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67
크라운 오브 아이돌 (1)
한 달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TV에서는 최초의 좀비가 주 2회씩 총 8회차 방영을 마쳤다.
이미 OTT에서 공개되긴 했지만, OTT를 구독하지 않는 사람들은 TV로 드라마를 시청하기 마련. 입소문을 제대로 탔는지 최초의 좀비 TV 시청률이 나날이 상승했다.
다음 편이 나올 때까지 참기 힘들어서 OTT로 빠져나가는 사람의 숫자가 많을 텐데도 시청률이 상승곡선을 그리는 것은 분명한 성공의 징조였다.
드라마 제작에 투자한 레몬 TV와 케이블 채널 관계자, 출연한 배우들까지 예상을 상회하는 인기에 꿈같은 나날을 보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계획한 대로 드라마의 화제성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시즌2가 공개되는 날이 다가오자 최초의 좀비 시즌1부터 후루룩 이어보려는 이용자의 수가 부쩍 늘어났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드디어 최초의 좀비 시즌2가 공개되는 날. 테오라는 M.com에서 준비한 의 합숙 장소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테오라입니다!”
“어서 오세요. 아직 참가자분들이 전부 오신 게 아니라서 잠시 여기서 대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제작진들을 보며 순순히 기다림을 수긍했다. 앞으로 프로그램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합숙 장소에서 지켜야 할 규칙은 뭔지 설명하는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앞으로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 할 선배님들한테 인사부터 하러 갈까?”
우리가 참가자 중에 데뷔를 가장 늦게 했고 나이대도 어렸다.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에서 싹싹한 인사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눈치껏 살펴보니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인 ‘크오아’에 참가하는 여섯 팀 중에 우리까지 네 팀이 도착한 상태였다. 다른 팀들도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오늘부터 촬영이 바로 시작되는 건 아니라서 다들 편안한 옷차림에 노메이크업 상태였다. 그런데도 왠지 모를 포스가 느껴진다고 하면 착각일까.
이 치열한 아이돌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자만이 가지게 되는 아우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먼저 도착한 세 팀의 선배님들은 뒤섞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고 활동하면서 자연스레 친분을 쌓은 듯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앞으로 한 달간 잘 부탁드립니다!”
리더인 초록 형이 대표로 먼저 말을 걸었고, 우리도 한마디씩 덧붙였다.
“테오라 애들이구나. 벌써 왔어? 우리끼리 1등으로 도착해야 된다고 경쟁하는 바람에 쓸데없이 서둘러 왔는데, 우리들이랑 엇비슷하게 왔네. 긴장하고 왔나? 걱정 마. 우리가 설마 귀여운 후배를 잡아먹기라도 하겠어?”
빨간 머리로 염색한 티오티의 리더 혁준 선배가 살갑게 우리를 맞이해줬다.
데뷔 이후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티오티,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이름을 빼앗기고 현재 새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스카일, 밴드형 아이돌인 보이데이. 한때는 다들 당연히 탑급 아이돌이 될 거라 생각했던 그룹들이었다.
“음방이나 다른 행사에서 마주치긴 했어도 길게 얘기한 적 없었지?”
“난 테오라가 신비주의 컨셉 고수하는 줄 알았잖아. 그런 것 치고 초록이 얘기는 여기저기서 들려오긴 했지만.”
다른 그룹들과 친해질 만한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게다가 신비주의 컨셉이 요즘 시대에 가당키나 한가.
“이번 기회에 친해져 보자고.”
“선배님들이랑 친해질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는데 모르셨죠? 너무 들이댄다고 귀찮아하지 마세요.”
“에이~”
겉으로는 화기애애해 보이는 대화가 오갔지만, 거기엔 묘한 긴장감이 깔려 있었다. 무대를 선보이고 순위를 매기게 될 상황을 앞두고 있어선지 단순히 같은 업계의 선후배로만 대하기는 어려운 듯했다.
멤버들도 선배님들도, 각자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뒤섞였다. 내게 눈을 반짝이며 다가온 사람도 있었다.
“네가 함이원이지?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만나네.”
스카일의 채희 선배는 작곡, 편곡에 프로듀싱도 하는 메인 래퍼였다. 화장이 되어 있지 않은 쌍꺼풀 없는 긴 눈은 순둥했다. 풀 메이크업을 했을 땐 범접하기 힘든 이미지였는데, 맨얼굴은 친근한 느낌이었다.
“안녕하세요. 채희 선배님.”
“전에 로티플로랑 협업해선 낸 앨범 인상 깊었어. 작곡 쪽으로 천재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나 긴장해야겠지?”
“긴장….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평소라면 내 보잘것없는 실력을 과대평가하는 거라고 얘기했겠지만, 기선 제압을 강조한 멤버들 때문에 조금 세게 나가봤다.
최상의 무대를 선보이려면 적당한 긴장이 필요할 테니까 내가 약간 허세를 부리는 게 선배님한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하하, 그래? 듣던 얘기랑 다른 반응이긴 한데 나쁘진 않은걸. 건방진 게 귀엽기도 하고?”
넋을 놓고 있다가 볼을 꼬집혔다.
“아야….”
뒤늦게 볼이 얼얼해서 소리를 냈을 땐 이미 손이 떨어져 나간 후였다.
“우리 이원이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안 그랬다간 지금처럼 당할걸?”
또다시 얼굴로 다가오는 팔을 막기도 전에 채희 선배님의 손이 머리에 올라왔다. 그 손은 내 머리카락으로 새 둥지를 잔뜩 지은 후에야 떨어져 나갔다.
원래 스킨십이 이렇게 거침없는 사람인가? 내 주변엔 이런 스타일이 없어서 훅 들어오는 친근한 스킨십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너 내 동생 할래?”
“…갑자기요?”
“의형제가 되는 데 따로 조건이 있겠어? 마음에 들면 끝이지.”
아무리 그래도 너무 급진적이지 않나? 일방적으로 받는 호감에 기분이 얼떨떨했다.
내가 친한 동생이라도 된 듯 구는 채희 선배님이 어색한 한편 고맙기도 하고….
어떻게 호감에 보답받지 못하리란 두려움도 없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행동이 부끄러운 일은 절대 아니지만, 저렇게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의형제까지는 너무 급했나? 그럼 연락 편하게 하는 좋은 형부터 시켜줘. 아무 때나 연락해도 돼. 곡 쓰다가 막힌다든지, 저녁 메뉴가 고민된다든지, 밤에 잠이 안 온다든지 하면.”
“그럴게요. 채희 선, 아니 채희 형도 연락하셔도 돼요. 제가 최대한 빨리 확인하고 답할게요.”
약간 막무가내인 부분도 있지만 밉지 않았다. 나이 차이는 꽤 나지만 관심 분야도 비슷하고 직업도 같으니 대화는 잘 통할 것 같았다.
“한 달 동안 우리는 경쟁자겠지만, 서로 잘 지내보자. 이원아.”
채희 형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해왔다. 그 손을 조심스럽게 맞잡고 흔들었다.
“잘 부탁드려요, 채희 형.”
“우리가 이겨도 삐지기 없기다?”
“동감이에요.”
이 프로그램의 최종 순위가 어떻게 끝나든 새로운 인연을 쌓아갈 수 있다면 이득이 아닐까?
물론 순순히 우승을 빼앗길 생각은 전혀 없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섯 그룹이 합숙 장소에 전부 모였다. 두 팀은 약속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왔는데 주목받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기보단 앞에 스케줄이 있었던 듯했다.
“전부 도착하셨으니 간단한 공지만 하고….”
조연출님과 작가님의 여러 설명을 듣고 나서 천천히 이동했다.
“여기 전에 M.com 아이돌 데뷔 서바이벌 찍었던 장소 같은데?”
“구조가 비슷해! 아마 맞을걸?”
여러 팀의 아이돌이 묵을만한 장소와 무대, 연습실 등을 갖춘 건물이 흔하진 않을 것이다. 참가자 중에 아이돌 데뷔 서바이벌 출신인 사람은 없지만, 잊을만하면 재방송이 나와서 배경이 되는 장소가 익숙할 만했다.
“팀별로 숙소가 제공됩니다. 연습생이었다면 한동안 여기서 나갈 수 없다고 했겠지만, 현역인 여러분께 그런 요구는 선 넘는 거겠죠? 되도록 여기서 머물러주시면 좋겠습니다만, 다른 스케줄이 있을 땐 자리를 비우셔도 됩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현역 아이돌들인 만큼 한 달을 통으로 비우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 유연하게 룰을 적용한 듯했다.
“…혹시 반려동물 데려와도 되나요?”
속으로 궁금하던 이야기라 내가 질문한 줄 알았다.
선배님들은 숙소 생활을 하지 않는 분들이 더 많았다. 데뷔 초반엔 숙소 생활을 하다가 자연스레 따로 사는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혼자 살면서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세 명이 넘었다.
“반려동물? 좋죠! 아, 혹시 털 알레르기 심한 분 계신가요?”
“아뇨.”
“전 심하지 않아서 약 먹으면 괜찮아요. 강아지랑 고양이 환영입니다!”
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람은 밀키독의 리더였다. 동물을 좋아하는데 키우기는 어려워서 이번에 만날 아이들을 잔뜩 귀여워할 작정인 듯했다.
위압감 넘치는 선배님인 줄 알았는데 동물을 좋아하는 걸 보니 나쁜 사람은 아닌가 보다.
알레르기가 심한 사람은 없어서 반려동물을 데려와도 되는 것으로 정해졌다. 배정된 방 안에서만 데리고 있는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판단한 듯했다.
“현이를 데리고 올 수 있을지는 몰랐는데!”
본가에 데려다 뒀는데 오늘이라도 당장 데려와야겠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주셨는지 몰라도 진짜 고마웠다.
“제작진도 좋아하는 거 보이지? 출연진을 여기 더 오래 머물게 할 수도 있을 테고, 경연 포맷이 주는 긴장감을 귀여운 동물로 풀어낼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니겠어?”
스릴러 영화도 강강강으로 긴장감 넘치는 장면만 계속되면 피로하다는 이유로 유머러스한 장면을 넣는다고 했다. 그것과 비슷하게 해석하면 될 듯했다.
어쩐지 쉽게 허락해주더라니. 전부 시청률을 위한 작업이었나.
“그나저나 반려동물 인기로도 은연중에 경쟁하게 될 것 같은데 우린 걱정 없겠다.”
“현이가 있으니까!”
“그렇지. 우리 테오라의 다크호스 현이가 있으니까. 반려동물 중엔 1등이겠지. 아, 어쩌면 우리가 현이한테 묻히지 않게 열심히 해야 할지도.”
“오우!”
과장이 있긴 하지만, 초록 형의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아이돌을 여섯 팀이나 캐스팅했는데 단지 경연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나 멋진 무대 정도만 보여주고 싶을까? 골수까지 뽑아먹으려 들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출연료도 만만치 않을 테니 M.com 측에서도 투자한 만큼의 시청률과 화제성을 얻고 싶을 건 당연하다. 각종 광고를 쓸어 담고 ‘역시 경연 프로그램의 원조는 M.com’이라는 이야기도 듣고 싶겠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곧 시청률이라고 생각하면 소재는 많을수록 좋을 터다.
어쨌든 반려동물 허용은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규칙이었다.
우리는 건물 내부에 있는 시설을 안내받은 후에 배정된 숙소를 살폈다.
“…넓은데? 아이돌 데뷔 서바이벌할 때는 2층 침대 두 개 놓으면 꽉 차는 크기여서 기대 안 했더니.”
“현역 아이돌이라고 대우해주시나 봐! 여러 명이 썼던 방이 1, 2인실이야!”
“팀별로 나뉘어 있는 거였구나. 잘 됐다.”
지내기에 나쁘지 않을 듯했다. 현이까지 데려왔을 때 좁지 않을까 걱정했던 건 기우였다.
어느 방을 쓸지 정하고 짐을 내려놓고 있는데 방송이 머리 위에서 나왔다. 천장을 살폈더니 위에 스피커가 떡하니 달려 있었다.
[원 투 쓰리. 아아. 인트로 촬영과 간단한 게임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촬영 준비 후 강당으로 모여주세요.]게임…? 그룹 PR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걸린 그 게임이겠지?
멤버들의 눈은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는 의욕으로 활활 불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