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37
지옥의 맛
정문에 잠시 주차했던 로티플로의 차를 타고 막무가내로 출발을 외쳤다. 얼떨결에 로비에 혼자 남은 재희 누나에게는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줬다.
어차피 로티플로와 친해져야 하는 사람은 나.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다.
로티플로를 만나기 직전까지도 고민했지만, 살짝 골탕 먹이는 정도로 끝내기로 했다. 초장에 기를 잡아야 나중이 편해진다곤 해도 두고두고 떠올릴 때마다 머쓱해질 것 같아서.
[어디로 가면 될까요?]로티플로의 매니저님은 대뜸 차에 타서 출발하자고 하는 내 행동에도 개의치 않고 목적지를 물어왔다.
역시 로티플로 매니저! 뜬금없는 행동에도 놀라기는커녕 바로 응대해주셨다.
[내비게이션에, 잠시만요. 폰으로 내비 어플 켤게요. 아, 혹시 비건이신가요? 알레르기 있으세요?] [채식주의자? 육식주의자면 모를까! 알레르기도 없어!] [저도 가리는 음식 없습니다.]그러면 안심이다. 작전은 예정대로 진행해도 될 듯했다.
한 달간 렌트했다는 SUV는 내비의 친절한 목소리를 따라 출발했다. 서울 외곽으로 나가야 해서 예상 시간이 1시간 남짓 걸린다고 떴다.
[우리 어디로 가? 뭐 먹는데? 나 기대한다?]뭘 기대하든 기대 그 이상일 거다.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루카를 말렸어야 했는데 폐를 끼쳤습니다.]참, 로티플로의 본명이 루카였지? 로로가 아니라 루루라고 불러야 했나?
정중한 사과를 건네는 매니저님은 겉으로 보기엔 유능한 펀드 매니저 같았다. 얇은 금속 테 안경이 지적인 이미지를 더했다.
이런 분이 어쩌다가 여덟 살 꼬마나 다름없는 로티플로의 뒤처리나 하는 ‘보모’가 되셨을까.
[사과할 사람이 틀린 것 같지만, 일단 받아둘게요. 중요한 일정은 아니었기도 하고, 저도 어제는 잘 쉬었으니까요.] [나보다 ‘내니’가 더 좋아? 난 이원이랑 친해지고 싶은데!]보모라는 뜻을 가진 ‘nanny’라고 대놓고 부르는구나. 본인들도 보모와 돌봄 아동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모양이다.
[내니라고 불러서 놀랐습니까? 제 이름이 네이슨(Nathan)이라 보통 친구들은 Nat으로 부르는데 루카는 내니로 부릅니다. 루카 옆집으로 이사 갔던 것부터 꼬였던 거죠.] [소꿉친구셨군요.] [제가 다섯 살 연상이긴 하지만 소꿉친구긴 하죠. 알게 된 지 15년이나 된 소꿉친구요.]로티플로는 현재 스물세 살이니 여덟 살부터 이어진 인연이었다. 못 말리는 골칫덩이지만, 미워할 수는 없을 만큼의 역사가 둘 사이에는 있었다.
[스포츠 에이전트 회사에 들어가겠다는 걸 내가 데려왔어!] [그때 파격적인 연봉을 부르는 루카에게 넘어가는 바람에 이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말은 이렇게 해도 가족 같은 소꿉친구의 부탁을 거절하기는 어려웠겠지. 둘 사이의 사연을 홀린 듯이 듣다가 흠칫 정신을 차렸다.
어떤 사람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면 매정하게 대하기 힘들다. 더 깊이 알게 됐다간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다.
아무래도 매니저님이 로로가 말 꺼내기 힘들게 하는 교묘하게 막는 건 그런 전략의 일종 같았다. 나는 목적지인 식당까지 적당히 응대해주면서 동행했다.
* * *
[여기야? 나 한글 공부해 왔어! 뜻은 모르지만!]“지, 옥, 불, 곱챙, 전고르?”
[…들어가자.]점심은 특별히 화끈한 메뉴로 골랐다. 한국에선 역시 맵고 뜨거운 국물 요리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뭐, 이 정도까지 맵기가 일반적이진 않겠지만….
오래된 맛집이 아니라 매운맛의 유행과 함께 탄생한 이 가게는 엄마 때문에 알게 됐다. 힙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내부에 들어서자 땀을 찔찔 흘리는 젊은 손님들이 눈길을 끌었다.
[…도대체 뭘 먹으러 온 거야? 불판에서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저 징그러운 뇌는 또 뭐고? 한국에서 꼭 먹어 봐야 할 음식 순위에 이런 건 없었는데?]뇌…. 신박한 표현에 웃음이 터지려고 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하얗고 기니까 비슷하게 보이나?
[로로. 설마 다른 사람들이 전부 먹는 흔한 음식들만 먹고 가고 싶어요? 그건 진정한 한국 여행이 아니죠. 뻔하고 평범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얘기해요. 지금이라도 불고기 파는 식당으로 안내할 테니까.] [아니! 언제 이런 걸 먹어보겠어? 그리고 이원이 특별히 추천해주는 음식인데 거절하는 건 매너가 아니지!]이런 데서는 매너를 찾는구나. 꺼려지면 꺼려진다고 솔직히 얘기해도 될 텐데.
내가 로티플로를 제대로 도발하긴 했나 보다.
[이원 씨, 한국 사람은 다들 이런 음식을 먹습니까…? 저 시뻘건 용암 같은 물을?]매니저님께는 조금 죄송하지만, 운명공동체는 어쩔 수 없다! 사실은 농담이고, 여기에 맵지 않은 메뉴도 있고, 전골도 맵기를 조절할 수 있으니 그걸 같이 시키기로 했다.
[먹어보시면 매력을 알 거예요. 조금 매울 순 있겠지만, 계속 들어가는 맛이거든요.]여기는 내 맛집 리스트에 포함된 식당이다. 거리가 있어서 멤버들도 아직 데리고 오지 못했는데 로티플로는 영광으로 생각해야 한다.
대창, 막창 구이에 곱창 전골을 보통 맵기로 주문하고 계란찜과 쿨피스, 공깃밥을 추가했다.
매운맛이 상향 평준화되어 있어서 보통 맛이라고 해도 매운 편이지만, 다음날 속 아픈 정도는 아니었다.
[냄새는 합격. 눅진한 기름 냄새가 나!]테이블 위에 밑반찬이 깔리고 곧바로 곱창과 막창이 나왔다. 종업원이 구워주는 가게라서 ‘드셔도 됩니다’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
젓가락질이 불편할까 했는데 둘 다 어설프긴 해도 곧잘 했다. 한식 좀 먹어보긴 했나 보다.
[이건 ‘대창’, 이건 ‘막창’이에요. 뜨거우니까 조심히 드세요. 아래 있는 소스 찍어서 먹으면 돼요.]일부러 소리 나는 대로 알려줬다. 막창이나 대창이 어느 부위인지 알면 거부감이 생기니까. 막상 그 맛을 알게 되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으니 맛부터 보여준 다음에 밝히기로 했다.
막창을 조금 식혀서 입 안에 넣고 처음 씹었을 때의 감동을 어떤 것에 비교할 수 있을까.
젓가락으로 내 몫의 막창을 들고 두 사람이 첫입을 먹기를 기다렸다. 조심스럽게 입에 넣은 둘이 곧 눈을 크게 떴다.
[어때요?] [이게 뭐야아?! 세상에 이런 맛이 있었는데 몰랐다니! 앞으로 내 삶은 ‘Dae-chang’을 알게 된 날 전후로 나뉠 거야!] [쫄깃하고 맛있습니다! 기름 맛인데 이렇게 고소하고 깊은 기름 맛은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원 씨, 이 음식 재료가 뭡니까? 뇌는 아니겠고. 내장입니까?] [소 대창, 돼지 곱창이랑 막창이에요. 우리나라에선 꽤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거든요. 전골도 떠 드릴게요.]팔팔 끓어서 충분히 우러난 시뻘건 곱창전골을 두 사람에게 나눠줬다. 둘은 그릇에 담긴 국물을 망설이다가 한 숟가락 떠먹었다.
[음? 으음?! 매워?! 혀 아파!]로로는 매운 걸 잘 못 먹는지 물을 마시고 혀를 내밀고 울상을 지었다.
[…씁, 상당히 맵긴 한데 자꾸 끌리는데요? 나름대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음식을 먹어봤다고 자부했는데, 이건 새로운 맛이에요. 매운데 입에 착착 달라붙어요. 느끼한 맛까지 잡아주니까 끝도 없이 들어가겠어요!]매니저님은 입에 맞는지 점점 먹는 속도가 빨라졌다. 막창과 대창 한 입, 전골 국물 한 입을 번갈아서 무서운 속도로 흡입했다.
반면 로티플로는 두 번째 숟가락을 입에 가져다 댈락 말락 머뭇댔다.
[맛있는 거 같긴 해….]꺼려지는 비주얼의 재료와 뜨겁고 매운 국물 요리를 골랐지만, 절대 맛없는 음식을 추천하진 않았다. 나는 먹을 걸로 장난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매운데…!]먹는 게 고민될 정도로 매우면 속 편하게 포기하면 될 텐데 오기라고 생겼나? 부추겨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뜻인가?
[로로, 그거 알아요? 이 국물은 노말 버전이고 더 매운 헬 버전이 따로 있어요.] [What? 제일 매운 게 아니었어? 이것보다 더 매우면 고문 도구 아니야?] [고문 도구라뇨. 극한의 매운맛을 즐기는 분들에게 실례예요. 한국인이라면 보통 매운맛은 평범하죠.]매운 걸 못 먹는 한국 사람도 많다. 로티플로에게 편견을 심어주는 셈이지만, 알게 뭐냐 싶다.
[…매운맛은 통각이라고 하던데, 한국 사람은 고통을 잘 참는 거야?!]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려나? 매운맛이 스트레스를 줄인다는 연구도 있으니 한국인이 그만큼 스트레스받을 일이 많다는 식으로 해석되기도 할 테지만.
[우리나라에선 매운 걸 못 먹는 사람을 이렇게 불러요. ‘맵찔이’라고.]굳이 번역해 달라고 하길래 매운맛 못 먹는 루저라고 설명해줬더니 펄펄 뛰었다.
[…Maep-jji-ri? 발음부터 매우 불쾌해. 더 먹어볼래. 내가 맵-찌-리일 리 없어!]로티플로는 곱창전골을 한 숟가락 떠서 호로록 먹곤 괜찮은 척 연기를 했다. 그렇지만 오래 가진 못했다. 바로 포기하고 입에 밥을 쑤셔 넣었다.
[…그래, 인정해! 나는 ‘maep-jji-ri’야. 매운맛 루저라고!]매운 걸 아무렇지 않게 먹는 내가 ‘형님’이란다. 나이에 상관없이 능력 있는 사람은 다 형님이라면서.
웬만한 한국인은 로로한테 형님이겠는데?
로티플로는 놀리는 대로 즉각 반응하는 데다, 리액션이 톡톡 튀고 뮤지컬 배우처럼 극적이었다. 이런 재미가 있어서 멤버들이 짓궂게 굴었나!
[속 아프게 억지로 먹지 마요. 된장찌개 시켜줄 테니까 그거랑 계란찜 먹어요.]겨우 두 입이지만, 골탕 먹이는 건 이 정도면 됐다 싶다. 이 시간을 괴로운 기억으로 남기고 싶진 않으니까.
컵에 쿨피스를 따라주고 이것저것 챙겨주니 로티플로의 얼굴색이 원상태를 찾아갔다.
두 외국인에게 맛있고 색달랐을 점심을 먹은 후에 커피를 사서 드라이브하면서 작업실로 왔다.
내부 계단으로 2층으로 올라와서 현관문을 열었다.
[여기가 제 작업실이에요. 협업 진행하는 동안 지문 등록해줄게요. 오고 싶을 때 와요.]작업실 안으로 들어온 로티플로는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작업실이야, 박물관이야? 와, 장비도 그렇지만 악기랑 음반 가격 장난 아니었겠는데? 이거 나도 가지고 싶었던 기타! 한정판이라 못 구했는데…!] [구경할 거 없지 않아요? 로로 작업실은 훨씬 대단할 것 같은데요.] [아니! 돈이 있어도 못 구하는 것도 있잖아. 난 돈을 본격적으로 벌기 시작한 게 얼마 안 돼서 발품 팔아서 구해야 하는 악기나 음반은 거의 없어.]아, 그런 이유라면 이해된다. 기계 장비는 대부분 최근에 구매했지만, 악기나 음반은 어릴 때부터 모아왔다. 그 당시엔 그나마 구하기 쉬웠어도 지금은 구하려면 하늘의 별 따기인 것들이 많았다.
[개인 작업실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상당히 넓고 쾌적한데요? 여기랑 비교하면 루카 스튜디오가 초라하게 느껴지네요.]로티플로가 예전부터 사용해왔던 장소에서 곡 작업과 뉴튜브 촬영을 하겠다고 고집하는 탓이란다.
[루카, 스튜디오 옮길 생각 없어? 초심은 새 스튜디오에 가도 유지할 수 있다니까.] [고민해볼게. Hmm, 여기 보니까 조금 끌리기도 하고? 이원, 콜라보 하는 동안 나 여기서 지내면 안 돼?]여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