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301
IDOL CHRONICLE (2)
우리 멤버들도 당연히 테오라 기념관에 방문했었다. 개관일에도 관람이 끝난 늦은 시간에 살짝 다녀왔다.
기념관이 있는 장소는 횡성 시내가 아니라 푸른 숲이 둘러싸고 있는 한적한 곳이었다. 버스가 두어 시간마다 한 번씩 서는 곳이었는데 버스 배차시간이 짧아지고 공항에서 바로 오는 노선이 새로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념관을 제외하면 아름드리나무와 넓은 앞마당의 푸릇한 잔디만 보이는 곳. 인적도 없고 이름 모를 새 소리만 들려와서 조용히 기념관을 둘러볼 수 있었다.
팬들을 위해 꾸몄다고 들었건만 우리에게도 추억을 되새겨볼 수 있는 장소였다.
“옛날에 우리가 이런 것도 했던가?”
“정말 필사적이었다, 우리. 그랬으니까 지금 여기 서 있을 수 있는 거겠지.”
“우리 멋있었는데?”
“지금은 안 멋있고?”
“물론 지금은 더 멋지지. 멋있기만 하겠어? 귀엽고 예쁘고 핫하고 다하지.”
박물관이었던 건물이라 소규모 갤러리와 비교도 안 되게 넓어서 우리와 관련된 것들로 공간을 다 채울 수 있을까 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공간이 부족해서 지금도 건물을 증축하고 있는 상태니까.
높은 천장을 가진 기념관 내부는 온통 우리 테오라와 연관된 것들이 가득했다. 흘러나오는 노래, 한쪽 벽을 채운 포스터, 내가 쓰던 일렉기타….
“여기 오면 팬 아니어도 팬 되겠는데? 우리를 무슨 역사적 위인처럼 만들어놨네.”
“이건 지온 님이 쓰던 앞치마로, 업사이클링 형식으로 손수 제작했으며….”
“지온아, 진지하게 웃기지 마. 진짜 그렇게 될 것 같잖아.”
“그러면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웃기긴 하겠다.”
심지어 멤버들 개인 관에서는 각자가 쓰는 향수의 잔향을 맡을 수 있었다. 후각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그 차이를 눈치챌 수 있으려나?
순서대로 구경하다가 들어가게 된 특별관은 영화관처럼 꾸며진 감상실이었다.
재생되는 영상을 보자마자 어재 형이 촬영하고 편집해서 만든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팬들은 영상에 감동했을까. 나는 컷 하나하나에 들어간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분명 우리가 했던 말과 행동인데 영상 속의 우리는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사람 같았다. 어재 형이 보는 우리는 저런 모습이었을까 싶었다.
한 시간짜리 압축된 영상으로도 이런 먹먹한 기분인데 곧 순차적으로 공개될 10편짜리 영상은 얼마나 가슴을 울릴까.
어재 형은 그대로 영화감독이 됐더라도 젊은 거장이 될 인재가 분명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굿즈 샵이 보였다. 급히 짓느라 모듈형으로 조립해 지었다는데 팝업 스토어처럼 개성 넘쳤다.
내부는 별세계였다. 다른 소속사에도 굿즈 샵이 있고, 우리 회사도 사옥 근처에 굿즈 샵이 있긴 하지만, 이만큼 본격적이진 않았다.
굿즈 종류부터 차원이 달랐다. 우리가 처음 보는 굿즈까지 있을 정도니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 굿즈인데도 소유욕이 생겨서 종류별로 지르고 돌아왔다. 주로 사진이 없는 굿즈를 구매하긴 했지만, 우리 지갑까지 열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직원분이 마감하면서 미리 재고를 채워놓지 않았다면 휑한 굿즈 샵만 보고 갔어야 할 거라나.
다른 2D 캐릭터나 아이돌 굿즈보다 저렴한 편인데도 어마어마하게 팔려서 그 수익으로 벌써 굿즈 샵을 하나 더 지을 계획이라고 들었다.
어쨌든 테오라 기념관은 완벽하다는 게 총평이었지만, 딱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테오라 기념관의 이름.
“우리가 기념관 이름을 지어야 한다고? 테오라 기념관이 이름 아니었어?”
“나도 그런 줄!”
“지금도 괜찮지 않나? 직관적이고.”
홍오란은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우리 그룹 이름이 붙은 기념관이 조금 낯간지럽긴 해도 그보다 명확한 설명은 없어서 나도 불만은 없었다.
“다른 이름을 지어도 어차피 팬들은 다 지금처럼 부를 것 같긴 해.”
멋들어진 이름을 붙여도 결국은 기억에 잘 남고 입에 달라붙는 편한 이름으로 부르게 되어 있었다.
“서혼 형 말대로 어차피 테오라 기념관으로 부르게 될 거라면 부담가지지 않고 이름 지어줘도 되지 않겠어?”
초록 형은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그 말도 설득력 있었다. 기념관의 공식 명칭은 서류나 현판에 남는 게 전부라면 욕심내볼 만했다.
“당장 결정해야 하는 일은 아니니까 더 고민해보자.”
“으으! 안 떠올라! 이왕이면 예쁜 이름 붙여주고 싶은데!”
우리는 며칠의 고민 끝에 ‘Teorra in the Cottage’라는 이름을 붙였다. 널리 알릴 생각은 없어서 작은 현판만 구석에 달기로 했다.
“다음으로 어재 형의 장기 프로젝트이자 우리 테오라의 특별 자컨을 감상하는 시사회가 있겠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쭉 감상하려면 10시간이 걸리다 보니 내부 시사회는 열리지 못했다. 대신 우리는 우리끼리 소박한 시사회를 열었다. 내일 일정이 오후부터 있어서 자는 시간을 줄이면 이어서 끝까지 다 볼 수 있을 듯했다.
어재 형을 숙소로 초대해봤지만 자기가 촬영, 편집한 영상을 같이 보기 부끄럽다면서 극구 사양했다.
팬심보다도 더 큰 부끄러움이라니? 우리가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그럼 재생할게?”
“Idol chronicle, Teorra. Play it.”
우리는 시사회를 전부 마치고 나서 어재 형의 영상들이 테오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게 됐다.
* * *
7년 차 아이돌이 된 테오라에게도 당연히 재계약 시즌이 찾아왔다. 하눌의 손중기 대표님이나 관계자분들은 신중히 고민해보라면서도 은근한 기대감이 서린 눈빛을 숨기며 어색하게 미소 짓곤 하셨다.
“다들 부모님이랑 상의는 끝냈지? 어떻게 할래?”
테오라의 미래가 결정되는 중요한 선택. 숙소에는 오랜만에 회의가 열렸다.
매년 초, 데뷔 기념일 전후로 반성회 겸 목표를 정하는 정기 회의가 열리곤 했지만, 이제는 형식적인 절차가 된 지 오래였다. 아이돌로 이룰만한 목표는 전부 이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무게를 잔뜩 잡은 멤버들의 목소리가 생경하기만 했다.
“대표님 말씀대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지. 덜컥 재계약했다가 후회할 수도 있잖아?”
이런 말을 하는 홍오란의 표정은 전혀 심각하지 않았다.
“다른 기획사에서 들어온 제안 많았지?”
말해 뭐 할까. 재계약 시즌이 다가오기 한참 전부터 은근슬쩍 접근하는 사람이 지겨울 만큼 많았다.
“프로는 돈으로 말하는 법. 다들 어디서 접촉했었는지 말해. 조건 따져보게.”
“다른 대형 기획사들은 지나가듯이 말 흘리는 게 전부더라고. 자기들이 생각하기에도 안 될 거 같으니까 그런가.”
“우리 회사 계약 조건을 그쪽에서도 대충 알걸? 우리를 데려가려면 그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을 제시해야 하는데 소속 연예인과의 형평성 문제가 생기니까.”
덩치가 큰 만큼 움직이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샤오두? 그런 곳에서도 명함 내밀었어! 파격적인 조건으로 모시겠다면서!”
“아, 거기 나도 명함 받았어. 갈 생각은 없지만, 계약금이랑 비율 살짝 물어봤는데 입이 떡 벌어질 정도더라.”
순박해 보이는 인상을 주는 서혼 형이지만 연예계에서 구를 만큼 구른 베테랑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정보만 쏙쏙 빼먹은 것 같았다.
“얼마였길래 그래? 살짝 말해줘 봐.”
“비율은 우리랑 똑같았는데 계약금이….”
서혼 형은 초록 형의 재촉에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30억? 아니라고? 3억은 아닐 테니까 300억? 세게 나오네. 역시 중국 자본으로 세운 회사다워. 중국에서 굴리면 300억은 금방 나온다 이거지.”
중국에서는 버는 돈의 단위부터 다르다고 하지만, 중국 내에서만 갇힐 생각은 없었다. 우리 팬들은 어디에나 있고 그런 팬들을 만나는 게 우리의 의무니까 말이다.
“우리가 토사구팽당할 급은 아니지만, 중국 쪽 회사는 워낙 소문이 흉흉해서 말이지. 중국 고위직 사모님이나 갑부랑 데이트해야 할 수도 있을걸?”
“…돈은 지금도 충분해. 평생 써도 다 못 쓰고 죽을 텐데 욕심부려서 불행해질 생각은 없어.”
우리 중에 상대적으로 돈에 민감한 오란이 고개를 저을 정도였으니 다른 멤버들의 의견은 들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빙빙 돌리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난 하눌이랑 재계약하는 게 가장 낫다고 봐. 계약 조건은 조율해야겠지만.”
“난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무던한 지온은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나도 동의. 익숙함을 버리고 새로 적응하는 과정을 감수할만한 매력적인 조건이 없기도 하고.”
“하눌보다 나은 조건을 내세우는 곳은 있어도 하눌만큼 편하진 않지.”
평소에 불만이 잔뜩 쌓여있으면 이적을 고려해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멤버들의 미온적인 태도는 그간의 아이돌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아쉬운 점은 있어도 차차 고쳐가면 되지. 우리가 그럴 짬은 되잖아. 뭐, 우리가 받은 스톡옵션도 있고.”
“역시 홍오란. 솔직하네. 그치, 주식 무시 못 하지.”
“팬들도 대충 재계약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일부러 재계약 질질 끌어서 혼란스럽게 할 필요 없지. 계약 조건만 조율해서 전원 재계약하는 걸로. 이의 있는 사람 지금 말해.”
“Objection? 없어.”
“저도 없습니다!”
테오라 멤버들 전원이 하눌 엔터와 재계약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SNS에는 축하 물결이 이어지고, 뉴스로도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급격하게 치솟은 하눌 엔터의 주가가 최고점을 찍기도 했다. 덕분에 하눌 엔터 주식을 가진 테오라 멤버들은 더 부자가 됐다.
테오라와 하눌 엔터와 체결한 재계약 조건에는 개인 활동의 자유가 전제되어 있었다. 멤버들이 아직 모두 20대 중후반의 나이라 아이돌로서는 아직 전성기라고 할 수 있지만 미리 대비해놓는 차원이었다.
계약서에는 각자 개인 활동을 하더라도 적어도 1년에 앨범 하나를 낸다는 조항도 추가되었다. 우리에게는 불리한 조항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조항을 넣자고 말을 꺼낸 사람은 바로 우리였다.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개인 활동을 우선시하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는 일.
테오라라는 그룹에 애착이 많은 멤버들은 앞으로 계약서에 이런 조항을 넣어서라도 테오라의 일원으로서 꾸준히 활동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재계약 이후.
서혼 형은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믿고 보는 배우로 이름을 알렸다. 단편 영화를 연출했다가 칸 영화제에 진출하는 바람에 경사가 나기도 했다.
오란은 유명 예능 MC로 맹활약하고 있었다. 기분 나쁘지 않게 뼈를 때리는 조언으로 유명해져서 일일 DJ로 라디오를 진행했다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앨범 활동과 콘서트 투어 스케줄 때문에 메인 DJ가 되진 못하고 공동 DJ로 활약하는 중이었다.
박하는 이벤트성으로 진행한 잡지 촬영을 통해 포토그래퍼로 데뷔했다. 박하의 촬영 실력은 팬들에게도 검증돼서 잘할 줄은 알았지만 금방 연예인들에게서 제안이 들어왔다. 촬영 일정이 내년까지 잡혀있다나?
지온은 개인 앨범을 발매해 자신의 존재감을 마음껏 드러냈다. 요리 레시피북도 출간했는데 팬들은 그 레시피북을 관상용 굿즈 취급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온이 요리책은 요리할 때 사용해달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는 해프닝이 있었는데도 팬들은 꿋꿋했다. 아무래도 우리 코티지들의 요리 실력이 늘길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초록 형은 댄스 서바이벌에 출연해 댄서 겸 안무가 남초록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춤 가르치는 일이 재밌다면서 댄스 트레이너로 연습생들의 춤을 간간이 봐주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꾸준히 곡 작업과 프로듀싱을 하고 있다. 활동을 짧게 하는 대신 개인 앨범을 벌써 여러 개 냈다.
노래하는 것도 좋고 이 목소리를 남기는 것 자체에도 의의가 있지만, 그룹 활동보다 살짝 재미가 없었다.
팬들이 나보고 천상 아이돌이라고 하더니, 정말로 아이돌 체질이었던 모양이다.
개인 활동을 하면서 ‘테오라’라는 아이돌 그룹으로 꾸준히 앨범도 냈다. 어떤 해엔 정규 앨범 하나, 어떤 해엔 싱글앨범 세 개를 내는 식이었다.
일 년에 적어도 앨범 하나는 내겠다고 했지, 하나만 내겠다고는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