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59
극한 직업
테오라의 다른 앨범과 달리 정규 2집은 준비 기간이 상당히 길었다. 중간에 중요한 스케줄이 생기는 바람에 드문드문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준비한 정규 2집 앨범 발매도 이제 코앞까지 다가왔다. 앨범 발매 후에 음방을 짧게 돌다가 봄 축제 시즌이 시작되면 바쁜 일정을 보내게 될 예정이었다.
관계자분들이 봄 축제 행사를 뛰기 전에 앨범을 발매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도 직접 팬들과 함께 호흡하는 무대를 좋아해서 흔쾌히 그 의견을 받아들였다.
다른 아이돌 그룹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컴백을 예고한 그룹들이 넘쳐났다. 원래 활발하게 활동했던 아이돌은 물론 작년에 그룹 앨범을 내지 않았던 팀까지도 컴백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야말로 신곡이 쏟아지는 시기였다. 테오라의 곡이 그 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일단 내부 평가는 언제나 그렇듯이 긍정적이었다. 멤버들은 물론 노래도 좋지만, 퍼포먼스로도 대중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다.
나는 이번 앨범 컨셉이 지금까지 우리가 시도하지 않았던 섹시 컨셉이라는 점을 믿고 있었다. 의외성은 강력한 무기였다.
그런 탓에 앨범 발매 전까지 ‘컨셉 스포 금지’라는 조건이 생겨났다. 첫 무대로 충격을 주려면 그전까지 컨셉이 밝혀져선 안 된다는 이유였다.
티저와 하라메는 교묘하게 편집돼서 정체 모를 심오함이 담긴 컨셉으로 보였다.
포인트 안무를 추는 부분은 티저에 넣지 않았다. 노래 가사도 해석하기 나름이었고, 멜로디에 끈적함을 살짝 첨가했을 뿐이라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다.
의상을 꼼꼼히 숨겨야 하고 입단속을 해야 한다는 점을 빼면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다행히 컴백 전날인 오늘까지 컨셉을 스포하지 않는다는 업적을 이뤘다.
“내일이면 테오라 정규 2집 나오는 날!”
데뷔 후 2년 동안 싱글 2집, 미니 1집, 정규 1집에 콜라보 스페셜 앨범까지 다섯 개의 앨범을 냈다. 올해도 최소한 앨범 두 개는 내지 않을까 싶었다.
“섹시 컨셉이 이렇게 가혹할 줄이야….”
지금까지는 준비 기간에만 식단 관리를 바짝 하고, 활동기에 들어가면 자유롭게 먹었다. 체력 소모도 많고, 그렇게까지 타이트하게 관리하지 않아도 컨셉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식사 메뉴와 양 모두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는 컴백 날이 오길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상당한 노출을 각오해야 하는 컨셉. 그 얘기는 즉, 활동기 내내 슬림한 바디 라인과 선명한 근육 유지를 위한 식단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우리에게도 가혹하지만, 초록 형에게는 특히나 더 가혹했다.
“무대 올라가기 전에는 샐러드 정도만 먹어야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편하게 먹어도 될 거야.”
서 트레이너님의 발언에 초록 형이 반색했다가 다시 침울해졌다.
“희소식인 것 같기는 한데 왜 눈물이 날 것 같지? 노출 없는 섹시 컨셉 안되나?”
“노출이 직관적이기도 하고 우리 나이가 나이라 아직 어려울걸.”
노출 하나 없이 섹시함을 드러낼 수는 있다. 그렇지만 평균 만 나이로 20살을 간신히 넘는 우리 그룹에게는 어려운 주문이었다.
“팬들 반응 좋으면 백번이라도 할 거면서!”
“팬들이 원한다면 당연히 해야지. 다만 각오를 아주 단단히 하고….”
아니면 우리 나이가 차서 보컬이나 춤 선에서 저절로 성숙함이 묻어날 때까지 기다리던가.
“참! 그 소문 들었어?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 생긴다는 소문!”
“아이돌 경연? 이미 넘치는데 또? 박하준 네가 호들갑 떠는 거 보니까 시즌 2라도 나오나 보지?”
“아니, 그게 아니구! 이미 데뷔한 아이돌 모아서 경연하는 프로그램! 이름이 뭐였지? 까먹었다….”
기억날 듯 말 듯 한다면서 박하가 말끝을 끌었다. 보다 못한 초록 형이 대신 설명을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초록 형이 더 자세히 알면 알았지, 금시초문이라고 할 리가 없었다.
“프로그램명은 아직 가제로 붙긴 했는데 ‘크라운 오브 아이돌’이라더라. 팀전 형식이고 처음은 남돌 편으로 시작하려는 거 같던데? 한 7월쯤 촬영 예정이라는데 현재는 여기저기 섭외 전화 뿌려보는 상태.”
남돌? 혹시 우리도 섭외 전화를 받았을까? 준현 형이 출연 제안만 받은 상황이라면 우리가 아직 모를 수도 있다.
“초록 형, 거기에 우리도 포함이야?”
“아직 연락은 오기 전인데, 우리도 섭외 목록에 포함되긴 했어. 섭외할 그룹으로 테오라 이름도 언급했다고 하니까.”
“우리도?!”
소문을 물어온 박하도 우리가 당사자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나 출연할 수 있대?”
“그럴 리가. 예선도 없고 지원 절차 없이 다이렉트로 섭외하는 거 보니까 나름대로 기준이 있긴 할걸. 나한테 들어온 정보로 추측해보면 일단 인지도 확실한 남돌로 모으는 것 같더라.”
초록 형 입에서 나온 그룹 이름만으로도 어떤 기준이었는지 알 법했다. 후보들 중에 우리는 활동 기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후배 라인에 속했다.
“과연 얼마나 모을 수 있으려나~”
완성도를 위해서는 무대 하나를 선보일 때마다 상당한 준비가 필요할 테니 다른 중요한 스케줄은 잡기 힘들 것이다. 3, 4개월 후의 촬영이지만, 해외 투어 같은 중요한 일정이 예정되어있다면 참가하기 어려울 것이다.
화려한 무대를 대중 앞에 선보일 수 있다는 점은 좋지만, 단점도 뚜렷한 형식의 예능이기도 했다.
경연이니 남돌의 순위를 매기는 형태일 확률이 큰데, 상위권이 된다면 모를까 하위권에 들어간다면 내심 괜히 참가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그 정도에서 끝난다면 다행인데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서 어떤 식으로 문제가 커질지 짐작하기도 힘들다.
기 싸움은 예사일 테고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다행히 우리 테오라와는 특별히 사이가 좋지 않은 남돌 그룹이 없지만, 다른 그룹들은 그것까지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프로그램 제작진에겐 하등 상관없는 이야기일 테지만, 참가하는 입장에서는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 제작진은 그룹 간의 악연이 있다면 얼씨구나 하고 반기려나?
“출연 확정한 그룹도 있어?”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그룹은 있는데 확정까지 한 그룹은 아직 없어. 이제 막 연락 돌리기 시작해서.”
곧 우리 차례까지 돌아온다고 생각하니 섭외 요청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고민하게 됐다.
“어떻게 할래? 아직 여유 있어서 고민해볼 시간은 충분하긴 한데.”
“난 해보고 싶어!”
박하는 물어보기를 기렸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아마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참가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일단 그때쯤 잡혀 있는 스케줄이 없기도 하니까 참가해볼까.”
“나쁠 건 없지. 우리는 도전자 역할이니까 손해 볼 것도 적고.”
서혼 형과 홍오란 둘 다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홍오란 말대로 우리는 도전자. 몸을 사리기엔 아직 한참이나 이르다.
“나도 좋아.”
새로운 경험은 언제든 반갑다. 그리고 나는 이 프로그램이 다른 아이돌 그룹과 친분을 쌓을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초록 형 말에 따르면 한 달은 넘게 촬영할 거라고 하니 친해지기 쉽지 않을까?
음방에서 마주치면 가볍게 안부를 묻는 정도로 끝나는 게 전부였고, 보통은 여러 그룹을 겹쳐 섭외하지 않아서 스케줄을 가서 만나기도 어려웠다. ‘크라운 오브 아이돌’에서 처음 만나는 분들도 있을지도?
“벌써 과반수를 넘어서 출연은 결정됐지만, 지온이한테도 물어봐야지. 어떻게 하고 싶어?”
“contest? 거절 안 하지.”
뭔가를 경쟁하고 승패를 정하는 과정을 즐기는 지온에게서 나올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런 경연을 피한다면 지온이 아니다.
“나도 찬성이니까 만장일치네? 준현 형한테는 먼저 전달해둘게.”
쉽게 보이면 안 되니까 심사숙고하는 척은 해둘 거라고 했다.
“근데 어떤 채널에서 편성되는 프로그램이야?”
“M.com.”
“아아! 음악 전문 채널에서 기획할 예능이긴 해!”
“한동안 서바이벌 프로그램 안 나오더니 이런 걸 내놓는구나.”
M.com이라는 이름만으로 납득이 됐다. 음악 전문 채널의 이름을 걸고 하는 프로그램이니 무대 장치나 음향 장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M.com이라…. 예전에 프케이 때도 그랬지만 악마의 편집도 각오는 해야겠네. 출연 결정하기 전에 방영 채널부터 얘기해주는 건데 실수했다.”
악마의 편집.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주 소비층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행태였다. 가장 악랄한 악편 대표 프로그램이 아이돌 서바이벌이었으므로.
아이돌 서바이벌 좀 봤다 하는 사람은 악편에 치를 떨었다. 자기가 응원하는 멤버들을 제작진 마음대로 모두에게 주목받는 위치로 올려놨다가도 저 깊은 절망의 늪에 빠뜨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악마의 편집에도 지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그만한 영광을 얻을 수 있긴 해도 그 과정에서 직, 간접적으로 괴롭힘당할 수밖에 없었다.
악편은 이미 관행으로 굳어진 지 오래. 욕을 바가지로 먹으면서도 시청률을 위해 악의적인 편집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아이돌 서바이벌이 수두룩하게 쏟아져나왔지만, 악편의 선두 주자이기도 했던 M.com의 아이돌 서바이벌만큼 맵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번엔 아이돌 연습생을 경쟁시켜 데뷔시키는 형태가 아니니 조금 덜하지 않을까 싶었다. 대형 팬덤이 뒤를 받치고 있으니 제작진들도 티 나게 악편을 시도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악마의 편집이 아예 없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 기대는 프로그램이 시작하자마자 깨질 테니까.
“우리 정신 바짝 차려야겠지? 악편을 한다면 만만한 그룹을 고르지 않겠어?”
“만만한 그룹이 우리? 설마!”
“상대적으로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상대적으로. 우리가 거기 출연하게 될 다른 출연자보다 어리고 경력도 짧다는 건 페널티지.”
인지도나 인기가 압도적이라면 모르겠지만, 섭외 희망 목록엔 쟁쟁한 후보가 가득하다고 했다. 1군부터 주르륵 줄을 세워서 적은 것 같다나?
그만큼 대단한 남자 아이돌 그룹이 섭외될 때의 이야기겠지만, 긴장을 늦췄다간 코가 베여나갈 수도 있다는 건 명심해야 했다.
“겁은 여기까지만 줄까.”
우리를 쥐었다 폈다 하던 여우 한 마리가 씩 웃었다.
아직은 한참 남은 이야기였다. 미리 긴장하는 건 에너지 낭비였다.
“그리고 이원아, 스폰설 퍼뜨린 범인 말인데….”
무슨 수를 썼는진 자세히 모르지만, 그 사람을 찾아서 고소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그때부터 시간이 많이 흐르지는 않았다. 판결이 아무리 빨리 나더라도 너무 이른 시기였다.
“벌써 판결이 났어?”
“그건 아니고. 조사 과정에서 누군가가 그 사람한테 돈을 주면서 너에 대한 자료를 수집한 정황이 나왔다고 해. 누군지 밝히기엔 단서가 부족한데 입금 내역은 확실히 존재해.”
“…그건 돈을 써서 누군가를 고용할 정도로 나에게 악의를 품은 사람이 있다는 뜻이지?”
떠들썩하던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예전부터 초록 형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고 했다. 확신까진 없었지만, 나를 음해하려는 세력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이 몇 번 있었다고.
아마 이번에 드러난 사람하고 동일 세력이 아닐까.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해. 지금까진 별일 없이 지나갈 수 있었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새삼 느끼는 거지만, 아이돌이라는 직업은 극한 직업이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