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3
알지 못한 선의와 악의
집에서 데뷔조 파티를 한 다음 날. 첫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교무실을 찾았다.
데뷔조로 뽑힌 이상 학교에 양해를 구해야 했다. 데뷔 준비로 바쁘게 진행되는 스케줄은 학교생활과 양립하기가 힘들었다. 더군다나 준비 기간도 짧아서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학교를 나가지 않는 박하와 오란은 상관없지만, 지온은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 없으면 자퇴서를 제출한다고 했다. 대학교에 다니는 서혼 형은 어차피 이번 학기는 끝나가니까 다음 학기부터 휴학하겠다고 했다.
초록 형은 나와 같은 상황이니까 3학년 교무실에 있지 않을까.
나는 담임선생님 자리에 가서 인사를 꾸벅했다. 선생님이 인사를 얼결에 받아주면서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한 번도 제 발로 교무실을 찾아온 적이 없어서 그런듯했다.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안경을 써서 그런지 지적인 이미지가 강한 분이셨다.
“선생님.”
담임선생님의 눈이 커지면서 상체가 뒤로 젖혀지는 바람에 의자가 덜컹거렸다. 화들짝 놀라서 뒤로 넘어가신 것 같았다.
아. 내 목소리 처음 들으시는구나.
“이원아. 말할 수 있니…?”
목소리를 얻은 후에도 학교에서도 버릇처럼 말을 거의 하지 않았고, 요즘엔 학교만 오면 자느라 바빴다. 그 탓에 선생님은 내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으셨다.
“성대에 문제가 있다고 들었는데. 나아졌구나…. 다행이다.”
담임선생님은 내 사정을 알고 계셨다. 하긴, 말도 하지 않는 학생이 수업 중에 문제가 되지 않은 게 이상하지. 담임선생님이 나를 배려해달라고 다른 선생님께 넌지시 부탁을 해왔던 것 같다.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정말로 주변에 관심을 하나도 가지지 않고 지냈구나.
“선생님. 저 그동안 연습생 생활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데뷔조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래서 출석이나….”
“연습생? 아이돌 연습생?”
뜬금없이 아이돌이라니 선생님이 놀라실 만했다. 바이올린 전공하는 학생의 일반적인 진로 중에 아이돌은 없었다.
“3학년에 남초록 선배랑 같은 회사에 있습니다. 연습생이 된 지는 이제 3개월 정도 됐고요.”
“그 무용과 남초록? 이원아. 그런데 어쩌다 아이돌 연습생을?”
아이돌이 되려고 했던 계기를 말하자면 현오 형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현오 형과의 일을 마음의 준비도 없이 꺼내긴 힘들었다. 나에게 보물 같은 기억임과 동시에 날카로운 칼날이기도 했으므로.
“아니, 선생님은 이원이가 재즈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줄 알았거든.”
재즈 바이올리니스라는 결론이 어떻게 도출됐는지는 알만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바이올리니스트로 살겠단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바이올린도, 다른 악기들도 관성적으로 해 온 것뿐이었다. 말을 못 하는 대신.
아이돌이라는 꿈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선생님이 권하는 대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코스를 밟았을 수도 있다. 그랬다 해도 내가 희망했기 때문이 아니라 마지못해 상황에 타협해서가 아니었을까.
“부모님과 이야기는 된 거지?”
“네.”
“다른 선생님께 여쭤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줄게. 아이돌 연습생을 담당하게 된 건 나도 처음이라.”
“항상 감사합니다. 선생님.”
“내가 뭘 했다고. 어쨌든 선생님은 이원이 목소리를 듣게 돼서 기쁘다. 목소리 예쁘구나.”
초록 형은 깐깐한 선생님 걸리면 한바탕 싸워야 할 수도 있다고 겁을 줬었다. 그래서 단단히 각오하고 왔는데 우리 담임선생님은 되게 다정한 분이셨다. 지금에야 알게 된 게 죄송할 정도로.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나는 선의를 받으며 살고 있었다.
* * *
회사가 어수선했다.
데뷔조에 들어가지 못한 연습생들은 앞으로의 거취를 결정해야 했다. 하눌 엔터는 절박한 연습생들을 데뷔를 미끼로 몇 년씩 더 붙잡아두려고 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하눌 엔터는 까다롭게 연습생을 뽑았다. 그 탓에 다른 기획사에서 연습생 생활을 하다 온 경우가 대다수라 평균 연령이 높았다.
그래선지 데뷔조에는 아깝게 들진 못했지만 다른 기획사에서 탐내는 연습생은 해당 연습생과 타 기획사와의 원만한 합의를 통해 보내주는 편이었다.
연습생에게 선택을 맡기고 그만두고 싶다고 해도 합리적인 선에서 합의를 봤다. 물론 하눌 엔터를 직접 겪어보고 다른 기획사에 일어나는 만행을 익히 아는 연습생은 남는 것을 선택하기도 했다. 몇 년을 기다릴만한 강점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연습실 문을 여는데 누군가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구대명이었다. 회사를 떠나게 됐는지 한쪽 어깨에 백팩을 메고 있었다. 나가게 됐나 보구나.
“함이원 너만 아니면 됐는데 말이야.”
“…뭐?”
귀로 흘러드는 목소리가 스산했다. 나한테 억하심정이 있나? 데뷔조 발표가 났을 때도 구대명은 나를 노려봤다. 이유는 몰라도 나를 미워하고 있었다.
“이대로 안 끝나. 알았어?”
구대명이 이를 갈며 나를 쏘아봤다. 그 후 내 어깨를 세게 밀치면서 지나쳐갔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습실로 들어갔다. 안에 박하가 연습할 준비를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박하야. 혹시 구대명이 왜 나 싫어하는지 알아?”
“응? 구대명? 나도 걔랑 별로 안 친해서. 근데 형 싫어한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같이 연습 몇 번 해본 걸 제외하면 구대명과 나는 접점이 없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도, 함께 식사한 적도 없었다. 어느 지점에서 나에게 앙심을 품었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알 수 없겠지. 시간 낭비하지 않고 신경 끄기로 했다.
연습실에 있던 짐을 챙겨서 데뷔조를 위해 배정된 외부 연습실로 옮기기로 했다. 아무래도 일반 연습생들과 함께하기에는 스케줄 자체가 다른 데다가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이원 형! 숙소 가봤어? 대형 기획사도 아니라서 별로 기대 안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아!”
“아직. 난 오늘 늦게 짐 옮기기로 해서. 어떤데?”
“방은 네 개, 화장실 두 개! 회사에서 무리한 거 같아!”
직접 가봐야 알겠지만, 생활하기에 큰 불편함은 없을 듯해서 안심했다.
“이따 밤에 다들 모이면 방 정하자고 해야지! 운 좋으면 나 혼자 쓸 수도 있겠다!”
박하가 신나서 엉덩이를 씰룩거렸다. 조각 같은 외모를 가지고 저런 짓을. 리액션이 과하다 싶어서 박하를 유심히 관찰했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고 조금은 발갛기도 했다. 어제 발표를 들을 땐 신나서 방방 뛰었지만, 집에 가서는 펑펑 울었나 보다. 겉으로는 밝은 척하는 스타일이 아닐까….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배정된 연습실은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할 만큼 회사와 가까웠다. 아직은 종종 보컬이나 댄스 레슨을 받아야 해서 가깝게 잡았다고 들었다.
연습실 건물은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였다. 지어진 지 꽤 된 건물인지 외관은 약간 허름했다.
연습실은 반지하였는데 그 대신 시설은 깨끗하고 널찍했다. 밝은 조명과 한쪽 벽면을 차지하는 거울 때문에 실제보다 더 넓어 보였다.
“우리 연습실. 오오오!”
박하는 연습실이 생겼다는 사실에 감격해서 내부를 뛰어다녔다. 나는 그 에너지를 따라갈 수 없어서 짐만 내려놓고 다른 멤버들을 기다렸다.
오란이 먼저 연습실로 들어오고 나머지 멤버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그 뒤로 우리를 담당하게 됐다는 매니저님도 들어왔다.
아, 그 군인 같던 매니저님….
“어제 봤지? 너희를 담당할 최준현이다. 편의상 반말할 테니까 이해해주면 좋겠고. 너희도 호칭은 편하게 해라. 다 모였으니까 공지사항부터 전달하겠다.”
우리 여섯 명을 나란히 서서 매니저 형의 공지를 들었다.
“되도록 오늘까지 숙소에 짐을 옮겨줘야 한다. 내일부터는 내가 숙소에서 픽업해서 연습실로 데리고 올 거거든. 데뷔는 이 멤버대로 거의 확정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예비 아이돌 신분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하면 언제든 잘릴 수 있다. 연애는 안 하지? 연애는 절대 금지라는 점 다시 강조한다.”
연애? 여자친구는커녕 친구도 없었던 나에겐 머나먼 일이었다. 다른 멤버들도 딱히 걸리는 부분이 없는지 별 반응이 없었다.
하긴 그 빡빡한 스케줄에 연애까지 했다면 오히려 존경스럽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잠잘 시간도 없는데….
“할 수도 없을 거다. 내일 핸드폰 압수할 거라. 가족이랑 연락할 수 있게 공동 휴대폰 하나 줄 건데 용건이 있을 때만 써야 한다. 이건 남초록이 맡도록.”
“…회사에서 벌써 저를 리더로 결정하셨어요?”
“…하하.”
“웃음으로 얼버무리시는 거 보면 맞나 봐요. 어쩔 수 없이 제가 리더 해야 하나요…. 반대 의견 있으면 빨리빨리 내줘. 망설이지 말고.”
아무도 반대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초록 형은 리더라는 자리에 부담감을 느끼는 듯했는데, 자기가 최선이라는 점에는 부정하지 못했다.
결국, 만장일치로 초록 형이 리더로 결정됐다.
“얘들아. 여러 가지가 순서 없이 동시에 진행될 거다. 정신없겠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해. 너희도 알겠지만, 우리 회사의 특징이자 단점은 아티스트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거다. 우리는 너희가 원하지 않는데 우리 뜻대로 끌고 간다고 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 안 한다.”
아이돌이 성공하기란 확률 싸움. 그 확률을 높이려면 이 싸움에 참여하는 모두가 확고한 목표를 가져야 했다. 그 목표에 모두가 온 힘을 다 쏟아내야 했다.
“너희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그 결과를 너희가 받아들이고 자기 것처럼 표현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힘들겠지만, 그 대신 성취감도, 자부심도 더 느낄 수 있을 거다. 단단히 각오해두도록 해.”
“네!”
우리의 우렁찬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강한 인상의 매니저 형이 푸흐흐 웃었다. 기분 좋은 웃음인데 어쩐지 무시무시했다.
“너희들이 잘 해낼 거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 미션. 너희들이 어떤 컨셉과 어울리는지 생각해봐. 그룹명이랑 예명도 생각해두면 좋고. 사흘 뒤에 회의 있는데 너희도 참석할 거다. 거기서 의견 제시할 수 있게 준비해둬.”
컨셉이나 원하는 이미지를 정한 후에 데뷔시킬 멤버를 정하는 회사도 있었다. 그와 달리 하눌 엔터는 사람에 컨셉을 맞추는 스타일인 것 같았다.
“와아아!”
진짜 데뷔가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감이 났다.
“한 번에 결정되는 일이 드물고, 지겹게 회의가 이어질 거다. 그래도 알아줘라. 너희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걸.”
데뷔조 연습생들을 형식상으로도 회의에 참여시킬 순 있었다. 하지만 보통 그 의견에 귀 기울여주려 할까?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고, 결정에는 커다란 돈이 필요하니까.
“그리고 노래나 랩, 댄스 실력도 계속 갈고닦아야 한다. 이번 주는 정리할 게 많아서 지나가지만, 다음 주부터 매주 평가가 있을 테니. 실력이 너무 떨어진다거나 하면 데뷔조 다시 생각해볼 수도 있다. 긴장해.”
매니저 형은 긴장하라고 엄포를 놓으면서도 가볍게 웃었다. 우리가 데뷔조에서 탈락할 리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 이따 다시 올 테니까 그동안 연습하고 있어.”
“네!”
우리는 한목소리, 한마음으로 힘차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