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33
넌 도대체 뭐가 문제야?
“다들 그거 알아? 우리 팬 있다는 거?”
함께 스트레칭을 하던 도중 초록 형이 화제를 꺼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초록 형을 쳐다봤다.
팬이 있다고? 데뷔도 하지 않았는데?
“당연히 알지! 왜 몰라!”
“나도 안다. 내 팬.”
“그분들이 우리 팬이셨나? 나는 SEED 선배님들 팬이신 줄 알았는데.”
“서혼 형은 그걸 왜 몰라. 바보네.”
“…….”
아. 팬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면 바보가 되는 상황인데, 아는 척하고 싶어도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함이원. 모르냐? 하긴 얘는 누가 자기 주위를 맴돌아도 안중에도 없더라. 눈치 없는 편이라.”
“나 눈치 있어. 그것도 많이 있어. 인간관계에 약할 뿐이야.”
오란이 내 변명에 코웃음을 쳤다. 그리곤 예시를 하나 들었다.
“그러셔? 그럼 말해봐. 길을 가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거기 잘생긴 분!’하면서 불러. 어떻게 반응할래?”
“…주변에 잘생긴 사람이 있나 찾아본다?”
“아닛! 이원 형! 그럴 땐 나 불렀나 하고 뒤를 돌아봐야지!”
그건 왕자병 아닌가? 자기 외모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진 박하라면 뒤로 돌면서 ‘저 불렀어요?’하고 물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그러면 꼴값한다고 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세상엔 잘생긴 사람이 많으니까 나를 부른다고는….”
“기준이 어딘가 비틀려있어. 미적 감각에 이상 있니? 이원이 얼굴을 가졌으면 어릴 적부터 예쁘다거나 잘생겼다는 말을 지겹게 들을 텐데. 그렇지 않아?”
초록 형이 끼어들면서 손바닥을 내 이마에 댔다.
왜 거기서 열을 재? 나 멀쩡한데?
“어리면 다 귀엽잖아. 그리고 예의상이라도 귀엽다거나 예쁘다고 하지 않나?”
“맞는 말 같기도 하고.”
“내가 활동적인 어린이는 아니었고, 조금 커서는 어쩐지 애들이 날 멀리하던데. 말도 안 걸고.”
말을 걸지 않아서 굉장히 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결국은 익숙해져서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서 살았다.
“네 친구들은 뭐라고 하는데.”
툭 무심하게 오란이 물었다. 다들 궁금해하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와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이 객관적인 평가를 해줬기를 기대하며.
미안하지만 그 기대는 무참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
“친구 없어서.”
“얘는 도대체 뭐가 문제야.”
오란은 속이 터진다는 듯 주먹으로 제 가슴을 두들겼다.
친구가 없는 게 잘못인가? 사회성 없다는 증명 같아서 부끄럽긴 한데 잘못까지는 아니지 않나.
“내가 전에 말했잖아. 이원이 ‘고독한’ 천재 같은 타입이라고. 고등학교 입학 전에도 그랬을지는 몰랐지만.”
초록 형이 나를 옹호해주는지 놀리는지 모를 이상한 변명을 해줬다.
“그러니까 이원이는 지금까지 잘생겼다는 말을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거네. 어쩌다 들어도 인사치레라고 생각하고. 굉장한걸?”
서혼 형이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 입을 크게 벌렸다. 그렇게 놀랄 일이야?
“부모님한테는 자주 들었어. 그치만 그건 다들 그렇잖아.”
“인식이 완전히 왜곡되어 있어. 이걸 고쳐줘야 할까? 아니면 내버려 둬야 할까? 다들 어떻게 생각해?”
내가 가진 인식에 오류가 있으면 당연히 고쳐줘야 하지 않아? 이걸 투표하겠다고?
멤버들의 얼굴에 장난기가 잔뜩 묻어있었다.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닌가? 나를 놀리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놔둘까.
“재밌으니까 놔 두자에 1표!”
“나도 거기 1표.”
“이원아, 미안한데 나도 후자야.”
“말해 뭐해.”
순서대로 박하, 지온, 서혼 형, 오란의 대답이었다.
“만장일치니까 내버려 두기로 하자. 이원아. 문제 생길 일은 없어. 팬들은 좋아할 거니까 오히려 장점이 하나 생기는 셈이지.”
어느새 투표를 마친 초록 형이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맥락상 내가 내 잘생김을 몰라서 재밌어하는 듯했다.
하지만 세 명이 우기면 호랑이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고사성어도 있다. 멤버들이 나를 왕자병으로 만들려는 계략이 아닐까?
후자 쪽에 무게가 쏠렸다. 왜냐면, 나는 내가 특별히 잘생겼다고 생각해본 적 없으니까.
부모님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니 평범 이상은 된다고 생각하지만, 흔한 얼굴 아닌가 싶었다.
“좀 부러운데? 저런 개성은 아무나 가질 수 없어. 타고나야지.”
팔짱을 끼고 있던 오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끝까지 연기하려는 건가. 철저한 오란다운 태도였다.
“No way.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니.”
“딴 곳으로 얘기가 샜는데, 우리도 팬 있으니까 더 열심히 준비하자고 하려고 했어.”
“진짜로 팬이 있어? 본 적이 없는데.”
나는 아직도 팬이 있다는 게 의심스러웠다. 데뷔도 하지 않았는데 도대체 뭘 보고 팬이 됐지?
“우리 데뷔 평가 무대할 때 관계자 말고도 초대받은 분들 있거든. 박하같이 오래 연습생 생활한 애들은 눈에 띄게 되어 있고.”
아하. 그런 경로로 팬이 되는구나. 그러면 데뷔 전이어도 팬이 있을 수 있겠다. 우리 그룹 자체의 팬이라기보단 개인 팬이겠지만.
하눌 엔터에 들어온 지 이제 5개월. 현실적으론 내 팬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기대는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다들 안무 시안 어땠어? 안무 확정되기 전에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다른 분들도 우리 의견 반영한다고 하셨고. 솔직히 말해줘.”
“네 개 중에 뒤에 두 개는 멋있었어. 곡이랑 어울리고. 그런데 우리랑 잘 맞냐고 묻는다면 글쎄.”
“오란이 말한 안무가 괜찮긴 했는데 수정이 필요해. 우리의 장점을 드러내기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오란의 까다로운 평가는 내 의견과 결을 같이하는 부분이 있었다.
“마지막 안무가 좋았어. 포인트가 딱 잡혀있어서 그 점이 눈에 띄더라.”
“뒤에서 두 번째. 따라 하기 쉽고 중독적인 안무라.”
서혼 형과 지온은 각자가 중점에 둔 부분이 달랐다.
“안무 두 개를 조합하면 좋겠어! 초록 형이 참여하면 어때?”
두 안무를 짜 맞춰서 하나로 만들 수 있다면? 두 개의 장점을 모두 얻을 수 있다. 어렵겠지만 성공할 때까지 해보면 되지 않을까. 거기에 초록 형이 힘을 보탠다면? 우리의 특성까지 고려한 안무가 탄생하지 않을까.
“좋아. 바라던 바야.”
초록 형에게도 안무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다. 다만, 다음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안무가로서도 초록 형은 재능이 넘쳤다. 새 안무를 선보일 때마다 선생님들에게 칭찬이 쏟아질 만큼. 하지만 창작 안무를 상업적으로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주로 월말 평가나 학교 무대에서 안무를 짰을 뿐이었다. 회사 분들도 데뷔 앨범 타이틀 안무를 초록 형한테 덥썩 맡기는 모험을 할 순 없었으리라.
“회사에 말해보고 들어주시면 그렇게 하자.”
* * *
혹독한 다이어트 후에 우리는 프로필을 비롯해 앨범 자켓과 컨셉 앨범을 찍게 됐다. 더 빨리 찍었어야 했는데 최상의 상태에서 찍겠다고 일정을 미뤘다고 했다.
프로필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사전에 다 같이 공부했다. 포즈 연구도 하고 표정도 연습했다.
“남초록. 넌 왼쪽 얼굴이 더 낫다.”
“초록 형은 여우같이 웃으면 돼! 더! 더!”
“오란아. 더 환하게 웃어봐. 어음. 미묘한데…. 피곤하니. 오란아? 실전에 가면 완벽할 테니까 생략할까?”
“지온아 고개를 조금 더 숙여봐. 눈빛 살게. 너무 숙이진 말고. 무서우니까.”
“박하 is 뭔들이다. 본판이 잘생겨서 다 잘 어울리네.”
쇼핑몰 모델을 오래 한 덕분이겠지. 어떻게 해야 더 잘생겨 보이는지에 대해선 박하가 전문가였다. 나를 코치해주면서 그 전문성을 불신하게 됐지만.
“이원 형! 더 게슴츠레하게 쳐다보란 말야!”
“우리 앨범 청량 컨셉 아니었어?”
“앨범은 앨범이고! 형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건 도도함과 금욕적인 섹시함이야!”
“…도도? 금욕? 섹시?”
청력을 의심하게 만드는 단어선정이었다. 나한테 그런 게 어울린다고? 제정신인가.
“아니아니! 그게 아냐! 네가 나한테 빠지는 건 당연하지만 그 책임은 나에겐 없다. 넌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겠지만, 그래도 좋아하고 싶으면 맘대로 하든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오만한 인물이 되란 말이야!”
“…쓰레기 아냐?”
“그럼 형은 형한테 반하는 사람들 다 책임질 수 있어?”
“…아니지. 근데 그게 도도나 섹시함이랑 무슨 관계가….”
“업신여기란 말이야! 깔보란 말이야! 팬들은 그걸 원해!”
“…….”
나는 박하가 원하는 대로 표정을 지어준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저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변태…? 아닌가? 내가 아무리 고민해봤자 이해할 수 없을 듯했다. 그냥 그런 게 있구나 하고 미지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촬영장.
모든 준비를 마치고 한 명씩 프로필을 찍어갔다. 프로필 사진을 먼저 찍고 그 후에 앨범 재킷 촬영을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우리를 담당한 사진작가님은 여자분이셨는데, 분위기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데에선 한 손에 꼽히는 분이라고 했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찰나를 잡아내 차이를 보여줄 수 있다니. 존경스러웠다.
설레면서 기다리다가 차례가 왔을 때, 나는 그만 충격을 받고 말았다. 박하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증거를 발견했기 때문에!
“좋아요! 너무 좋습니다! 북부 영지를 다스리는 공작님 같네요!”
“……?”
찰칵찰칵찰칵?
저게 도대체 무슨 수식어야? 공작님? 왜 그중에서도 북부 영지를 다스리는데? 머릿속은 엉망진창인데 몸은 착실히 포즈를 다르게 하고 있었다. 사진작가님은 도대체?
“촬영 많이 해봤나 봐요! 자연스러워서 찍기 편하네. 고개 약간 오른쪽으로 틀어줘요. 좋아, 굿!”
차차차차칵?
그거 보라며 박하의 콧대가 높아져 있었다. 결과물을 보고 촬영장에 있는 스태프들과 매니저 형, 멤버들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수준이 높다고 사진작가님을 치켜세우는 모습이 목격됐다.
…분명 회사에서 어렵게 모신 분이라고 했지? 이쯤 되니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았다. 박하가 말한 취향은 생각보다 일반적일지도.
“다음은 청량 버전으로 갑니다. 이원 씨 옷 갈아입고 메이크업 고치는 동안 쉬는 시간입니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헤어와 메이크업을 고치러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오래 고민했다. 우리 곡을 어떻게 비주얼로 드러내야 할지.
보통, 교복이나 반바지에 컬러풀한 색감이 들어간 스트릿 패션으로 청량을 표현하곤 했다. 그런데 우리 데뷔 시기는 한겨울. 게다가 반짝반짝한 청량함도 아니었다.
디렉터님과 스태프들을 비롯한 멤버들은 몇 날 며칠을 이어진 회의를 통해 결론을 내렸다. 반바지나 과한 색감은 코디하지 않기로.
기본적인 틀은 교복이 되었다. 대신 옷의 재질에서 차이를 둬서 파스텔 톤의 니트나 울로 만들어진 소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신기하게 생겼는데?”
손등만 덮는 뜨개질 장갑이었다. 장갑이라고 했으니 장갑이 맞겠지.
아련한 청량. 그 미묘한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까 싶었는데 컨셉 앨범 개인 촬영을 하고 나니 감이 왔다. 눈에 힘을 빼고 울 듯 말 듯 한 모호한 표정을 지으면 오케이 사인이 나왔다.
앨범 재킷 촬영이 제일 어려웠다. 단체 촬영이라 각자의 표정에 결이 맞아야 해서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내가 이런 표정이 있었던가? 새삼스러운 감격을 느꼈다.
아이돌, 생각보다 나랑 잘 맞는지도?