처럼 공기를 불어 넣어서 코티지를 향해 던지는 걸로 둘, 윙크로 셋.
후다닥 애교를 끝낸 함이원은 뒤로 돌아서 뜨거운 볼을 식혔다. 미리 애교 공부까지 해 왔는데 그래도 쉽지 않았다.
“저만 못 봤어요?”
“저도요! 다시! 다시!”
팬들과 멤버들이 한통속이 돼서 조르는 바람에 딱 한 번만 보여주겠다던 말을 무르고 다시 애교 3종 세트를 반복해서 보여줘야 했다.
무대 중간에 쭈그려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함이원의 머리엔 털이 보송보송한 회색 고양이 귀가 달려 있어서 팬들이 발을 구르게 했지만 정작 본인은 알지 못했다.
상상도 못 한 온갖 질문이 쏟아지고 예상을 벗어난 대답이 튀어나오는 즐거운 코너로 땀을 식힌 멤버들은 다음 무대 ‘탈출해’로 넘어갔다.
어쿠스틱 버전의 ‘탈출해’는 파워풀한 느낌이 줄어든 대신 더 청량하고 밝았다.
에너지를 상당히 소모한 후반부에 불러야 하는 만큼 힘을 빼고 가볍게 부를 수 있게 편곡했는데 템포가 조금 느려져서 팬들이 따라 부르긴 더 편했다.
노래가 끝나고 그대로 무대 바닥에 앉은 테오라 멤버들은 호흡을 고르면서 물을 마셨다. 물을 마시는 건지, 흘리는 건지 모를 행동을 하는 멤버도 있었다.
“혼이 형 노렸지!”
“뭘…?”
“그거!”
박하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자리엔 흠뻑 젖은 상의가 보였다. 얇은 셔츠의 앞자락이 잔뜩 젖어서 들러붙어 있었는데 서혼은 그걸 말린다고 펄럭대고 있었다.
“그럴 거면 차라리 시원하게 벗어!”
“그럴까?”
혼자만 잘 보이겠다는 얍삽한 의도를 비꼰 박하는 순한 대꾸에 혈압이 오른다는 듯 손으로 뒷목을 잡았다. 객석에선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게 아니라…!”
다시 설명하려던 박하는 겉에 입은 셔츠를 훌러덩 벗는 서혼의 행동에 말문이 막혔다.
셔츠를 벗을 때 시작된 까악 대는 까마귀 울음소리는 괴성으로 변했다.
“반응이 격한데요? 상의 탈의라도 하면 큰일 나겠어요.”
“아니야! 큰일 안 나!”
다급한 부정이 돌아왔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갸름한 눈웃음을 지은 남초록은 서혼 옆으로 가더니 나시를 들췄다. 맨살이 드러나면서 복근도 살며시 모양을 드러냈다.
아까보다 더 격렬한 반응이 돌아왔다.
“오늘은 쑥스럽긴 하네요. 보여드리려고 만들었는데.”
“바람직하다! 서혼! 장하다! 서혼!”
“하하, 아예 벗기는 좀 그런데….”
“나시 벗고 셔츠만 입어!”
박하가 제시한 아이디어에 서혼이 진심이냐고 얼떨떨하게 되물었다. 서혼의 흰 셔츠는 여전히 젖어있는 데다, 크롭 셔츠라서 팔을 조금만 들어도 배가 드러나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우어어어억!”
“…좋아하시는 거 같으니까 박하 의견을 따라볼게요.”
서혼은 뒤로 돌더니 팔을 X자로 만들어 나시를 벗었다. 체지방이 적어서 형태가 선명하게 보이는 등 근육이 드러났다가 셔츠 자락에 자취를 감췄다.
아쉬운 탄성이 길게 이어졌다. 대놓고 노골적이라 오히려 재밌게 느껴졌다.
“다음 콘서트 기대하세요. 그땐 너무 좋아서 뒤로 넘어갈 정도로 몸 만들어올 거니까.”
“초록. 난 지금도 보여줄 수 있어.”
“이러면 안 보고 넘어갈 수 없겠죠?”
남초록은 기어이 지온의 복근까지 팬들에게 대신 자랑했다. 현기증이라도 나는 것처럼 휘청거리는 팬들이 속출했다.
“저 성인만 되면 그날부터 운동할 거예요! 두고 봐요!”
씩씩거리는 막내 박하를 아빠, 엄마 미소로 훈훈하게 지켜보고 난 후에 서혼과 박하의 단독 무대가 순서대로 이어졌다.
콘서트의 분위가 점점 더 무르익어갔다. 팬들은 새삼스레 테오라의 곡이 많다고 느꼈다. 만 2년도 되지 않은 그룹치고 곡 수가 많았고, 컨셉도, 곡의 장르도 다양했다.
덕분에 콘서트에 온 사람들은 오길 잘했다고 백번쯤 생각하고 있었다.
테오라의 무대엔 여유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설렁설렁한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안무 하나 허투루 소화하지 않았고 객석을 향해 마이크를 넘길 때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춤을 추면서 연이어 서너 곡을 불러도 음정이나 호흡이 크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테오라의 무대가 최근에 더 큰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했던 어떤 4년 차 아이돌 그룹의 무대보다 나았다. 커다란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연다는 건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의미. 그렇지만 콘서트의 질은 이쪽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노래와 춤, 퍼포먼스 같은 요소들이 인기를 좌우하는 전부는 아니다.
그래도 아이돌 팬이라면 알 수밖에 없었다. 콘서트야말로 좋아하는 아이돌을 생생하게 보고 듣고 느낄 기회라는 걸.
테오라는 이번이 첫 콘서트라 단단히 준비했겠지만, 그걸 감안하고도 팬들을 위한 진심이 느껴지는 무대였다.
“아쉽게도 이번 무대가 저희가 준비한 마지막 무대인데요.”
우우우, 하는 야유와 안 된다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뒤에 앵콜 무대가 있다고 다들 머리로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이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한마음 한뜻으로 바라고 있었다.
“이원이가 즉석에서 작곡했다가 팬 송이 된 곡이기도 하죠.”
“여름이었다!”
코티지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곡이었다. 팬들을 위하는 애틋한 마음이 들어갔으니까. 게다가 멜로디도 가사도 예뻐서 듣기도 편했다.
팬 송 뮤비가 스크린 하나에 재생됨과 동시에 전주가 흘러나왔다.
영상 자막과 멤버들이 부르는 노래가 정확히 맞아떨어지자 전율이 흘렀다.
같이 노래를 부르다가 감동한 팬들이 훌쩍였다. 마음이 통한다는 느낌은 착각이 아니리라.
테오라를 좋아하게 되고 노래로 위로도 응원도 받아왔지만, 이 팬 송은 유난히 사랑받는 기분이 드는 곡이었다.
훌쩍거림은 울음이 되어서 퍼져나갔다. 각자 상황은 다르지만, 테오라의 팬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이곳에 모인 팬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금의 감정을 서로 공유하고 있었다.
테오라 멤버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멤버들은 파도치는 별빛을 보면서 마음이 뭉클해져서 마이크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안 그래도 의미 깊은 첫 콘서트라 감정이 격해져서 울어버리면 어떡하나 걱정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잘 참아내나 싶었는데 막판에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울컥 올라오는 울음을 참느라 박하 턱에 호두알 모양이 새겨지고, 서혼의 눈이 그렁그렁 젖어 들어갔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는 어떻게든 참을 수 있었는데, 객석을 바라보면서 마이크를 다잡다가 기어이 울음이 터져버렸다.
박하는 엉엉 울고, 서혼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오란은 촉촉한 눈으로 방긋거리며 웃고, 지온은 나른하게 풀려서 팬들이 있는 쪽을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쳐다봤다.
“올해 목표가 오프라인 단독 콘서트를 여는 거였는데, 목표를 벌써 달성했어요. 코티지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저희를 사랑해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남초록은 울진 않았지만, 울컥울컥 올라오는 벅참을 다시 삼키느라 말하는 중간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계속 불안했었어요. 제가 아이돌이 될 수 있을지. 아이돌이 된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살아남아서 콘서트는 해볼 수 있을지 그런 걱정 때문에요. 근데 크흥,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아! 으허엉?”
히끅거리며 잘 참다가 대성통곡을 해버리는 박하를 따라서 같이 울어버리는 팬도, 귀엽다는 듯이 웃는 팬도 있었다.
반응은 달라도 하나는 같았다. 여기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것.
“오늘 전력으로 해봤는데 어땠어요? 재밌었어요? 무대 크기만 커질 뿐 얼마나 특별하겠냐고 생각했었는데, 특별한 거였네요. 콘서트는. 또 하고 싶고, 자주 하고 싶어요.”
돌려 말하는 법이 없는 지온은 직구로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박하도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팬들에게선 ‘우리도!’라는 외침이 돌아왔다.
함이원이 떨리는 손을 들고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다 댔다.
“언제 우리 이름으로 콘서트 열 수 있을까 했는데 그날이 예상보다 빨리 와서 기뻐요. 이렇게 많은 코티지들이 와주셔서 함께 같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해요. 고맙습니다.”
아니야, 내가 더 고마워. 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울음기 묻은 소리에 함이원은 덩달아 눈가가 뜨거워지고 코가 시큰해졌다.
아까부터 내내 온몸을 잠식한 감격을 참아내고 있었는데 이젠 한계였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저에게 음악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였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땐 일방적이었지만요. 그래서일까요? 콘서트를 처음 보게 됐을 땐 충격적이었어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경이가 거기 있었거든요. 그때부터 우리가 콘서트 하는 날을 꿈꿔왔는데…. 언제나 응원해주셔서, 좋아해 주셔서, 꿈을 이루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솔직한 함이원의 감상에 잘 참고 있던 남초록도 눈물을 똑 떨어뜨렸다. 홍오란도 훌쩍거렸다. 지온만 웃으면서 박하의 어깨에 팔을 걸고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사랑해요. 코티지. 앞으로도 언제나 사랑할게요.”
함이원은 나지막한 고백을 마치고 청초하게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객석이 울음바다가 됐다가 창백할 정도로 흰 피부를 가진 미소년이 그림처럼 눈물을 흘리는 광경에 홀려서 서서히 울음을 그쳐갔다.
“울지 마! 울지 마!”
“전 안 울어요. 근데 왜 울지 말라고 해요? 자기들은 울면서.”
안 운다는 오란의 커다란 눈엔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눈을 조금만 깜빡이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처럼.
“농담이에요. 오늘 흘리는 눈물은 기쁨의 눈물일 테니까 울어도 괜찮아요. 감정에 솔직해지는 건 대단한 행동이니까.”
누구보다 솔직하지 못한 홍오란이 하는 얘기라서 옆에서 듣던 멤버들이 픽 웃었다. 알기는 안다면서.
“거리낌 없이 콘서트 즐겨주신 팬 여러분 너무 멋있었어요. 남은 앵콜 무대도 그렇게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겨우 울음을 추스른 서혼이 몇 번 목을 가다듬고 마이크를 들었다.
“앵콜 얼마나 할까요?”
“밤새도록!”
“내일까지!”
어쨌든 오래오래 해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무리 교통이 발달한 서울이라고 해도 막차 시간은 정해져 있다. 숙소를 근처에 잡은 사람도, 자차로 온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해 돌아가야 할 사람들이었다.
“마음 같아선 새벽까지 계속 앵콜하고 싶은데 그럴 순 없으니까 최대한 알차게 해볼게요. 그럼 밤을 불태울 준비 되셨나요!”
“네에!”
힘찬 함성과 함께 앵콜 무대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