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62
모른 척해줄래?
외설이라는 단어와 테오라는 연이 없다. 이번 앨범에서 나름 섹시 컨셉을 잡긴 했지만, 미성년자관람불가 수준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수준에 불과했으니까.
그런데 한국대 직캠에 외설 주의 딱지가 붙을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웬 외설?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그 정도 급은 안 되는데 과대평가해주시네.”
과대평가, 확대해석…. 뭐가 됐든 난 그 단어가 테오라 옆에 붙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박하는 믿을 수 없다고 입을 벌렸고, 서혼 형은 한 방 얻어맞은 사람처럼 눈을 껌뻑였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보였길래…?”
“우리끼리 떠드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빠르지.”
우리는 휴대폰의 작은 화면에 집중했다. 화질은 전문가가 쓰는 장비로 촬영한 것만큼이나 선명했다.
풀 영상이 아니라 편집된 영상이었는데, 앞서 마지막 곡이었던 ripen up 무대 전의 준비 과정부터 담겨 있었다. 영상은 우리가 재킷을 벗어 던져버리는 바로 그 장면에서 시작됐다.
흔들림 없던 화면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진짜로 손이 떨려서 이런 것 같은데?”
초록 형 말대로 일부러 효과를 넣었다기엔 너무 정신없이 흔들렸다.
이 영상의 포커스가 어디에 잡혀있는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서혼 형이 나시를 슬쩍 들추는 동작이나 박하가 팔을 들고, 지온이 뒤로 도는 타이밍에 자연스럽게 클로즈업이 들어갔으니까.
아직 왜 외설 주의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의도가 분명한 카메라 각도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주의까지 필요한 부분은 없었다.
끝까지 봐야 알겠지만, 단순히 어그로를 끌어서 광고 수익을 얻으려는 수작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괜히 놀랐나?
화면 안엔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주륵주륵 무겁게 내리는 비는 아니라 빗방울이 조명에 반사되면서 반짝거렸다.
“꼭 반짝이 효과라도 준 것 같은데?”
험난한 날씨에는 무대에 여러 번 서 봤는데 이런 식으로 날씨의 도움을 받게 되는 날도 오는구나. 조금 신기했다.
“누군가가 비 올 것 같다고 입방정 안 떨어서 그런지 날씨가 도와준 것 같아!”
“그 누군가가 나냐? 박하준?”
“흐응? 나는 누군가라고만 했는데 찔려? 하긴, 눈 폭풍을 불러오고 소나기도 불러온 사람이 우리 중에 있긴 하지! 누구라고 말은 안 하겠지만!”
“아주 깐족거리는 데 도가 텄지?”
“깐족거리는 거? 나 그거 잘해!”
깐족거리면서 약 올리는 박하가 홍오란 심기를 거스르긴 했는지 눈가가 움찔거렸다.
으르렁대기 직전이었던 오란은 시끄러워서 집중 안 된다는 지온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입꼬리가 경직된 걸 보면 이 영상이 다 끝나기만 하면 달려들기라도 할 듯했다.
화면 속 우리는 천천히 비에 젖어갔다. 볼륨을 넣었던 머리가 가라앉아 달라붙고 얼굴에도 물기가 촉촉하게 묻었다.
속눈썹에 붙었던 물방울이 깜빡임에 따라 주르륵 흘러내렸다. 마치 눈물이라도 흘리는 것처럼 아련해 보였다.
상의는 물론 바지까지 물을 먹어서 전신의 몸 선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춤출 때 점점 불편해진다 싶기는 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많이 젖어 있었다. 아마 땀 때문에 축축한 상태에서 비까지 맞아서 그런 듯했다.
우리가 입었던 흰색 상의는 몸에 달라붙어 맨살이 비쳤다. 특히 내 의상은 실크여서….
“…외설 주의 맞네.”
초록 형의 인정에 눈을 질끈 감았다. 대놓고 섹시 컨셉을 내세우긴 했지만, 절대 여기까지 의도하지는 않았다.
날씨가 우리를 도와주기는커녕 배신한 것 같았다.
“완전 야하잖아아아!”
“이, 이게 나…?”
나한테 이런 모습이 있었다고…? 내 눈에도 야릇해 보일 정도인데 관객분들 눈에는 안 그래 보였을 리가 없었다.
무대 끝나고 몰려오는 사람들을 피해 간신히 밴에 탔고, 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서로의 옷 상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이런 처참한 지경이었는지 지금 알게 됐다.
차라리 모를 때가 나았다.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나니 부끄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
노출을 각오하긴 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이 영상 찍은 분이랑 편집한 분도 책임이 있어! 비는 또 왜 내려서! 우리 죄는 그냥 섹시함이 철철 넘치는 것밖에 없는데!”
그걸 원망이라고 하는 거야, 박하야…?
이 영상을 우리 부모님이 본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아찔해졌다. 왜 하필 상의는 흰색을 입었을까! 그나마 바지는 흰색이 아니어서 속이 비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영상은 쫙 달라붙은 옷을 입은 우리의 before/after 사진이 나오면서 끝났다.
before 사진도 어찌나 타이밍을 잘 잡았는지 눈을 게슴츠레 떠서 소름이 다 돋았는데 after 사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건 19금이겠는데?”
“…? 이게?”
다른 문화권에서 오래 살아온 지온은 야하다는 기준 자체가 아예 달라서 이해를 못 했다.
“우리나라는 유교의 나라라고. 내가 봤을 때 이건 공중파에선 당연히 방송 못 나가고 케이블 채널에서도 19금 딱지 달아야 방송 내보낼 수 있을걸?”
“왜? 비슷한 컨셉 이미 많은데?”
지온의 의문이 어디서 시작됐는지는 알 듯했다. 방송 심의 규정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일 정도로 뒤죽박죽인 경우가 잦았다.
별것도 아닌 부분에 태클이 들어오는가 하면, 과거에는 괜찮았는데 오히려 요즘 더 엄격하게 단속하는 경우도 있었다.
“옛날이 오히려 자유로웠던 거 같기도 해. 옛날에 무대에서 입었던 의상들, 과감하더라고.”
서혼 형은 과감하다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거의 헐벗은 거나 다름없는 의상들도 곧잘 나왔다.
어린아이들도 전원만 켜면 쉽게 볼 수 있는 TV엔 어느 정도의 검열은 필요할 것도 같은데, 그렇게 치면 뉴튜브는 뭐가 다른가 싶기도 했다.
“서혼 형, 어제 일기예보에 비 있었지?”
“있었지? 소나기이긴 했는데 엊그제부터 강수확률 높았어. 그건 왜?”
“아무래도 코디 누나가 노린 상황 같아서.”
선을 넘지 않게 바지는 비치지 않는 검정, 상의는 일부러 흰색으로 고른 거라고? 거기까지는 너무 나간 게 아닐까.
우리 의상이 갑자기 바뀌긴 했지만, 그런 경우가 드물지도 않았다. 초록 형 말대로 일기예보까지 신경 써서 이런 상황을 연출한 거라면 코디 누나는 그야말로 무서운 사람이다. 설마 그렇게 친절한 얼굴로 우리를 감쪽같이 속였을까.
“심증은 충분한데 물증이 없네?”
“초록이 넌 사람에 대한 믿음부터 가져야겠다.”
“원래 믿음을 얻으려면 시련을 견뎌야 하는 법 아니겠어?”
초록 형은 의심이 있어야 진정한 신뢰가 피어난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의심스러운 정황이 나왔을 때 어느 쪽이 쉽게 흔들리게 되겠냐면서 무작정 믿으면 약한 믿음밖에 못 얻는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럼 나도 내가 모르는 새에 시련을 견뎌냈다는 걸까? 내가 모르는 검증 과정이 정말로 있었을 것 같다. 나는 이미 통과했겠지…?
홍오란이 옳은 말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초록 형의 의견에 동조했다.
“의심에서 신뢰가 피어난다…?”
“지온이한테 나쁜 물 들이지 말았으면 좋겠어. 초록아.”
“내가 뭘~? 그리고 지온이처럼 독립적인 인간한테 영향을 준다고 해봤자 얼마나 줄 수 있겠어?”
다른 사람 시선이나 말에 휘둘리는 사람은 아니기도 하고 지온은 절개가 있었다. 신념을 말 몇 마디에 바꿀만한 사람은 아니긴 했다.
“걱정 마, 혼. 이런 시각도 있다고 기억해두는 것뿐이야. 나중에 언젠가 랩 가사로 이 말을 적게 될 날이 올 수도 있으니까.”
누군가에겐 뼈를 때리는 명언처럼 들릴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특히 의심스러운 상황에서도 무작정 믿기만 했다가 배신당한 사람에게는 인생의 진리처럼 들리겠지.
그런 면에서는 미리 검증 과정을 거쳐 맘 놓고 신뢰를 주는 게 나쁘지는 않은지도…?
점점 초록 형에게 물들어가는 건 지온이 아니라 나인 것 같다는 깨달음이 머리를 스쳤다. 다른 사람에게는 쉽게 넘어가지는 않는데 유독 초록 형이 하는 말이 솔깃한 걸 보면 내가 귀가 얇다기보다는 초록 형의 설득 스킬이 엄청나서 그런 것 같다.
경각심을 가져야지. 초록 형은 역시 무서운 사람이다.
“으헝! 이 영상 어떡해?”
“뭘 어쩌겠어. 이미 다 퍼져서 손쓸 수도 없는데. 그냥 못 본 척 넘어가. 우리는 본 적 없는 거야. 레드 썬!”
자포자기하자는 초록 형의 제안에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나도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댓글 창에는 이 영상을 찍어 올린 사람을 찬양하는 댓글들이 넘쳤다. 그리 길지 않은 영상이고 오늘 새벽에 올라온 따끈따끈한 영상인데도 벌써 조회수가 30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많은 사람이 전부 이걸 봤다는 뜻이지…?
한번이 아니라 두 번씩 봤다고 쳐도 채 하루도 되지 않은 시간에 나올 법한 조회수는 아니었다.
유명 뉴튜버가 올린 것도 아니고, 영상 대여섯 개가 전부인 팬 계정에 올라온 영상이다. 충성 구독자가 있을 리도 없으니 알고리즘의 축복을 받았거나 그만큼 입소문이 났다고밖엔 설명할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절망적이라는 점은 변치 않았다.
“부끄러우니까 내려달라고 해봤자 소용없겠지. 코티지들이라면 오히려 더 신나게 퍼뜨릴지도 몰라. 차라리 입 닫고 조용히 있는 편이 나아.”
“우리는 모르는 일인 걸로 하자. 어제 정신없어서 몰랐던 건 사실이니까 말이야….”
서혼 형도 회피를 선택했다.
“분명 화제가 돼서 어디서든 언급될 텐데 그때도 모르쇠 작전으로 나가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오란이 꼬집었다.
“게다가 우리 팬들이라면 다 눈치 까고 부끄러워하는 얼굴 보려고 우리 눈앞에서 틀어줘도 안 이상하고.”
“…….”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른 척을 하든 안 하든 부끄러워하는 결말만 남아 있었다.
“방법은 하나뿐이야. 진심으로 안 부끄러워하는 거.”
그게 가능한 사람은 있지만 그게 나는 아니다. 어설퍼도 끝까지 모른 척 오리발을 내밀 수는 있는데, 끝까지 부끄럽지 않은 척 연기할 자신은 없었다.
‘이래도 모른 척할래? 이래도?’하고 실실 웃으면서 강도를 높여 우리를 압박할 팬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난 가능한데.”
노출 없는 빳빳한 셔츠를 입었던 홍오란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서혼 형은 상체 탈의 사진을 SNS에 올린 적이 있는데도 이상하게 이 영상은 부끄럽다고 했고, 나나 박하는 이런 쪽으로 면역이 없었다.
지온이야 애초에 외설적이라고 느끼질 않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초록 형은 좋겠다! 안 부끄러워할 수 있어서!”
“박하야, 이래 봬도 이 형이 의외로 보수적인 유교 보이거든?”
보수? 이 세상의 유교 보이가 다 얼어 죽지 않고서야! 유교 보이가 멸종한 세상에서도 초록 형이 보수적인 쪽에 속할 리는 없다.
ripen up 안무 시안 수위가 얼마나 높았는지 우리가 알고 땅이 알고 하늘이 아는데!
오죽하면 초록 형이 짜 온 안무 시안으로 시범을 보여준 댄스팀 분들까지 방송에 나갈 수 있겠냐고 걱정했을까!
“왜 하필 실크 셔츠….”
팬들에게 보여주려고 몸을 만들긴 했다. 기뻐 날뛰는 팬들의 댓글을 보니 그 목적은 성공을 거두긴 했다. 대성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긴 한데, 화끈거림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우린 아무렇지도 않다, 아무렇지도 않다….”
서혼 형은 목에서 목걸이를 풀러 내 눈앞에서 진자처럼 흔들었다.
“왜 부끄러워해? 아이돌한테 타고난 섹시함이 있다는데. 오히려 우릴 부러워해야지. 당당해져, 이원.”
그래, 누군가는 우리를 부러워하겠지. 자랑해 마땅한 일이었다. 자랑해 마땅한 일….
“이원 형, 왜 자꾸 고개를 숙여? 당당해지란 말이야!”
박하야, 모른 척해줄래…?
아무래도 미리 멘탈을 단련해두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