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41
눈 한번 깜빡
본격적인 해외 활동 전에 맛보기로 진행했던 콜라보 작업은 테오라의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여 주었다. 기대 이상의 성과에 콜라보를 추진했던 직원들의 어깨가 한껏 올라갔다.
특히 SNS상에서는 미친 인기를 얻고 있었다. 잘나간다 싶은 릴스나 쇼츠 같은 숏폼 배경음악은 모두 테오라와 로티플로의 콜라보 앨범이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타이틀은 물론 수록곡까지도 빠짐없이 사랑받았다.
그것은 테오라X로티플로의 음악이 힙하면서도 위트 있고 어디에나 잘 어우러진다는 뜻이었다. 이 콜라보 앨범의 무서운 점은 SNS의 주 이용자를 표적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아름다운 음악을 탐미해온 함이원의 예민한 귀. 대중의 취향보다 딱 한발 앞서나가게 하는 로티플로의 짐승 같은 촉. 그 두 가지가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무시무시한 시너지를 일으켰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테오라 멤버들의 생활을 그다지 변하지 않아서 직접 체감하기 어려운 인기였다. 주변 지인들과 스태프로부터 전해 듣긴 했어도 바로 소화시키진 못했다.
실물 앨범이 없는 디지털 앨범인데다 이벤트성으로 두어 번 무대에 섰을 뿐이라 멤버들에게 각종 매체의 호들갑스러운 띄워주기는 닭살 돋게 느껴졌다.
“형들, 그 얘기 들었어? ?痢 콜라보 앨범을 듣다 보면 이상하게 웃음이 난대!”
“아아. 어느새 거울을 보면 웃고 있어서 소름 돋는다나? 이원아, 곡에 무슨 짓을 한 거야?”
“나? 나 때문이야? 아닐 텐데.”
로티플로와 함께 곡 작업을 해서 노래의 분위기나 성향이 조금 다르긴 했다. 그렇지만 이 일은 곡 작업 때문이 아니라 녹음 때문이었다.
이번에 녹음은 우리끼리 진행했는데, 공동 프로듀서 역할을 맡은 로티플로가 무조건 즐기면서 불러야 한다고 우겼다. 샘플 녹음을 해보니 결과물이 괜찮아서 의견을 받아들여서 진행해 봤다.
로티플로 한 명 끼었다고 녹음 부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난 그 웃음의 잔재가 노래에도 남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귀는 생각보다 훨씬 예민해. 우리 웃으면서 녹음했었잖아. 그걸 느꼈을 거라고 봐.”
“아? 웃음이 전염돼서 그렇다고?”
“그럴듯한 해석이네.”
뭐가 다른지 꼭 집어 말하긴 힘들어도 목소리에 묻은 미묘한 즐거움을 본능적으로 알아챈 게 아닐까?
“히히! 우연의 일치라고 해도 좀 신기해! 저절로 웃게 만드는 노래라니! 요즘 같은 시대에 꼭 필요한 노래야!”
호소력 짙은 발라드처럼 그 속에 담긴 감정이 느껴진 것이라면 기대 이상의 성과다.
“이원 형! 루카랑 요즘도 연락해?”
“응. 왜?”
사실은 로티플로가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해오고 있다. 전화를 못 받을 때가 많아서 보통은 메시지 어플로 연락하는데 잠깐 눈만 떼면 메시지 폭탄이 와 있곤 했다.
“아쉬워서! 루카가 안 바빴으면 더 놀 수 있었을 텐데! 한참 후에야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박하는 콜라보 작업 후반부에 우리끼리 놀러 다녔던 그 짧은 시간이 즐거웠던 모양이다. 다음 일정 때문에 출국하게 된 로티플로도 아쉬움을 뚝뚝 흘리면서 끌려갔다. 곧 미국으로 초대하겠다고 몇 번이고 약속하면서.
“콜라보 요청은 물론이고 스케줄이 마구 쏟아져 들어와서 성실한 비즈니스맨처럼 지내느라 영감이 올 틈이 없다고 투덜대던데.”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작곡하고 싶을 때 작곡하는 로티플로에겐 가혹한 일정이려나? 매니저님의 달래기 스킬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거 하나는 알 것 같았다.
“루카 금방 다시 볼 수 있을걸. 실물 앨범 발매 요청이 많아서 리패키지 앨범으로 낼 수도 있을 것 같다더라고.”
“리패키지 앨범?”
정보가 빠른 초록 형은 다른 멤버들이 모르는 정보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실물 앨범으로 내달라고 팬들이 단체로 요청하고 있다고는 들었는데 그게 리패키지 앨범 작업까지 이어지게 됐다는 소식은 금시초문이었다.
“어. 아마 앨범 커버 바꾸고 몇 곡 추가해서? 어차피 루카랑 같이 만들었던 곡들이 몇 곡 더 있었잖아?”
녹음까지 했다가 마지막에 제외했던 곡도 있었고 여러 개의 다른 버전으로 편곡된 곡도 있으니 곡이 모자라진 않을 터다. 그래도 리패키지 앨범을 내려면 아무래도 로티플로와 다시 만나야겠지만.
“이번엔 우리가 가? 한번 루카가 왔으니까 한번은 우리가 가야 공평하잖아!”
“여섯 명 전부? 미국을? 요즘 같은 스케줄에 가능하겠냐.”
비행시간만 따져봐도 무작정 가긴 어려울 거다. 그냥 화상 회의로 어떻게든 해봐야 하나?
바쁜 로티플로를 다시 부르기도 미안하고, 우리가 가기엔….
“확정되면 이야기해주려고 했는데, 미국에 갈 수도 있다.”
준현 형이 툭 던진 이야기에 한순간 밴이 들썩거린 것 같다. 착각이려나?
“미국에요? 그 아메리카에? 와우! 진짜로요?”
박하는 믿기지 않는지 몇 번이고 되물었다.
“아직 결정되진 않았는데 리패키지 앨범 관련해서 조율할 겸 뮤비 찍을 겸 최대 열흘 정도.”
“아아! 우리도 해외에서 뮤직비디오 찍어보는 거예요? 우와아아!”
그간은 국내에서 알차게 뮤비를 찍었으니 한 번쯤은 해외에서 찍어보겠다는 계획인 듯했다.
“일정상 다음 앨범 뮤비는 아니겠고 리패키지 앨범 뮤비예요? 호화찬란하네요. 하긴, 이번 타이틀 뮤비를 얼렁뚱땅 찍긴 했죠.”
카메라 감독님만 붙었을 뿐, 특별한 스토리를 정하고 뮤비를 찍진 않았다. ‘Simple Happiness’라는 타이틀곡 제목처럼 단순한 행복을 느끼는 우리의 모습을 모아둔 형태였으니까.
다큐멘터리와 거의 유사했다. 전문가의 손길이 들어가긴 했어도, 정작 카메라에 찍힌 우리는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도 잊고 맛집 탐방을 하면서 평소처럼 몰려다닌 게 전부였다.
오죽하면 촬영을 더 길게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을까.
3일 동안 뮤비 촬영을 핑계로 열심히 놀았을 뿐인데 결과물이 그럴듯하게 나와서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그걸 미국 버전으로 하나 더 찍으면 되는 걸까?
은근히 바라면서 운전석에 앉은 준현 형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는데 멤버들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심지어 조용히 쉬고 지온도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린 채였다.
이럴 때마다 텔레파시라도 통하는 듯하다. 누가 같은 그룹 아니랄까 봐.
“미국 가고 싶어요! 꼭 가고 싶어요! 꼭이요! 준현 형, 저 해외여행 가보고 싶어요!”
굳이 말하자면, 일하러 가는 셈이니까 여행보다는 출장에 가깝겠지만, 설레는 마음은 나도 이해할 수 있다. 멤버들과 함께하는 해외 여행이라니.
한번도 해외에 나가본 적 없다는 박하와 홍오란은 여권부터 만들어야 한다면서 언제 사진을 찍으러 갈지 상의했다.
어쨌거나 우리가 실망하는 일은 없을 거다. 김칫국부터 잔뜩 마셔버릴 우리를 아는 준현 형이 이야기를 꺼낸 데엔 이유가 있을 테니까.
리패키지 앨범을 급하게 낼 예정은 아니라고 하니 내년 초나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그때까지 기다리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바쁘게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곤 하니까.
* * *
눈 한번 깜빡하니 어느새 수능이 가까워져서 팬들을 위한 응원 영상을 찍었고, 다시 눈을 깜빡하니 연말 시상식과 행사 일정 때문에 여기저기 불려 다녔다.
우리 모두 날짜나 요일에 상관없이 스케줄을 다니다 보니 어느샌가 날짜 감각도 요일 감각도 흐려진 지 오래였다. 그래도 얼굴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으로 겨울이 왔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다들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라. 옆 보온병에 생강레몬차 있으니까 틈틈이 마시고, 목 건조하면 바로 말하고….”
준현 형은 독감이 유행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매일 잔소리를 하는 중이었다. 일정상 연달아 무대에 올라야 해서 누구 하나라도 감기에 걸리면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 명이 걸리면 다른 멤버에게 옮기는 건 순식간일 테고 그러면 무대 위에 제 컨디션으로 올라갈 수 없게 되니까.
“예예~ 조심할게요. 근데 다 같이 독감 예방 주사도 맞았고 손도 부지런히 씻고 있는데 독감 걸리면 억울하겠는데요?”
사람 가려가면서 오진 않겠지만, 이렇게 조심하는데도 감기에 걸리면 조금 억울할지도.
원래 연례행사처럼 1년에 한 번씩 감기에 걸렸었는데 이번엔 아직 걸리지 않아서 살짝 불안하긴 하다.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말하고. 초반에 잡아야 약하게 지나가니까.”
박하는 약도 주사도 싫다면서 절대 아프지 않겠단다. 그러면서 각자 감기 예방하는 비법을 알려달라고 졸랐다.
“박하야, 면역력이 높으면 감기도 안 걸리는데 같이 아침 운동할까?”
“아니! 아침에 너무 추워서 못 나가겠어!”
“실내 헬스장은….”
서혼 형의 제안은 칼같이 거절당했다. 요즘 일어날 때마다 이불 밖으로 나오기까지 한참 걸리는 박하에겐 애초에 먹히지 않을 제안이었다.
“비타민 먹기? 준현 형이 챙겨주는 대로만 해도 따로 비법까지 안 써도 돼.”
“난 감기 걸려본 적이 없는데.”
“엑? 말도 안 돼!”
“Huh?”
십수 년을 살면서 감기에 걸린 적이 없다고? 그럴 리가. 서혼 형이 아니라 홍오란이 한 말이라 더 신빙성이 없었다.
서혼 형이 지금까지 감기에 걸린 적이 없다고 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하고 넘어갔겠지만, 홍오란이?
“왜 말이 안 돼. 나 의외로 건강 체질인데.”
잔병치레는 잘 안 하는 타입이었나 보다. 특별히 연약해 보이진 않아도 건강 체질로까진 보이지 않는데.
“그래도 감기를 한 번도 안 걸릴 수가 있나? 기억 못 할 뿐이지 어릴 적에 자주 걸렸을걸? 아기들은 감기 걸리는 게 일이거든.”
초록 형은 가끔 외가 쪽 조카들을 볼 때마다 감기에 걸려있었다는 경험적 증거를 들었다. 나도 환절기마다 소아과에 환자가 넘치는 모습을 봤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 감기 걸린 적 없어.”
“뭔가 불안한데.”
“이런 걸 플래그가 섰다고 하지…?”
초록 형, 서혼 형만 아니라 나도 뭔가 찜찜해졌다.
“뭔 플래그. 내가 아무리 운이 안 좋아도 그렇지 예방 주사까지 맞았는데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잖아!”
“설마는 무슨 설마….”
우리 반응에 확신이 흔들리는지 오란의 말끝이 떨려 나왔다.
“…함이원. 너 한동안 나랑 같이 다녀.”
“나?”
“내 행운의 마스코트잖아, 너.”
그거 까먹은 거 아니었나? 한참 전에 나왔던 얘기 같은데 아직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감기가 무슨 복불복이라도 돼?”
“우리 그룹을 위해선데 그것도 못 해줘?”
영악하긴.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거절할 수 없을 거라고 알고서 이런다.
“…알았어.”
홍오란은 이날부터 일어나서 자러 가는 순간까지 대부분을 내 옆에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멤버들과 붙어 있어서 별로 달라진 건 없었지만, 내 시야에 계속 잡혀서 홍오란 얼굴은 지겹게 봤다.
얼른 바쁜 시기가 지나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홍오란을 비롯해서 나와 멤버들은 연말까지 건강하게 보낼 수 있었다. 진짜 효과가 있었던 건 아니겠지?
“함이원 덕분에 멀쩡하게 오늘까지 버텼네. 고맙다?”
“드디어 끝이야?”
“어.”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보신각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야외에서 대기하는 중이라 말할 때마다 입김이 하얗게 나왔다. 얼음이라도 물어야 하나?
“박하준, 안 떠네? 그래도 두 번째라 이건가?”
“그야 우리도 선배니까!”
선배. 그 단어가 어색해서 떨떠름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선망 어린 눈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