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74
Zone
‘테오라 무대는 현장에서 봐야 제맛이다’라는 말은 돌판에서 꾸준히 나오던 이야기였다. 멤버들 실력이 괜찮아서 데뷔 무대인데도 선배들이 구경을 갔다거나 실제 무대를 보면 바로 입덕한다거나 하는 풍문도 떠돌았다.
그렇지만 대다수는 그 이야기들을 흘려 넘겼다. 테오라의 무대를 실제로 겪지 못한 돌팬들은 코티지들이 참 열심히도 올려치기 한다고 생각했다. 테오라 멤버들이 실력이 좋은 편이라는 건 다들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호들갑을 떨 정도는 아니라는 게 대부분의 생각이었다.
테오라와 비교할만한 그룹이 없었던 탓이다. 게다가 라이브 무대는 음악방송에서 AR 무대를 선보이는 다른 아이돌보다 보컬의 안정성 면에서는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격한 춤을 추면서 립싱크로 노래하는 가수들과 엇비슷한 성과를 낸다는 것부터 엄청난 일이었지만, 그걸 알아주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하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인지 테오라 팬들은 잘 알고 있어서 열심히 홍보도 하고 영업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체감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였다.
아이돌 노래를 소비하는 리스너들에게는 노래만 좋으면 그만이었다.
테오라 팬들은 우리 애들이 얼마나 타고난 아이돌인지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에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언젠가는 드러날 일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이 보답받는 날이 파이널 무대가 될 거라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 * *
라이브로 경연을 치른다면 우리 멤버들이 돋보일 수밖에 없다. 우리보다 훨씬 경험이 많은 선배님의 실력을 무시하려는 게 아니라, 이게 사실이었다.
우리 테오라처럼 라이브에 특화된 댄스 아이돌 그룹은 없으니까.
여기 참가한 어떤 그룹도 연습을 소홀히 하는 그룹은 없었다. 숙소까지 와서 경연 프로그램을 찍느라 억지로 연습하는 ‘척’을 하는 게 아니었다. 연습이 버릇처럼 몸에 밴 우리 멤버들과 비슷한 모습이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안전한 AR을 두고 생 라이브를 부르는 또라이 그룹은 우리밖에 없다는 걸 진즉에 알고 있었다. 음악방송에만 나가봐도 알 수밖에 없긴 했다.
요즘은 어떤 아이돌도, 심지어는 발라드 가수조차도 부분 AR을 깔고 노래하는 시대. 거기에서 라이브를 하는 우리는 튀어나온 못이었다.
데뷔 초엔 AR로 하라는 은근한 강요까지 들었었다. 우리가 실수라도 했다간 방송 사고가 날 수 있으니 이해는 갔다. 누가 골치 아픈 일이 생기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어 할까.
테오라가 지금까지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아서 이제는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됐지만, 이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불편한 시선을 감수한 보람이 있어. 흐흐.”
초록 형이 아니었다면 테오라는 아직 눈엣가시였겠지.
“선배님들 깜짝 놀라게 해드리자! 상상만 해도 너무 좋아!”
리허설에선 힘을 빼기도 했고, 1, 2차 경연은 퍼포먼스 중심으로 진행하느라 부분 AR을 깔았었다. 어쩌다 보니 반전을 노린 듯한 모양이 되어버렸다.
“놀라시긴 할 거야. 그건 크오아 제작진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서혼 형 말대로면 파이널 경연으로 놀라지 않을 사람은 우리와 우리 팬들밖에 없을 것 같았다.
M.com에도 음악 프로그램도 있지만, 크오아 PD님은 주로 음악 예능을 찍던 분이셨다. 아마 다른 스탭분들도 PD님과 유사한 케이스일 것이다.
“이번에 라이브로 하니까 심사도 이전 경연이랑은 비교도 안 되게 살벌하겠지?”
그래도 우리는 칭찬받을 수 있겠지? 이 부분에서 즐거워하면 안 되는데 저절로 입술이 움찔거렸다. 다른 사람의 불행에 기뻐하는 못된 사람이 된 기분이다.
주제 때문에 곡 선정하기가 어려웠던 거 빼곤 전부 착착 진행됐다. 연습 과정에서 냉랭한 의견 충돌도 없었고, 컨디션도 어느 때보다 좋았다. 하늘이 우리를 돕는 것 같다고 할까.
“우리는 평소대로 무대 위에서 놀다 오면 돼.”
‘평소대로’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커다란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딱 기분 좋게 긴장할 수 있으니까.
다른 팀 선배님들은 생방송에서 라이브로 노래하며 춤까지 춰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안고 있다. 긴장이 몰려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경험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중요한 무대를 앞두고 긴장하지 않는다면 거짓말. 긴장을 조절할 수 있는 노련함이 생길 수도 있다지만, 그런 능력자는 극소수의 예외일 뿐이었다.
“마지막 무대, 잘해보자.”
“난 마지막 무대 아닐 것 같은데!”
크오아 우승팀은 2회 분량의 단독 예능을 찍을 수 있고, 단독 콘서트를 열 기회가 주어진다. 마지막 무대가 아닐 것 같다는 말은 우승할 거라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김칫국 마시다가 미끄러지면 꼴불견….”
홍오란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자신감은 넘치지만,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불길한 소리는 하기 싫지만, 무대에서 실수할 확률이 제로는 아니다.
알고 있다. 알고는 있는데 자꾸만 미래를 낙관하게 되는 이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혹시 실수하면 애드립인 척해. 다들 알아들었지?”
“OK. 그건 내 전문이지.”
지온은 종종 무대에서 가사를 일부러 바꿔 부르는데 그 탓에 아슬아슬한 순간이 여러 번이었다. 바꾼 가사를 까먹어서 랩이 뒤섞이는 상황도 종종 발생했다. 그런데도 얼마나 대처 능력이 좋았으면 팬들은 그 아찔한 상황을 ‘일부러’ 그랬다고 굳게 믿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순발력인지.
“우리 슬슬 나가야겠다.”
파이널 경연에서 테오라의 순서는 첫 번째였다. 무대에 대한 인상이 흐려질 수 있는 초반 순서는 불리하지만, 이번 파이널 무대에선 별 상관없었다. 투표가 경연 첫 무대부터 시작되고, 기억이 흐려지더라도 우리 무대의 임팩트는 강하게 남을 테니까.
“테오라 바로 준비해주세요! 5분 전입니다!”
우리는 빠뜨린 게 없는지 최종 점검을 한 후에 노래 가사를 다시 떠올려보고 안무도 되새겼다.
“목 상태 괜찮지?”
“응! 이런 상태면 콘서트도 거뜬해!”
“물론. 무대 위에서 꼴사납게 넘어지지만 않으면 1등이겠어.”
목 컨디션이 괜찮다는 대답에 안심할 수 있었다. 노래 연습을 빡빡하게 하는 바람에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 괜찮은 모양이다.
“가자. 우승 트로피 가지러.”
“가자!”
* * *
“파이널 경연 첫 번째 무대를 선보일 팀은 테오라입니다! 힘찬 함성으로 맞아주십시오!”
박수 소리와 환호성, 휘파람 소리가 별처럼 쏟아져 내렸다. 어두운 무대 위, 동선에 맞춰 선 우리 뒤에 있는 스크린에 배경과 함께 커다란 글씨가 새겨졌다.
[Nothing]정규 1집의 수록곡인데 더블 타이틀로 할까 고민했던 곡이라서 연습량은 상당했던 곡이다. ‘네가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아주 심플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정규 1집 앨범에 들어간 곡들은 어딘가 독특하고 예술적인 느낌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Nothing’은 가사 때문인지 사랑 노래라고 생각하는 팬들이 많았다.
사랑 노래라면 사랑 노래일까? 연인이 아니라 팬들을 염두에 두고 쓴 곡이긴 하지만, 사랑 노래가 맞긴 하다.
이 곡을 ‘크라운’이라는 주제가 걸린 파이널 경연곡으로 선택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크라운, 왕관은 팬들이 없다면 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의도를 시청자들이 더 쉽게 알아챌 수 있게 가사를 살짝 고쳤고, 편곡도 했다.
무대 세트장과 의상을 고민하면서 여러 의견이 나왔는데 과한 건 모자란 것만 못하다면서 결국은 고급스런 정장에 얼굴의 반을 가리는 가면을 활용하기로 했다.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애절한 느낌의 곡이 웅장한 대서사시 같은 곡으로 탈바꿈했다. 관객, 심사위원,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우리의 진심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
무대 위가 서서히 밝아졌다. 가면으로 얼굴 반쪽을 가린 우리가 카메라에도, 관객들의 눈에도 잘 잡힐 것이다.
제일 먼저 손에 쥔 가면을 내린 내가 노래의 포문을 열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고장난 시계처럼
네가 없으면 I’m nothing at all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롱코트가 우리의 움직임을 보다 드라마틱하게 보이도록 도왔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롱코트를 입은 보람이 있어야 할 텐데.
여름에 두꺼운 옷을 입고, 겨울에 살갗이 드러나는 옷을 입는 게 아이돌에게 특이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그룹은 앨범을 준비하는 시기부터 코디님이 너무 덥거나 춥지 않게 신경 써주셨다.
코디님 없이 우리끼리 의상을 골랐더니 벌써 더운 열기가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나름대로 냉방이 잘 되는 실내 공연장인데도 무대가 끝나고 나면 땀범벅이 되어 있을 듯했다.
그래도 이 의상을 고른 데엔 후회가 없었다. 2차 경연에서 기다란 도포 자락이 휘날릴 때에 얼마나 그럴듯해 보였는지 누구보다 우리가 확실하게 느꼈으니까.
이번 곡엔 정해진 안무가 없어서 초록 형이 다급히 짜야 했는데 여러 제한 때문에 어렵게 짤 수는 없었다. 곡 분위기에도 어울려야 하고 노래를 라이브로 불러야 하는 데 연습 기간까지 짧았다.
새로 안무를 짜고 숙지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을 시간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돌이켜보면 어떻게 다 했나 싶다. 잠을 줄이지 않았다면 제시간에 맞추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앞에 두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도 조금 멍한 느낌이었다. 박자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도 제대로 부르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뭔가 이 세계와 유리된 기분. 감각은 곤두서고 주변의 상황이 사진처럼 눈에 박히는 기분.
아.
이런 느낌을 언제 받아봤었는지 떠올랐다. 데뷔 조에 들어갈 연습생을 정하던 그 무대에 올라갔을 때.
그때는 내가 뭘 겪는 건지 모른 채로 무대를 끝내고 내려왔다. 나중에 칭찬은 받았지만 얼떨떨할 뿐이었고, 노래 실력이 갑자기 확 늘어서 기뻐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무아지경이라기엔 너무 생각이 많아서, 초집중 상태인 존(zone)에 들어가 있던 게 아닐까 짐작만 했었다.
이제 겨우 두 번째. 이 순간을 허무하게 날려선 안 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자주 오지 않는 기회가 파이널 경연, 중요한 이 무대에 올랐을 때 주어졌다면 꽉 잡아채서 골수까지 빼 먹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우리 리더 초록형에게서 배운 가르침이었다.
나는 곡의 심상을 전달해보기로 했다. 우리를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들어주고, 결국엔 왕관을 차지할 수 있게 해주는 당신들에게 전하는 감사와 사랑을 담아서.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숨이 점점 거칠어지고 등 뒤로 땀이 흘러내리는 촉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멤버들의 호흡이 살짝 흐트러지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너무 이 곡에 집중한 나머지 생긴 흔들림으로 느껴졌다.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포인트로 작용할 것이다.
동선이 바뀔 때, 코트 자락이 흔들릴 때 공기의 흐름이 눈에 보이는 듯한 착각까지 일어났다. 빈틈없이 맞아떨어지는 안무, 어느 때보다도 단단하게 올라가는 고음.
몇 곡이든 이대로 더 부르고 싶었다. 그렇지만 노래는 끝났고 우리는 무대 위에서 내려와야 했다.
“…더 부르고 싶어.”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에 초록 형이 내 귀에 속삭였다. 더 부를 수 있게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