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75
최종 우승자는
파이널 경연의 첫 번째 무대가 끝났을 뿐인데 객석이 들썩였다. 관람 매너를 잊기라도 한 듯이 어수선한 상황이 되자 사람들을 진정시키느라 시간이 지연되었다.
대기실에서 테오라의 무대를 보던 다른 팀들은 허탈한 웃음을 흘리다가 급히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다른 팀의 무대를 보이기도 전에 첫 번째에 우승자가 정해진 격이니 오죽할까.
지금껏 수많은 무대를 봐왔던 그들이지만, 여기서 뜬금없이 저런 수준의 무대가 튀어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생방송에다 MR만 사용해야 한다는 핸디캡이 있는데도 테오라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무대를 끝내버렸다.
화면에 비치는 테오라 멤버들의 얼굴에는 놀라움이나 감격이 들어차 있지 않았다. 이 광경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고작 3년 차. 만으로 데뷔 후 3년도 되지 않은 그룹인데 실력이 천상계였다.
“…저희도 라이브 무대 경험이 적지는 않은데 테오라는 놀라운 수준인데요. 저런 실력을 가지고 왜 아직도….”
왜 우리와 함께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1군도 씹어먹을 실력인데 말이다.
테오라가 실력파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건 예상 범위를 한참 빗겨나갔다. 메인보컬인 함이원이나 리드 보컬인 홍오란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의 실력도 심상치 않았다.
한두 명은 천재일 수 있지만, 멤버 전원이 천재일 수는 없다. 천재가 그렇게 흔하진 않으니까. 그런데 전 멤버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되어 있다는 건 노력으로 만든 결과라는 소리였다.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저런 실력을…? 이게 되는구나….”
그들도 충분히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다. 능력도 있어서 데뷔도 했고 이름도 알렸다. 그런데도 1군으로 인정을 못 받는 이유는 그저 ‘운’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었는데 그 믿음이 와장창 박살 나는 기분이었다.
압도적인 실력이 있으면 운이고 뭐고 전부 필요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운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쌓은 실력을 보여줄 날을 기다려야 했다는 것을.
“와…. 춤추면서 노래 부르는데도 음정도 안 흔들리고 호흡도 안정적이고. 테오라 멤버들 무슨 수련했는지 이따 살짝 물어보고 와야겠어요!”
눈을 찡긋하면서 연기를 했지만, 쓰린 속을 달랠 방법이 없었다. 우리 무대를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려고 해도 눈앞에 훤히 보이는 결과를 부정하기란 어려웠다.
망신을 당하는 것만이라도 피하고 싶었다. 평균 연령으로 따지면 다섯 살은 어린 그룹 앞에서 현실에 안주하는 퇴물로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팬들에게도 미리 자포자기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마음은 꺾였을지라도 무대 위에선 우리가 최고인 것처럼 꾸며야 했다.
모든 그룹의 무대가 끝나고 온라인 투표가 마감됐다. 실시간으로 진행된 투표라 시간도 길지 않고,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는데도 투표 참여율이 급격히 뛰는 바람에 서버가 먹통이 되는 사고가 있었다. 재빠른 대처 때문에 수습은 잘 됐지만, 4차 경연 점수와 최종 순위 발표가 10분쯤 미뤄졌다.
합산 점수가 매겨지는 동안 심사위원의 심사평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라이브 무대라 지적할 부분이 많이 보였는지, 아니면 이제 마지막 촬영이라고 배째라 식인지 심사평이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날카로웠다.
시간이 촉박했는데 무대를 완성해줘서 고맙다거나 수고했다거나 하는 의례상의 인사말이 오가고 본격적인 심사평 시간이 시작됐다.
“먼저 보이데이, 저는 좀 실망했습니다. 밴드형 아이돌이라는 정체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어요. 게다가 밴드는 다른 아이돌에 비해서 라이브를 많이 하지 않나요? 제 착각인가요? 격한 춤을 춰야 하는 다른 아이돌 그룹보다는 라이브에 익숙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이도 저도 아니었네요.”
뼈를 때리는 심사평에 내가 다 아픈 느낌이었다. 밴드형 아이돌은 보통 악기를 사용하게 돼서 다른 아이돌에 비해 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약점을 만회해보고자 안무를 추가한 듯한데 그러는 바람에 보컬이 무너져버렸다.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밴드형 아이돌의 한계일까? 내 머릿속까지 덩달아 복잡해졌다.
“티오티는 무대는 준수했는데 그게 전부였다는 거 본인들도 알죠? 다른 행사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수준의 무대였습니다. 갑자기 라이브로 노래해야 해서 긴장한 것 같은데, 겉으로 티가 나면 안 되죠.”
“밀키독, 무대 좋았습니다. 라이브 무대를 본 적은 없는데, 잘하시는데요? 평소에 연습을 많이 한 티가 납니다. 곡 선정을 보면 팀 멤버들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네요. 지닌 바 능력을 최대한 뽑아내는 신나는 무대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실 제가 스카일이 다른 이름으로 데뷔했을 때부터 지켜봐 오던 사람입니다. 참 운이 없구나, 했었습니다. 소속사 분쟁으로 이름을 바꿔야 했던 건 엄청난 타격이었을 겁니다. 그런 사정을 이해한다고 쳐도 프로잖습니까?”
다사다난했던 스카일의 과거는 관계자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멤버들과 함께 그룹을 유지한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심사위원님은 그걸 알면서도 프로다운 무대를 보여줬어야 했다고 따끔한 질책을 했다.
“9년 차 아이돌이 보여줘야 할 연륜도 없고, 개성도 없고…. 내가 알던 스카일이 맞나 눈을 비볐을 정돕니다.”
“젤러…. 사실 저는 우승 후보로 젤러를 꼽았었습니다. 기대도 많이 했고요. 그런데 이게 뭐죠? 이게 본 실력이었나 싶어서 제가 다 실망스럽네요.”
젤러 선배님들은 실력의 차이가 컸다. 실력이 좋은 분들뿐만 아니라 실력이 부족한 분들도 같이 튀어서 듣기가 편하지 않았다.
파이널 무대를 라이브로 해야 한다고 했을 때 제일 당혹스러웠을 그룹은 단연코 젤러다. 인원이 많고, 멤버 간 실력의 격차도 컸다. 라이브로 진행하는 무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기도 했다.
소속사의 방침이라고 듣긴 했는데 성장 가능성을 빼앗아버리는 방침이 아니었을까.
만회할 기회도 없이 이렇게 마무리를 한다는 게 얼마나 속상할까. 나였다면 내장을 쥐어짜는 기분일 것 같은데….
“그리고 테오라.”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에 공손히 서 있던 자세에서 고개만 살짝 들었다. 우리를 향한 시선에는 온기가 들어 있었다.
“테오라의 진가를 너무 늦게 알아봤네요. 라이브가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있습니까? 게다가 멤버들과의 조화도 좋고. 비결이 뭔지 물어봐도 됩니까?”
“저희는 실전은 연습처럼, 연습은 실전처럼 합니다. 평소에 MR 반주로 하는 무대가 대부분이라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소에 라이브로 한다고요? 아! 음방을 라이브로 하는 그룹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여기에 그 주인공이 있었다니! 테오라가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경력은 짧아도 라이브가 익숙한 이유가 있었네요.”
“하눌 엔터 소속이었죠? 원래 실력 있는 연습생을 뽑았겠지만, 참 간도 크네요.”
“라이브로 해왔던 건 회사 뜻이 아니라 저희 뜻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이원이 뜻이었죠.”
…굳이 그것까지 밝혀야 할까? 그간 멤버들이 고생했던 걸 떠올리면 멤버들의 개인 팬들에게 원망을 잔뜩 살 텐데….
“이원, 함이원 씨 말하는 거죠? 하눌이 아티스트 의견 존중해주는 걸로 유명하다던데 진짜였군요? 나라면 겁나서라도 허락 못 했을 것 같은데.”
회사 입장에서도 상당한 모험이었다. 우리 실력을 아는 분들이었고 나중엔 더 발전할 거라고 믿고 있었기는 해도 최근의 경향과는 정반대로 가는 선택이었으므로.
아이돌의 경연 프로그램에 나와서 노력이 보상받을 거라고 누가 짐작이나 해봤을까.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을 회사 관계자분들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뿌듯함을 느끼고 계시려나?
“테오라 무대 잘 봤습니다. 곡 선정, 의상, 편곡까지 짜임새가 있었습니다. 파이널 무대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멤버들만의 힘으로 만들어야 했는데 기대를 뛰어넘었습니다.”
1, 2차 경연도 우리 힘으로만 치렀다는 얘기를 들은 심사위원분들은 허허 웃기만 했다.
“1차 경연부터 지금까지 테오라의 무대를 순서대로 놓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성장 폭이 보여요. 테오라 여러분들이야말로 종합 엔터테이너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심사위원 점수가 발표됐고 변수는 없었다. 우리가 독보적인 1위였다. 모두 예상한 상황이었지만, 실제로 결과를 확인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심사위원 한 분이 천천히 손뼉을 치자 박수가 전염이라도 된 듯 퍼져나가고 우레처럼 공연장을 울렸다. 우리를 향한 찬사가 들려오는 듯했다.
“감사합니다!”
살벌한 비평을 들은 선배님들 앞에서 좋아하는 표시를 내기 미안했지만, 우리를 보고 환호해주는 분들을 향해 미소가 저절로 그려졌다.
“심사위원 점수에 이어 현장 관객 점수를 발표한 후….”
관객 점수를 발표하고 느긋하게 인터뷰 시간을 가지면서 누가 우승 후보가 될 것 같냐는 진부한 질문이 던져졌다.
이 시간에 TV를 보고 있을 시청자분들은 조금 지겹지 않을까? 서버 문제 때문에 미뤄진 10분을 지루한 인터뷰와 광고로 채우는 중이니 말이다.
다른 그룹은 똑같이 진부한 대답을 돌려줬다. 반면 테오라 대표인 초록 형은 ‘테오라가 우승할 것 같습니다!’하고 당당하게 질러버렸다.
자칫 잘못했으면 재수 없어 보였을 수도 있는데 현장 관객들이나 심사위원들 모두 우승 후보를 짐작하고 있어서 따뜻한 미소만 지어주셨다.
온라인 투표 최종 집계가 끝나고 파이널 경연과 최종 순위가 함께 발표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크라운 오브 아이돌 파이널 경연 합산 점수는 60초 후에 공개됩니다!”
M.com의 단골 멘트에 야유가 쏟아졌다. 익숙하다고 해서 싫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다.
MC님도 대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하는 멘트겠지만, 시청자와 함께 결과 발표를 기다리던 우리는 그 잠시 잠깐도 참기 힘들었다.
60초의 유예가 지났는지, 뒤에 있는 스크린에 점수를 뺀 표가 떴다. 참가자들은 일제히 스크린을 쳐다봤다.
“크라운 오브 아이돌! 파이널 경연 합산 점수부터 발표합니다. 먼저 심사위원 점수입니다.”
현장 관객 점수까지 재차 공개된 후에 합계가 자동으로 나왔다. 화제성 점수와 온라인 투표 점수가 공개되고 더해져서 파이널 경연의 합산 점수가 채워지고 곧바로 앞선 경연의 점수까지 더해져 최종 순위가 나왔다.
테오라의 이름 옆에 1이라는 숫자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축하드립니다! 테오라! 파이널 경연 1위 팀이자 최종 우승팀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반짝이는 꽃가루가 떨어지고 핀 라이트가 우리를 향해 쏘아졌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축하해요, 테오라.”
멤버들과 얼싸안고 쏟아지는 축하를 받는 내내 가슴이 울렁댔다. 우승을 목표로 달려오긴 했지만, 진짜로 우승을 해버렸구나 하고.
“우승하신 테오라 여러분께는 M.com 채널에서 방영하는 2회차 예능에 출연과 단독 콘서트 기회를 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결론은 우리가 의 최종 우승자가 됐고, 이제는 1군으로 인정받을 날만 남았다는 것이다.
“크라운 오브 아이돌 무대를 장식한 음원은 바로 오늘! 정오에 공개됩니다!”
이 기쁨을 우리 팬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