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32
자제하지 마세요
우리 그룹의 이름은 테오라(TEORRA)로 확정됐다. 그러면서 로고가 바로 나왔다고 했다.
추상적으로 표현된 나무라나? 아무리 봐도 나무로는 안 보이는 다각형이었다. tEORRA 글씨를 가로로 가로지르는 대지를 의미하는 직선 정도만 알아볼 수 있었다. 직선 덕분에 O가 조랭이떡처럼 보여서 특이하달까.
전체적으로 멋있다는 평을 들었다. 시간이 흘러도 촌스러워 보일 것 같진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부내가 났다. 멤버들 모두 만족스러워했다.
편곡을 완료하고 러프하게 나눴던 파트도 확정했다. 내가 처음 짜놨던 분배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프로듀서님이 혀를 내둘렀다.
“파트 분배를 칼같이 해놨네. 내가 건드릴 부분이 없어.”
“특별히 신경 썼어요.”
밑그림을 그릴 때부터 멤버들의 파트에 치우침이 없게 했다. 누구라도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분량이 주어져야 했다. 멤버 누구도 실력이 부족하지 않으니까.
메인보컬인 나는 고음 파트를 맡았다. 내 파트가 아닐 땐 백보컬로 뒤를 받치는 역할이었다. 고운 음색을 가진 리드보컬 오란은 흠 없는 노래 실력으로 어디든 잘 어울렸다. 멤버들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주었다.
메인댄서 초록 형은 미성이라서 청량 컨셉인 타이틀곡에 찰떡이었다. 리드댄서 박하의 목소리는 특색있는 음색이라 포인트가 될 수 있었다.
메인래퍼 지온은 독특한 플로우가 특징이지만 이번 곡에선 상당히 자제했다. 딕션을 부드럽게 만들고 가사 배치에 여유를 뒀다. 리드래퍼 서혼 형은 싱잉랩에 가까운 랩으로 노래에 어우러졌다.
각각의 매력의 표현방식과 특징이 달랐다. 나는 멤버들을 열심히 관찰해왔다. 그것은 곡을 쓰는 데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다.
멤버들의 능력 이상을 발휘하게 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못해서 안타까웠다. 아직 작곡 초보라서…. 지금은 여기까지가 최선이었다. 내 이상은 저 위에 있는데 능력이 따라주지 못해서 답답했다.
가사도 전부 나왔기 때문에 음에 맞춰 불러보면서 어감이 이상하거나 운율이 부족한 가사를 조금씩 고쳐갔다.
“이원아. 어젯밤에 꿈을 꿨는데 가사랑 딱 어울리는 느낌이었어. 아파트만 한 거대한 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 열매 같은 게 다섯 개 있는 거야. 그 속에 너희가 있었어. 줄기로 둘러싸인 알? 열매? 같은 게 깨지더니 너희가 하나씩 태어났어. 그리고 나한테 그러는 거야. 형이라고. 나는 꿈에서도 맏이였나 봐. 하하.”
“꼭 뮤직비디오 내용 같은데?”
우리에겐 멸망 후에 새로 태어난 인류라는 세계관 설정이 있다. 판타지로 배경을 옮긴다면 이런 스토리가 되지 않을까? 우리 그룹 이름에도 대지라는 뜻이 있고 로고에도 나무가 있다고 했다. 어쩐지 잘 어울렸다.
매니저 형에게 전달했더니 세계관의 배경 설정에도 반영되었단다.
“아. 가사도 살짝 바꿔야겠다.”
가사는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수정한 보람이 느껴질 만큼 완성도가 높아졌다.
편곡 완료. 가사 완료. 다음 스케줄은 녹음이었다. 멤버들은 각자의 파트를 반복해서 연습했다. 서혼 형은 잠꼬대로 랩을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벌스 하나만 하지 않았더라면 밤새 시달릴 뻔했다.
다이어트도 병행하는 중이었는데, 카메라에 찍힐 날이 가까워지자 더 빡빡해졌다. 말라깽이를 만들어버리려는 음모 같았다. 우리 멤버들 전부 통통하지도 않은데.
우리의 투정에 직원분들은 다른 아이돌보단 양호한 거라고 말했다.
“너희는 다이어트 살살 하는 편이야. 여자애들은 거의 굶다시피 하니까.”
말도 안 된다. 이것보다 다이어트를 더 심하게 하면 생명에 위협을 느끼지 않을까? 카메라에 잘 나와야 하니까 다이어트는 해야겠지만….
“그리고 너희보다 더 마른 남돌도 있어. 우리 회사는 다이어트 덜 시키는 거야. 너무 말라도 보기 싫다는 분들도 있어서.”
“요새는 전보다 나아졌어. 아이돌 건강 생각하는 팬들이 늘어서. 그래도 살은 빼야 하지만.”
대중의 시선을 빼앗기 위해서는 우리가 미의 기준에 맞춰야 했다. 아이돌이 쏟아져나오는 이 시대에 외모란 대단한 경쟁력이니까.
우리를 퍼지게 찍는다는 카메라가 원망스러웠다. 왜 우리를 더 날씬하게 찍어주는 카메라는 없지? 나왔는데 비싸서 못 바꾼 걸까? 의문을 가졌지만 우리는 을이었다. 따를 수밖에 없었다.
대식가 초록 형은 자신에게 주어진 한 주먹의 샐러드에 적응을 못 하는 듯했다.
“나 점심 안 먹었어. 왜 나만 빼놓고 먹어?”
1분 전에 먹어놓고 발뺌을 하다니. 이해는 된다. 나한테도 적은 양이니까 초록 형한테는 간에 기별도 안 갔겠지.
특히 서혼 형은 근육을 빼느라고 고생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어서 근육의 크기까지 크면 옷 핏이 안 산단다.
게다가 청량이 아니라 운동선수로 보일 거라나. 근육을 빼려면 운동을 하지 말아야 했는데 운동 중독인 서혼 형은 금단현상에 시달렸다.
“몸이 찌뿌드드해. 막 죄책감이 몰려와. 운동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야….”
서혼 형은 나중엔 우울해하기까지 했다. 멤버들은 서혼 형 주변에서 계속 얼쩡거리면서 웃기기도 하고 응원했다. 박하는 살살 서혼 형을 약 올렸다. 그런데 그게 거슬렸는지 서혼 형이 싹 다 저리 가라고 했다.
“꺼지라고 했어! 서혼 형이! 충격이야! 믿었던 서혼 형이 나한테 화를. 흑흑.”
박하가 가증스럽게 우는 척을 했다.
“내가 언제….”
뒤늦게 서혼 형이 안절부절못하며 박하에게 사과했다.
화까지는 과장이다. 하지만 서혼 형의 말에 짜증이 묻어있긴 했다.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혼 형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운동을 못 하게 하면 된다는 것을.
이미 예민한 상태라 더 깐족거리면 터질 게 분명했다. 우리는 굳이 모험을 하지는 않기로 했다.
화 안 내는 사람이 화를 내면 더 무섭다고 하니까. 화를 내기까지 채워져야 하는 게이지가 운동 못 할 땐 거의 반의반의 반의반인 듯했다. 조심해야지.
* * *
녹음하는 날이 왔다.
나는 녹음실에 먼저 도착해 프로듀서님과 함께 멤버들을 기다렸다. 프로듀서님이 내가 작곡한 곡이니 녹음하는 과정 전체를 지켜보면 좋겠다고 하셨다.
전에 녹음했을 때는 엔지니어님이 전부 맡아주셔서 장비를 다루는 법만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었는데. 제대로 배울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오늘 녹음하는 곡은 우리 데뷔 앨범의 타이틀곡.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녹음을 처음 해보는 멤버들은 아닌 척해도 긴장해서 얼어 있었다.
매니저 형이 가져온 카메라의 영향도 있으리라. 매니저 형은 카메라에 적응해야 한다면서 우리를 졸졸 따라다녔다. 카메라 전원은 켜져 있는 것 같았지만, 공식 영상이라는 얘기는 없었다.
촬영 연습이 목적 아닐까? 전문가가 아닌 매니저 형이 흔들리지 않고 영상을 찍기는 어려우니까.
“다들 그렇게 긴장해서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겠어? 긴장 풀 동안 이원이 먼저 녹음할까?”
프로듀서님의 말에 내가 먼저 녹음실 안으로 들어왔다. 유리 너머의 프로듀서님 뒤에 멤버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미어캣처럼 나를 지켜봤다.
박하나 서혼 형은 긴장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지온은 아닌 척 뻔뻔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오란은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웃었다. 한쪽 입꼬리가 떨렸다. 초록 형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여기 들어온 사람은 난데 멤버들이 대신 떨어주고 있었다. 그래선지 떨리진 않았다. 숨을 고르면서 헤드폰을 꼈다.
프로듀서님의 지시대로 차분히 따르다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몇 번이고 반복했다. 만족할 수가 없어서 프로듀서님의 좋다는 말에도 녹음을 이어갔다.
내가 부스 안에서 나왔을 땐 시간이 꽤 지나있었다.
“한 번에 끝내고 나올 줄 알았더니. 제일 까다로운 사람을 골랐네.”
프로듀서님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체력으로 뭘 하시려고.
“왜 계속 다시 했어? 뭐가 달라?”
박하가 쪼르르 다가와서 물었다. 자기는 다 똑같이 들렸다면서.
“더 잘 부를 수 있을 거 같더라고.”
“프로듀서님! 혹시 우리가 저기 들어가면 이원 형이 디렉팅하나요?”
“음? 그러려고 했는데?”
“우리 큰일 났다! 깐깐한 프로듀서가 나타났어!”
뒷걸음질로 다른 멤버들에게 가까이 간 박하가 호들갑을 떨었다. 형들에게 엉기면서 나를 가리켰다. 다른 멤버들은 별로 겁내지 않았다. 지온을 제외하곤 녹음해본 경험이 없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온만 어렴풋이 짐작한 듯했다.
“잘하면 되잖아. 그럼 금방 끝내줄게.”
“와. 이 기만자.”
나는 프로듀서님 옆에 앉아서 디렉팅에 참여했다.
“잘하는데? 떨지도 않네.”
“안 돼요. 3번 빼주세요. 중간에 잠깐 피치가 불안정했어요. 몇 번 더 시도해봐요. 오란은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있어요.”
더블링에 들어갈 샘플 중 하나가 살짝 거슬렸다. 내 귀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예민했다. 여러 악기를 다뤄보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게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가르쳐준 선생님들도 하나 같이 그 부분에 대해 놀라셨다.
프로듀서님은 경력이 오래된 분이라 디렉팅이 명확하고 빨랐다. 다만 기준을 높게 잡아두지는 않으셨다.
효율성을 따지면 프로듀서님의 디렉팅이 적합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었다. 나 같은 케이스가 아니면 음원으로 아무리 들어도 알아채기 힘드니까.
하지만 나는 안주할 수 없었다. 우리의 첫 앨범이기도 했고 내 귀가 용납하지도 않았다.
“프로듀서님. 자제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희에게 마음껏 요구하셔도 됩니다.”
“어?”
“이틀, 삼일, 일주일이 걸려도 좋으니까 극한까지 몰아주세요.”
“…어? 뭐라고?”
“그동안 힘드셨죠? 프로듀서님의 디렉팅에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을 테니까요. 눈높이를 낮추셔야 했겠죠.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어, 음. 그래. 내가 눈높이가 저 꼭대기에, 흠흠, 저기 있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프로듀서님은 헛기침을 몇 번이고 하셨다. 흡연하시는 분이라서 그런가. 녹음실에 먼지가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가지고 왔던 물병을 열어 물을 마셨다. 가수에겐 목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특히 나는 목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편이라 녹음실의 먼지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크흠. 그럼 두 번만 더 해볼까요?”
프로듀서님이 오란에게 한마디 던졌다. 안에 있던 오란이 대답한 후에 다시 녹음을 준비했다. 숨을 길게 내쉬는 듯 가슴이 들썩였다.
부스 밖에 있던 멤버들의 눈이 나에게 꽂혔다.
“왜 그래?”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멤버들이 난리를 쳤다.
“악마! 폭군! 아으아아아아!”
“순진한 얼굴은 trick. 내가 본 프로듀서 중에 제일 나빠.”
박하는 좁은 녹음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우는소리를 했고, 지온은 짧게 나를 원망했다.
녹음 기준을 높이면 힘들긴 하겠지만, 그만큼 퀄리티가 올라가잖아? 다들 기뻐할 줄 알았는데?
“이원이가 괜히 천재가 아니었구나. 이런 독기라면 인정할 수밖에. 각오 단단히 해. 동지들….”
“오늘부터 우리 중 최강은 함이원이야. 내가 리더지만 차마 반대할 수가 없어. 미안하다….”
멤버들은 잠깐 엄살을 피우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나에게 봐달라는 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다. 불평도 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다시 녹음하는 동안 묵묵히 디렉팅에 따랐다. 날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내일을 기약하며 녹음실을 다 같이 나올 때, 프로듀서님이 슬쩍 중얼거렸다. 몇억짜리 스피커로 들으면 티가 나겠다고.
나는 보람을 느끼며 후련하게 녹음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