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81
누가 제일 좋아?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는데도 테오라가 호명되는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멤버들이 수상 소감을 말하고 내게 마이크가 넘어왔을 때 나는 울렁이는 속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가 가요대상을 탄 거다. 가요대상을…!
가요대상은 가수에게는 제일 가치가 높은 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그간 여러 상을 받아봤지만 지금 내 손에 들린 투명한 트로피가 제일 무겁게 느껴졌다.
“…먼저 이 상을 받게 해준 우리 코티지들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팬분들이 없었으면 오늘도 오지 않았을 거예요. 사랑합니다, 코티지.”
가슴에 꽃다발을 안고 환한 객석을 쳐다보는데 눈앞이 흐려졌다.
아까부터 속눈썹이 축축해진다 했더니 이제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였다.
기쁨의 눈물이라 감출 필요는 없지만, 박하처럼 발음이 다 뭉개지도록 엉엉 울고 싶진 않았다. 이 특별한 순간을 우느라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
“감사합니다. 어설픈 저를 챙겨준 우리 멤버들에게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테오라는 좋은 분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이 자리까지 온 것 같습니다.”
이미 멤버들이 매니저 형들이나 스태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씩 언급해서 반복할 필요는 없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현이에게 대상을 탔다고 자랑하고 나니 할 말이 똑 떨어졌다. 센스 있는 소감을 더 준비해둘 걸 그랬다.
진부해도 마음에서 우러나는 소감이 나을 것 같았는데 막상 이 자리에 서니 조금 아쉬워졌다.
“…그리고 항상 고맙고, 보고 싶은 현오 형. 내가 초심을 잃지 않게, 흔들리지 않게 지켜봐 줘.”
가요대상을 받음으로써 갓 아이돌이라는 꿈에 성큼 다가갔다. 아직은 ‘갓’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독보적인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순조롭게 성장해나가는 단계였다.
현오 형이 선물해준 목소리가 아깝지 않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보람이 있었다. 어느 때보다도 묵직한 성취감이 덮쳐왔다.
간신히 수상 소감을 끝내고 멍하니 무대를 내려왔더니 축하가 쏟아졌다.
축하받는 멤버들의 얼굴에서 함박웃음이 지워지지 않았다. 지온까지 웃음을 실실 흘리고 있을 정도였다.
“대상 축하해요! 테오라가 받을 줄 알았다니까?”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는 테오라 되겠습니다.”
기계적으로 답을 하면서도 붕 뜬 기분은 좀처럼 감춰지지 않았다.
우리는 잠깐 라이브 방송을 켜서 팬들과 소통을 한 후에 뒤풀이에 참석했다.
이제는 멤버들 모두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된 탓에 여기저기서 술을 권해왔다.
“죄송해요. 더 마시면 지금의 기쁨을 다 잊어버리게 될 것 같아서요….”
초록 형이 알려준 멘트는 과연 효과적이었다. 이 뒤풀이의 주인공이 기쁨을 더 느끼고 싶다는데 누가 더 마시고 잊으라고 술을 권할까.
이 스킬 덕에 멤버들은 기분 좋을 만큼만 취할 수 있었다.
맥주 반 잔에도 취해버리는 초록 형은 한 잔도 마시지 않고 술 취한 사람 같은 텐션으로 어울렸다.
사람들의 이성이 흐트러져갈 즈음 뒤풀이 장소에서 이르게 빠져나왔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준현 형이 모는 밴을 타고 숙소에 돌아왔을 땐 다들 녹초가 된 후였다.
무대 위에서 세 곡만 소화했을뿐인데도, 시상식이 주는 정신적 피로가 엄청났던 듯했다. 그 상태에서 알콜까지 들어갔으니 평소보다 술기운이 빨리 도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샴페인 한잔 마시고 푹 잘 건데. 나 침대까지 옮겨줄 사람?”
“초록아, 필름 끊기는 거 안 좋다고 하던데….”
“괜찮아.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잠드는 거지 필름이 끊기는 게 아니야. 다음날에 내 술주정 전부 생각나니까….”
초록 형은 우리라면 자기 술주정을 보여줘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지온은 와인셀러에서 샴페인 한 병과 잔 여섯 개를 가지고 왔다.
“초록 혼자 마시게 하는 건 정 없으니까.”
기다란 샴페인 잔에 담긴 황금빛 액체에서 기포가 톡톡 올라왔다.
“맡겨둬! 초록이 형은 내가 옮겨줄 테니까! 그럼 짠!”
가볍게 부딪친 잔에서 경쾌한 소리가 났다. 샴페인이 목을 타고 내려가기 무섭게 초록 형의 고개가 뚝 떨어졌다.
“흐, 내가 누구로 보여? 응? 대상 탄 가수로 보인다고? 후후후.”
솔직한 술주정에 웃음이 터졌다. 이렇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참았을까.
“잠깐, 폰 어딨지? 폰!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되는데! 보기 드문 초록 형의 귀여운 모습인데!”
“여기.”
바로 박하 손에 올려진 폰은 박하 휴대폰이 아니라 홍오란 것이었다.
취했나? 뒤풀이 자리에서 홀짝홀짝 마시는 것 같더니 샴페인 한잔으로 주량을 넘겼나 보다.
“오란이 취했구나.”
“응. 취했어….”
진짜 엄청 취했구나? 이렇게 순순한 대답이라니.
우리 멤버들 뿐이니까 비즈니스 모드일 리도 없었다. 발음이 꼬이지 않았어도 만취한 게 분명했다.
“오란 형 술버릇이 순해지는 거라니! 대 충격!”
박하는 이 틈을 노려야겠다면서 카메라 렌즈를 오란에게 돌려 동영상을 찍었다. 그러곤 은근한 목소리로 질문해도 되냐고 물었다.
“응. 뭐든 물어봐.”
“테오라 멤버 중에 누가 제일 좋아?”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튀어나왔다. 지금이야말로 홍오란의 솔직한 마음을 들을 수 있으려나?
소파에 늘어져 버린 초록 형을 제외한 멤버들이 홍오란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누구 이름이 나오든 홍오란을 놀릴 최고의 기회였다.
“다 좋은데….”
“와…. 헙.”
턱에 힘이 빠져서 입이 저절로 벌어지는 입을 손으로 가렸다.
홍오란에게서 저런 대답이 나올 수 있다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오란의 친형인 범무 형도 몰랐을 거다.
“전부 다 좋아? 오란 형 장난 아닌데? 히히! 굳이 꼽자면 누가 제일 좋은데?”
박하는 포기하지 않고 물었다. 궁금한 건 우리도 마찬가지라 박하를 말리지 않았다.
“…굳이 꼽자면 음, 함이원…?”
“마상! 내 이름 나올 줄 알았는데 이원 형한테 졌어! 하긴 이원 형은 어떻게 보면 오란 형 은인이긴 하니까! 인정!”
불운에 둘러싸여 지냈던 오란에게 나는 조금 의미가 다른 존재일 거라고 했다. 나를 만남으로써 겪은 변화가 우연이라고 하더라도 상관없이.
고백은 홍오란이 했는데 왜 내 얼굴이 뜨거워지는 거지…. 부끄러운 것 같기도 하고 감동적인 것 같기도 한 이상한 기분이었다.
달아오르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추려고 했더니 옆에서 서혼 형이 목을 울리며 웃었다.
“쑥스럽구나? 우리 이원이. 더 쑥스럽게 해줘야겠는걸?”
서혼 형은 우리 멤버들의 한 명씩 껴안고 토닥였다. 우리가 최고라고 말해주면서.
뜬금없이 서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털어놓는 낯 뜨거운 시간이 됐다. 쿨쿨 잠들어버린 초록 형이 부러워졌다.
“난 자러 갈래. 다들 잘자. 그리고 으음, 나도 좋아해. 다들….”
흘리듯이 웅얼거리고 방문을 닫았는데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다 들렸다.
…방음이 영 별로다.
* * *
새해가 밝았어도 테오라는 여전히 바빴다.
연초에 해외에 나가는 스케줄이 많이 잡혀서 데뷔 기념일에도 해외에서 라방으로 축하를 해야 했다.
팬들이 직접 우리 데뷔 일을 기념하는 일일 카페도 열었다는데 태국에서 전해 듣기만 했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지하철에 광고를 걸기도 했는데 그건 다행히 직접 가서 인증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잠깐 한국에 들렀다가 다시 출국하는 바람에 지금은 프랑스에 와 있었다. 관광할 시간은 거의 없었지만, 쇼핑한다는 핑계로 잠깐 나갔다가 봉변당할 뻔했다.
언제 프랑스에 우리 팬이 이렇게 늘었는지 대낮에는 밖에 편하게 나가기 어려웠다. 공항에 도착해서 수많은 인파를 발견했을 때부터 예견했어야 했다.
“세계적인 스타가 된 기분이 이런 걸까! 히히히!”
새삼스럽게 우리가 인기 아이돌이구나 체감했다. 잠깐 들렀던 카페에서 simple happiness가 흘러나왔을 땐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내일 콘서트 하려면 일찍 자야지.”
“마스크 팩만 하고 잘래!”
오늘은 파리 패션 위크에 참석했다. 우리는 프랑스에 온 김에 여러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는데 내일 하는 K-pop 콘서트가 메인 스케줄이었다.
“흠…. 이원아. 이거 봤어?”
초록 형이 들고 있던 휴대폰을 내게 내?棘駭? 프랑스에서도 국내 커뮤니티 동향을 살피고 있었는지 화면에는 대형 커뮤니티 이름이 보였다.
“그 글 읽어봐.”
제목만 읽어도 왜 초록 형이 내게 이 게시글을 읽어보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테오라 함이원이 처음 작곡해서 저작권 등록한 곡?]숨은 명곡 찾아다니는 D인데 최근 테오라 함이원이 처음 세상에 내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곡을 발견함.
나는 좋아하는 듣보 가수가 유명해지면 흥미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음.. 그런 고로 사람들이 잘 안 듣는 좋은 곡을 발굴해서 리뷰하는 취미를 가지게 됐는데 최근 발견한 곡이 수상하다 싶어서 글을 쓰게 됐음.
그 곡을 소개하자면 제목은 ‘어떤 이름으로도’. 작곡, 작사는 H21, 부른 가수는 현5.
처음에는 가수 이름이 현5라고 되어 있어서 몰랐는데 분명히 들어본 목소리더라고.
어디서 들었는지 죽어라 안 떠올라서 미치는 줄 알았는데 테오라가 가요 시상식에서 대상 타고 소감 말하는 장면을 본 거야.
거기서 함이원이 현오 형 어쩌구 그러는데 번뜩 떠올랐지. 이 곡의 목소리가 함이원 목소리랑 똑같다는걸!!!
계속 들으니까 지금 함이원 목소리가 조금 더 낮긴 하던데 변성기 끝날 즈음에 녹음한 곡이라면 더 말이 되지 않나 싶음.
H21=함이원, ㅈㄴ직관적인 예명 아님?
근데 이 곡을 부른 아티스트는 함이원이 아니고 현5인데다 H21이 함이원이라고 확언할 수는 없잖아?
심증은 충분한데 증거가 없으면 증거를 수집해야지. 마침 하눌에 다니는 지인한테 물어보니까 함이원이 데뷔곡 작곡해서 몰래 심사 넣느라고 사용한 예명이 ‘H21’이라네?
유레카!
이 곡 말고는 H21이라는 예명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적도 없고, 어디서도 언급한 적도 없어서 쫌 애매한데 다들 들어보면 알 거야.
저작권은 제대로 등록된 곡이고 등록한 시기는 4년 전. 그러니까 이 곡이 함이원 곡이 맞다면 처음 저작권 등록한 곡ㅇㅇ.
목소리만 들으면 빼박 함이원이 부른 것 같은데 왜 가수 이름이 현5라고 되어 있는지는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임.
함이원 본인만 확실히 알겠지..
함이원이 작곡하고 부른 곡이 아니라고 해도 곡 자체로도 들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곡이기도 함.
누구나 듣는 유명한 곡이 된다면 내 흥미는 또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이 노래를 내가 발굴했다는 것만 기억해주면 만족하겠음.
참고로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 아이디는 XXXX1234임. 다들 들어와서 이웃 신청해! 음악 인플루언서가 되는 그날까지!
– 기승전 블로그 광고임? 퉤퉤
– 나 테오라 팬인데 직접 들어보니까 진짜 함이원 목소리 같음.. 뭐지?
└나두..구분이 안 돼 차이가 있긴 함?
└성문 분석하면 모를까 일반인이 듣기엔 똑가틈
– 근데 노래 좋다 목소리도 좋고
– 좋은 노래 알게 됐네 추천 ㄱㅅ
– 근데 함이원이 시상식에서 언급한 현오 형이 누구야? 배우 현오? 친분 없는 걸로 아는데
└팬들 의견도 분분한테 옛날에 망돌이었던 클리어리라고 있는데 그 멤버 정현오라는 게 정설
└배우 태규영이 클리어리 소속이었는데 함이원이랑 친분 있다고 함
– 이원이한테 슬쩍 물어보면 안 되나?
└흘리듯이 말할 법도 한데 아무 말도 없었던 거 보면 헛발 짚은 거던가 뭔가 사정이 있던가 둘 중 하나
– 그래서 이 노래가 함이원 곡이라고?
나에겐 현오 형과의 추억이 담긴 이 곡을 누군가 발견해줬구나.
“이원아, 어떻게 하고 싶어? 밝히기 싫으면 아무 말 안 해도 되고.”
이 곡은 현오 형에게 선물로 준 곡이었다. 현오 형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음,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