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99
예감
‘테오라’라는 그룹이 생기기 이전부터 멤버들이 쌓아온 역사가 하루아침에 정리되어 하나의 결과물로 만들어질 리 없었다.
인생은 대충 살더라도 이 일만은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리던 어재는 드디어 확인하게 된 고생의 결실에 희열을 느꼈다.
“드디어 끝…!”
조금씩 소화시키기 무섭게 자꾸만 늘어나는 자료 탓에 한숨만 내쉬던 시기도 있었는데 어떻게든 끝나는 날이 오긴 했다.
중간에 코티지 출신 영상 편집 기사가 두 명 더 붙어서 그나마 이제라도 끝낼 수 있었다.
졸지에 두 명의 편집 기사를 거느린 감독으로 경력을 쌓게 된 셈이다.
결과물에는 자신 있었다. 제 손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 공개되면 여기저기에서 러브콜이 쏟아져 들어올 터였다.
아마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독립적인 팀을 구성해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테오라 자컨 담당 감독으로서 테오라를 따라다니며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해외 팬들을 겨냥한 영어 앨범을 발매한 후, 테오라는 빌보드 차트를 국내 음원 플랫폼처럼 씹어 먹었다.
언어의 장벽이 없었다면 벌써 전 지구를 접수하고도 남지 않았으려나?
앨범 준비 단계부터 지켜봐서 그런지 테오라의 이름이 빌보드 차트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광경이 더없이 감격스러웠다.
‘어재 형, 설마 울어요? 우리도 안 우는데?’
‘우리보다 더 기뻐해 줘서 고마워요.’
‘누가 형 보고 찐팬 아니라고 하겠어요. 아, 예전에 어재 형이 팬 아니라고 한 적 있지 않아요?’
‘아, 아니야!’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조금 글썽였을 뿐인데 입덕 부정기였던 과거의 흑역사까지 등장했다.
팬을 지인으로 둔 적이 없는지 테오라 멤버들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신기하다는 듯이 관찰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수치심을 자극하는 그 행동에 당장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어도 시원치 않았을 테지만,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테오라 멤버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어물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영어 앨범을 발매한 후에는 한동안 해외 활동 비중을 높여서 항공 마일리지를 쌓았다. 그러던 와중에 에도 출연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데다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예능에 출연하게 된 셈이라 특별 자컨 감독인 어재가 동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M.com에서 제작하는 서바이벌은 명함도 못 내밀 매운맛 프로그램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터라 걱정이 컸다. 테오라가 아무리 함부로 대하기 힘들 만큼 컸다고 해도 이 업계에서 알아주는 막장 제작진이 벌일 일은 예측 불가였으니까.
팬들이 한마음으로 걱정했건만 테오라 멤버들은 모든 우려를 불식시키고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합니까?’
Yes라고 대답한다면 당당한 자신감의 표현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극소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작진과 내부, 외부 심사위원들은 어떻게든 ‘리얼 지니어스’가 이 세상에 없음을 증명하려는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전문가의 의견을 맹신했고, 수많은 참가자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천재 타이틀을 빼앗겼다. 그래도 일반인 중에는 단연 돋보이는 탤런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천재에서 수재로 떨어진 충격은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별것 아닌 재능을 가지고 천재인 양 뽐내던 출연자들은 자신만의 꽃밭에서 사는 머저리라고 지겹게 비웃음당하기 일쑤였다.
반대로 No라고 대답한다면 자신에 대한 확신도 없는 찌질이라고 매도당했다.
‘옛날부터 저는 모든 사람이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해왔어요.’
‘…미스터 함. 그래서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한다는 겁니까, 아니라는 겁니까?’
‘천재여도 아니어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요. 제가 천재라면 운이 좋아서 제 재능을 일찍, 쉽게 발견했을 뿐이니까 운이 좋은 거고, 천재가 아니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아요.’
평소 천재 타이틀을 부담스러워했던 함이원은 우문현답으로 MC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그 대답이 워낙 인상적이었던 덕에 다른 멤버들의 재치 넘치는 대답은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을 뿐이었다.
제작진과의 줄다리기는 테오라 멤버들의 완승이었다. 멤버들은 여유로운 데 반해 관계자 중 한 명으로 그 광경을 라이브로 지켜봐야 했던 어재는 손에 땀이 나서 연신 바지에 손바닥을 문질러야 했었다.
심사위원들은 함이원의 음악적 재능이 ‘리얼’이라면서 현대에 태어난 모차르트라는 식으로 비유하기까지 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어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정작 함이원은 그 수식어를 질색했다는 것을….
미국에서 셀럽들의 셀럽이 된 테오라가 금의환향하던 날의 광경도 잊을 수가 없다. 그날은 정말 공항이 마비될뻔했다.
주요 행사에 테오라를 따라다니며 그 인기에 덩달아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전부 착각이었다.
원래 한국인들은 해외에서 잘 나간다는 소리를 들으면 급 관심을 갖는다는 거야 알고 있던 사실. 그러나 그 관심의 규모가 예상 범위 밖이었다.
이전에도 한계까지 팬들을 끌어모았다고 생각했건만, 편견이 만든 한계였던 듯싶었다.
하루걸러 뉴스에 보도되는 수준이라 아저씨들 사이에서도 테오라를 모르면 대화에 끼기 힘들었다. TV만 있어도 ‘테오라’라는 이름을 지겹게 들어야 했던 탓에 노년층까지 인지도를 넓히게 됐다.
하눌 엔터가 상장한다는 소식까지 겹쳐서 시너지 효과도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국민 아이돌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그룹으로 거듭났다.
테오라 멤버들이 스톡옵션을 받는다는 소식도 들려와서 직접 물어보니 사실로 밝혀지는 일도 있었다.
하눌 엔터의 창업 공신은 아니더라도 심장과 뇌를 비롯한 내부 장기 정도의 중요성을 지닌 테오라라서 당연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손중기 대표가 재계약을 위해 영리하게 밑밥을 까는 거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어쨌든 소속 연예인에게 스톡옵션을 준다는 선택을 한 것부터 통이 컸다.
‘…억만장자 되는 거 아니야?’
‘농담이 아니라 진짜 될지도 몰라요.’
테오라 멤버들이 얼마나 벌었는지는 몰라도 지금도 천만장자는 되지 않을까, 속으로만 짐작했다.
‘헛, 갑자기 거리감 생기는데? 하눌에 입사할 걸 그랬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어재 형 하눌에 입사하는 건 어때요?’
리더인 남초록의 발언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팬들도 하눌보다 나은 소속사가 없다고 인정한 상황. 테오라의 계약 조건도 좋은 걸로 추정돼서 다른 곳으로 옮길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하눌에 정식으로 입사하면 테오라와 한솥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결론!
자유를 포기하는 대신 테오라와 같은 곳에 소속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남는 장사였다.
스톡옵션이 없더라도 월급이나 복지가 넘사인 엔터 회사이니 후회할 일은 없을 듯했다. 참고로 테오라가 1군에 포함되던 시기부터 3대 대형 기획사는 옛말이 됐다.
4대 대형 기획사로 일컬어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하눌 엔터를 첫손에 꼽아야 하지 않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아직은 POT 엔터나 키씨 엔터, QU 엔터가 지금껏 아이돌 산업에 기여해온 역사를 존중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하눌 엔터가 상장만 하면 곧 사라질 전통이었다.
‘다른 회사랑 비교하면 상장이 늦었다고 하더라고요.’
‘테오라 이전에도 아이돌을 두 그룹이나 런칭했고, 소속 배우들이 출연하는 작품에 투자해서 꾸준히 이익도 얻는다며. 거기에 테오라까지 있다? 나도 왜 지금까지 상장 안 했는지 모르겠는데?’
손중기 대표가 번거로워서 상장을 미뤘다는 게 정설이었다.
사업 규모를 확장하려는 욕심도 그리 크지 않고 돈에 쪼들리는 상황도 아니었다. 지분 때문에 골치 썩을 미래가 그리 달갑지 않았을 수도 있을 듯했다. 진실이야 본인만 알겠지만.
테오라는 그 후에도 그 존재만으로 대한민국을 알리는 홍보대사가 됐다. 테오라의 흔적을 찾아 한국으로 여행 오는 팬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눌 엔터 근처나 옛 숙소, 테오라가 ‘여름이었다’ 뮤비를 찍었던 여수 바다에서 주로 목격된다고 들었는데 그 모습을 찍으러 다녀오면서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테오라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다.
테오라의 인기에 어떻게든 숟가락을 얹어보려는 시도 또한 계속됐다. 곁에서 지켜보다 보면 참 기가 막혔다.
대부분은 테오라 멤버들이 알지도 못하는 채로 무산되곤 했는데, 간간이 희박한 확률을 뚫고 멤버들에게 전달되는 경우도 있었다.
국내에서 열리는 올림픽 개막식, 선수들과 전 세계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축하 가수로 노래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자기 공적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투명해서 오히려 명쾌했다.
테오라 멤버들은 우리나라를 대표해 전 세계의 시청자 앞에서 무대를 선보일 영광스러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거절하면 바보 아니야? 어떤 의도로 불렀든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 개막식에서 노래할 수 있는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테니까.’
오란의 냉정한 평가에 다른 멤버들도 이견이 없었다. 원래 하나 같이 무대 위에서 팬들과 소통하는 걸 좋아하는 녀석들이라 이 기회를 마다할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몇 달의 기다림 끝에 테오라가 동계 올림픽 경기장에 서게 된 날은 또 어땠나.
깜깜한 밤하늘을 별 대신 드론이 수놓았다가 사라진 후 단조로운 스포트라이트 아래 테오라 멤버들이 하나둘 등장했다.
그 순간, 테오라가 노래를 시작하길 기다리듯 개막식에 초청된 모든 이들이 한마음으로 숨을 죽였었다.
그동안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실수 하나 없는 환상적인 무대였다.
‘크라운 오브 아이돌’에 참여하면서 무대 연출에 관심이 생기기라도 했을까. 준비 과정 초기부터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 없을 만큼 척척 아이디어를 내더니 마침내 그 아이디어들을 현실로 끄집어낸 무대이기도 했다.
‘테오라 뭔데…? 세계적인 스타가 된 건 알았는데 이 실력 뭐야?’
개막식 공연 관계자가 경악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안정감 넘치는 보컬은 드넓은 경기장을 뒤덮었다. 개막식에 초청된 사람들은 귓가에 때려 박히는 생생한 목소리에 마이크를 사용한 게 맞냐면서 웅성거릴 정도였다.
어긋남 없는 칼군무 속에서도 테오라 멤버들 개인의 개성을 찾아볼 수 있었고, 많은 사람 앞에 섰는데 떨기는커녕 여유로운 무대 매너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와, 와…! 이런 걸 뭐라고 해야 되지? 말이 다 안 나오네. 테오라 무대 보면 팬이 안 될 수가 없다더니! 왜 나 지금까지 몰랐지…?’
‘인생 손해 봤지? 그러게 내가 박하준 파기 시작할 때부터 동참했어야지.’
‘내가 선견지명이 없었다….’
실시간으로 입덕하는 팬까지 목격하는 귀중한 순간이었다. 당연히 그 모습들도 카메라에 담아 기록했다.
에는 필연적으로 테오라와 팬들의 모습이 담길 수밖에 없었다. 아이돌과 팬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으므로.
초상권 때문에 팬들의 얼굴은 가려지겠지만,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팬이 지금의 테오라를 만들어줬다는 게 중요했다.
어재는 자신이 완성한 10시간짜리 영상이 든 외장하드를 품에 안고 위풍당당하게 편집실 문을 열었다.
“으흐흐! 이 영상이 테오라 기념관에서 매일매일 상영된다는 말이지…! ”
테오라를 위해 기꺼이 비행기를 타는 팬들을 위한 볼거리가 필요하다고 느낀 하눌 엔터는 재빨리 파산 직전의 박물관을 사들였다. 그 건물을 통째로 테오라 기념관으로 꾸미겠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테오라 기념관으로 재탄생한 건물에는 테오라와 관련된 물건들로 가득 채워질 거라 들었다.
테오라의 노래만 BGM이 될 수 있는 그곳엔 사진은 기본이고 애장품이나 손수 그린 그림, 테오라가 출연한 예능, 드라마, 영화의 장면이 반복 재생될 거라고 했다.
거기에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이 영상까지 더해진다면?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이 된 기분이 이러할까. 어재는 제 손으로 만들어낸 테오라의 기록이 역사가 되어 길이길이 기억될 것을 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