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31
개인기 만들기
데뷔 앨범은 총 3곡으로 구성되는 미니 앨범. 그중에 내 곡이 2곡이나 포함될 줄이야…. 얼떨떨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나는 편곡을 하나하나 배워갔다.
편곡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작곡, 편곡 방법을 알아서 스킬과 팁 정도만 추가적으로 배웠다. 프로듀서님이 칭찬을 잔뜩 해주셔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배울 수 있었다. 녹음까지 담당하신다니 프로듀서님과는 오래 보는 사이가 되지 않을까?
의외의 고비는 노래 가사. 내가 곡에 담고 싶었던 그 생각과 감정이 서혼 형과 지온이 생각하는 랩 가사의 방향과 살짝 어긋나는 부분이 있었다.
가사를 확실히 발음하지 않아서 내용을 알아채지 못했구나.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러긴 했지만, 너무 심하게 발음을 흘린 듯했다. 그래도 내가 작곡가라는 사실을 알아챌 줄 알고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나 보다.
“잠깐 기다려봐.”
어차피 잘 기억나지 않으니까 담으려던 메시지를 적어서 주기로 했다. 노트에 줄줄이 내용을 적어서 줬더니 지온과 서혼 형이 깜짝 놀랐다.
“동화 한 편 써왔어. H21.”
“가사가 이렇게 구체적인 줄 몰랐어. 우리가 다른 데로 새서 답답했지. 이원아.”
랩을 제외한 가사는 내가 준 내용을 토대로 수정하기만 하면 될 거라고 했다. 도움이 될 줄 몰랐다. 처음부터 먼저 곡에 담으려고 했던 이야기를 알려줄걸.
“이 정도면 기본 스케치는 나왔다고 봐도 되겠어. 난 이 내용에 맞춰서 랩 가사 쓸게.”
서혼 형은 벌써 가사가 떠올랐는지 열심히 끄적였다. 슬쩍 훔쳐봤지만, 악필이라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원. 이 곡, 우리 보고 inspiration 받았지?”
“영감? 맞아. 알아챘어?”
“당연.”
단번에 알아챌 만큼 잘 드러나 있나? 지온이 래퍼라서 가사에 민감하기 때문일지도. 약간 민망했다.
앨범의 컨셉은 ‘탄생 혹은 시작’.
내 입장에는 데뷔가 시작이었고 아이돌로 새로 태어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타이틀곡에선 새로운 아이돌로 데뷔하는 우리의 감정을 이야기했다.
새로운 세계를 마주한 호기심, 기대, 두려움을 다뤘다. 멤버들 각자가 시작에 어떻게 반응할지도 내 상상대로 끼워 넣었다. 해석의 여지를 두고 무언가를 시작하는 누군가의 상황을 대변했다.
참고로 수록곡이 된 곡은 부모님과 통화하면서 영감을 얻었다. 아이돌로 데뷔하는, 새로운 시작을 하는 나를 지켜보는 부모님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간 들었던 얘기들을 정리해서 아빠에게 보여드렸더니.
“문득 이원이 네가 첫 울음을 터뜨렸던 날이 떠오르는구나. 그날은 새벽부터….”
아빠는 과거, 내가 태어나던 날의 기분을 떠올리셨다.
부모님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어서 습작으로 놔두려고 했는데 다듬다 보니 생각보단 괜찮아져서 들고 왔다가 수록곡이 되었다.
데모곡을 들어본 아빠가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셨으니 나쁘진 않은 듯했다.
어쨌거나 타이틀곡 가사 작업은 착착 진행되었다.
그사이 편곡도 거의 마무리돼서 안무 시안을 받기로 했다. 안무가 나올 동안 우리는 틈틈이 개인기 연습을 하기도 했다. 반드시 각자 만든 개인기를 서로 확인해줘야 한다고 박하가 강력하게 주장했다. 혼자만 재밌고, 다른 사람은 노잼일 수 있다면서.
“개인기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
내가 개인기를 만드는 날이 올 줄이야. 예전이라면 상상이나 했을까.
“이원 형은 잘하는 거 많지 않아? 즉석에서 바이올린 연주하는 건?”
“야. 그게 맨날 가능하겠냐? 바이올린은 어떻게 갖고 다닌다고 쳐도 재밌진 않지.”
“그럼 오란 형은 어떤 개인기가 있는데.”
“나? 애교.”
애교? 그 까칠한 오란이 애교를 부린다고? 그 상황이 도저히 그려지지 않아서 뇌가 잠시 멈췄다.
“잘하겠는데?”
“그러게.”
서혼 형과 초록 형은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물론 외모만 보면, 우리 중에 애교가 제일 잘 어울리는 멤버는 오란.
그렇지만 평소 성격을 떠올리면, 기겁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애교를 잘하겠다고? 오란이?
내가 해석한 캐릭터와 완벽하게 반대였다. 오란이 속은 다정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말투나 사고방식이 시니컬했다.
“한번 볼래?”
“아니!”
차마 볼 수 없어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면서 눈을 감고 말았다.
시커먼 남자의 애교를 봐야 한다는 것도 미치겠는데, 그게 오란이다? 소름이 다 돋는다.
“큽, 함이원 너 내 애교를 못 보겠다 이거냐?”
소스라치는 내가 웃겼는지 오란이 짧게 웃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애교를 꼭 보여줘야겠다며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기겁해서 도망쳤고.
연습실을 빙글빙글 돌다가 지쳐서 포기하자 오란이 한바탕 크게 웃었다. 다른 멤버들도 웃겨 죽겠다는 태도였다.
“근데 이원아. 오란이 진짜 애교머신이야. 수치심이 없거든.”
수치심이 없다는 건 이해가 됐다. 수치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는 뻔뻔함. 그건 오란과 매우 잘 어울렸다.
수치심이 없어서 애교를 잘할 거라고? 초록 형의 말은 즉, 평소에 하지 않던 애교를 부리면 보통 사람은 부끄러움을 느껴도 오란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이원이 넌 아직 오란이의 비즈니스 모드를 잘 모르는구나.”
“비즈니스 모드?”
“오란이가 비즈니스 모드에 들어가면, 텐션이 올라가. 귀여운 척도 잘하고 뭐든지 시키는 거 전부 다 해.”
“인격을 바꾸기라도 해?”
“비슷할걸?”
“나는 일할 땐 돈값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보는 스타일이라.”
“괜찮겠지? 나중에 팬들이 알아도?”
“그게 왜 문젠데?”
서혼 형은 걱정부터 했다. 외국에서 오래 살았던 지온에겐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 듯했다.
“카메라가 있는 곳에선 항상 업무 모드겠지만, 그래도 언젠간 들키겠지. 가식 떤다, 원래 성격이 별로다, 그런 식으로 욕먹으려나? 하지만 난 내 일에 프로답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뿐이야.”
대중의 반응은 예측하기 힘들고 선동하기 쉬웠다. 그때 상황에 가봐야 알겠지. 다만, 개인적으로 나는 오히려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만한 노력을 한다는 자체를.
“난 존경할만하다고 생각해.”
“팬들은 놀라실 수도 있어.”
본래 성격을 들키면 서혼 형 말대로 팬들은 동요할 수도 있겠지만.
“팬들을 진심으로 대한다면 괜찮다고 봐. 팬들에 대한 사랑이 가식이라면 배신감 느끼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프로답다고도 할 수 있으니까.”
곰곰이 생각해본 후 초록 형이 말했다.
“물론 팬들이 네 마음을 진심이라고 믿게 만들어야 해.”
오란에게 하나의 과제가 주어졌다. 오란은 생각에 잠겼다. 우리도 팬에게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 고민했다. 언젠가 한 번은 이야기 나눠야 할 주제였다.
“근데, 우리 데뷔도 안 했어!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우리 개인기 얘기하고 있었다?”
정곡을 찌르며 박하가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그럼 나 먼저 보여줄게! 성대모사야!”
박하는 느와르 장르의 영화 속 유명한 대사를 따라 했다. 그 대사를 하던 장면이 도무지 겹치지 않았다. 하나도 안 똑같았다. 너무 달라서 웃음까지 났다.
“너 그거 하지 마. 분위기 싸해질 테니까.”
“너무해. 나도 오란 형처럼 애교나 할까?”
“그냥 얼굴이나 보여줘.”
“히힛, 역시 오란 형도 내 잘생김을 인정하는구나!”
자기 얼굴에 대한 자부심이 충만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박하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신기하다고 생각은 하지.”
“좋다는 뜻이지? 칭찬 고마워!”
서혼 형이 당당하게 나섰다.
“나는 시 낭송하려고.”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그런 시? 아냐. 그건 절대 아니야!”
박하가 결사반대했다. 그 모습을 보고 오란이 웃음소리를 흘렸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시…. 충격적인 선택이었다. 서혼 형, 눈치 없는 편이구나.
이런 상황을 보면 나는 절대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분위기는 잘 읽어서 입력은 정상적인데 출력에서 약간의 오류가 일어날 뿐이었다.
“Poem? 왜? 나쁘지 않은데?”
지온의 의아하다는 반응에 박하가 뒷목을 잡았다. 지온은 또 눈치를 어디에 두고 왔어? 아니 그보단 눈치를 안 보는 쪽에 가까운가.
“아닛! 우리는 아이돌이라고! 어떤 아이돌이 개인기로 낭송을 해!”
“그건 국가적 행사에서나 하는 거야. 3.1절, 현충일, 개천절 같은 날에.”
초록 형도 은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서혼 형은 으음, 몸 쓰는 종류로 하면 좋겠다. 운동은 뭐든 잘하잖아.”
“운동?”
“제기를 한 번에 100개 정도 찬다거나? 물구나무서서 한 손으로 푸쉬업을 한다거나? 공중제비 돌면서 줄넘기를 한다거나?”
“그런 간단한 걸로 돼? 다들 조금만 연습하면 할 수 있잖아.”
뭔가 이상한 소릴 들은 듯한데.
“진심?”
“으응.”
진짜였나보다. 우리 중에 가장 아담한 오란이 어이없어했다.
오란 뿐만이 아니라 다른 멤버 중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본다. 시도조차 하기 무서운데…. 서혼 형의 순발력과 근력, 파괴력은 어떻게 된 일이지?
“충분해. 서혼 형.”
“…그래? 알겠어.”
이해는 안 되지만 일단 접수한다는 듯 서혼 형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앞으로 리더로서 초록 형이 개성적인 멤버들을 이끄느라 어떤 고충을 겪을지 눈에 선했다. 나는 초록 형의 옆으로 가서 어깨를 토닥였다.
“내 순서야? 나는 랩 빨리하기.”
“에이 지온 형! 재미없게! 추천! 나 추천할 거 있어!”
“추천해봐.”
왠지 평범하지 않은 게 나올 것 같은데.
“섹시한 눈빛!”
“뭐?”
“지온 형은 자기의 분위기를 써먹지 못하고 있어. 저음으로 한마디 하면서 그윽하게 바라봐주기만 해도!”
지온의 얼굴이 급격히 찌그러졌다. 나는 박하가 뭘 말하고 싶은지 알아챘다. 지온만의 그 퇴폐적인 분위기로 사람을 유혹하라는 뜻이겠지.
부모님 두 분 다 한국분이라고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지온은 혼혈로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깊은 아이홀 때문에 눈그늘이 우리보다 짙게 졌다. 게다가 이목구비가 날카로웠다.
아직은 젖살 때문에 덜하지만, 나중엔 절로 사람을 꼬이게 할 타입이었다.
“선정적인 건 안 돼. 지온이가 아직 미성년자라.”
“왜 안 되는데?”
자유분방한 가치관을 가진 지온은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분위기를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성인이 되기를 기다려야 할 듯했다.
“아깝다! 내가 큰마음 먹고 비법 알려준 건데.”
“다음은 나?”
“초록 형은 걱정 없지! 성대모사나 모창해도 되고. 무엇보다 많이 먹기가 있지!”
“잘 먹는 사람 흔해. 먹방하는 사람들이랑 비교하면 별것도 아니고.”
“그럼 먹고서 안 먹은 척하기.”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무슨 소린지 듣자마자 이해했다. 김밥을 예로 들면, 배가 부르면 김밥을 옆으로 슬쩍 밀어두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진다. 입안도 아니고 뱃속으로.
마술이라도 하는 건지 초록 형이 먹는 순간을 포착하기가 어려웠다. 그만큼 감쪽같이 먹어 치웠다.
“박하준.”
“미안! 잘못했어!”
초록 형이 살짝 열받으려고 하자 바로 사과했다. 박하는 사과가 빨랐다. 살아남으려면 그래야 했다.
우리 멤버 중에 가장 무서운 사람은 초록 형이었다. 처음엔 다정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서서히 그 사실을 느끼게 됐다. 리더가 된 이유가 있었다.
결국, 나는 개인기를 정하지 못했다. 몇 개 추천을 받기도 했는데 마음에 차지 않았다. 이왕이면 획기적인 개인기를 가지고 싶었다.
오란이 자꾸 얼굴 공격에 애교를 곁들이라고 했다. 내 얼굴로 공격을 하라고? 되물었더니 오란은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