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61
주의
무리해서라도 복학해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했었다. 앞으로 한가한 시기는 좀처럼 오지 않을 테고, 화석이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내게 최우선은 테오라의 활동이었고, ‘갓 아이돌’이 되는 것이었다. 법을 배워서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포부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미뤄졌다.
애초에 성실한 대학생이 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했는데 그 걱정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음 학기에 큰일이 생기지 않으면 복학해볼 생각이긴 한데 계획대로 되리란 보장은 없었다.
나중에 무사히 졸업하려면 교수님들과 동기, 선후배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었다. 휴학생인 내가 포함된 그룹 테오라가 한국대 축제에 등장하게 된 데엔 그런 생각이 깔려 있었다.
“준비야 언제든 됐지. 그래도 두 번째라고 조금 익숙한 느낌이야.”
“근데 생각보다 사람 많지 않냐?”
오란의 말에 선팅된 창 너머로 주위를 살폈다. 작년과 같은 무대에 서게 됐는데 사람 수도 비슷한 수준인 것 같았다.
작년에 엄청나게 몰려들어서 이번엔 입장권을 가진 사람만 입장할 수 있게 제한했다고 들었는데…?
“재학생들이랑 교직원은 공짜로 입장할 수 있게 했고 나머지는 돈 받고 팔았다고 들었는데. 그걸로도 안됐다 이거지.”
아, 그랬구나. 바빠서 수호랑 통화를 못 했더니 초록 형이 나보다 우리 학교 일을 더 잘 알고 있었다.
“얼마에 팔았다는데?”
“오천 원.”
“비싸진 않네. 콘서트 표 가격 생각하면 한번 와볼 만하다고 생각한 분들이 많았겠어.”
부담될 가격까진 아니었다. 야외무대에 모인 사람들이 생수를 들고 우비를 맞춰 입은 걸 보면 이익을 얻기 위한 입장료는 아닌 듯했다.
‘유료’라는 문턱을 만들기 위해 입장권 가격을 굳이 받은 게 아닐까?
“재학생 중에 참석 안 할 사람 고려해서 표 판매했나 본데 지금 상태 보면 예측 실패한 거 같지?”
수용 인원을 따져서 표를 팔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저번처럼 자칫 잘못하면 사고가 날 수준으로 모여들었다니. 재학생이나 교직원들이 거의 다 왔다는 뜻인 것 같았다.
“우리가 저번에 여기서 무대에 올랐을 때 잘 놀고 가긴 했나 봐! 히힛! 후기가 엄청 좋지 않고서는 이런 상황이 만들어질 수 없잖아!”
작년에 우리를 보신 분들이 재미도 감동도 없고 고생만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면 이렇게나 빼곡하게 모였을 리 없었다.
“한국대 축제 노잼이라 기대도 안 된다는 얘기는 이제 쏙 들어가겠는걸?”
기대감이 있었기에 유료 공연인데도 이렇게 많은 분이 모이셨을 것이다. 그 기대감을 실망으로 바꾸지 않으려면 우리가 무대 위에서 열심히 뛰노는 수밖에!
“안 바빴으면 하루 빼서 축제 즐겨 보는 건데.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사 먹고 참여하고 주점도 가보고.”
“초록, 쉽게 이룰 수 있는 로망 아니야?”
“쉽게? 지온아, 저 인파 속에서 정체를 들킨다고 생각해봐. 무슨 일이 일어나겠나.”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깔려 쥐포가 될지도 모른다. 저 속에서 빠져나오려면 머리를 쥐어뜯기고 옷은 너덜너덜해질 것이다. 아니, 빠져나올 수나 있으면 다행이지.
“안 들키면 돼.”
덤덤한 지온의 목소리가 그럴듯한 방법이 있다고 암시했다.
“무슨 수로? 모자, 선글라스, 마스크 정도로는 안 돼. 멀리서는 가릴 수 있는데 가까이서 보면 그런 걸로도 전부 못 가려.”
“특수 분장하면 돼.”
아! 지온은 서혼 형, 나와 함께 좀비 드라마를 찍느라 특수 분장을 해봤다. 그때 퀄리티 높은 분장을 하고 있으면 진짜 코앞에서 보더라도 구별하기 힘들다는 걸 알았는데 왜 이걸 생각 못 했지?
“우리 내일 쉬는 날이잖아.”
한국대 축제는 저번처럼 중간고사가 끝난 후, 축제 시즌 막바지에 열렸다. 게다가 오늘 관객이 많으리라 예상하기도 했고 체력 소모도 클 거라서 내일이 휴식일로 당첨된 상태였다.
휴식일이라면 우리에게 놀러 나올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근데 특수 분장 비싸지 않아?”
“퀄리티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할 텐데 그래도 하루쯤 못하겠어? 우리 콘텐츠용으로 찍어서 올려도 되니까 지원받아도 되고.”
“난 좋아! 재밌을 거 같아!”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대답을 알 수 있었다. 멤버들 전부 재밌겠다는 눈빛이었다.
“알고 보니 테오라였습니다, 하고 공개하는 거지. 물론 대학 축제 제대로 즐겨보는 것도 좋고. 준현 형, 괜찮을까요?”
“음….”
진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을지, 우리만 내보내도 정말 괜찮은지. 준현 형의 머릿속에 생각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듯했다.
“쉬는 날 축제에서 놀고 싶다는데 말리긴 힘들군. 대신 정말로 감쪽같이 특수 분장을 해주는지 내가 직접 확인할 거다. 나도 같이 돌아다닐 거고.”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도 수상쩍은데 거기 준현 형이 있으면백퍼 걸리죠. 우리보다는 아니어도 매니저 얼굴도 외우고 있는 팬이 있다는 거 알잖아요. 같이 가려면 준현 형도 같이 분장해야 돼요.”
자주 마주치는 팬들은 항상 우리와 같이 다니는 매니저 형의 얼굴을 외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준현 형은 테오라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 쭉 우리 매니저로 일해와서 꽤 알려져 있었다. 커다란 키와 실전 압축 근육, 선 굵은 얼굴은 눈에 띄기도 해서 한두 번만 봐도 기억하기 쉬운 외형이었다.
“해야 한다면 하는 수밖에. 특수 분장이라…. 매니저 하면서 별일을 다 해보는군.”
“두열 형은요? 형도 해볼래요?”
“저…? 전 내일 집에 내려가야 해서 안 될 것 같습니다.”
테오라 휴식일이라 두열 형도 개인 일정을 잡아뒀나 보다. 준현 형도 원래 쉬려던 게 아닌가 해서 물었더니 어차피 회사에 일이 있어서 쉬는 날은 아니었다고 했다.
“내가 해보고 싶다고 해서 시작한 일이니까 특수 분장해주실 분은 내가 구할게. 너희는 몸만 와. 내가 풀코스로 모실 테니까.”
초록 형의 풀코스라니. 왠지 무시무시하게 들린다.
“아, 앞 무대 끝났다. 이제 슬슬 나가볼까?”
한바탕 소나기가 내린 후라서 시야가 맑았다. 무대 위가 미끄럽지 않은지 한 차례 재점검을 한 후, 우리에게 올라와달라는 사인이 전해졌다.
무대 위에 올라간 학생 MC님이 테오라를 소개하는 멘트를 쳤다.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미모면 미모, 노래면 노래, 지성이면 지성! 한국대가 낳은 아이돌~! 누군지 아시죠?”
“함이워언!”
“테오라아아아!”
하…. 메이크업만 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을 것 같다. 한국대가 낳다니…. 나는 우리 엄마가 낳았는데!
“테오라 올라와 주시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는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긴장 하나는 제대로 풀렸으니까 됐나?
* * *
무대에 올라간 순간, 우리 앞에 있는 관객들이 즐길 준비를 이미 끝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긴말은 필요 없었다.
오늘 라인업의 제일 마지막 순서가 우리. 즉, 뒤 순서까지 고려하지 않고 여러 곡을 부를 수 있는 무대. 부르는 곡에 맞춰 의상을 갈아입을 여건까지는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두 가지 버전을 준비했다.
처음에 단정한 검은 재킷까지 입었다가 벗는 것뿐인 아주 단순한 변신이었다. 그렇지만 상의를 벗는 간단한 동작이 만들어내 여파는 적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악!”
“끼약!”
말이 되지 못한 비명이 야외무대 가득 퍼졌다. 우리는 재킷 안에 평범한 흰 셔츠를 입고 있지 않았으니까.
앵콜 곡을 부르기 전, 마지막 곡이 바로 이번 타이틀 ‘ripen up’. 컨셉이 확 달라지는 만큼 이 타이밍에 의상에 변화를 줬다.
오란만 평범한 하이넥 셔츠를 입었다. 서혼 형은 구멍이 숭숭 뚫린 나시, 지온은 시원하게 파진 등이 X자 형태의 얇은 천으로 가리고 있었다.
초록 형은 민소매 형태, 박하는 셔츠 대신 흰색 크롭티를 받쳐 입은 상태였다. 나는 얇은 실크 셔츠를 입었다.
밋밋하지 않게 체인과 하네스도 더해져서 의상만 봐도 컨셉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TV로 방송되는 게 아닌 무대에 서는 만큼 의상에 과감함이 들어갔다.
ripen ripen ripen up
조금씩 무르익어가는 나를
제목인 ‘ripen up’이 다른 음으로 반복될 때마다 탄성이 터졌다. 음악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손짓에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분들도 눈에 들어왔다.
몸을 쓸어내리고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는 행동일 뿐인데? 관객들은 분위기에 넘어간 것 같기도 했다.
멜로디의 템포가 느려졌다가 다시 빨라지는 구간에 들어갔을 때였다. 물방울을 맞은 것처럼 이마가 차가웠다. 춤동작이 빨라지면서 땀이 튄 건가 싶기도 했지만, 곳곳에서 사람들이 손바닥을 들어 올리는 걸 보면 빗방울인 것 같았다.
힐끔 하늘을 쳐다봤는데 하늘은 또 맑았다. 날이 어두워진 탓에 조명을 환하게 켜두고 있어서 빗방울이 굵어지자 맨눈으로도 잘 보였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비가 아니라 가랑비보다 조금 굵은 수준이라 큰 문제는 없었다. 아까 소나기가 내릴 때 나눠준 우비를 주섬주섬 입는 분들도 계셨지만, 아닌 분들이 훨씬 많았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춘 우리에게는 뜨겁게 달아오른 열기를 식혀주는 시원한 단비였다.
ripen ripen ripen up
비는 우리가 앵콜까지 끝내고 내려올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기나긴 인사를 마치고 밴에 돌아왔을 때야 의상이 흠뻑 젖어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다 젖었네.”
“비 맞으면서 하니까 시원했어! 아마 직캠도 잘 찍혔을걸!”
우리 모습을 가릴 만큼 빗발이 굵지도 않고 헤어나 메이크업이 엉망이 될 정도도 아니었다. 효과라도 넣은 것처럼 반짝거리게 나왔을까?
“얼른 옷 갈아입어. 이러다가 감기 걸리면 내일 계획은 물론이고 다 꼬이니까.”
우리는 이동하는 밴 안에서 꿈질거리며 옷을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지우고 수건으로 머리를 말렸다. 숙소에 돌아가서 따끈한 물에 샤워하고 잠들면 꿀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람들의 환호성에 반응해 더 격하게 뛰놀다 보니 진이 빠져서 기절과 비슷한 잠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꿈도 꾸지 않고 푹 잔다는 점은 같았다.
* * *
대학 축제를 몰래 즐겨보겠다고 쉬는 날인데도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했다. 하품이 끊임없이 나오는 비몽사몽 상태긴 했지만, 특수 분장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뭔가 미묘하게 평범해지지 않았어?”
서혼 형은 눈썹을 흐리게 하고 눈꼬리를 올리고 얼굴에 살을 붙였다.
“골격은 바꾸기 힘들어서 그런지 테오라 멤버들 닮은꼴끼리 모여있는 느낌인데? 웃기다. 나도 그런가?”
초록 형은 거울을 보면서 얼굴을 요리조리 비춰봤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안 들키겠어.”
특수분장이 흡족하게 나왔다고 평가한 후에 점심을 먹고 한국대로 향했다.
그 사이에 잠깐 시간이 나서 어제 한국대 축제 무대 직캠을 찾아봤는데 그만 충격을 받고 말았다. 한참을 휴대폰 화면을 보면서 얼어있자 옆에 앉은 오란이 손에서 폰을 빼갔다.
“한국대 축제 테오라 무대, 외설 주의…? 우리가?”
내가 괜히 놀란 게 아니었다.
외설 주의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