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4
예명 정하기
매니저 형이 나가고 연습실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차분한 서혼 형까지 설렘을 숨기지 못했다.
“예명은 내 본명보단 박하가 낫겠지?”
“박하준보단 박하가 부르기 편해. 너도 박하가 익숙하게 들리잖아.”
“지온 형은 흠, 랩네임이 더 낫지 않을까? 인지도도 있고, 래퍼 느낌 나고.”
“Z-on 제톤? 그래?”
박하와 지온은 예명을 어떻게 지을지 고민했다. 연습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분위기가 흐트러졌다. 춤을 추면서도 집중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정신은 어디 다른 곳에 있지 않을까.
“노래부터 틀어. 노래 틀면 본능적으로 반응할 테니까.”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초록 형에게 오란이 말했다. 오란은 해야 할 일은 제시간에 하자는 주의였다. 예명이나 그룹 이름, 컨셉은 바로 결정될 문제가 아니니까.
“자자, 연습부터 합시다!”
* * *
매니저 형이 다시 연습실을 찾아왔을 때, 우리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자주 연습하던 멤버 구성이었기에 적응은 빨랐다.
매니저 형은 지친 우리가 기특하다 싶은지 격려하듯 어깨를 두드렸다. 일부러 우리와 친해지려고 저녁 먹을 시간에 맞춰 왔다고 했다.
겉모습이나 딱딱한 말투를 보면 경찰이나 군인에 가까워 보였다. 실제로 군대에 오래 있어서 경호업무도 수행 가능하다고 했다.
겉모습과는 달리 세심하고 꼼꼼한 사람 같았다. 우리가 알레르기는 있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체질은 어떤지 하나하나 묻고 기록했다.
매니저로 뽑힐만한 이유가 있었다. 경력도 그렇지만, 누군가를 챙기고 관리하기에 적합한 성격 같았다.
저녁을 먹은 후에 매니저 형이 운전해서 숙소로 데려다줬다. 우리가 타고 온 차는 카니발이었다. 새 차는 아니고 다른 연예인이 쓰던 차였는데,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그 정도만 해도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우리에겐 호화로운 이동수단이었다.
“오늘 스케줄은 이걸로 끝이다. 숙소에서 지내는 첫날이라 정리하기도 바쁘겠지. 대강 정리하고 얼른 자라. 아직 학교 가야 하는 남초록, 함이원, 김지온은 내일 일찍 가봐야 할 테니까.”
쿨하게 인사를 한 매니저 형은 빠르게 사라졌다. 우리를 숙소 앞에 내려주고 숙소 비밀번호만 알려주고 그 안에서의 생활은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뜻 같았다.
숙소 생활이라고 해봤자 씻고 잠자는 걸 빼면 없긴 하지.
“들어가자!”
우리가 함께 지낼 숙소는 빌라 3층. 주택가에 있어서 조용했다.
내부에는 기본적인 가구만 있고 거실 가운데에 아직 정리되지 않은 짐이 쌓여 있었다.
방이 정해지지 않아서 이렇게 놔뒀나.
나를 포함해 숙소에 처음 온 멤버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안을 구경했다. 큰 방 2개엔 2층 침대가 있었고, 나머지 방 2개는 침대가 하나씩 있는 대신 방 크기가 좁은 편이었다.
“다 둘러봤지? 방 정해야 하니까 이리로 와.”
리더 초록 형이 주도해서 방 정하기를 했다.
“몇 달에 한 번씩 바꿀 수 있긴 한데, 짐 옮기는 것도 일이니까 되도록 정해진 대로 유지해보자. 그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말해. 조정해줄게.”
방 뽑기가 뭐라고 이렇게 떨리지. 마음이 맞으면 2인실도 나쁘지 않겠고 1인실은 혼자 쓰는 자유가 있겠고. 나는 아직 경험이 없어서 어느 쪽이 낫겠다는 판단이 안 섰다.
“다들 펼쳐봐. 1이랑 2는 1인실이고 3, 4는 2인실이야.”
뽑기 종이를 펼쳐보니 숫자 3이 적혀있었다. 누구랑 같이 쓰는 거지?
“누가 3 뽑았어? 나랑 같이 쓰겠네.”
다른 한 명의 3은 서혼 형이었다. 무난한 결과 같았다. 서혼 형은 세심하고 다정한 구석이 있고 까다롭지 않으니까.
우리는 서로 종이를 확인한 다음 미소 지었다. 서혼 형도 내가 룸메이트로 나쁘지 않나 보구나.
“후. 벌써 골치 아프네.”
“왜 골치가 아파? 나는 오란이랑 같은 방 좋은데, roommate!”
오란은 지온과 같은 방이 됐다. 자유로운 영혼인 지온과 규칙적인 오란의 생활은 난관이 예상됐다.
게다가 오란이 아는지 모르지만, 지온은 상당한 맥시멀리스트. 둘의 방이 어떤 모습이 될지 눈앞에 훤했다. 조만간 오란이 방 교체 요청을 하지 않을까.
초록 형과 박하는 1인실이라 별로 불만이 없는 모양이다. 아니, 박하는 2인실이 더 재밌겠다고 칭얼거렸다.
“얼른 각자 방에 짐 정리해. 그 후에 다 같이 컨셉이랑 그룹명, 예명 생각하는 시간으로 하자.”
“와아! 1등으로 정리해야지.”
다들 방 정리를 시작할 때, 나는 부모님의 연락을 받고 숙소 앞으로 나갔다. 두 분은 내가 싸놓은 짐을 전달해주러 와주셨다.
우선 급한 물건만 챙기고 빠뜨린 물건이나 옷은 천천히 가져오기로 했다.
“이원아. 괜찮겠니?”
“걱정하지 마세요. 낯설지만 어떻게든 적응하게 되겠죠.”
“그래. 나는 우리 이원이만 믿어. 작업실은 엄마가 빨리 구해줄게.”
아침에 부모님께 내 작업실로 쓸 공간을 구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었다.
바이올린 연주할 때에 쓰던 연습실도 처분해야 하고, 내 악기가 있는 곳에서 곡 작업을 하고 싶었다. 음악을 만들고 싶어서 손이 간지러웠다. 음악으로 나를 표현하던 버릇이 남았기 때문일까.
“위치가 숙소랑 가까웠으면 좋겠어요. 아무 때나 자유롭게 갈 수 있게.”
“그래. 그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주마. 아빠는 이원이가 건강 잃지 않게 조심했으면 좋겠어. 꿈도 중요하지만 아빤 이원이가 더 중요해.”
데뷔 평가 무대를 끝내고 쓰러진 사건으로 인해 부모님은 내 건강에 유독 신경 쓰셨다. 무리한 행동으로 인한 업보라서 나는 몇 번이고 부모님을 안심시켜야 했다.
* * *
아이돌의 예명은 어떻게 지어질까.
이름이 촌스럽거나 흔하거나 임팩트를 더 주고 싶다면 예명을 짓게 된다. 물론 본명을 그대로 쓰는 경우도 많았다. 그 경우엔 대부분 본명에서 성을 떼어내고 예명으로 삼았다. 그 외에는 회사에서 지어주기도 하며, 자신이 짓기도 했다.
실무진이 모인 회의에 참석한 우리는 낯선 공기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주르륵 모여앉은 우리에게 시선이 전부 몰려들었다. 주인공이 된 기분이 이럴까.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겠다는 생각과 그래도 자유롭게 주장을 펼치고 싶다는 욕구가 뒤섞였다.
회의의 첫 번째 주제는 예명 정하기였다.
“남초록보다는 ‘초록’이 좋겠어요. 성의 어감이 센 데다 초록이란 이름 자체도 특이하니까요.”
“저도 동의합니다. 초록으로 좋습니다.”
초록 형의 예명은 비교적 쉽게 정해졌다. 이름이 특이해서 그런 것 같았다. 겹치는 연예인도 없었고 외우기도 쉬운 이름이었다.
“홍오란 연습생은, 음. 오란이 낫죠?”
“홍란, 오란. ‘란’도 괜찮지 않나요?”
“란은 그냥 들으면 여자로 착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란도 살짝 그렇긴 한데….”
“새로 지을까요? 근데 요즘 보니까 예명 지어서 나와도 팬들이 본명을 부르더라고요.”
“오란으로 일단 정해두고 수정의 여지를 두죠. 오란 씨는 어때요? 아, 이런!”
존칭을 붙여 부른 신인 개발 팀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오란씨? 아니 이거 괜찮아요? 제품명이 들어가잖아요! 이름이긴 한데 이건….”
“아니, 이름이 원래 이렇다는데 어쩔 거예요?”
다른 직원들도 이제야 눈치챘는지 웅성거렸다. 이런 사례를 들은 적이 없어서 당황했다.
이름 자체가 제품 광고가 되어버리다니? 이게 도의적으로 괜찮은지 별의별 생각이 지나쳐갔다.
대표님이 그 혼란을 잠재운 후 물었다.
“본인 의견이 제일 중요하죠. 홍오란 연습생은 생각은 어떤가요?”
“저는 만족합니다. 제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그 제품의 인지도가 저한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광고를 가지고 올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요.”
“흠. 그래요? 그렇다면 내가 알아보고 처리하죠.”
문제가 될 부분에 대해서 미리 검토하고 준비해놓겠다는 뜻이었다. 대표님만 믿고 있으면 뭐든 처리해줄 것 같은 든든함을 느꼈다.
“서 혼. 외자 이름이라 멋있지만 한 글자로는 부르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혼입니다. 서혼입니다. 음…. 아무래도 후자가 낫죠?”
“혼 씨. 서혼 씨. 네. 후자가 나아요. 특이한 이름이라 새로 지을 필요를 못 느끼겠고요. 본인은 마음에 드나요?”
“네. 저도 본명으로 활동하고 싶습니다. 아역 배우 시절에도 본명 썼었고요.”
성도 이름도 흔하지 않았다. 어디 소설이나 드라마에 등장할만한 멋있는 이름이었다. 팬들에게도 쉽게 각인될 듯했다.
“다만 발음에 유의해야겠어요. 혼이라는 이름이 특이하다 보니까 훈으로 듣지 않을까요? 서훈은 별로 특별하지 않죠.”
“네. 소개할 때 조심하겠습니다.”
여러 사람의 시각에서 이름을 분석하는 일은 재밌었다.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고, 예상치 못한 견해가 튀어나왔다.
“저는 박하가 좋아요! 예명은 박하로 할래요!”
“그래. 박하준보단 박하가 낫지?”
“그런데 박하야. 그게 발음이…. 너도 알지?”
“바카, 일본어로 바보랑 비슷해서요?”
“맞아. 그래도 박하로 할래? 나는 아예 다른 예명으로 짓는 걸 추천하고 싶은데.”
박하는 고민했다. 김칫국 마시는 것 같지만 나중에 일본에서 활동하게 되면 ‘바보’로 불릴 수도 있었다.
박하준보다 박하가 본명처럼 느껴질 만큼 익숙해서 예명을 박하로 하겠다고 했었는데. 새로운 선택지가 주어지자 박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어…. 그래도 박하로 할래요! 일본에 가게 되면 하준으로 활동할게요.”
“더 고민해본 다음에 결정하자. 아직 시간 남아있으니까.”
“…네.”
바로 결정을 내리지 않고 박하에게 유예를 줬다. 하지만 결국은 박하 고집대로 밀고 나가지 않을까.
“김지온 연습생은 어떻게 하고 싶어요? 지온, 제톤 모두 좋은데요.”
“저도 둘 다 괜찮습니다.”
“쇼미더골드에서 얻은 인지도를 이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제톤에 1표요.”
“어떻게 하든 힙합 씬에선 별로 안 좋아할 테지만….”
래퍼들은 아이돌 그룹의 래퍼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과거엔 래퍼 포지션이 노래를 못해서 맡는 경우가 다수 있었고 아이돌로 데뷔하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랩을 배우는 터라 실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또 다른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랩을 하므로 래퍼라고 부를 수 없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 후로 아이돌 래퍼들의 실력이 많이 늘기도 했고, 직접 랩을 쓰는 경우도 많아지긴 했지만, 아직 대부분은 아이돌 래퍼와 래퍼를 엄격하게 구분했다.
그런데 쇼미더골드에 참가해서 준수한 성적을 거둔 제톤이 아이돌이 됐다? 래퍼에서 아이돌 래퍼로? 힙합 씬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긍정적일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 같았다.
반대로 팬들에게는 실력이 검증된 래퍼라는 점으로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장점이 단점보다 크다고 봐요. 제톤이 좋겠어요.”
“그럼 제톤으로 해요.”
지온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그쪽에서 안 좋아해? 그래서 뭐.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자기중심적인 성격이라 부정적인 말을 듣는대도 자기 갈 길을 꿋꿋하게 가겠지.
“마지막은 함이원 연습생입니다. 원하는 거 있어요?”
“아니요.”
그냥 이름으로 활동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회의실에 앉은 사람들이 다들 내 이름을 중얼거렸다. 함이원, 이원, 원, 함원…. 내 이름과 관련된 발음들이 줄줄이 이어서 나왔다.
“함이라는 성이 특이해서 성까지 붙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원도 나쁘지는 않지만, 뇌리에 꽂히진 않아요.”
“그렇죠? 함이원. 이대로가 좋네요.”
신인개발 팀장님이 아직 바꿀 여지는 있으니까 괜찮은 아이디어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말했다.
“다음 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전에 세계관에 대해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세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