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94
의욕 상실
교통사고가 난 후 한동안 그 뒤처리를 위해 정신없이 보냈다. 회사 법무팀이나 그때 같이 있었던 경호원 형이 도와주긴 했지만, 그래도 빠질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
아무리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고 해도 현직 아이돌인 내가 경찰서에 들락거리는 게 소문이 나지 않았을 리 없었다.
소문은 기자들의 귀에도 들어갔고, 혹시 음주운전 같은 대박 사건인가 기대했던 기자들은 더 스펙타클한 사건이 있었음을 알아냈다.
기자들은 너도나도 기사를 복사 붙여넣기 했고, 뉴스 란에 내가 당할뻔했던 교통사고가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연예인이 마약 중독자가 벌인 교통사고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던 자극적인 사건은 곧바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H씨’라고만 언급했던 피해자가 테오라 함이원으로 밝혀지는 건 금방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약을 빨고 운전대를 잡았다가 아이돌을 칠 뻔했던 사고라고만 알려졌다. 그런데 조사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진실들이 밝혀지니 더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교통사고를 내기 전에 함이원의 작업실이 있는 곳에서 며칠 동안 잠복했다거나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전봇대로 돌진했다거나 하는 진실이 근거 없는 소문과 뒤섞였다.
살인미수죄를 검토할 만큼 의도적으로 사고를 냈다는 점이 명백해서 테오라 팬들이 기겁했다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일반 대중도 범인을 궁금해해서 범인의 신상은 금방 밝혀졌다. 아무나 구매하기 힘든 고가의 외제 차로 낸 사고이니 누가 몰았는지 쉽게 특정될 수밖에 없었다.
재벌 3세, 한때는 M.com의 대표이사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재벌가를 향해 비난이 쇄도했다.
공식 입장으로 개인의 일탈일 뿐이고,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며 손절 의사를 밝히자 미디어 재벌가에 대한 비난이 약간은 사그라들었다.
함이원과 그 범죄자 사이에 치정 문제가 있었다는 음모론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금세 사라졌다. 테오라가 이런 허위 사실 유포에 참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너랑 같이 있던 분이 경호원이라는 걸 알았으면 더 난리였겠지.”
“다행이야. 그랬다간 음지에서 각종 음모론이 쏟아졌을 텐데.”
일상적인 상황에도 경호원을 데리고 다닌다는 건 어떤 위협을 감지했다는 뜻. 해석의 여지가 커질 수 있었다.
사고 당시에 이웃집 형 같은 의상으로 입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CCTV가 공개되긴 했는데 얼굴까지 선명하게 나오진 않아서 팬들은 준현 형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간 듯했다. 덩치만 보면 언뜻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이원아, 병원에서는 뭐래?”
병문안이라고 하긴 그렇고, 상태 확인차 마석희가 있는 병실에 다녀왔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진 후에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어서 고민 끝에 다녀오기로 한 터였다.
거기서 나를 알아본 간병인으로부터 마석희의 현재 상태를 들을 수 있었다.
“생명에 지장은 없다는데 상태가 안 좋은가 봐. 내가 보기에도 중환자처럼 보였어.”
깁스에 고정된 팔다리는 침대 난간에 묶여있었다. 몇 차례 발작을 일으킨 탓이라고 했다.
“사고도 사고지만, 금단 증상 때문에 치료가 쉽지 않대.”
“그러게 약은 왜 해서!”
“호기심으로 한번 해보는 것도 절대 안 돼. 요즘 도는 약들은 딱 한 번으로도 끔찍한 금단 증상을 겪는다고 하더라.”
연예인들에게 흔한 유혹이라지만, 그 유혹에 넘어갈 만큼 우리가 멍청하진 않았다. 그래도 초록 형은 걱정스러운지 우리가 호기심으로도 약에 손대지 않도록 단단히 단속을 시켰다.
“결과가 어떨지 뻔히 알 텐데 꼭 자기를 과신하는 놈들이 있다니까. 이번에도 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유혹에 넘어간 마석희는 스스로 자신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앞으로 평범하게 살아갈 수나 있을까?
“청각에 이상이 생겨서 앞으로 아무것도 못 들을 거라던데….”
내가 아무것도 못 듣게 된다면? 그것보다 괴로운 게 또 있을까?
사람들은 보통 시각을 가장 중요한 감각으로 꼽는다는데 내게는 청각이 더 중요한 감각이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살 수는 있어도 음악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으니까.
청각의 상실은 예민한 청각을 가졌었다는 마석희에게 굉장한 고통이 될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소리에 집착해왔던 만큼 더 괴롭지 않을까.
“이 세상에 정의가 살아 있나 봐!”
“여러 사람 인생 망친 대가가 돌아온 거 아니겠어?”
멤버들은 마석희를 연민하지 않았다. 오래도록 병원에 있어야 할 테지만, 어차피 재벌가 일원이라 돈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게 어디냐는 식이었다.
“그 사람이 그나마 잘한 건 혼자 사고 내고 혼자 다친 거 아니겠냐. 죽고 싶으면 혼자 죽든지. ”
날벼락을 맞은 피해자 입장에 감정이입을 한 일부 댓글들은 홍오란의 발언과 비슷한 맥락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원이가 다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야.”
서혼 형은 물론이고 다른 멤버들도 경호원 형을 자기를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했다. 감사 인사는 기본이고 뭐든 못 줘서 안달 내고 있었다.
회사 차원에서도 특별 상여금을 지급했다고 전해 들었다.
나도 따로 성의를 표현하려고 했는데 규정상 받을 수 없다면서 사양하셨다. 다음에 개인적으로 경호원으로 고용할 일이 있으면 그때 불러달라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정말 끝이야.”
멤버들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간병인과 대화를 나눈 후 병실에 들어갔을 때 마석희는 깨어 있었다. 그 사람은 나를 보자마자 몸을 일으키려고 팔다리를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안정제를 맞은 후 조용해진 마석희는 이제야 간신히 자신의 처지를 인지한 상황인 듯했다.
왜 넌 멀쩡하냐는 듯이 억울함을 가득 담아서 나를 쏘아보는 눈빛에서 질척한 악의가 읽혔다. 반성이나 후회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진짜로 죽을 때까지 제 목소리를 들을 일은 없겠네요.’
내 목소리를 똑바로 들었을 리도 없건만, 입 모양을 읽어내기라도 한 듯, 마석희는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다시 몸부림쳤다.
환자의 안정을 위해서라는 말로 병실에서 쫓겨난 후에 소란스러운 병실 쪽을 쳐다보다가 돌아왔다.
안 그래도 한순간에 무너진 현실에 절망했을 환자에게 너무 잔인했을까?
그래도 번복하고 싶진 않았다. 그게 솔직한 내 마음이었으니까.
“이원이 넌 그 사람을 깔끔하게 잊어. 우리 스케줄에 집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니까.”
“응. 나도 다신 병원에 안 찾아가려고.”
마석희는 스스로 벌을 받았다. 앞으로는 마석희를 떠올리며 분노하지도, 불쌍하게 여기지도 않을 테다.
* * *
마석희 사건 이후로 테오라를 둘러싼 주변 상황은 소란스럽고 어수선했다.
내가 엮인 일 때문이라는 걸 모를 수가 없어서 멤버들에게 미안했지만, 그 모든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해외 활동에 집중하자고 했다. 아무래도 국내보다는 해외가 이런 가십에 둔감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두 달간 전 세계 주요 도시를 돌면서 해외 투어를 했다. 각국의 수도나 인구가 많은 도시를 중심으로 돌아다니면서 대형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열었는데 매번 티켓이 매진됐다.
콘서트장을 규모가 큰 곳으로 정했을 때부터 팬들을 꽉 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걸까?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서 콘서트를 준비하고 다른 나라의 팬들과 만나느라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음악에 푹 빠져서 보낸 시간이었다. 언어가 달라도 우리가 음악과 춤을 선보이는 데엔 아무런 제한도 없었다. 오히려 언어가 달라서 더 순수하게 즐길 수 있었다면 모를까.
해외 투어를 끝내고 다시 국내로 돌아왔을 땐, 매스컴이 잠잠해진 이후였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갑자기 한가해지니 무기력해지는 기분이었다. 잡생각이 하나둘 떠오르면서 내가 무슨 일을 하든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작곡 영감도 생기지 않고 악기로 손을 풀거나 청소를 할 의욕도 들지 않았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겉으로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멤버들의 눈썰미를 속일 수 없었다.
“그거 burnout syndrome?”
“슬럼프도 동반한 거 같은데.”
번 아웃? 슬럼프? 그러고 보니 번 아웃과 슬럼프는 ‘의욕 상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보이는 주요 증상과 유사했다.
“…으음.”
나만 겪는 특이 증상은 아니라는 것에 안심했지만,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는 의욕도 들지 않았다.
“이원 형이 번 아웃이라니!”
“경험자로서 말하는데 이원이뿐만 아니라 우리도 전부 위험 단계야.”
어릴 때 심한 번 아웃을 겪어본 적 있다는 서혼 형은 현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동안 여러모로 스트레스받을 일이 많았고 해외 투어 하면서 피로도 누적됐을 테니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겠다.”
“제대로 쉬는 수밖에 없나.”
마침 해외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중요한 일정은 잡혀 있지 않았다.
“준현 형한테 말해서 휴가 받아올게. 좀 길게 받아보려고 하는데 반대하는 사람?”
내 상태가 심각해선지, 혼이 형이 전부 위험하다고 말해선지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대로 일을 해봤자 효율이 떨어질 테고, 잘못하면 악화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듯했다.
초록 형은 내 상태를 설명하고 한 달의 휴가를 얻어왔다. 만약 상태가 호전되지 않으면 더 쉬어도 된다는 말과 함께.
“준현 형이나 회사 관계자분들 표정이 아주~”
“우리가 먼저 쉬겠다는 소리를 꺼낸 게 안 믿어지셨나 보다.”
하긴, 테오라는 일 중독 아이돌로 회사 내에서 정평이 나 있으니까.
“휴가 어떻게 보낼래? 기간이 길어서 해외로 여행 다녀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일단 나는 한동안 본가에서 지내면서 고민해볼게.”
일이 바빠서 집에 못 간 지 한참 지났다. 부모님도 보고 몸을 추스를 겸 겸사겸사 집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멤버들과 매일매일을 공유하니 때로는 떨어져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그럼 각자 집에서 요양하는 걸로. 이원이는 2주 지나기 전엔 연락 주고.”
“요양이라니….”
“왜. 틀린 말 아니구만. 번 아웃 증후군 환자는 얌전히 집에서 요양하다 오는 걸로.”
“찬성! 오랜만에 엄마랑 동생이랑 놀러 가야겠다!”
박하는 곧바로 여행 일정부터 정하려는지 휴대폰부터 들었다. 박하가 강아지였다면 꼬리를 신나게 흔들고 있지 않았을까.
숙소에서 짐을 싼 우리는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집에 도착해 이동장 안에서 탈출한 현이는 간드러지는 소리로 야옹거렸다. 소파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치즈 고양이를 보니 아무래도 주황이를 부른 것 같았다.
“잘 지냈어?”
오랜만에 집에 와서 그런지 주황이는 낯을 가리는 것 같았다. 그 탓에 목을 긁어주려는 시도가 무산됐다.
집에 너무 안 왔나…?
멋쩍게 손을 거두는데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이원이랑 지온이 왔구나. 휴가라고?”
이번엔 좀 길게 집에 머물다 갈 수 있다는 소식에 잔뜩 들뜬 아빠가 휴가를 선언했다. 프리랜서인 아빠에게 휴가는 큰 의미가 없지만, 기분이라도 낼 생각이신 듯했다.
“…전 먼저 방에 들어갈게요.”
한껏 들뜨신 아빠와 다르게 나는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짐과 현이를 챙겨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멀게 느껴지던지. 힘든 일도 안 했는데 벌써 지친 느낌이었다.
저녁 식사할 때 부르겠다는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짐을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침대에 푹 파묻혀서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