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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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이원을 오래 조사하면서 함이원과 정현오 둘 사이에 뭔가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우연히 목소리만 똑같다고 생각했지만, 시상식에서 언급하는 ‘현오 형’은 아무래도 클리어리의 정현오 같았다. 가끔 함이원이 정현오의 옛 멤버들과도 만나는 걸 보면 거의 확실했다.
그 관계를 제대로 확인한 건 ‘어떤 이름으로도’라는 곡이 화제가 되면서부터였다.
글을 확인하고 곡 정보에 ‘현5’라고 적힌 이름을 봤을 때부터 그 곡이 함이원이 아니라 정현오가 부른 곡임을 알 수 있었다.
둘이 어떤 인연으로 둘이 만났는지는 몰라도 이미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다.
공교로운 인연이었다. 어쩌다가 목소리가 같아서 마석희의 레이더 안에 둘 다 들어가게 됐는지.
한 사람의 꿈을 망쳤고, 또 다른 한 사람의 꿈을 방해하고 있었다. 여러 시도가 수포가 됐다는 게 이렇게나 안심이 될 수가 없었다.
물질적인 대가를 받으면서 양심의 가책을 애써 숨겨오고 있었지만, 이제 그것도 한계였다.
대표가 히스테리를 부리는 횟수도 점점 늘어났고 업무적으로도 실수가 잦아졌다. 대표의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렸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더 이상 마석희는 모실 보람이 있는 상사가 아니었다.
심지어 함이원을 망가뜨려 혼자 독차지하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어려워지자 마석희는 과격한 방법을 슬쩍 제안하기도 했다.
현실적인 문제가 가로막지 않았더라면 이미 납치해 감금하고도 남았다. 부상 위치와 정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면 아이돌로 활동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혔을 수도 있다.
막 나가려는 대표를 막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나서 정말 그만두는 것만으로 괜찮은지 생각했다.
자신이 나가면 그 뒤는 어떻게 될까. 브레이크가 고장난 트럭처럼 달리다 무서운 일들을 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띔이라도 해 줘야 하지 않을까?’
비밀 유지 서약서를 썼고, 거액의 위약금이 걸려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함이원이 알고는 있어야 한다는 결론만 나왔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마석희에게 당해버리면 죄책감이 들 것만 같았다.
“들키지 않으면 돼. 들키지만 않으면.”
무턱대고 함이원과 접촉하는 건 위험하다. 새로운 비서든, 돈 주고 고용한 심부름꾼이든 함이원 주변을 주시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하눌에 자료 보내고 몰래 만날 수 있다면 만나보고…. 그다음엔 해외로 나가야겠지.’
다행히 해외에 정착할 능력은 충분했다. 모아둔 돈도 있고 그간 쉬지도 못했으니 여행을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했다.
마석희에게 걸린다면 남은 인생이 괴로워질 테지만, 어쩐지 겁나기만 하지는 않았다.
‘왜 흥분되지? 이런 스릴이 내 취향이었나?’
익스트림 스포츠라도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임 비서는 USB가 들어 있는 가방을 추슬렀다.
* * *
최준현은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USB를 받았다. 퀵으로 배달된 작은 봉투엔 아무런 설명도 없이 USB 하나만 덩그러니 들어 있었다.
왜 정확히 자신을 지목해 퀵을 보냈는지는 USB에 들어있는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을 듯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USB 안의 자료를 확인한 최준현은 심각한 얼굴로 노트북을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철천지원수라도 만난 듯한 무서운 표정에 복도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어깨를 움츠리며 몸을 사렸다. 어깨라도 부딪쳤다간 가만두지 않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최준현은 당장 대표실을 찾아갔다.
“대표님 계십니까.”
“네. 계세요. 다음 일정 있으셔서 바로 나오셔야 하지만 잠깐이라면 괜찮습니다.”
반갑게 맞이하는 대표 손중기에게 대뜸 본론부터 말했다.
“대표님, 이것부터 봐주십시오.”
“이게 뭐길래…. 일단 보고 얘기하죠.”
노트북을 당겨 자료를 하나하나 살펴본 손중기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어디서 얻은 자료입니까. 너무 자세해서 오히려 가짜같이 느껴지는데.”
공식적인 서류나 기록은 아니지만, 여러 자료가 톱니바퀴처럼 아귀가 딱딱 맞았다.
“익명으로 저한테 배달됐습니다. 이런 자료들은 관련자가 아니면 얻긴 힘들겠죠.”
“익명이라…. 내부 고발자 같은 건가.”
자세히 살펴보면 누굴 고발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러 자료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소거법을 활용해보면 불가능하진 않았다.
“예전에 이원이가 스폰설에 휘말렸던 거 기억하십니까.”
“아, 기억합니다. 기억 못 할 수가 있나.”
알고 보니 스폰서로 의심받던 사람이 엄마였다는, 지금 생각해도 웃긴 촌극이었다. 워낙 황당하고 웃긴 일이어서 잊어버리기가 더 힘들었다.
“그때 허위 사실 유포범을 잡았는데 그 사람은 누군가 자기한테 돈을 주고 정보를 요구했다고 주장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주한 사람이 이 USB와 관련 있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서 이런 스토커가 나왔지? 아니 스토커라고 하긴 어렵나?”
자료만 살펴도 스토커의 정의와는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지의 인물은 직접적인 접촉 대신 간접적으로 함이원을 음해해 고립시키려고 했고 자신이 독점하고자 했다.
“일단 경호원 더 붙이고 애들한테는 조심하라고 합시다. 이원이는 준현 씨가 특별히 주시하세요.”
“알겠습니다.”
“나도 개인적으로 조사해보겠습니다. 사후 보고도 괜찮으니까 아티스트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주시고.”
“명심하겠습니다.”
최준현이 작전에 들어간 특수 요원처럼 전투 태세에 들어갈 때, 작업실에 들렀던 함이원도 퀵 하나를 받았다.
작은 서류 봉투 겉면에는 ‘함이원’이라고 받는 사람 이름만 적혀 있었다.
“…퀵?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고?”
잠깐 기타를 가져가려고 작업실에 들렀던 차였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보낸 듯한 퀵에 기분이 묘해졌다.
서류 봉투 안에는 USB와 이름도 없이 휴대폰 번호만 적힌 종이가 들어 있었다.
무슨 의미로 적어놓은 번호인지는 USB를 확인하고 알 수 있었다. USB 안에 들어있는 건 테오라를 대상으로 자행되어 왔던 일들의 증거자료였다.
테오라 자체가 목적이었다기보다는 자신 때문에 테오라를 건드렸다고 봐야 했다.
‘나 때문에 피해를 봤구나….’
다행히 테오라에겐 큰 타격이 없었다. 테오라 멤버들은 자기도 모른 채로 마수를 물리쳐왔다.
그렇지만 이대로 가만히 둘 순 없었다. 지금까진 괜찮았어도 앞으로도 괜찮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단 한 번이라도 멤버들이 피해를 본다면 견딜 수 없을 터였다.
나머지 파일을 마저 확인하는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파일이 작성된 날짜가 테오라가 데뷔하기도 훨씬 이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중학교 다닐 시기인데?’
다른 자료가 섞여 들어왔나 했지만, 곧 그게 아님을 알게 됐다. 거기에 ‘정현오’라는 이름이 보였으므로.
“현오 형이 왜 여기서…?”
이런 파일이 어쩌다가 같은 USB 안에 들어가 있는지 됐는지 짐작조차 어렵지만, 자신과 현오 형 사이엔 분명한 연결고리가 있었다.
이제야 덩그러니 적혀 있던 휴대폰 번호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궁금한 게 생긴다면 연락하라는 뜻이었다.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전화를 걸었다. 수 초만에 통화 연결음이 끊기고 전화가 연결됐다.
“여보세요.”
상대방은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퀵 보내신 분 맞나요? 저는 함이원입니다.”
[…전화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빠르네요.]변조하지 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발음이 아나운서처럼 선명한 게 조금 특이했는데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는 아니었다.
“무슨 의도로 제게 이 자료를 보내셨죠? 여기에 왜 현오 형 이름이 들어가 있어요? 저를 노리는 사람은 누구죠? 무슨 목적으로요?”
[하나씩 천천히 물어보세요. 전부 말하자면 길지만 전부 다 대답해드릴 거니까.]“…혹시 만나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겁도 없네요. 무슨 목적으로 그걸 보낸 줄은 알아요? 그걸 알고 만나서 얘기하자고 하는 거예요? 내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직접 만나서 마주해야 느낄 수 있는 것도 분명히 존재한다. 눈을 깜빡이는 속도, 근육의 움직임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같은 것들은 전화 통화로는 알기 어려웠다.
미세 표정을 보면 상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잘 읽어낼 수 있다. 그 점 하나만으로도 만날 가치는 충분했다.
이 일에는 여러 사람이 엮여 있었다. 자신 혼자뿐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반응하지 않았겠지만, 테오라 멤버들과 현오 형이 관련되어 있었다.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위험한 건 알지만 그래도 만나야 해요. 만날 수는 있나요?”
이쪽을 걱정해주는 사람이니 해를 끼칠 위험은 크지 않을 듯했다.
[그래요. 만나죠.]“다른 사람이랑 같이 가도 되나요?”
[멤버들이랑 같이 올 생각이면 접는 게 좋을 거예요. 그쪽도 눈에 띄는데 멤버들까지 더해지면 내가 위험해져요. 나도 나름 위험을 무릅쓰고 함이원 씨 만나는 거라서.]“…그럼 매니저 형이랑 같이 갈게요.”
[장소는 내가 정해서 바로 알려줄게요. 오늘 저녁 8시 괜찮죠? 스케줄 따로 없는 걸로 아는데.]개인 스케줄까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 약속 시간은 바로 정해졌다. 어차피 빠르게 만날 생각이었지만, 아이돌이 된 이후로 이런 일방적인 약속은 처음이었다.
생경한 기분으로 통화를 마쳤다. 이제 준현 형에게 동행을 부탁하러 가야 했다.
* * *
숙소에 돌아오니 멤버들은 저녁 준비가 한창이었다. 오랜만에 저녁 스케줄이 비어서 제대로 된 한정식을 차려 먹을 거라고 했다.
서혼 형 부모님이 보내주신 반찬들에 지온이 준비한 요리까지 8인용 식탁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준현 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준현 형도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해서 숙소에서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여기서 준현 형과 이야기하면 멤버들도 다 알게 되겠지만, 어차피 숨길 생각은 없었다.
이런 중대한 사항을 숨겼다가 들키면 그 후폭풍을 감당하는 게 더 어렵기도 하고, 멤버들도 알아야 할 일이었다. 나 때문에 피해를 봤으니 멤버들도 알 자격이 있었다.
“준현 형! 우리 저녁 준비 중인데 조금만 기다려요!”
준현 형은 박하와 다른 멤버들의 인사를 받고는 내게 묵직한 시선을 보내왔다.
“잠깐 모여봐라. 중요한 이야기니까.”
멤버들은 얼른 거실에 모였다. 웬만하면 무게 잡는 일이 없는 준현 형이 중요한 이야기라고 했으니 보통 일이 아닌 듯했다.
준현 형이 한 이야기는 내가 하려던 이야기와 같았다.
“미안해. 나 때문에.”
“이원아, 그게 왜 너 때문이야? 넌 잘못한 거 없어.”
“서혼 형, 그렇게 순하게 말하면 함이원이 알아듣긴 하겠어? 함이원, 멍청한 소리 지껄일 거면 입 닫고 있어.”
홍오란의 타박에 내가 얼마나 멍청한 소리를 했는지 깨달았다. 잘못은 가해자에게 있었다. 피해자가 잘못해서 피해를 입는 게 아니었다.
“우릴 음해하는 세력이 있다고는 눈치채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거물인 것 같네요. 이걸 어떻게 할까.”
초록 형은 그 존재만으로도 든든했다. 거물이라고는 하지만 초록 형이 작정하면 불가능은 없을 것 같았다.
“나한테도 똑같은 USB가 왔는데 거기 연락처도 남겨져 있었어. 그래서 말인데, 그 제보자랑 만나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