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33
시구와 자장가
잠실 야구장에서 시구를 한 서혼은 테오라 팬인 코티지뿐만 아니라 야구팬들 사이에서 뜨거운 화두가 됐다. 특히 야구 관련 커뮤니티에 상주하던 사람들에게 ‘서혼’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경기 시작하기 전, 남자 아이돌 멤버가 시구한다는 얘기에 시큰둥하게 반응했던 이들은 서혼이 공을 던지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믿기지 않는 장면이었다. 웬만한 시구자들은 마운드에 올라 포수가 있는 위치까지 제대로 공을 보내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서혼은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남자이긴 해도 호리호리했다. 야구 선수와는 거리가 있는 체형이었다.
요즘엔 마른 체형을 가진 선수도 보이긴 하지만, 전형적인 야구 선수라면 모름지기 허리 사이즈를 방불케 하는 허벅지 둘레를 자랑해야 하는 법이었다.
그래서 폭투를 면하는 정도에서 끝날 줄 알았다. 여자 야구팬을 모으기 위해 별짓을 다 한다, 그 정도로 생각하던 차였다.
그런데.
순식간에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공이 미트에 꽂혔다. 정확히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갔을뿐더러 날아가는 속도가 프로 경기에서나 볼만한 수준이었다. 미트를 울린 둔탁한 소리로 짐작해봤을 때, 볼 끝도 묵직했다.
“141km! 미쳤다! 방금 왼손으로 던졌었지…?!”
잘만 키우면 희귀한 왼손 파이어볼러가 될 재목이었다. 라운 피닉스의 골수팬이자 네임드 팬 ‘트리플크!라운’은 서혼의 이름을 뇌에 새길 기세로 중얼거렸다.
“서혼, 서혼이라. 데려올 수 있을까…?”
아이돌에 관심 없는 자신도 테오라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정도이니 분명 인기 있는 아이돌일 테다. 그렇지만 지옥에서도 데려온다는 왼손 파이어볼러. 포기하긴 일렀다. 인기 아이돌이고 뭐고 무조건 데려와야 했다.
“예외는 없어!”
나이를 검색해보니 고작 스물두 살. 생일을 갓 넘겨서 만 스물하나였다. 대학 리그에서 활동하다가 프로 리그에 진출하는 선수도 있으니 신인 선수로 많지 않은 나이였다.
야구를 했었다는 얘기는 없지만, 저 육체는 야구를 위해 태어난 육체가 틀림없었다.
국내 야구 커뮤니티의 동지들도 의견을 같이했다. 한 번의 우연이라거나 고작 한 번의 투구로 판단할 수 없다는 의견이 더 많았지만, 서혼에게 홀린 그에겐 전혀 보이지 않았다.
“증량까지 하면…!”
키는 충분하니 살과 근육을 늘리면 저절로 구속이 증가할 것이다.
시구하러 와서 140km를 넘기는 구속을 냈다. 150km는 거뜬할 테고, 어쩌면 160km도 꿈이 아닐지 모른다!
“멘탈도 훌륭하겠지!”
마운드 위에서 긴장하는 모습도 아니었다. 아이돌로 수없이 무대에 섰을 테니, 멘탈도 아주 단단하게 단련되어 있을 거라고 그는 멋대로 단정지었다.
“KBO를 제패한 다음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거지!”
라운 피닉스의 팬이라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남자라면, 야구팬이라면 라운 피닉스를 응원해야 마땅하다!
아버지를 따라 라운 피닉스 팬이 됐다고 서혼이 직접 시구하기 전에 밝히기도 했으나 그런 내용은 그의 귀를 스쳐 지나간 지 오래였다.
“다른 팀이 채가기 전에 먼저 데려와야 하는데!”
다른 팀이 서혼을 데려가면 우승이 훌쩍 멀어질 테다.
서혼이 야구 선수가 되겠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그의 머릿속엔 이미 라운 피닉스 유니폼을 입은 서혼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가 서혼의 시구 영상을 반복해 보는 동안, 공식 홈페이지엔 시구 연습 영상도 재빨리 올라왔다.
영상을 보니 라운 피닉스의 주장이 코칭을 맡았고, 선발로 경기에 자주 나가지 않는 신인 포수도 함께였다.
서혼이 몸풀기로 던져본 첫 투구에서부터 남다른 포스가 있었다. 속도부터 일반인과는 차원이 달라서 주장은 속도를 재는 스피드건을 급히 가져왔다.
“크!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고오!”
과자 한 봉지의 초라한 안주와 같이 마시는 미지근한 맥주가 어느 때보다 달게 느껴졌다.
연습 영상 속의 서혼은 안정적인 제구로 던지는 족족 스트라이크 존에 꽂아 넣었다.
피지컬도 받쳐주고 운동신경 자체가 남다른 것 같았다. 운동 지능도 좋은지 주장이 한 조언을 바로 적용하는 모습도 보였다.
“아역 배우가 아니라 야구 꿈나무가 됐더라면…!”
그랬다면 프로 리그에 진출하기 전부터 야구팬들의 희망이 되었을 터였다. 고등학교 졸업 전에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관심을 보였을 수도 있다.
한때 피아노를 쳤던 그는 알고 있었다. 예체능은 다른 분야보다 타고난 재능이 중요하다는 것을. 노력으로 어느 정도까진 따라잡을 수 있다고 해도 채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다.
서혼은 노력으로 채울 수 없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감히 확신할 수 있었다.
[서혼 씨, 혹시 변화구 배워볼 생각은 없습니까?]“변화구 보고 싶었던 건 어떻게 알고! 잘한다, 주장!”
[변화구요? 배우고 싶긴 한데 괜찮나요?] [더 가르칠 것도 없는데 변화구라도 알려드리려고요. 써먹을 기회가 있을진 모르겠지만요.]변화구를 배우는 과정이 편집되어 나오진 않았다. 바로 ‘1시간 후’라는 자막이 떴다.
“설마 1시간 만에 다 배웠겠어? 프로라도 그건 어렵지.”
새로운 구종을 배워 충분한 속도와 변화를 내고 제구를 가다듬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서혼이 시구할 때 직구를 던진 걸 보면 겉핥기로 배우지 않을까 싶었다.
영상 속 서혼이 투구 자세를 잡더니 포수를 향해 공을 던졌다. 포수 바로 앞에서 공이 아래로 뚝 떨어졌다. 제대로 된 포크볼이었다.
“와 씨! 1시간 만에? 말이 돼?”
먼저 배운 적이 있다고 해야 그나마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습 투구를 계속할수록 공의 궤적이 점점 날카로워졌다.
[솔직히 말해보세요. 야구 배워본 적 있죠?]좁디좁은 야구계에서 서혼 같은 선수가 나왔다면 프로 선수인 그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도 묻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정이 이해됐다.
[해외에서 정식으로 배웠다거나?]주장은 급기야 해외 선수 출신이라는 가정까지 꺼내왔지만, 그마저 아니었다.
한때 야구 경기는 자주 봤어도 직접 경기를 해본 건 대여섯 번이 전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선수들의 동영상을 참고했다는데, 그런 방식으로 지금의 투구 폼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불공평하네요. 서혼 씨. 하늘이 내려준 재능을 갖고도 운동선수가 아니라니요. 야구 제대로 할 생각 없어요?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어요.]야구가 아닌 어떤 종목에서도 유리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서혼이 아이돌이라는 건 운동계의 크나큰 손실이었다.
[운동은 좋아하지만, 일로 하고 싶진 않아요. 반면에 연기나 아이돌 활동은 성취감이 들거든요.]운동 쪽으로 재능이 넘쳐흐르는 서혼 입장에선 조금 배우면 쉽게 쉽게 할 수 있을 테니 재미없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잘나가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에게 꿈을 바꾸라고 강요할 순 없었다. 아쉬움은 여전하지만 눈물을 머금고 사나이답게 포기해야만 했다.
“아까워…. 아까워 죽겠네!”
‘트리플크!라운’은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커뮤니티를 배회하다가 서혼이 나오는 다른 영상을 찾아 헤맸다.
이것이 서혼의 개인 팬이라고 쓰고 ‘야빠’라고 읽는 팬들이 대거 유입된 사정이었다.
* * *
뉴튜브 영상으로 다시 화제가 됐던 곡 ‘Birth’는 맘 카페를 한 차례 들썩이게 했다.
육아 예능에 등장한 노래 Birth엔 넘치는 진심이 담겨있었으니, 아이를 둔 부모라면 남다른 감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맘 카페의 인기글이 되는 과정을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예비 부모가 불러주는 태교 송으로,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는 노래로 직접 불러주고 싶다는 글이 올라왔다고 했다.
아기 자장가용으로도 효과 있다는 인증 글이 올라와 진실 여부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단다. 검증해본 결과, 일부 아기들에겐 잠들 때까지의 시간을 줄여주기도 한다는데 우연의 일치라고 해도 뿌듯해지는 기분이었다.
노래 하나로 아기들이 금세 잠든다면 아기에게나 부모님들에게나 좋은 일이니까.
진짜로 Birth가 수면에 도움을 준다면 두 번째 자장가가 탄생하는 셈이었다. 첫 번째는 고양이용 자장가, 그리고 아기용 자장가.
아기가 잠만 잘 자도 육아가 훨씬 쉬워진다면서 실제로 발매 요청이 쇄도하고 있었다. 동아줄이라도 잡아보겠다는 마음일까?
“이러다간 자장가 모음집 내야겠는데? 어때, 이원아.”
“자장가 모음집?”
따로 모음집을 낼 계획까진 없어도 자장가 리스트를 늘릴 생각은 있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노래는 자장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니까.
“수면유도제나 수면제 없이 잠들게 하는 노래가 나오면 세계적으로 대 히트할걸? 우리 꼰대부터 기뻐하겠어.”
“초록 papa도 불면증?”
“응. 불면증도 있고, 잠자리에 예민하기도 해서 지방 촬영 생기면 베개에 이불에 별의별 물건을 다 챙겨가. 침실을 옮기는 수준이라고 보면 돼.”
“심하시구나.”
신경이 곤두세우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불면증은 고질병처럼 여겨졌다. 완화시킬 수도 있고, 치료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언제든 재발할 수 있고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수도 있는 그런 고질병.
“수면제 같은 음악이 나오면 속는 셈 치고 일단 들어볼걸? 스테디셀러, 아니 시간이 흐르면 클래식으로 자리 잡을지도?”
거기까진 과장이겠지만, 성능 확실한 자장가라면 홍보 하나 없이도 흥행할 수 있을 법했다. 인종, 성별, 나이 구별 없이 필요한 음악일 테니까.
“심플하게 편곡된 버전으로 영상 먼저 올리자.”
피아노 선율 하나에 기교 없이 솔직하게 부른 Birth를 콘서트에서 공개했을 뿐, 공식 영상으로 올리진 않았다. 원하는 분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게 일단 우리 채널에 영상부터 올리고 음원을 따로 내는 걸 고민해봐야 할 듯했다.
“자장가 진짜 만들고 싶어졌어. 듣기만 해도 잠이 솔솔 오면 좋겠다.”
수면제 한 알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목표 달성이다.
만족스러운 효과를 주는 음악을 만들 수 있으리란 확신은 들지 않아도 시도해보기로 했다. 도전하지 않으면 결과는 없고, 음악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으니까.
참고해야 할 소리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장작 타는 소리, 빗소리처럼 단조로운 소리가 수면 유도 ASMR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수면 유도 음악 모음이라고 올라온 플레이리스트도 있는데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잔잔한 음악이 긴장된 몸을 이완시키는 것일 수도,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일 수도 있겠지.
“그 자장가가 나오면 전 세계 사람들한테 사랑받는 작곡가가 되겠는걸. 응원할게, 이원아.”
불가능에 도전하는 나를 응원해주는 서혼 형 덕에 가슴이 든든해졌다.
“팬들은 감성적인 생일 축하 노래 같대. 우리가 birth로 생일 축하해주면 눈물 줄줄 나올 것 같다나?”
그 눈물이 감동의 눈물이라면 얼마든지! 라이브 방송을 켤 때마다 birth를 매번 불러줄 자신도 있다.
“나도나도! 내 생일에 불러줘!”
12월 28일이 생이라 2개월 넘게 남았는데 박하는 벌써 생일 축하 송을 예약해뒀다.
“오늘부터 테오라 공식 생일 축하 송은 birth야! 아무튼 그래! 땅땅!”
입으로 못 박는 소리까지 내는 박하를 따라서 멤버들과 함께 조용히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