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46
다시 일상으로
고작 열흘 떠나있었을 뿐인데 겨울 날씨가 훨씬 혹독하게 느껴졌다.
“아우, 추워!”
박하는 패딩을 입고도 엄살을 피웠다. 그러면서도 추위 같은 건 전혀 모른다는 듯이 해맑게 웃었다.
공항에 상주하는 기자들에게 사진이 찍힐 터라 표정 관리는 필수였다. 그나마 잠깐의 추위만 견디면 돼서 다행이었다.
겨울에는 추워야 멋쟁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가 보다. 패션의 아이콘이 되려면 이 정도 고통은 마땅히 견뎌야 한다.
찰칵거리는 셔터음과 플래시를 뒤로하고 공항에서 재빨리 빠져나왔다. 경호원분들과 준현 형의 도움으로 두열 형이 끌고 온 밴에 올라탔더니 훈훈한 온기가 우리를 반겼다.
“공기부터 다른 것 같지 않아?”
초록 형은 나와 같은 감상을 느끼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의 공기를 처음 마시는 순간부터 ‘우리가 한국에 돌아왔구나!’하고 깨달았다.
“아, 굼벵이 앞에서 주름을 잡았나?”
초록 형의 고개는 지온 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나나 초록 형이 해외여행을 여러 번 다녔다고는 해도 지온한테 견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지온이라면 우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강렬한 감상을 받지 않았을까?
지온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적에 영국으로 이민 갔다가 십여 년 만에 한국에 왔으니까.
“그땐 무작정 오느라 대단한 느낌을 받진 못했는데. 사람들이 많고 바쁘게 움직인다는 정도?”
“무작정 왔다니?”
서혼 형이 반문했다. 지온이 한국에 들어온 직후의 이야기는 나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들어보지 못한 듯했다.
“랩 경연 프로그램 참가자 모집한다는 광고 보고서 무작정 비행기 티켓 끊었던 거라.”
“헐! 지온 형, 대책 없었구나!”
“법적 보호자한테 말해두긴 했어.”
상의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고 온 듯했다. 자유로운 영혼인 줄은 알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미성년자였다. 그 나이에 바다 너머의 연고도 없는 나라로 가겠다고 마음먹고 곧장 실천까지 할 수 있다니.
나는 우물 바깥의 세상에 미지의 공포를 느끼고 안온한 우물 안에서 안주하는 개구리 아니었을까. 지온과 비교하면 누가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닐 수 있겠냐만.
“그렇게 한국 오고서 안 혼났어?”
“내 인생이니까 내 마음대로 살라고 하고 끝이었어.”
쿨하다 못해 서늘했다. 지온이 부모님과 그리 살가운 사이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냉담하게까지 느껴졌다.
얼핏 들으면 마냥 자식의 꿈을 응원하는 부모님 같지만, 미성년자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맨몸으로 해외에 가서 생활하겠다는 긴급 상황이었다. 결코 평범한 반응은 아니었다.
“영국에서 미리 잡아둔 숙소가 이중 예약됐다고 하는 바람에 새 숙소 찾느라 바빠서 정신없었던 것만 기억나.”
“뭐어?”
부모님 쪽 친척과도 전부 연락이 끊겨서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나마 의사소통은 돼서 어렵지 않게 돈을 돌려받아 고시원에서 몇 달 살았다고 지온은 아무렇지도 않게 과거를 회상했다.
“노숙자 체험해 볼 기회였는데 아쉬워.”
“으악! 그게 왜 아쉬워!”
아찔하게 들리는데 정작 본인은 전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사람들이 알아보는 아이돌이 된 지금은 시도조차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아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길에서 신문지를 덮고 노숙하는 중학생 지온…?
현실성 넘치는 상상은 지온이 주위를 슥 둘러보더니 바람이 덜 부는 자리를 찾아 야무지게 누워 꿀잠을 자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상상에서조차 지온은 허술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뭐, 우리나라 치안은 안전한 편이니까 괜한 걱정이었나 싶기도 했다.
“쇼미더골드 참가하는 동안은 고시원에서 지내다가 하눌에 들어오고 나서 편해졌어.”
하눌 엔터가 연습생에게 숙소까지 제공하지는 않지만, 일정 금액의 주거 지원비와 함께 숙소를 구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들었다.
아마 회사에서 영국 국적인 지온에게 생긴 법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데도 도움을 주셨을 것이다.
지온은 그런 과정을 거쳐 구했던 집에서 살다가 예전 테오라 숙소로 이사하게 됐다고 했다.
“운이 좋았던 거지. 아무리 우리나라가 치안이 좋대도 주머니 탈탈 털려서 거지가 될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거든.”
“모르면 겁이 없는 법이라잖아.”
정말 맨땅에 헤딩할 수도 있었다.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한국에 겁 없이 온 것치곤 결과가 좋았다. 보통은 시도부터 하지 않을 테지만.
“운명인 거야! 그 먼 곳에서 날아와서 우리를 만나게 된 건!”
이 지구에 사는 80억 명의 사람 중에서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 아닐까.
“그럴싸하네.”
“그럴싸한 정도가 아니지! 오란 형은 낭만을 몰라!”
감성이 메말랐다는 박하의 타박에 차 안은 낭만을 주제로 헛소리 대회가 열렸다. 그동안에도 밴은 착실히 우리 숙소로 향해 달렸다.
* * *
에옹, 에옹?
본가에 맡겨뒀던 현이를 데리러 가니 현관까지 나온 현이가 평소와는 달리 구슬프게 울어댔다.
“아무래도 현이가 서러워하는 모양이구나.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하는 것 같지 않니?”
아빠 품에 얌전히 안겨 있는 치즈 고양이 주황이와 달리 현이는 애처로운 목소리로 울며 내 앞에서 서성였다. 얼른 현이를 품에 안아서 다독였다.
“저랑 너무 오래 떨어뜨려 뒀을까요?”
“그동안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았는걸? 이원이 네가 서운함을 알아주길 바라는 게 아닐까?”
현이에게 특별한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깨끗하게 단장한 털은 윤기가 자르르 돌고, 팔로 느껴지는 무게는 오히려 조금 무거워졌나 싶었다.
아빠 말씀대로 내가 미국에서 열흘의 일정을 보내는 동안 별일은 없었던 듯했다.
아마 앞으로도 해외에 나갈 일이 자주 있을 텐데 그때마다 현이를 데리고 나갈 수도 없는 일. 나 없이도 잘 지냈다는 증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현이가 단단히 삐졌나 보다. 아들이 싹싹 빌어야겠는데?”
현이는 칭얼대듯 야옹거렸다. 아빠는 그 모습을 보시면서 숙소에 돌아간 후에 생길 일이 눈에 훤하다면서 너털웃음을 터뜨리셨다.
“저녁이라도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 많이 바쁘니, 이원아?”
“저녁까지 먹긴 시간이 애매하고, 한 시간 정도 있다가 갈게요.”
내가 직접 집에 들러 현이를 데려갈 거라고 했을 때부터 이것저것 준비해두셨을 아빠의 모습이 훤해서 매정하게 돌아설 수가 없었다. 바쁘다고 하면 아무렇지 않은 척 내 두 손에 바리바리 챙겨주실 테지만, 그게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다.
불효자가 된 기분이었다. 기분이 아니라 진짜 불효자인가?
한 달에 한 번 볼까 말까에 연락을 자주 하는 살가운 아들도 아니었다. 나한테 나 같은 아들이 있었으면 속으론 서운했을지도.
“우리 아들들이 벌써 데뷔 2주년이나 됐다니 믿기지 않는구나.”
미국에 있을 때 데뷔 2주년 기념일을 챙겼다. 거창하게 챙기긴 어려워서 현지인만 아는 맛집에서 케이크만 챙겨서 라이브 방송을 했었다.
새삼스럽게도 우리가 데뷔한 지 2년이나 됐다. 당시엔 시간이 빠른 줄 몰랐는데 순식간에 지난 세월이었다. 앞으로의 시간도 아마 마찬가지겠지?
지금의 이 시간을 소중히 여겨줘야겠다 싶었다. 돌이켜 보면 이마저도 한순간일 테니까.
“이원아, 언제 멤버들 전부 초대할까? 아직 오란이나 박하는 아빠가 못 만나봤기도 하고.”
예전에 데뷔조로 결정되고 나서 어쩌다 보니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됐었다. 그때 둘은 참석하지 못해서 다음 기회를 기약했었다.
며칠 휴가가 생기면 가족처럼 당연하게 우리 집에 같이 오는 지온도 있는데 둘은 적당한 기회가 나지 않아서 아직 우리 집에 온 적이 없다.
“전시회 얼마 안 남지 않았어요?”
아빠는 다작하는 화가셨다. 작업 속도가 빠르기도 하고 항상 성실하게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겸 화가셔서 전시회에 낼 작품은 쉽게 모였다.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전시회를 여는데 이번엔 3월에 날짜가 잡혔다고 들었다.
전시회 날짜가 가까워지면 준비할 것도, 신경 쓸 것도 많았다. 그래서 바쁜 시기엔 중요한 약속은 잡지 않는 편이셨다.
아빠 주위를 온화하게 흐르던 공기가 전시회 시즌만 되면 날카로워져서 엄마도 눈치를 보실 정도다.
멤버들을 초대하면 그 전날, 아니 한 일주일 전부터 어수선할 테니 여유로울 때 날짜를 잡는 게 나았다.
“참, 그렇구나. 그럼 전시회 마친 후에 초대해야겠다. 너희 스케줄에 맞춰서.”
아직 3월 스케줄이 빠듯하게 잡히진 않아서 하루쯤은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때 가봐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전시회에도 멤버들이랑 같이 들를게요. 첫날 빼고요.”
첫날은 아빠가 손님들 맞이해야 해서 정신없으실 터였다. 거기에 혹시라도 우리 정체가 들키면 더 복잡해질 테고.
아빠 전시회는 수도 없이 가봤지만, 첫날은 특히 북새통이라 잠깐 이야기를 나누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둘째 날이나 마지막 날 다녀오곤 했다.
작년엔 활동 기간이랑 겹쳐서 마지막 날에나 간신히 들러 꽃다발을 드릴 수 있었다.
“아빠 전시회는 해가 지날수록 인기가 높아지는 것 같아요.”
전시회 오픈과 거의 동시에 작품 대부분에 ‘판매 완료’라는 의미의 빨간 딱지가 붙었고, 전시회 관람객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다.
“하하, 내 그림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진다는 건 고마운 일이지. 안 그래도 다음부턴 전시회 규모를 늘려볼까도 싶구나.”
이번엔 전시회 날짜가 잡혀서 어쩔 수 없지만, 다음엔 더 큰 전시회장에서 아빠 그림을 만날 수 있을 듯했다.
“자랑할 만한 아빠가 되고 싶어서 열심히 했지. 언제 이원이 아빠라는 게 알려질지 모르니까.”
“열심히 안 하셔도 언제나 자랑스러운 아빠예요.”
우리 가족을 굳이 알리지 않는 건 곤란해질까 싶어서지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이원이가 언제 이렇게 컸지?”
대답을 바라고 하신 말씀은 아니어서 갓 만든 애플파이에 차가운 얼그레이를 한 모금 마시는 걸로 부끄러움을 넘겼다.
얼마 만에 아빠랑 티 타임을 갖는 거지? 적어도 소소한 수다가 곁들여진 티 타임은 처음이었다. 이전까지는 아빠가 혼자서 정적을 깨뜨려야 했고, 내가 이 목소리를 선물 받은 후엔 여유가 없었으니까.
“전시할 그림은 다 고르셨어요?”
“거의 골랐긴 한데, 아빠 작업실 둘러보다가 선물하고 싶은 그림 있으면 말하렴. 아들이 원하면 얼마든지 빼둘 테니까.”
아빠 그림은 어렵지 않다. 아기자기한 동물과 식물, 물건들이 그림의 모델이 되는 편이고 화풍도 둥글둥글하다. 집에 걸어두면 따듯한 분위기를 낼 수 있다고 입소문을 타서 꾸준히 수요가 늘었다.
가격대가 어마어마한 것도 아닌데다 전시회를 거듭할수록 그림 가격대가 올라갔다. 투자용으로도 제격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그런 그림을 가지고 싶으면 가지라니. 가족이기에 얻을 수 있는 특권이었다.
“제가 전부 다 쓸어가면 어쩌시려고요?”
“그럼 정해진 전시회 계약을 무를 순 없으니 죽어라 그려야지! 그치만 우리 아들이 설마 그렇게 욕심쟁이일까?”
“농담이에요. 아빠 그림을 목 빠지게 기다릴 사람이 있는데 새치기하면 안 되죠.”
몇백에서 몇천까지 가는 금액대의 그림이라 선물치고는 살짝 고가이기도 했다. 멤버들에게 줄 수는 있겠지만, 부담스러워할 것 같았다. 예전에 호텔 예약권을 줬을 때 반응을 떠올려보면 거의 확실했다.
“나중에 손바닥만 하게 그려주세요.”
작은 크기면 뇌물인 걸 들킬 위험은 적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