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32
소풍처럼 신나게
좀비 아포칼립스? 게다가 드라마라니?
적은 제작비로는 꿈도 꾸기 힘든 장르였다. 좀비물의 생동감과 스케일을 살리려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갈 것이 자명하다. 제작이 확정되기까지 쉽지 않았을 듯했다.
“내년 하반기에 공개 예정인 좀비 드라마가 있다더니. 그게 이거였나 봐요?”
“OTT에서 선공개 후에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하는 방식이라고 들었다. 나도 자세한 사항은 모르지만, 내년 하반기 기대작이라던가. 주인공은 정해진 상태고 중요한 조연은 오디션으로 뽑는다고 하더군.”
“Zombi? 관심 생기네요.”
“좀비 분장 재밌겠다!”
박하는 이미 출연을 확정지은 듯이 말했다.
좀비, 귀신이 나오는 내용이나 공포, 호러, 고어 장르는 못 본다는 박하는 자기가 출연한 드라마라도 못 볼 것 같지만,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좀비 역할은 오히려 즐거울 것 같다며 좋아했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게 싫은 모양이다.
“준현 형, 스케줄은 괜찮아요? 오디션 준비나 촬영 일정 맞추기 까다로울 텐데요.”
초록 형이 던진 질문은 적절했다.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는 내년 상반기라고 해도 갑자기 한가해지진 않을 것 같으니.
“어떻게든 되게 해야지. 너희가 거기까지 걱정해주진 않아도 된다. 스케줄 조율은 내 몫이니까.”
“그럼 준현 형만 믿고 오디션 준비할게요.”
“그래.”
“그렇다는데? 혼이 형.”
초록 형은 스토리에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조연으로 서혼 형이 캐스팅되는 미래까지 대신 걱정해준 듯했다.
“아직 대본 보기도 전인데 너무 과대평가잖아. 초록아.”
“글쎄? 형이라면 바로 욕심나서 오디션 지원하겠다고 할걸? 그 드라마 아마 형이 재밌게 본 유명 웹툰 원작일 테니까.”
“…혹시 최초의 좀비?”
“응. 아마도.”
초록 형은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각색된 대본을 보기도 전에 원작을 추측해냈다.
“최초의 좀비? 나 그 작품 팬이야.”
“나도 재밌게 봤어! 그 웹툰이 드라마화되고 오디션 기회까지 준다는데 내가 빠질 순 없지!”
지온도 박하도 흥미를 보였다. 오란은 제목만 들어봤다면서 대본을 읽어본 후에 판단하겠단다.
나는 그 웹툰을 본 적은 없는데 멤버들이 재밌다고 하니 괜히 관심이 생겼다.
호랑이 교관인 서혼 형이 있으니 두 명쯤은 오디션에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 누가 출연하게 될지는 몰라도 우리 그룹에겐 재밌는 도전이 될 것 같았다.
다음날, 준현 형에게서 받은 대본을 멤버들끼리 돌려봤는데 오디션은 전부 보는 걸로 결정됐다.
서혼 형은 살아남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연 있는 악역, 나머지는 씬스틸러가 될만한 조연 역할로.
소풍을 기대하는 것마냥 오디션 보는 날이 기다려졌다.
* * *
엊그제 콘서트가 끝났던 것 같은데 벌써 프로 야구 정규리그 최종전이 가까워졌다.
시구자로 섭외된 서혼 형은 그간 여유만 나면 잠실 야구장에 다니면서 얼굴 도장을 찍었다.
시구를 도와주게 된 선수들은 서혼 형의 투구 자세를 보더니 연습이 필요하긴 하냐고 몇 번이나 되물었단다. 웬만한 프로 야구 선수보다 자세가 깔끔하고 구속도 상당해서 지나가던 감독님이 아쉬워했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야구인으로서 혼이 형 같은 재목을 보고 아쉬워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이 피지컬로 야구 선수가 됐으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도 남았을걸?”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얼마나 대단한데 나랑 비교할 수 있겠어. 내가 운동에 소질이 있어도 그 정돈 아니야, 초록아.”
“사적인 감정 하나 없이 객관적인 시선으로 봐도 그래. 동의하는 사람?”
“나.”
“나도.”
“여기도 손!”
“하하, 아이돌이 아니라 운동선수가 될 걸 그랬나?”
“운동에 엄청난 재능이 있긴 한데 다른 쪽으로도 재능 넘치니까 아이돌이 제격 아니겠어?”
아이돌은 다재다능함을 요구받는다. 노래를 잘 불러야 하고 춤도 잘 춰야 하며 말재간도 좋아야 했다. 그런 관점에서 노래, 랩, 연기, 운동까지 못 하는 게 없는 서혼 형은 아이돌에 누구보다 잘 어울렸다.
“서혼 형이 없는 테오라는 상상하기 싫어! 메이저리거 서혼 대신 시구하는 아이돌 서혼으로 만족하도록 해! 알았지?”
“그래, 그럴게.”
“역대급 시구 구속 기대해봐도 되나?”
서혼 형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자신감을 내비쳤다. 선수들만큼 빠르게 던질 순 없어도 시구 기준에서는 구속으로 새로운 역사를 쓰지 않을까?
“끝나면 프리미엄 석으로 와. 응원하면서 기다리고 있을게.”
선수들이 입장하는 입구 앞에 서혼 형을 내려주고 미리 주문해뒀던 피자와 치킨을 픽업했다.
든든하게 먹어야 응원도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거라고 어젯밤 초록 형이 구구절절 연설했었는데, 누구도 반대하지 않은 탓에 프리미엄 석 테이블은 음식으로 가득 채워졌다.
다른 관중이 입장하기 전에 절반을 뱃속으로 집어넣은 덕분에 우리를 알아본 사람들이 음식량을 보고 놀라게 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포수 뒤쪽에 자리 잡은 프리미엄 석에는 스포츠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제법 앉았는데 하마터면 ‘야구 경기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테오라’ 같은 제목으로 기사가 날 뻔했다.
“3회는 다 보고 갈 수 있나?”
“경기 진행 속도에 따라 다른데 지연 안 되면 그 정돈 볼 수 있을 거야.”
야구 룰을 잘 모르는 오란에겐 지루한 시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홍오란은 아웃이면 아쉬워하고 안타나 홈런에 환호하는 척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주변에 있는 관중들을 따라하기만 해도 어색해 보이지는 않을 거다.
“오, 서혼 형 나오려나 보다.”
서혼 형의 사진이 야구장 대형 전광판에 대문짝만하게 나와서 ‘오늘의 시구자’로 소개됐다. 자료 화면으로 우리도 잠시 등장했다.
“도대체 저 문구 누가 정했냐. 기억에는 남겠다만….”
아마도 홍보팀에서 정했을 B급 감성의 주접에 저절로 귓가가 뜨거워졌다. 내가 전광판 속 주인공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지….
“지옥에서 온 왼손 파이어볼러, 라운 피닉스의 부활을 알릴 자…? 이렇게 기대를 높여둬도 되나? 시구 잘 못 했다간 대역죄인 되겠네.”
걱정은 되지 않았다. 홍보팀에서도 서혼 형이 연습하는 걸 봤기 때문에 저런 멘트로 정했을 거다.
스피커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우리 곡이라는 걸 바로 알아챘다. 넓은 경기장에 빠른 템포의 ‘탈출해(Escape)’가 울려 퍼지자 관중들이 가사를 따라불렀다.
우리 곡이 이렇게나 알려졌구나…!
팬들이 모인 콘서트장이 아닌데도 따라부르는 사람의 수가 적지 않았다. 약간 과장을 보태서 셋 중에 둘은 되는 것 같았다.
묘한 감격에 휩싸여있는 사이, 서혼 형이 인터뷰를 마치고 마운드에 올라가 투구 폼을 잡았다. 프로 야구 선수 못지않은 군더더기 없는 자세로 잠시 멈췄다가 강하게 공을 던졌다.
퍽!
타자의 헛스윙과 함께 포수의 글러브 안으로 공이 빨려 들어가 묵직한 소리를 냈다.
[완벽하게 제구된 스트라이크! 게다가 구속이 무려…!]전광판에 뜬 구속은 141km. 일반인이 잠깐 연습해서는 나오기 어려운 구속이었다. 체계적으로 연습하면 프로 야구 선수가 될 가능성도 충분해 보였다.
[당장 라운 피닉스 선발투수로 영입해야겠는데요! 어떻습니까, 단장님.]해설자의 감상에 동의하듯 라운 피닉스 관중석에서 요란한 함성이 터져 나오고 카메라가 라운 피닉스 단장의 함박웃음을 잡았다.
“서혼 형 비밀 무기로 단단히 눈도장 찍었겠는데?”
라운 피닉스는 그래도 가을 야구에 단골로 진출하는 팀. 서혼 형의 재능을 아쉬워하는 얘기가 나와도 우스갯소리로 끝날 거다.
반면, 야구 리그 하위 팀에겐 차라리 서혼 형을 영입하라고 진심 어린 항의가 쏟아질 미래가 보였다.
“그러게! 팬들 긴장해야 해! 야구계에 혼이 형 뺏기지 않으려면!”
박하의 우스갯소리가 마냥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 않는다. 서혼 형을 뺏기지 않으려면 코티지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할지도!
서혼 형은 모자를 벗어 인사를 한 후에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야구팬들의 함성이 쏟아졌다.
야구를 잘하는 사람은 골수 야구팬들에게 거의 무조건적인 호감을 얻게 되기 마련이다.
능숙하게 시구를 한 후에 ‘시구 여신’으로 등극한 배우처럼, 오늘 서혼 형은 ‘시구의 전설’로 팬들의 뇌리에 각인됐을 거다.
“우리한테도 관심이 쏠렸나 봐. 뺨이 다 뜨거운 기분이야.”
“스타가 되기 위해 견뎌야 하는 과정이야. 의식하지 않는 척, 자연스럽게 행동해.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아하하! 이원 형, 배가 고팠어?”
“…응?”
왜 내 양손이 가득하지? 왼손엔 피자 한 조각, 오른손엔 닭 다리가 들려 있었다. 주변 시선을 의식한 나머지 졸지에 식탐 부리는 사람이 됐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한 입도 베어 물지 않은 피자를 내려뒀다. 주위에서 난 웃음소리를 봐선 다 들킨 것 같지만.
선발 선수를 소개한 후 경기가 시작됐다. 치어리더와 응원단의 활기찬 응원 구호에 박자를 타면서 경기를 보다가, 전광판을 힐끔 보곤 관중들을 구경했다.
어느샌가 우리를 찾아온 서혼 형과 준현 형이 옆 테이블에 앉았다.
“나 어땠어?”
“물어봐야 알아? 최고였지.”
“누가 그 구속을 보고 일반인 시구라고 하겠어! 선수 출신이라고 생각할걸!”
“선수 출신이 될 뻔하긴 했어. 야구 선수는 아니고 축구 선수. 고향에서 지낼 때 중학교 축구 감독님이 나보고 축구부 들어오라고 끈질기게 따라다니셨거든.”
서혼 형이 다니던 중학교는 축구 강호였다는데 진짜로 축구부에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본격적으로 선수로 활동했다면 국가대표로 선발돼서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다녔으려나?
선수가 되진 못해도,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기회는 있다. 테오라가 해외에 진출한다면.
해외 진출은 K-POP 아이돌 그룹이라면 당연하게 주어지는 과제다. 지구 반대편의 친구와도 거리감 없이 소통할 수 있고, K-POP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이 시대에선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다.
딱히 해외 진출 계획이 없어도 어느새 유명해져 있을 수도 있었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어느새 해외에서 알려지고 있는 우리가 바로 그 증거.
“서혼 형, KBO는 정복했으니까 메이저리그를 정복해볼 생각 없어?”
“그럴까?”
초록 형이 대번에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었다. 가는 눈매 사이로 보이는 눈빛이 번뜩였다.
어딜 봐도 서혼 형은 실없는 농담에 맞장구쳐주는 걸로 보였지만, 초록 형은 그걸 그저 농담으로 넘길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럼 다음 시구는 메이저리그 구장에서 하자고.”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이 서혼 형의 시구 영상을 보면 오히려 그쪽에서 먼저 연락을 줄지도?
우리가 미국에서 듣도 보도 못한 무명 아이돌 그룹은 아니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겠지만.
“멋진데? Try. 서혼.”
지온이 진심으로 부추기는 바람에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서 시구하는 서혼 형의 모습을 상상해버렸다. 너무 그럴듯해서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경기가 빠르게 진행돼서 4회 말까지 보고 경기장에서 나올 수 있었다. 스케줄이 끝나고 경기 결과를 찾아보니 4회까지 아슬아슬하던 양상은 8회에서 만루홈런에 백투백홈런까지 나오면서 라운 피닉스의 승리로 돌아갔다.
역시 오늘의 서혼 형은 승리의 화신이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